택배
치간칫솔이 왔는데 일직선이다. 치아 앞쪽은 할 수 있어도 안은 어렵다. 아내가 풀어서 살펴보다가 어쩌면 좋을까. 주섬주섬 싸서 다시 보냈다. ㄱ자로 굽어진 것을 바꿔줬으면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문밖에 와 있다. 파랬던 게 노란 예쁜 것으로 왔다. 해 보니 참 잘 된다. 소금물에 칫솔과 함께 담그고 사용했다.
처음 소금물로 칫솔질하니 거품도 없고 찝찔해서 되겠나 했는데 몇 해 지나니 잇몸이 튼실해진 것 같다. 걸핏하면 질금질금 나던 피도 멎고 거기다 치간칫솔로 아래위 이 사이를 시원하게 꼭꼭 찔러 넣어 쌓이고 끼였던 걸 털어내니 입 냄새도 가시고 한결 깨끗하다. 아들도 처음엔 치약으로 거품을 부글부글 내며 해야지 뭐 이런 것으로 하냐며 떨떠름했는데 해 보니 좋아졌다며 곧잘 따라 한다.
처음 치간칫솔을 할 땐 막힌 곳을 뚫으니 잇몸을 건드려 피가 줄줄 났는데 자주 하니 쏙쏙 들어가 다 틔워졌다. 약국에서 그때마다 10개들이를 사서 쓰다가 택배로 모든 걸 살 수 있대서 시켰는데 정말 한 보따리 보내왔다. 더 좋은 것 같다. 창고에서 대량으로 보내니 좀 헐하다. 또 재빠르게 오는데 놀란다. 마음에 안 들어 문밖에 두면 어느새 갖고 가 잽싸게 다른 걸로 바꿔 준다.
주방용품이나 세제, 의류, 학용품 등 모든 게 빨리 배달된다. 당뇨가 있어 일부 외국 약품을 사야 하는데 관계없이 들어온다. 이름난 대면 무엇이든 틀림없이 당일이나 밤, 새벽, 아침 등 아무 때나 찾아온다. 왔나 싶어 문을 열어보면 벌써 ‘저 왔습니다.’ 하고 고개 숙인다. 시장 갈 일이 줄어들었다.
밭에서 가꾼 채소를 딸에게 보내는데 싸서 아파트 택배 장소에 두면 다음 날 잘 받았다고 연락이 온다. 가깝나 저 먼 곳인데---. 등기 편지만치나 정확하고 빠르다. 제멋대로 크고 작으며 또 헐렁하고 딱딱한 것이 엉망인데도 잘 가고 온다. 옛날 주소와 도로명 주소로 혼란스러운데도 어찌 알고 잘도 다닌다. 주소를 몰라도 전화번호만 대면 선물 택배가 물어물어 찾아간다니 신통방통하다.
생활에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인가. 얼마나 많은지 수두룩하다. 거의 모든 게 택배로 뛰어다닌다. 명절 때면 가득가득 넘쳐난다. 전국 각처 섬 지방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 다 처리해서 분류해 어김없이 보내니 놀라워라. 찾기 힘들어 되돌아오는 걸 못 봤다. 그 복잡한 벌집 같은 아파트를 잘도 찾아간다.
급히 갈겨 적었는데도 잘 알아보고 희미한 것을 읽어보고 물 흘러가듯 굽이굽이 찾아간다. 한번은 사과 한 상자가 왔다. 어디서 보냈는가 하고 보니 옆 동의 것이다. 동 번호가 잘 못 됐다. 연락하니 고맙다며 얼른 가져갔다. 제주에서 갈치를 보냈는데 좀 상해서 괜찮을까 물었더니 당장 다시 보낼 테니 버리라고 일렀다.
여름날 오면서 뜨거운 날씨에 비릿한 냄새가 달랐다. 잘못 찾아올 수 있고 음식은 상할 수도 있다. 구워 먹으니 맛만 좋다. 배탈이 나지 않았다. 막 변하려던 참이었다. 괜찮다며 벌써 먹었다니 고맙다며 인사하는 게 전화 속에 보이는 것 같았다. 다 남아야 하는데 어렵게 해서야 되겠나.
바다 생물은 짠물이어서 크게 상하지 않으면 절 삭아서 먹을 만하다. 어릴 때 등짐장수들이 이고 지고 넘어온 고등어 꽁치는 흐물흐물한 게 꿀쩍 썩은 것이 있다. 한 푼 싸서 구우면 온 동네가 맛있는 냄새로 들썩인다. 머리까지 바삭바삭 먹었다. 수박 참외 등 풀 과일 아닌 감과 사과, 배, 자두 등 나무 열매는 삭은 것이 더 맛나다.
국과 반찬을 보냈는데 받았다는 말이 없어 알아봤더니 사정이 생겨 늦었단다. 접수증 번호를 알고 개통을 알아보니 어디에 있다며 내일 배달될 거란다. 얼어 터지고 물이 흘러 형편없단다. 상자도 깨져서 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안고 왔더란다. 보낸 내가 잘못이다. 겨울날 무사히 갈 줄 알았지. 그렇게 될 줄을 미처 몰랐다.
미안해서 괜찮다며 날고기는 언 것을 녹여 먹었다. 친정에서 보낸 것을 어찌 버리나. 맛만 좋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알고 살 수 있나. 하다가 보면 부득이 여름날은 상하고 겨울은 얼 수 있다. 분실되거나 망가진 것이 생긴다. 따지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어서 ‘다리야 살려라’ 하고 뛰는 배달자가 쫓겨나거나 변상하는 일이 있다.
비싼 것을 물어주고 나면 봉급이 날아가 버린다. 좌우 문 앞으로 갖다 놓는다는 게 반대로 갈 수 있다. 그도 가정을 이끄는 사람인데 머리털만 건드려도 혼쭐나는 세상이다. 잘 사는 여유 있는 태평세월이다. 아니 그때 요순시대가 요즘만 했을까. 턱도 없는 일이다. 냉장고와 차, 텔레비전이 있기나 했나.
뒤에 보니 냉동은 녹기 전에 가라고 보온 주머니에 넣어왔다. 또 깨지지 말라고 공기 방울 비닐을 감싸서 보내왔다. 낮엔 빈집이 많아 전하기 어려워 퇴근해야 할 밤에 “올라갑니다.” 인터폰이 온다. 집집이 얼마나 보내고 오는지 산더미 손수레에 힘겹게 밀고 다니며 정성스레 ‘띵똥’ 하고 넣어준다.
모든 게 이렇게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이 어딨나. 그 속에 젖어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감사 감사할 뿐이다.
첫댓글 가족들과 설 잘 보냈어요
편리한 세상 택배 잘 묘사 감명 깊게 읽었어요
나이테 한 금 더 그어져 건강에 더 신경 써야 할 땝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가뭄이 심했는데 겨울 비가 제법 왔습니다.
올해도 풍년입니다.
다음 주말이 입춘입니다.
아파트 재활용장에 택배박스가 산을만들었습니다.새벽에 콩이데리고 지나가는데 소리가들려 깜짝놀랐는데,경비아저씨가 박스를 양옆으로 쌓아서 굴을만드셔서 아저씨하고 많이 웃었습니다.편리함뒤에 숨은게 보여서 걱정입니다. 어쩌냐구요 저 박스 스치로폼을...ㅠ
쓰레기장이 늘 찹니다.
명절 때 하루만 밀려도 산더미입니다.
생각에 저 많은 게 다 어디로 가나.
엄청납니다.
모두 택배 종이 박스와 스티로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