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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협주곡 이야기
< 하이든의 협주곡 이야기 >
Franz Joseph Haydn (1732.3.31.-1809.5.31.)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16살까지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던 음악가.
교향곡의 아버지.
작품 / 106곡의 교향곡, 68곡의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 시대 기악곡의 전형을 만듬.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사람)
만년에는 미사곡과 《천지창조(天地創造) Schöpfung》(1798), 《사계(四季) Die Jahreszeiten》(1801)
등 오라토리오풍의 교회음악의 명작을 남김.
1760년경까지 빈
가장 초기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예술적 개성은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토착적인 전통과의 결합(디베르티멘토나 그 밖의 게임음악)을 볼 수 있다.
1760-1790(아이젠슈타트에서 에스테르하지)
1761년,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의 부악장으로 취임하자 초기의 교향곡군이 탄생되었다.
1761년의 표제가 붙은 3부작(제6번 <아침>, 제7번 <낮>, 제8번 <저녁>)으로 대표되는 초기의 교향곡에는 바로크의 흔적이 역력하다.
1770년경의 이른바 '슈투름 운트 드랑'시기에 이르자 급격히 표현력이 심화하여 클라비어 소나타, 현악4중주, 교향곡 등에 현저한 발전의 자취가 새겨진다. 종래의 클라비어 소나타는 디베르티멘토풍의 경쾌한 성격이었으나 하이든은 엠마누엘 바흐의 '감정과다양식'의 풍부한 표현력이나 클라비어 협주곡의 견고한 구성을 소나타에 이식하여 소나타를 교향적인 것으로 하였다. 현악4중주도 디베르티멘토풍의 성격을 배제, 4악장 구성을 원칙으로 하여 고전파의 현악4중주 구조와 정신이 확립되었다. 여기서는 푸가 형식이 악장에 채택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교향곡에도 새로운 양식에 대한 의욕을 볼 수 있으며 단조의 채용, 힘찬 리듬적 충동에 의한 표현의 심화가 꾀해지고 있다.
1781년은 하이든이 전적으로 새로운 특별한 방법으로 작곡하였다고 자칭한 <러시안 4중주곡>이 소나타 형식을 실내악의 분야에도 확립한 것으로 의의가 깊다.
1783-1784년의 교향곡(제76번-81번)에는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특징이 보이나, 한편 모차르트도 1782년부터 1785년에 작곡한 6곡의 현악4중주곡을 하이든에게 바쳐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1780년대 후반에는 하이든의 명성이 전유럽에 퍼져 외국으로부터의 작곡 의뢰가 늘어났다.
1786년에는 파리의 관현악단 콘세르 드 라 로쥬 올람피크로부터의 교향곡 6곡(제82번-87번)의 작곡의뢰를 받았다.
1790년 이후(빈과 런던, 다시 빈)
1790년대에는 에스테르하지후(候)가 사망하여 후작가의 악단은 해산되고 하이든은 다만 명예악장으로서 이름만을 남겼을 뿐 빈으로 옮겨졌다.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영국의 흥행사 잘로몬의 권유로 1791년부터 1795년 사이에 두 번에 걸친 영국 여행을 하여 영국의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12곡의 교향곡(제93번-104번)을 작곡하였다. 이는 하이든의 교향곡 창작의 발전의 정점이 되었다.
런던에서 빈으로 돌아온 뒤로 하이든은 교향곡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런던에 와 머무르며 헨델의 오라토리오에 자극을 받아 2개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4계> 및 6개의 대규모 미사곡의 작곡에 몰두하여 만년의 원숙한 경지를 성악분야에 구축하였다. 여기서 하이든은 청년시대의 바로크 음악 경험과 독자적인 교향적 사고와의 참된 통일을 달성하고 있다.
음악사에서 하이든의 업적은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를 통하여 추구된 소나타 형식의 완성에 집약되겠으나 그의 많은 기악곡과 오페라에 나타나는 민족성이 성격이 그의 작품에 독특한 매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경시할 수는 없다. 더구나 만년의 대규모적인 성악곡은 고전파의 표현범위에서 다시 낭만주의의 길마저 암시하고 있다.
죽은 뒤의 시련
1809년에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은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루고 그의 유언대로 유해를 교회가 아닌 일반묘지 즉 가문의 묘에 안장시켰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는데 하이든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머리가 온데간데 없어져 유족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에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유해찾기를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필사적으로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머리를 찾는 데 필요한 단서나 현장의 목격자가 한 명도 없어 전혀 진전이 없었다.
나중에 왜 무덤이 파헤쳐졌는지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는데 오스트리아 귀족 중 1명이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하이든의 뇌를 조사하고 싶어 유태인인 피터와 로젠바움에게 부탁해서 파헤쳐진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피터와 로젠바움은 하이든 머리를 더욱 비싼 값에 팔기 위해 하이든 머리의 부폐된 상태를 고려해 다른 노인의 시체의 머리를 꺼내 귀족을 속여 넘겨주고 자신들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겨버린 것이다. 나중에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귀족은 분노했으며 그들을 즉시 붙잡아 조사했으나 이미 하이든의 머리는 익명의 사람에게 팔아버린 뒤였으며 갖가지 수소문하였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후 100여년이 넘도록 하이든 머리는 유럽 전역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는다.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이든의 후손들은 생전에는 그의 머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이 죽을 때는 후손에게 반드시 조상의 머리를 찾아야 한다는 유언을 대대로 남기고 있었다.
한편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런 사태에 대해서 "이 사건은 국제적 망신이며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조국의 음악가 머리가 도굴당해 온 유럽에서 장식품처럼 여기저기로 팔려나간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등 많은 의견과 비난여론이 빗발쳤지만 하이든의 머리를 찾는 데 진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수소문 끝에 하이든의 머리를 찾는 데는 성공하여 하이든의 후손들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반환소송을 청구하였지만 그 유해의 주인은 반환소송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여 되찾는 데 어려움을 맞았고 설상가상으로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유해반환소송은 잠정중단 되었다.
그러다가 1954년 6월 마침내 유해반환소송에 승소하여 하이든 머리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무덤에서 파헤쳐져 머리가 분리된 지 무려 145년만의 일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스트리아주민 수십만 명이 나와 145년만에 조국에 돌아온 하이든의 머리를 맞이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대통령 및 정치인들이 하이든의 미사에 대거 참석해 대 음악가의 안식을 간절히 바라며 이제서야 머리를 찾은 것에 대해 하이든 후손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다.
작품
- 교향곡 : 106곡
- 협주곡 : 피아노 11곡, 바이올린 3곡, 첼로 2곡, 호른 1곡, 트럼펫 1곡, 플루트 5곡,
- 현악사중주 : 67곡. (68곡은 미완성)
- 피아노 3중주 : 43곡
- 피아노 소나타 : 55곡
- 미사곡 : 14곡
- 오라토리오 : 2곡 <천지창조, 사계>
그 외 현악 3중주, 피아노 독주곡, 서곡, 가곡, 칸타타, 오페라, 극음악 등 다수. 총계 약 750곡
호보켄 번호 또는 호보켄 작품목록(Hoboken-Verzeichnis)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한 750여곡을 분류한 작품 목록으로, 안토니 판 호보켄이 만들었다.
약자로 Hob를 쓴다.
바흐 작품 번호처럼 장르에 대한 분류이다.
(예 : 교향곡 60번은 호보켄 1/60이나 로마 숫자를 이용해서 호보켄 I. 60이라고 쓴다. 참고로, 모짜르트 작품 번호인 쾨헬이나 슈베르프 작품 번호인 도이치는 작곡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붙였다.
Franz Joseph Haydn - Trumpet Concerto in E flat major, Hob. VIIe:1
하이든은 이 위대한 협주곡을 빈의 궁정 트럼펫 주자 안톤 바이딩거를 위해 작곡했다.
안톤은 1790년대에 반음계 연주건이 달린 트럼펫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하이든은 유럽의 유명한 작곡가였으므로, 안톤의 입장에서는 뛰어난 작품을 자신이 고안한 악기로 연주할
수 있었으니 대단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이든 외에도 훔멜, 쥐스마이어와 레오폴트 코젤루흐에게 자신의 트럼펫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의뢰했고,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를 했다.
1820년대에는 밸브 장치가 달린 트럼펫이 더 사랑을 받았고 안톤의
트럼펫은 각광받지 못했다. 하이든은 두 번째 런던 여행에서 돌아온 후인 1796년에 트럼펫 협주곡을 썼다.
이 곡은 그의 순수 관현악곡으로는 마지막 작품이다.
악보에는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과 관현악 트럼펫이 각각 두 대, 팀파니, 현악기와 통주저음이 나와 있다. 그가 말년에 작곡한 전형적인 관현악곡이다.
독주 파트를 들어 보면 바로크 시대의 고음역 트럼펫 연주가 떠오르면서 동시에 새로운 악기의 뛰어난 성능을 잘 표현되어있다. 2악장에서 트럼펫은 처음으로 중간 옥타브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1796년 완성된 곡은 4년이 지난 1800년 3월 28일 빈의 부르크극장(Burgtheater)에서 초연됨.
Alison Balsom, Haydn Trumpet Concerto in Eb, 1st mov Allegro
Recorded live at Royal Albert Hall, London.
Franz Joseph Haydn - Cello Concerto C Major Hob.VIIB:1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도착해 보니 그곳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재능은 있지만 지휘자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었다. 하이든은 뛰어난 협주곡을 작곡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 곡들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이 음반에 실린 첼로 협주곡 C장조도 프라하 국립 박물관에서 1961년에야 발견되어 지금은 가장 뛰어난 첼로 협주곡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발견이었다.
붓점을 사용한 군악풍의 1악장은 바로크 양식이지만, 뒤이어 나오는 고요하고 서정적인 2악장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고전주의 교향곡의 풍미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경쾌한 마지막 악장은 첼로 연주자의 기량을 시험하듯
한껏 고조된 열정을 발산한다.
하이든이 첫 번째 첼로 협주곡을 헌정한 요제프 바이글이
뛰어난 첼리스트였다면, 협주곡 D장조를 헌정한 안톤 크라프트는 훨씬 더 뛰어난 첼리스트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걸작이 아니라 마음을 파고드는 활달한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우아하면서 견고한 1악장은 여러 선율이 서로 얽혀 있는데, 솔로 연주자의 구슬픈 아다지오가 가슴을 헤집는다. 경쾌한 론도의 피날레는 거침없이 이어진다. 이 협주곡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현대의 첼로는 묵직한 활과 힘 있는 금속 현을 사용해
부드러움에 예리함을 더해 진중한 맛을 살린다.
첼리스트인 크리스토프 쿠앙과 원전음악 아카데미는 이 곡의
투명한 구조를 완벽하게 살리며 물 흐르듯 유연하게 연주했다.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연주하는 쿠앙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이
곡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Mstislav Rostropovich plays this work
whith the Orquesta Sinfónica de Radiotelevisión Española
(Spanish Radio and Television Symphony Orchestra).
Madrid. Teatro Real. 22.11.1985
Franz Joseph Haydn - Oboe Concerto in C major, Hob. VIIg:C1
기악곡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화성적인 단선율 음악구성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것을 발전시켜 소나타
형식을 완성시켰다.
오보에는 큰 음량과 인상적인 음색 때문에 바로크 시대에 독주악기로 아주 인기가 있었다.
바흐, 비발디, 마르첼로, 치마로사를 비롯하여 많은 작곡가들이 오보에를 독주로 내세워
작곡하였다.
하이든의 오보에 협주곡은 청아함과 함께 오보에만의 매력적인 음색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금 위작의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이 오보에협주곡
다장조는 아주 매력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으며 작곡시기는 179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1. Allegro
2. Andante
3. Rondo (allegretto )
Joseph Haydn - Oboe Concerto in C major, - 1. Allegro spirituoso
Francois
Leleux,
oboe
Norwegian Chamber Orchestra
Franz Joseph Haydn - Violin Concerto No.1 in C Major Hob. VIIa:1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1761년에 시작하여 1765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일하던 에스테르 하지 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 루이지 토마니시(Luigi Tomasini)를 위해 작곡되었다.
하이든은 평소에 유쾌한 성격으로 자신의 연주자들을 위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여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aydn Violin Concerto in C Major, Hob. Viia:1: I. Allegro moderato
Joshua Bell / Kammerorchester Berlin & Katrin Scholz
Franz Joseph Haydn - Piano Concerto in D major Hob. XVIII: 11
그의 나이 32살에 만든 작품으로 에스테르 하지 가의 연주회용으로 작곡하였다.
하이든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으로 풍부한 악상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11곡 중 최후의 작품이다.
시대 최후 10년간의 원숙기 작곡된 작품으로 1784년에 출판되었다.
Haydn: Piano Concerto In D Major, Hob. XVIII, No. 11: I. Vivace
Christian
Zacharias,
Göteborgs Symfoniker
Franz Joseph Haydn (1732.3.31.-1809.5.31.)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27.-17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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