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낀 팔자라 그런지 참 많이도 돌아다니는 인생이다 싶다.
간밤에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향해 가다 차창에 부딪치는 그 얄궂은 봄비 때문에
갑자기 비오는 밤바다가 떠올라 왜목마을로 차를 돌렸었다.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는 왜목마을에 도착하니 밤 10시. 이미 비는 그치고
밤하늘에 별만 총총하다. 파도소리에 귀기울이며 멍하게 있으려니 어느새 달이
나와 밤바다를 떠다닌다. 달빛 실은 밤바다가 너무 좋아 갖고 간 술을 해송그늘
아래 앉아서 파도와, 바람과, 달과 구름과 나누어 마시다보니 부윰하게 먼동이
터 온다.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는 일어나 변산반도에서 날 기다리는 연인
을 찾아 기꺼운 마음으로 핸들을 잡는다. 일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 내 마음
속의 연인인데 가장 화사하게 아름다운 이 때에 그 연인을 아니 볼 수 없는 일이
다.
연인을 만나러 갈 때는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 고속도로로 쌩하니 달려갈
일이 아니라 서해안을 따라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국도로 가며 주변의 봄 풍광
을 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한다.
해미읍성을 지나고, 서산 마애삼존불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고, 매운 고추로
유명한 청양을 지나, 토굴젓이 맛있는 광천을 거쳐 군산의 금강하구언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강바람과 바닷바람의 휘몰이 속에서 윈드서핑을 하던 요트들이 보
이지 않음이 아쉬운데 아직 철이 이른 모양이다.
금강하구언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 만경평야
로 들어설 땐 옷매무새마저 가다듬고 엄숙해야 한다.
100여 년 전, 우리의 조상 민초(民草)들이 잘못된 세상 바로 잡아보자며, 팍팍
한 세상살이를 좀 살 맛나게 바꿔보자며 괭이 들던 손에 죽창을 움켜쥐고, 소 고
삐 끌던 손길을 바른 세상 만들기로 돌려 동학혁명의 봉화를 높이 올렸던 곳이
다. 주체성 없이 정권유지에만 급급했던 못난 조선왕실의 오판으로 외세의 개입
을 불러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을지언정 그 분들이 흘린 핏자국이 붉은 황톳
빛으로 선연히 되살아나는 이 곳에서는 옷깃 여미어 잠시나마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의 우리 현실까지 되새겨야 한다.
여행이란 놀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 취하기도 하고
천년을 이어온 명승유적을 보고 감동도 하지만 그 곳에서 수 천년을 이어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을 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 여행
의 참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여행은 더욱 더 뜻깊다고 할 수 있다.
변산반도가 있는 전라북도 부안군 반계마을은 우리나라 실학사상의 선구자인 반
계 유형원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선생이 저술한 반계수록은 한국사상의
한 이정표가 되어 공재 윤두서,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으로 전해지며 완성된 경
세제민의 실학사상이 연암 박지원, 환재 박규수로 이어져 단재 신채호, 위당 정
인보선생까지 아우르는, 오늘의 우리를 살게 하는 거대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부안으로 들어서며 변산반도를 어느 방향으로 돌아보나 하는 행복한 고민(?)에
잠시 빠진다. 바다가 더 예쁘게 보이는 시계반대방향의 해안도로를 포기하고 혼
자서 괜히 바쁜 일정에 쫒겨 시계방향으로 간다. 고창으로 향하는 23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이는 능가산 개암사는 다음에 들르기로 한다 작년에 왔을 때 능력 있
는 주지스님이 중창불사 하시느라 워낙 시끄러웠던 곳이라 지레 겁을 먹고 피하
는 곳이다. 몇 년 후에 다시 들러보리라 다짐한다.
고창과의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30번 국도를 따라 곰소만으로 향한다. 변산의
곰소만은 우리나라 천일염의 대부분을 생산하지만 값 싼 중국수입소금에 밀려 점
점 그 명맥을 잃어 가는 곳이다. 하지만 변산반도 관광코스에서 곰소만을 빠뜨
릴 수 없는 이유는 곰소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담근 젓갈 때문이다. 곳
곳에 젓갈공장이 들어서 있고 어민후계자들이 너나없이 더 맛있는 젓갈을 만들
기 위해 노력하기에 곰소만의 젓갈은 우리나라 어디의 젓갈보다 담백하고 맛깔스
럽다. 몇 년 전에 젓갈을 사러 들렀다가 넉넉한 인심을 지닌 주인 아주머니가 젓
갈이랑 먹으라며 준 밥이 너무 맛있어 단골이 되어버린 칠산젓갈(딸네집)을 들
러 젓갈을 산다. 일년에 겨우 두어 번 오는 나그네를 기억해주던 마음 푼푼한 아
주머니는 간 데 없고 조금은 도시깍쟁이처럼 생긴 아낙이 젓갈을 담아준다. 하
긴 작년에 널따란 공터로 있던 곳에 식당도 들어서고 노래방도 생겼으니 주인이
바뀌지 말란 법도 없겠다 생각하며 아내가 좋아하는 명란젓, 장인어른이 즐기시
는 창란젓, 내가 잘 먹는 오징어젓 등 여러 젓갈을 골고루 산다. 지금의 주인은
달라는 대로 신나서 싸주는데 먼저 주인은 너무 많이 사면 맛도 변하고 부인에
게 바가지 긁히니 먹을 만큼 조금씩만 사라고 하던 분이었다. 그런 넉넉한 마음
이 점점 사라지는 세태가 아쉽지만 어이하랴....지금의 변산반도는 서해안고속도
로가 개통되길 기다리며 무섭게 빠른 속도로 유원지화 되고 있는 것을...그걸 개
발이라 하던가...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지만 내소사를 향하는 걸음엔 그런 생각은 이미 바닷바람
에 멀리 날아가 없어졌다.
내소사(來蘇寺)!
변산반도에 자리하여 언제나 날 기다리는 연인같은 곳!
수없이 많은 느낌표로도 그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없는 그 곳!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그 곳으로 지금 나는 가고 있다
석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잠시 가다보면 능가산의 우람하지만 정겨운 암석군
이 보이는 곳, 그 아래 자리하고 있는 내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손에는 아무 것도 들지 않고, 마음마저 텅 비운 채 매표
소에서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들어간다. 완만하게 굽은 전나무숲길은 그 숨겨
진 아름다움을 비춰주는 길이기에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숲 사이로 들려오는 딱
따구리의 소리가 내 심장의 박동처럼 급하다.
전나무숲길 굽은 곳이 끝나는 그 곳은 눈부신 햇살아래 왕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연분홍 꽃잎들이 오히려 투명하게 느껴지는 그 곳에 나의 영원한 연인, 소
복 입은 미모의 청상과부같은 내소사가 있었다.
나는 보고야 말았다! 능가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눈부시도록 잘게 부서지는 봄
햇살 아래 우수에 잠긴 아리따운 청상과부가 봄꽃에 취해 넋을 잃고 있다가 아무
도 보는 이 없는 줄 알고 흐드러진 목련 한 송이를 꺾어 머리에 살짝 꽂으며 발
그레 홍조를 띄는 그 모습을!
감춰야 하는 그 정열!
숨길수록 강렬하게 뿜어지는 그 아름다움!
내소사 대웅보전의 소지단청(素地丹靑, 무채색단청)에서 청상과부의 너무 고와
서 서러운 하이얀 소복을 보고, 문창살의 연화문양(蓮化紋樣, 연꽃모양)에서 감
춰야 하는 열정과, 대웅전 안의 금채단청(金彩丹靑)에서 뜨겁다못해 활활 타오르
는 정염(情艶)이 아닌 정염(淨艶)을 본다.
내소사 전나무숲 길 중간에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변산은 또 얼마나 옹골진
산이던가? 겉으로는 야트막한 야산처럼 보이지만 관음봉, 세봉, 가마소 삼거리,
희양골, 굴바위로 이어지는 7시간의 등산로는 설악의 암릉에 못지 않고, 두류의
계곡에 조금도 뒤질 것 없는 명산이 아니던가! 그러한 산세를 지닌 능가산의 품
에 안긴 내소사이기에 청초하게 보이는 그 모습 뒤에 감춘 화려함이 더욱 눈부시
게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내소사가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건립되었단 말도 하지 말자. 보물로 지정된 것
이 넉 점이나 있다는 말도 말자, 그냥 보이는 그대로 아름답고, 아름다운만큼 느
끼고, 느끼는 것만큼 더욱 한없이 아름다운 곳이 내소사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내소사 한 켠에 섰다가 해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나는 차
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내소사는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을 뿐....날 다시 불러주지도 않는, 무심하여
더욱 안타깝게 아름다운 님처럼....
30번 국도를 따라 격포로 가는 길은 환상적인 해안드라이브코스다. 저녁햇살에
반짝이는 왕포와 모항의 바다는 동해의 광활하지만 거친 바다와 다르고, 남해의
아기자기하지만 답답해 보이는 바다와는 달리 정겨우면서도 시원한 느낌이다. 오
른 쪽 새싹이 돋아나는 산에는 호랑가시나무군락과 이름도 재미있는 꽝꽝나무군
락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군이 즐비하다. 하긴 옛부터 변산의 울울창창한
삼림에서 나는 변재(邊材; 변산의 나무)는 왕실에 진상되어 궁궐을 짓는데 쓰였
고, 변청(邊 ; 꿀)은 아주 귀한 보약으로 요긴하였으며, 변란(邊蘭; 변산의 난
초)는 선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명품으로 이름 높았다고 한다. 일제의 남벌
과 광복 후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많이 황폐해졌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식
생이 되살아난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반도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지나 도청리의 들판을 가로질러 닿은 격포는 갈매빛
짙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격포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파제로 간다. 방파제 오른 편으로는 채석강이
보인다. 책을 포개놓은 듯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의 바위는 헤아릴 수도 없이 오
랜 세월 동안 파도와 바닷바람이 빚어놓은 자연의 걸작이다. 바다 가운데로 쭉
내민 방파제 끝에는 하얀 등대가 툭 트인 격포바다를 지키고 서있다. 바닷바람
이 세찬데도 우정 등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마살이 낀 나그네처럼 혼자
온 이는 없고 쌍쌍이거나 여럿이 함께 온 사람들뿐이다.
등대에는 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맹세한 정겨운 낙서들로 빼곡하다. 젊
은 날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찬란하게 빛남을 여기서도 본다. 사진
을 찍어달라는 그들에게 사이가 벌어지면 그림이 안나온다며 다정한 한 쌍의 바
퀴벌레(?)처럼 좀 더 붙으라고 짖궂은 주문을 하며 함께 웃는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방파제 위 포장마차에서 요즘 한창인 쭈꾸미 한 접시를 시키
고는 운전을 대신할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소주 한잔 생각으로 컬컬한 목젖
을 콜라로 달래보지만 언 발 위에 오줌누기로 어림없는 짓이다. 하지만 어이하
리, 아직도 여정이 남은 것을.
채석강을 이룬 닭이봉 위 팔각정 휴게소에 차를 끌고 올라간다. 군데군데 시멘
트포장이 벗겨져 덜컹거리는 길이다. 칠이 벗겨지고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 같은
분위기에 괜히 왔나하는 생각이 든다. 2, 3층은 식당인데 자물쇠로 잠겨있고, 4
층은 커피숍인데 영업 중이란 팻말이 있지만 긴가민가하며 올라간다. 도회의 깔
끔하고 세련된 커피숖에 길들여진 감각으로는 도저히 영업하는 분위기가 아닌 곳
이다. 하지만 여태 팔은 발품이 아까워 마저 올라가 문을 여니 열리긴 한다. 빼
꼼히 얼굴을 들이밀자 창으로 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정신 없이 다가서며
눈길을 뺏기고 있는데 "어서 오세요" 라는 인사가 들린다. 당황한 나그네가 뒤돌
아보자 참으로 맑게 나이들은 초로의 아주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서있다.
"바다가 참 좋네요" 얼결에 한 인사에,
"네, 고맙습니다." 라며 받는다.
엉거주춤 자리에 앉자 물을 가져다주며 "마음껏 바다를 즐기세요"라며 따스하
게 웃는데 그제서야 실내에 잔잔하게 흐르는 바이얼린곡이 들려온다.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향해 돌아앉는다.
나그네가 들어온 후 두 쌍의 남녀들이 낙조를 보러 들어온다.
바다 두어뼘 정도 위로 저녁해가 붉게 걸려있다.
"낙조 보러 오셨어요?"
커피를 갖다주며 아주머니가 묻는다.
"낙조를 보고싶어 오긴 했는데.... 어떨는지...."
"....오늘도 좀 어렵지 싶네요."
"그래도 저 해가 맑은데요?"
말을 아끼는 아주머니에게 다그치듯 묻는다.
"한 뼘 정도만 내려가면....황사에 가리워서...어쩌죠? 낙조를 보러 먼길을 오
신 듯 한데..."
수평선금이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하늘이 맑아만 보이는 나그네에겐 아주머니
의 말씀이 잘 믿기지 않는다.
해가 반 뼘쯤 내려가자 희뿌연 황사에 가리워지며 붉은 불덩어리로 변하기 시작
한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시뻘건 불덩어리는 아니지만 둥근 불덩어리가 서서
히 내려앉으며 어둠이 깔리는 광경은 먼 데서 격포낙조를 보러 허위허위 달려온
나그네의 마음을 달래기에 넘치도록 충분하다.
유난히 파랗게 보이는 하늘은 길게 좌우로 붉게 물든 구름과 선명한 대조를 이
루다가 해가 짐에 따라 점점 그 파란빛이 옅어지고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어둠이
내리며 바다에 밤이 오기 시작한다.
바다로 빠져드는 불덩어리를 보느라 옆에서 떠들던 이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수평선 위에 내려앉고, 바다로 빠져들고, 반나마 남았을 때 옆자리에서 아쉬움
에 찬 한숨이 새어나온다. 머리 부분이 조금 남았을 무렵 타오르듯 붉게 이글거
리며 눈부신 섬광을 내뿜다가 어느 샌가 내려가고 만다. 구름 위론 잔영이 아직
도 붉게 남아있는데....
깊이 들이마신 숨을 뱉으며 자리를 마른 입을 축이려 커피잔을 들었지만 언제
마셨는지도 모르는데 비어있다.
"커피 한잔 더 하실래요?"
온화한 미소를 띤 주인아주머니가 커피를 다시 채워주시기에 무조건 앉으시라
고 하곤
"지금의 낙조도 황홀한데요?"라며 슬몃 캐묻는다.
조용히 웃기만 하는 모습이 누님처럼 푸근하다.
격포낙조만 보며 십 수년을 살았다는 김한조아주머니는 팔각정에서 장사하여 아
이들을 키우고 결혼시켰기에 죽을 때까지 낙조와 더불어 살 거라며 제대로 된 낙
조를 보려면 여름이나 겨울에 와야한다고 하신다. 여름 저녁바다에 소나기가 퍼
부은 뒤 청하게 파란 하늘이 보이거나 겨울철 벨 듯이 시린 푸른 하늘이 보이는
날에야 낙조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봄에는 황사현상이 생기고 가을에
는 해지는 각도는 같은데 해가 조금 남쪽으로 치우쳐 위도로 지기 때문에 해가
수평선으로 빠져드는 장관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제대로 된 낙조는 어떤 건데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조금 전의 낙조도 아주 멋
있게 보이는데요."
"사실 여기서 늘 살아도 낙조를 제대로 보는 건 채 10일이나 될까요? "
"네에?"
"너무 아름다워서인지 낙조가 제 모습을 잘 보여주질 않아요."라며 수줍게 웃
는 아주머니에게서 40여 년 전의 해맑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아름다운 낙조
와 더불어 삶인지도 모른다 싶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해가 바다마저 물들여 하늘인지 바다인지도 분간
이 안되는데 수평선에 황금빛 붉은 빛줄기가 넓고 길게 비치며 바다길을 만들어
요. 그 길로 내가 금새라도 빨려들 듯 하죠. 그렇게 빛나던 황금빛 붉은 길이 어
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그 뒤에 바다와 하늘에 드리워지는 어스름과 정적은 뭐라
고 말로 표현이 안돼요."
꿈꾸듯 말씀하시는 아주머니에게서 격포의 낙조는 젊음이들의 것이 아니라 인생
을 많이, 열심히 살아온 이들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둠이 내린 밤바다에 고기잡이배의 어등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이제 나그네는 또 떠나야할 시간이다.
우리 누님처럼 곱고 맑은 아주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와 아쉬움에 다시 바
닷가로 나가본다.
유원지의 휘황한 불빛을 뒤로한 채 어둠 속에 일렁이는 파도가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산다는 것은 저렇게 곧게 쏟아져내리는
폭포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어이 산맥은 스스로 길을 끊어 왕포나
채석강에서 바위 절벽 아래 떨어지고
바다끝까지 달려간 마음도
저녁노을로 스러지고
..........
..........
쓰러진 마음들이
바위 절벽으로 저를 세워
파도의 아우성 키우는 변산
파도는 한 바다를 이루어놓고도
저렇게 돌아서고
돌아서서 어느 새
물소리 한자락 없이
제 생애를 비워놓고
부안이 낳은 시인 박영근의 변산기행을 읊으며 밤바다를 바라노라니 어둠 속으
로 가야할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가야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살을 부비며 먹고살기 위해 억센 몸짓을 하
는 그 곳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야 한다.
첫댓글 산에서님~~~~ 장글 감사합니다~~~~~ 쬐메 있따가 읽어볼께요~!!! 두번 클릭하고도 아직 못읽었습니다~~용!!!^^
아~~공 장편소설 참 멋있게 사시우...즐감했어라~~감솨~~
너무 길어서 죄송요!^^ 산에 다니면서 쓴 기행문인데요, 사진을 올릴 줄 몰라 글만 올립니다. 그렇다고 태그를 배우려니 머리가 나빠서 영~ ㅎㅎㅎ
우~~~와 진짜루 길다 읽는데 한참 걸렸네요....그래도 즐감 하고 갑니다.
이몸도 몇년전 새만금방조제,부안댐을 거쳐서 그코스를 다녀 왔었죠, 옆에는 한사람이 더 있었고요. 그러나 그날따라 겨울비는 왜그리도 시샘 하던지,,, 낙조는 꿈도 못꾸고 오돌오돌,,, 님의 글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즐감했습니다.
전에 어느 잡지에 올리던 글 중 하나입니다. 책엔 편집자가 사진까지 넣어서 그런대로 볼만 했는데 컴글로는 너무 길군요. 그래도 이대로 살다 가렵니다.ㅎㅎㅎ. 고맙습니다.^^
늘어진팔자구려 언제나두데불고가주오 운전할줄몰라서리...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