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간 영하 10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계속 되었지만, 오늘은 날씨가 풀리고,쾌청하다 는 예보 였다.하지만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서니 덜 샌 날이 안개까지 짙게 끼어 있어서 한밤과 별로 다름이
없이 어두웠다. 아들이 사준 거위털 잠바로 윗몸은 방안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고,사위가 사준
두터운 바지는 내의를 입지 않았어도 견딜만 했지만 등산장갑을 낀 손은 시러웠다.
등산용품은 패션용품처럼 멋을 부리는 것이 되었고, 메이커를 찾는 것이지만 장갑은 방한 보다는
멋에 치우친 제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 앞에는 김ㄷㅇ씨,최ㅊㄱ과장과 처음 보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에게 어디사시느 냐고 물었더니 산성리라고 했다. 가장 먼 산성리에서 유일하게 가입되었고,
처음으로 산행신청이 있었기에 눈에 뜨였던, 김ㅅㅇ여사라고 짐작이 되어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렀다고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을 신기해 했다.
늘 김ㄷㅇ씨와 동행하던 이ㄱㅌ씨와 이ㅁㄱ씨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산행을 하는 정ㅁㅎ씨의 칠순 날이어서 거기에 가야 하기에 빠진다고 했다.
차가 도착하고 김ㅅㅅ여사와 정ㅁㅅ여사,유ㄱㅇ여사, 김ㄱㅅ여사가 인근에 있다가 차에 올랐고,
좀 기다리자 김ㅊㅅ씨 부부가 탔지만 내가 산행 신청을 대신 해 주었던 한ㅇㅅ여사는 끝내 타지
않았고, 인풍리에서 탔어야 될, 역시 내가 신청을 대신 해주었던 김ㅈㅂ여사도 보이지 않았다.
태성의 송ㅈㅅ씨와 회장 박ㄱㅅ씨,사현의 신ㄷㅈ씨,신ㅊㅅ씨,홍ㅈㅇ씨와 차례로 손을 잡으니
추운날씨라 차거운 손일 것이었으나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들었던 정 때문인 것 같다.
날씨가 춥고 산에는 눈이 쌓여 있을 것이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인데다 장원리엔 비닐하우스의
일이 농번기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6-9명이 올랐던 곳에 총무박ㅌㅅ여사만이 잠간 버스에
올라 가지 못한다는 인사만을 하고 내려갔다.
석송리에서만 김ㅇㅈ부회장부부,이ㄱㅈ대장.김ㅍㅅ부대장,조ㅅㅅ여사,배ㅇㅅ등 신청 되었던
인원이 전원이 탑승 했을 뿐, 모란에서도 박과장만이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박과장이 "신청을 하셨으면 신청에서 탈락된 사람을 위해서 책임 것 불참을 통지해
주었으 면 한다"는 말을 했다. 내가 신청을 대신 해주었던 3사람이 모두 불 참했기에 비어 있는
두어자리가 내 탓인듯 생각이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옆의 빈자리에 북계리의 '배ㅇㅅ여사가 앉았다.
남편인 이ㅅㅇ씨와 용봉산 때부터 동행을 해서 다정히 산에 오르던 모습이 보기 좋았었는데,
이ㅅㅇ씨는 비닐하우스의 온도를 맞추어 주자면 한사람은 당번을 해야 하기에 봄까지는 부부가
번갈아 산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배ㅇㅅ여사는 참 명랑하고 구김살 없는 여인이었다.
자녀는 남매를 두고 있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되돌아 보면 내 인생의 전성시대는 딸이 여고를 다니던 시절인 것 같다.
새벽6시에 일어나서 공주시내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한 다음, 퇴근 후에 집안 일을
돌보다, 밤11시경에 데리러 공주시내에 가던 생활이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도 몰랐고, 딸과 아들에 대한 기대로 가슴 속이 희망에
부풀어 있던 때였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자녀들과 보호자로서의 대화만을 나누지만 자녀가
중고등학교 에 이르면 보호자로서의 위치는 변함이 없지만 자녀도 일정한 정도의 인격과 식견
을 갖추게 되어 쌍방적인 대화를 하게 되어 자녀들의 세계에서 만들어 지는 신조어를 배우기도
하면서 청소년 문제에 최고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이다.
배여사도 과열경쟁에 쫓기는 자녀들이 가엾기는 하면서도 남들이 모두 그러니 내 자식만 뒤지는
것 같아서 "너는 인간적인 삶을 살아라"하는 인성교육을 권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진실로 한국교육의 문제는 과열이기까지한 교육열이 인성교육이 아닌 남을 디디고 일어서려는
것이 목표인 것이고, 그래서 투자되는 비용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배여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인생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
는 동안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국도를 지나 영각사로 진입하는 길로 다달았다.
아직 산 밑에도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곳도 해발 800미터 정도의 높이라고 했다. 쌓였던 눈이 녹
았다 얼었다 하면서 빙판을 이루고 있었고, 마주 오는 승용차들에 막히어 한참동안 오도가도 못하
여 "이러다간 산에도 집에도 가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회원들이 약속이나 했듯이 아이젠을 장착을 했다.
지난 달 계룡산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던 터라 장착이 쉬운 아이젠을 다시 구입했기에 너무도
간단히 장착이 완료 되었다. 아이젠을 장착했으나 '탐방지원소' 까지 가는 완만한 길은 산골의
마을 길 같았고, 눈이 치워져 있었다. 가끔씩 남아 있는 빙판을 일부러 밟아보며 미끌어지지
않는 것을 신기해 하는 동안, 오래 전 온 눈이 녹지 않아 수많은 아이젠 자국을 내며 다지어 지는
산길로 들어섰다.
뒤에 처져서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몇차례의 산행으로 체험을 했기에 이번은
중간쯤 가려했고, 그래서 지난 번까지 회원들의 뒷모습만을 사진찍었었는데, 앞모습을 찍을 수도
있었다. 숱한 다른 명산과 덕유산이 다른 것은 바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거대한 바위가 기형을 이루는 바위산은 그 모습에 감탄을 하게 하기는 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을
거부하게 하지만 바위보다는 흙이 많은 덕유산은 후덕한 여인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한다.
그리고 골짜기마다 물이 풍부해서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한다.
내 개인적인 취향상 나 혼자 또는 가족과 산을 오르게 된다면 다른 산보다 단연 이곳을 찾을 것 같
다. 눈꽃을 기대하며 덕유산에 온다고 하지만 오르는 코스가 남향이기에 나무 아래에는 봄에나
녹을 것 같은 잔설이 있기는 했지만 나무에 매달린 눈꽃은 볼 수 없었다.
아무나 어느 때건 산에 오를 수는 있지만 그 산의 진수가 되는 경치는 하늘이 허락해야 볼 수 있다
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는 일이었다.
완만한 길은 자연보다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하는 작은 다리에 이르고 그다리
를 오가는 사람이 이곳이 깊은 산임을 잊게하는 곳에 이르면서,경사70도 를 넘을 것 같은 가파란
길에 다다랐다.
산을 넘어서 다른 산행코스로 넘어가는 코스가 아니고 남설악에 올랐다가 다시내려 오는 코스였기
에 김ㅅㅅ여사와 김철수씨부부 등 몇몇이 처지며 하행길을 택했지만 대부분은 지팡이를 짚으며
산행을 계속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한 김ㄱㅅ여사, 같은 마을금고 직원이기도 했지만 가장
어리기에(?) 언어소통 등으로 같이 다니는 박과장과 전ㅁㅎ양,윤ㅌㅅ여사와 정ㅁㅅ여사 등과 앞
에 서기도하고 뒤에서기도 하면서 아이젠을 신지 않았으면 그대로 미끌어 질것 같은 눈비탈을
오르는 중, 쉬어 가라는 듯 평평한 곳이 있었고, 김ㄱㅅ여사가 뒤로 돌아서며 배낭에서 사탕과
초코렛을 꺼내서 나누어 주라고 했다. 작은 주머니에는 캔디와초코렛이 가득했다.
한줌 가득히 꺼내어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서 입에 넣으면서, 그렇게 알뜰한 준비를 한 김여사
와 배낭안에 물과 도시락밖에 넣지 않고 온 나와는 어떤 감성적 차이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고,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는 안도현시인의 시가 유명한 시인의 글이 었기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런 감성을 지닌 사람의 시였기에 사랑받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시만 알뿐 안도현시인은 잘 모르는 나는 감성이 매마른 무지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이든 다른 일행이든 몇몇사람은 평지를 오르듯 휙휙 지나쳐 갔지만 대부분은 스틱을
디디는 팔에 힘이 깊이 들어가며 힘겨워했다.
서쪽 하늘을 올려다 보면 구름의 일부처럼 보이는 남설악의 봉우리가 보이는 곳을 지나자, 가파
른 나무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위로 등성이가 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발목에 무거운 추기 매달린듯 힘겹게 한발한발 올려디디며 내 나이가 적지
않음과 평소의 운동부족을 깨닫게 하는 순간순간이었다.
먼저 오르기 시작해서 전양과 박과장을 앞세우며 허벅지에 쥐가 나는 증세를 느꼈다.
등성이에 올라서서 한숨을 쉬듯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 보니 탑처럼 눈앞에 솟아있는 남설악
봉우리 외에는 더 높은 산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싸늘하게 덮치며 옷으로 감싸지 않은 부분이 날카로운 칼에 닿는듯 시러웠다.
앞서간 회원들이 모여 있다는 곳까지 는 50미터를 좀 넘을 것 같은 가까운 길이었지만, 바위틈에
좁게 난 길을 스틱을 한손에 잡고 엉금거리며 기어 오르는 길이거나 옆에 매어 있는 줄을 잡고
올라야 되는 길이었다. 계단을 오를 때 부터 쥐가나던 증세로 절룩거려졌다.
회원들이 모여 있는 것은 몇개의 바위가 정원의 돌처럼 놓여있고 평평했다.
이미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전양과 박과장과 함께 바위 위에 도시락을 폈다.
전양과 박과장은 보온병에 따스한 물을 준비했다가 이미 산봉우를 올랐다가 내려온 최과장과
함께 컴라면에 물을 부어 먹었고, 나는 보온 도시락을 열었다.
생각보다는 도시락속의 밥은 따뜻했고, 보온병의 물은 따끈했다.
식사 후 김부회장과 이대장이 봉우리를 오르자고 해서 따라나섰으나 몇미터 오르기도 전에
허벅지에 또 쥐가 났다. 할 수 없이 박과장과 전양이 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돌아섰다.
수지침을 생각하면서도 잊고 온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수지침으로 찔러서 피를 내면 마비 증세가 풀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뒤돌아 섰고, 몇명만이 봉우리를 다녀 왔다고 했다.
그 중에 빠르지 않았지만 꾸준히 올랐던 김ㄱㅅ여사가 있었다고 했다.
그 감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올려디딜 때는 쥐가 나던 허벅지가 내려 디디면 괜찮았다.
거기서 계단까지 내려 가는 길은 올라 올 때보다 더 험하게 느껴졌다.
길이 아주 좁아서 올라 오는 사람들이 다 지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했다.
내려가는 위태로운 그 모습을 키가 크고 잘생긴 최과장이 보호하듯 지켜 보아 주었다.
최과장의 자녀들도 둘인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더구나 부인이 맛벌이를 하고 있어서 감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바보상자인 TV에 방치
될 수 밖에 없다며,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어른들에게 혼이 나면서 물을 댄 논배미에
서 썰매를 타던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시절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담배를 배웠었는데, 그 나이가 된 아이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최과장도 한때는 몇년간 담배를 끊었었다고 했다.
하지만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세상과 직장의 스트레스에 다시 담배를 시작했고,
이제는 다시 끊을 생각을 포기했는데 담배 값이 올랐다고 했다.
담배가 해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끊기에는 너무나 큰 의지가 필요한 것이고, 값을 올린다고
금연자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담배를 피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홉연자들에게
만 "건강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치아래 바가지 세금을 쒸우는 결과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고 바람이 불어 오는 쪽은 막혀있어서 봄날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양지 쪽 길을 그렇게 내려 오는 동안 평평한 곳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ㅇㅎ여사와김ㅅㅇ여사가 보였다.
"두분은 시누 올케사이시죠"하고 물었더니 "아시네요"하는 대답을 했다.
거기서 정여사의 남편인 김부회장을 기다렸다가 같이 내려가려는 것 같았다.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최과장은 먼저 내려갔고, 뒤따라 오던 김ㅍㅅ부대장과 신ㅊㅅ씨와
같이 내려 오게 되었다. 신씨는 별로 말이 없었고, 김부대장의 집인 쌍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겨울 이맘 때면 눈이 자주 내리고, 쌍달리는 눈이 내리자마자 동민들이 눈을 치웠고, 이웃동네인
고성리는 치우지 않아 빙판길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쌍달리도 전시장이었던 이준원씨가 들어
오는 등, 적지 않은 외지 사람이들어 오고 나서, 옛날 같은 인심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쌍달리에서 마곡사로 연결되는 도로가 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시내버스가 몇번 들어
오는 오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하튼 짐승길 같던 곳에 길이 나는 등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장난감에 둘러 싸여 사는 현대의 아이들이 논배미에서
썰매를 타던 옛 어린이 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좋기만 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덕유산 탄방지원소에 먼저 내려온 회원들이 몇이 쉬고 있어서 내 카메라에 내 모습을 담기기도
하며 아이젠을 벗고,카메라를 배낭에 담는 동안 잠시 혼자가 되었고, 기다리는 동안 산악회의
살림을 맡고 있는 강ㄷㅅ여사와 같이 주차장까지 걷게 되었다.
강여사는 맞벌이를 하는 집으로 그렇게 바쁜 중에서도 산악회의 살림을 맡고 있는 가는 몸매와
는 다른 강인한 생활력으로 사는 여인이었다.
바빠서 그 동안 내 글을 읽지 못했는데, 시간이 나서 읽어보았더니 "어쩌면 그렇게 잘 쓸수 있느냐"
고 했다. 나는 "어릴 때의 꿈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가 먹고 사는 것이 바뻐서 잊고 살다가 퇴직
후 시간이 생기자 심심풀이로 써보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남은 인생이 몇년이 될지 모르지만 내
까페가 번창하고 내가 쓰는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늘어 나는 것이 남은 희망"이라며 많이 읽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거짓말 하나 없이 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은 "내 까페가 번창하는 것이고, 내가 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부탁하는 것은 졸렬한 짓이지만 이 세상은 자신이 자신을
피알하기 전에는 피알해주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각박해 지는 세상이다.
그런 의미로 버스에 오르자 눈에 뜨인 윤ㅌㅅ여사에게, "지 난날에 산악회 까페에 가입했으니
댓글을 주세요"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정ㅁㅅ여사가 바라보며 웃었다.
산악회 까페에서 내 글에 가장 댓글을 많이 주는 고마운 분이다.
중년의 얼굴이지만 표정만은 여지 없이 소녀 같은 정여사. 그러고 보니 오늘 사진을 많이 찍어
준다고 말하고서 몇장 찍어주지 못한 것 같다.
돌아 오는 길도 같은 자리에서 배ㅇㅅ여사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전성기란 것에는 자녀들과 가장 대화를 많이 갖는 부분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 시기를 지난 자녀는 친구들과만 어울리며 부모와의 대화는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배여사가 "엄마 산행 잘하고 있어?"하는 딸이 보낸 카톡의 문자를 보여 주며 활짝 웃는다.
그런 배여사의 모습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석송에서 배여사가 내리기 전 오늘은 "배여사님과 이야기 하면서 오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즐거
웠어요."하는 인사를 했다.
정말로 배여사와 이야기하면서 딸을 통학시키던 내 인생의 전성기로 돌아간듯한 환한 기분을
느꼈었고 양지를 걸을 때는 마치 봄길을 걷는 듯한 아늑한 기분을 느꼈던 환한 하루였다.
좋은글 멋지네요
잘읽었습니다
잘 봣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산을 좋아하시네요. 잘봤습니다. ^^
멋진 하루였군요.
산을 많이 가시네요
산 조심히 타시구요
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안전산행 하십시요~~
멋지십니다
산행...몇년간 못했는데
신발장 안의 등산화가 비웃는 것 같아요
도전 받습니다
잘 봤습니다.
멋집니다
무주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풍경 환상이었어요. 산을 자주 오르는 편이지만
아직 덕유산을 못가봐서요. 눈내리는 덕유산에 꼭 한번 가보고싶네요
덕분에 등산하는 기분 느껴봤습니다
잘봤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우리 삶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우리 삶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좋은글과사진잘감상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눈을보니너무시원하네요
잘보앗슴니다
멋있습니다
산을 좋아 하는 사람은 시즌이든 비시즌이든 산을 사랑하나봐요. 대단하십니다.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잘보았습니다
덕유산 정상 .. 40년전에 있었던 그자리 .. ㅜㅠ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