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4월 14일) - 해방, 숭늉커피(和而不同), 그리고 혁명을 꿈꾸다
홍성-천수만-보령-대천-무창포
김좌진 장군의 고향이 홍성인 것은 읍내 한 가운데 서있는 장군의 동상을 보고서야 알았다. 어젯밤 홍성에 들어와서 비 맞은 자전거를 내린 곳도 동상 앞이었고 오늘 홍성을 떠나기 위해 자전거에 오른 곳도 동상 앞이다. 장군은 오른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전 반대쪽으로 갈 거구만유’. 장군께 작별 인사를 올렸다. 오늘은 충청도 바닷가를 제대로 느껴보련다. 아침 끼니는 어젯밤 저녁 먹고 오는 길에 싸온 김밥 두 줄과 컵라면으로 마쳤다. 천수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홍성을 벗어나 해안 마을로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4차선 도로를 탔다. 어제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4차선이 이곳에선 생판 달랐다. 쭉 뻗은 도로 모양새는 경기 지방의 그것과 흡사했지만 길을 달리는 자동차 댓수, 화물차 빈도, 속도 등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짐을 잔뜩 꾸린 자전거는 홀가분했다. 어제의 무리한 라이딩으로 피로할 것 같던 다리도 가벼웠다. 다만 아킬레스건에 이상한 증상이 약하게 나타났다. 지난 장거리 여행에서 아킬레스건이 아팠던 기억은 없었다. 내 장거리 여행 경험상 첫날이나 둘쨋날 양쪽 무릎 뒤 오금 쪽 인대가 아프다가 세쨋날 쯤 되면 통증이 사라지곤 했었다. 한 시간 정도 4차선을 달려 구운 김 포장지에서 많이 본 ‘광천’에서 지방도로 내려섰다.
지방도는 지루하지 않다. 도로 옆 논밭은 깊은 고랑으로 숨 쉬고 있었다. 짙은 흙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와 내장기관 곳곳으로 스며든다. 내 몸 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숨은 다시 논밭으로 돌아갔다. 길은 적당한 곡선과 높낮이로 자전거의 경쾌한 전진을 응원하고 있다. 길가엔 늘어선 벚나무들은 꽃을 화사하게 피워내고 있다. 가벼운 바람은 꽃비를 만들어 준다. ‘봄 처녀 제 오시네~’ 평소엔 나와 상관없던 가락이 어디선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혼자 웃고, 혼자 노래하고, 손뼉치고, 엉덩이도 살랑살랑... 버라이어티한 원맨쇼가 한판 벌어진다. 폭력적인 4차선 도로에서 난 해방된 것이다. 50분 라이딩에 10분 휴식하는 어제까지의 시간표는 더 이상 효용 가치를 갖지 않는다. 쉬고 싶은 곳에서 자전거는 멈췄고 갈등 심한 갈림길에서 여행자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령호방조제를 만났다. 서해안의 방조제는 강원도에서 터널을 만나는 것처럼 길과 길을 잇는 흔한 구조물이다.
방조제 끄트머리에 있는 공원에서 천수만 일대가 확대된 지도를 보며 오늘 경로를 구체화한다. 보령호방조제는 천수만으로 들어가고, 천수만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이다. 천수만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한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경로를 라이더는 좋아하지 않는다(나만 그런가?). 하지만 오늘만은 나쁘지 않다. 다시 돌아온들 어떠리, 길을 잃고 헤맨들 또 어떠리 오늘 같은 날.
천수만으로 가는 곳곳에서 ‘굴단지, 굴축제’를 알리는 입간판을 볼 수 있다. 간판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천북면 쪽으로 갔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은 소담스레 이쁘다. 정류장 옆엔 아담하거나 큰 나무가 있어 작은 용무를 들키지 않고 해소할 수도 있다. 언젠가 이런 시골길을 달리다 목격했던 풍경이 생각난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고장 났나? 왜 그럴까?’ 하고 있는데, 마을로 난 좁은 길 저 끝에서 할머니 한 분이 굽은 허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낀 백발 성성한 버스 운전수가 버스를 멈춰두고 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정류장 마을을 빙 둘러본다. 정겹다. 나는 사회를, 국가를, 세계를 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겨운 연대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논리와 성과로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어주지 못하면 허사이다. 이런 시골을 살려내야 한다. 살풍경 도시를 이런 시골로 전화해야 한다. 내가 꿈꾸는 혁명은 그런 것이다. 내 딸 이름은 그래서 ‘다정’이다.
천북면 굴 생산 단지에 들어선 때는 마침 점심시간이다. 가장 허름해 보이는 굴밥집에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 네 분이 식사 중이다.
“굴밥 되남유?”
“한 30분 지달리셔야 돼아유.”
“지달리쥬 뭐.”
“그러지 말고 지덜이랑 한 숟갈 같이 하실 튜?"
”지야 고맙쥬“
“워디서 오신대유?”
“춘천유”
“강원도 춘천이유?”
“그렇쓔, 강원도 춘천.”
“아따따! 어떻게 자전거 타고 여그까지 오신대유. 직장은 휴가 내셨슈?”
“읎쓔.”
“아...근디 몇 살이나 드셨슈? 바가지 벗으니께 더 젊어 뷔시네유.”
“68년 잔나비 띠유.”
“워메, 그람 저 **이 아빠랑 갑인디 아자씨는 총각이구만, **아빠는 쭈글쭈글 헌디”
“총각이구먼유.”
“그렇쥬? 총각이니께 여행도 맘대로 다니고 그러쥬?”
“이것도 좀 드셔보시구 많이 잡숴유.”
“네, 고맙슈.”
고봉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커피 드슈. 숭늉 커피 드셔 보셨슈?”
“숭늉 커피라고유?”
“우덜은 숭늉에 커피 타 먹슈. 맛있슈.”
“야, 구수하구만유.”
“밥값은 안 받을거쥬?”
“이렇게 드리고 워팄게 돈을 받어유? 가제 명함 가지고 가셨다가 담에 오시는 꼭 또 오슈. 그럼 돼유.”
여행한 이야기를 글로 좀 써보려고 하는데 그때 이집 이야기를 꼭 넣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제 안 사진 몇 장 찍겠다고 했더니 분주하게 식탁을 닦고 치운다. 아주머니가 가게 안을 단장하는 동안 만원짜리 한 장을 계산대 위 장부 밑에 숨겨두고 나왔다.
천수만을 둘러 돌아 다시 보령호방조제를 건너 대천항 쪽으로 간다. 바닷가와 나란히 난 길로 접어드는 언덕길을 굽이굽이 내려오는데 바다가 빠끔하게 보이는 곳으로 연기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하얀 수증기들이 무리지에 피어나고 있었다. ‘해수온천인가?’ 가까이 가서 자전거를 세우고 관찰했다. 안개다. 안개가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갯벌 위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안개의 흐름(‘뭐라 딱 표현할 방뻡이 없네...’). 얼른 자전거에 올라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보니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안개가 더 무리지어 낮게 깔려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점심시간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같다,고 생각했다. 그란마호에서 내려 육지로 잠입하는 카스트로의 혁명군 같았다. 저 안에 체 게바라가 있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안개와 ‘동반남하’ 한다.
대천항을 지나 대천해수욕장으로 갔다. 토요일 이어서 인지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모래밭 바로 앞으로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나란히 나 있고 길 건너는 식당과 숙박 업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뵈기 싫었다. 뒤엉킨 차들과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몰아 무창포로 페달을 재게 돌렸다. 무상급식으로 점심밥을 할 때까지의 충만감은 대천과 무창포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무창포로 오는 내내 조금 진정되어 가던 아킬레스건이 격하게 괴롭혔다. 무창포는 주꾸미 축제로 들썩이고 있었다. 해변가에 차려진 몽골텐트 주꾸미 식당에서는 만취한 아저씨의 장밋빛 스카프가 볼륨 이빠이 올린 스피커를 타고 사람들의 귀를 째고 있다. 무창포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나가 오늘 여기서 멈출지 더 갈지 고민에 빠진다. 무창포의 저녁은 안개가 점령하고 있었다.
첫댓글 해안가에서 생기는 안개는 해무라고 하지 않나요?
남자는 서식지를 떠나면 다 총각행새를 하는게 정상인가봐유~?
숭늉커피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 는 뭔가 심오한 관계가 있는건가요? 평등, 균등한 혁명?
화합하되 같아 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죠.
숭늉의 구수함은 커피를 만나도 제 맛을 잃지 않았고, 커피향은 숭늉의 구수함을 침범하지 않으며도 잔 속에 그윽하더이다.
끄덕~~~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