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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화엄계곡]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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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계곡]
김경실 시집 / 문학아카데미시선 243 / 문학아카데미(2012.09.01)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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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계곡∙1
김경실
첫눈에 반한다고 했나요
보는 것만으론 마음에 차지 않아서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무작정 계곡물에 풍덩 빠졌지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계곡물과 한 몸이 되어
물살이 끄는 대로
그렇게 언제까지나 있었지요
우리의 삶 또한 그러겠지요
어느 날, 생전 생각지도 않았던
지리산 화엄사 계곡물 만나듯
세월은 또 무심히 흘러가겠지요
화엄계곡∙2
김경실
여름날 달밤에
화엄사 계곡에 가보신 적 있나요
장맛비에 물이 불어
큰 소리 지르며
사정없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화엄사 계곡에 가보신 적 있나요
가슴속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부디 가지 마세요
세찬 계곡 물소리 들으면
그만 나도 모르게 슬퍼지는 마음,
추스릴 자신 없으면
달밤에 화엄사 계곡엔 가지 마세요
공룡능선을 넘으며
김경실
그 동안 살면서
아무리 힘들었던들
공룡능선 넘는 일 만큼이야 하겠는지요
봉우리 넘으면 또 한 봉우리
이제 끝인가 싶으면
금세 한 봉우리 나타나는,
어느 햇빛 좋은 늦은 봄에
공룡능선 넘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지은 죄 많아
이내 가슴 미어지고
하늘 정원
김경실
하늘 정원 순천만에 가면
유난한 갈바람 소리에
철새들 일제히 날아오르고
갈대밭 너머 해지는 풍경
늦도록 바라보노라면
몸서리치게 누군가 그리워지고
뻘밭에 코박고 싶은
늦가을 순천만에 가면
제 설움에 강은 말없이 흐르고
가파도
김경실
보리밭으로 유명해진 가파도
몇 년을 벼르다가
올봄 처음으로 갔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보리밭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옛노래가 절로 나오고
보리밭 너머 보이는
팔뚝 굵은 사내 같은 바다가
무엇보다 나는 좋았다
오래된 사랑
김경실
그리고 사모했나요
그리도 연모했나요
저 깊고 깊은 세월 속에
이녁들,
시방도 못다한 사랑
나란히 뼈로 남았는데
아직도 애달픈가요
진정, 아직도 서러운가요
* 출토된 해골들이 6천년 동안 키쓰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계룡산
김경실
첫 느낌은
넉넉한 몸피하며
잘 생긴 남자 만난 것 같았지요
그러나 관음봉 오르는 길,
그 얼굴값 하느라
결코 만만치가 않았지요
노모
김경실
일흔 일곱,
노모는 말기암 통증으로
편히 앉지도 눕지도 못하시고
야윈 두 무릎만 껴안았는데
춘삼월,
때늦은 함박눈이 내린다
펑펑 쏟아지는 그 눈발 속에
길었던 노모의 일생이
설핏 지나간다
오랫동안 고단했던,
긴 봄날,
살짝 낮꿈을 꾼 것 같은 한 생애가
마디풀
김경실
살기가 만만치 않던가요?
마디 마디 굳은살 박혔군요
그래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답니다
모란꽃
김경실
공들여 치장하지 않아도
본색이 화려한 당신,
햇살 좋은 유월엔
스스로 여왕이 된다지요?
풍란
김경실
이제 괜찮다고,
그 동안 그만큼 산 것도 힘들었다고,
애써 다독인 마음에
함부로 돌을 던지는 이여
그 가슴도 나만큼 아픈지요
분꽃
김경실
딱히,
예쁜 구석도 없는데
오래 못 보면 생각나는 그대여,
오늘, 시간 어때요?
박꽃
김경실
처음 그대 본 순간
어찌나 눈부시던지
자꾸만 수줍어지는 내 마음,
그날,
그대도 나처럼 수줍었나요?
매발톱
김경실
순한 얼굴과 다르게
매서운 발톱을 감추고 있군요
그동안 맺힌 것이 많았나 봅니다
그럼, 정작
본심은 어디에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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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人의 말
네 번째 시집을 엮습니다
나이만큼 내 시가 튼실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세월이 흘렀으니
속정은 조금 더 깊어지지 않았나 그렇게
스스로 위안해 봅니다
1부와 2부는
세 번째 시집을 묶은 후에 쓰여진
그간의 시를 모았고
3부와 4부는 언제부턴지 꽃속에 흠뻑 빠졌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썼던
시들을 한데 모아봤습니다
그리고『화엄계곡』
이 시집을 내 좋은 이들에게 바칩니다
2012년 여름
立秋節 지나며 김경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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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실 詩集 [화엄계곡]
[ 김경실 시인의 시세계 ] -
꽃을 찾아 떠난 길에서 만난 화엄세계
김 종 섭
1. 길을 따라
시가 형식상 고유의 표현 방법을 가진 독특한 문학의 장르라 해도, 결국엔 시란 시인 자신의 삶이나 감정과 생각 등이 투영된 정신적 산물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 시인의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 살아온 환경과 과정,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가치관과 인식도 등이 그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경실 시인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나 정보라도 가지고 그의 시에 접근하는 것이 거리를 좁혀가는 지름길이며, 교감하는 기본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실 시인의 공개된 프로필을 살펴보면,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금산에서 성장했으며,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고, 1994년 첫 시집『이르쿠츠크의 아침』, 2000년에 2시집『장체 가는 길』, 2007년에 3시집『누란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문협, 한국시협, 국제펜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등단한 지가 어언 21년이 지난, 중견의 여류시인이다.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 지 5년만에 이 네 번째 시집『화엄계곡』을 펴내는 것이다.
71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제1부 <하늘 정원)>에는「공룡능선을 넘으며」등 명승지 등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시류가 16편, 제2부 <오래된 사랑>에는 국내의 아름다운 자연을 기행한 시 13편과 1,2,3 시집에 담지 못한 해외 여행지를 찾아 쓴 3편 등 16편의 시를 묶었고, 제3부와 제4부는 <작은 꽃 세상 이야기><작은 꽃 세상 친구들>로, 다같이 ‘꽃’에 대한 화자의 시각을 통해 시인의 인생관을 이입하며 재해석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꽃’의 세계를 조망한 시가 39편으로 연작되어 있다.
이미 선보인 그의 세 권 시집에서도 종종 눈에 뜨인 바지만, 이번 시집은 기행시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가깝게는 이웃 마을의 축제로부터, 이름난 명산대찰을 거쳐, 바다 건너 가파도까지, 때로는 먼 이방의 묘족이 사는 곳까지 시인은 끝없는 순례자의 길에 들어서 자연의 신비함에 경외스러워하기도 하고, 그 낯선 땅, ‘사람 사는 곳’의 동물들에게 동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인의 여심(旅心), 유랑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경실 시인의 시세계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화두(話頭)랄까, 키워드는 ‘길’과 ‘꽃’이라는 두 단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길, 즉 ‘여행’이라는 동적(動的)인 세계에서의 동중정(動中靜)을 노래한 시들과 ‘꽃’이라는 정적(靜的)인 세계에서의 정중동(靜中動)을 그려낸 시들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시인은 끊임없는 동경과 방랑을 꿈꾸며 떠나는 여행길에서 신비한 미지의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접하면서 자기성찰과 때로 일탈의 쾌감을 탐닉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고, 스스로가 답을 내리는 자기계발의 과정을 통해 자기위안과 자기구원을 얻고 있는 듯하다.
또 하나의 화두인 ‘꽃’ 그 ‘꽃’에게 말을 걸며 화자의 느낌과 생각을 전달하며 은근히 시인 자신의 가치관, 즉 인생관이나 우주관을 표백하고 있기도 하다.
그 표현 방식은 강하게 주창하거나 억지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조용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반어나 역설의 어법을 자주 구사하고 있다.
“자연(自然)이 내 시의 지지자다”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릴 만큼 그의 시를 읽다보면, 김경실 시인은 꽃과 나무 등 자연물과의 대화를 나누며 교감할 수 있는 주술사적 능력을 지닌 듯하다.
그의 시, 3부와 4부의 ‘작은 꽃 세상 이야기’는 바로 시적화자의 일기이거나 자서전처럼 시인 자신의 인생행로를 들려주는 고백서에 다름아닌 것 같다.
2. 자연의 품을 찾아가는 여정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경실 시인은 때때로 권태로운 일상을 탈출하여 심산유곡이나 강과 바다 등 자연을 찾아 교감하고 소통하며, 자연친화적 삶을 즐기는 것이 취미인 듯하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은 자신을 발견하는 출발이고, 자신의 근원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고, 나아가 존재의 원형을 탐색하는 작업의 한 방식이라 하겠다.
아무튼 그의 여행의 촉매는 이상과 비경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살면서
아무리 힘들었던들
공룡능선 넘는 일 만큼이야 하겠는지요
봉우리 넘으면 또 한 봉우리
이제 끝인가 싶으면
금세 한 봉우리 나타나는
어느 햇빛 좋은 늦은 봄에
공룡능선 넘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지은 죄 많아
이내 가슴 미어지고
-「공룡능선을 넘으며」
제1부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인의 제4시집의 전모를 대변하는 서시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한 사람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시인으로서 살아온 지가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제 이순(耳順)의 목전에 이른 시인의 삶에서 어찌 힘든 고비가 없었겠는가?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넘으며’ 겪었던 그 험하고 고되었던 등반의 체험은 마치 그가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 할 인생의 과정을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라는 속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로병사(生老病死) 그 자체가 괴로움의 연속인 것을…. 이상의 실현은 또 다른 이상을 부르며 그 실현에 부대끼고…. 이처럼 끝없는 도로(徒勞) 그 자체가 인생 아니겠는가?
“나도 모르게 지은 죄 많아/이내 가슴 미어지고”, 그렇다 ‘인간의 원죄의식’은 비단 특정 종교인들만이 아니고 모든 인류가 가진 운명의 굴레이며, 태생적 한계가 아니겠는가? “가슴이 미어지고”라는 결구에서는 우리 모두가 회한의 감흥을 맛보리라 믿는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에 가면
산꼭대기 날망에 억새가 많더래요
언제부터인지 민둥산, 민둥산 그러기에
큰 맘 먹고 갔더랬는데
그만 비가 내리다가 싸락눈 흩뿌리다가
엉망진창 날씨가 그랬더래요
그래도 이미 져버린 억새 배경삼아
떼로 몰려간 친구들 사진 찍고
속없이 하하 호호 웃고
나름대로 실실 즐거웠더래요
그러니 언제 민둥산 억새를 보러
강원도 정선에 한번 가보더래요
-「정선, 민둥산에 가면」
흔히들 작품에서 토속적 향토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한 방법으로 그 고장의 방언, 즉 사투리를 차용하여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김 시인의 경우도 의도적으로 그의 원적지인 강원도의 방언을 끌어다 고향의식을 표출한 한 작품이 위에 인용한「정선, 민둥산에 가면」이다. 이제는 자주 찾아갈 수 없는 나그네의 입장에서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전하고 있을 뿐, 마치 타향의 명산을 소개하듯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민둥산 날망에 억새가 많더래요” 를 시작으로 하여, 2연과 3연 그리고 마지막 연 “강원도 정선에 한번 가보더래요”로 끝맺기까지 고향의 구수하고 질박한 사투리에 젖어 향수를 달래고 있지나 않는지?
“그래도 이미 져버린 억새 배경삼아/떼로 몰려간 친구들 사진 찍고/속없이 하하 호호 웃고/나름대로 실실 즐거웠더래요”라는 표현 속에는 시적화자의 기쁨과 즐거움을 통해 시인 자신의 희열이란 감정을 접사(接寫), 합성(合成:double-exposure)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도적으로 방언을 쓴 작품이 아닌데도 김 시인의 작품속에서 가끔 무의식적으로 묻어나오는 강원도 특유의 어휘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겨울, 낙산바다」에서의 ‘아금박스레’라든가,「봉평 메밀꽃」에서의 ‘세상에나’라든가,「황매산 철쭉」의 ‘날망’ 「하소백련지」의 ‘하마’, 「양지꽃」의 ‘볼태기’ 등이 그것이다. 이는 아마도 김 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잠재된 귀소본능(歸巢本能)에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기능이고 특징이다. 언어야말로 인간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기본적 도구라 할 수 있겠다. 단순한 의사전달의 수단을 뛰어넘어 고급한 언어예술인 시에 있어서 시인 자신의 국어나 모국어는 그만큼 더 고귀하고 소중한 자산임에랴, 원초적 언어인 모태어, 즉 방언의 경우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아무려나 김 시인의 소재 채택이나 어위의 구사에서 불거지는 방언의 유로를 통해 볼 때 그의 잠재적 귀소본능이 증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라건대 시인의 시 속에서 소박하고 순후한 방언들이 더욱 빛나는 시어가 되어 시적 묘미와 시적 진실을 배가해 주기를 기대한다.
첫눈에 반했다고 했나요
보는 것만으론 마음에 차지 않아서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무작정 계곡물에 풍덩 빠졌지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계곡물과 한몸되어
물살이 끄는 대로
그렇게 언제까지나 있었지요
우리의 삶 또한 그러겠지요
어느 날, 생전 생각지도 않았던
지리산 화엄사 계곡물 만나듯
세월은 또 무심히 흘러가겠지요
-「화엄계곡 1」
여름날 달밤에
화엄사 계곡에 가보신 적 있나요
장맛비에 물이 불어
큰 소리 지르며
사정없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화엄사 계곡에 가보신 적 있나요
가슴 속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부디 가지 마세요
세찬 계곡 물소리 들으면
그만 나도 모르게 슬퍼지는 마음,
추스릴 자신 없으면
달밤에 화엄사 계곡엔 가지 마세요
-「화엄계곡 2」
이번 시집의 제목으로도 인용된「화엄계곡」은 1편과 2편으로 된 연작시이다. 전자에서는 “첫눈에 반했다고 했나요”라며 설의법을 통해 화엄사 계곡에 매혹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며, 마침내 “무작정 계곡물에 풍덩 빠졌지요”라는 직설적 고백을 듣게 된다. 참으로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 화자는 단순한 자연의 신비경이라는 외형에만 도취되어 그랬을까? 그런 것만은 아닐 것 같다. 그에겐 색계(色界)를 품고 있는 공계(空界)에 압도된 바가 더 크지 않았을까? ‘화엄(華嚴)’이란 세계가 보여주는 아우라의 힘, 부처님의 법력 같은 것 말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화엄경의 말씀처럼 화엄이 지향하는 세계란 결국엔 중생의 고통을 끊고, 자유로운 세상을 세우기 위한 열망에 다름 아니라 보겠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행을 체험하고, 밀덕을 쌓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라 믿고 있는 화엄의 세계! 시적 화자는 부지불식중에 이러한 화엄계에 빨려 들어가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어 그만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을 것이리라. 이를 증명하듯 화자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계곡물과 한몸되어/ 물살이 끄는 대로/ 그렇게 언제까지나 있었지요”라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침내 시적화자와 화엄 계곡과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줌이며, 나아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황홀경을 통한 자기구원의 열반(涅槃)임을 감지케 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적화자를 포함한 우리들 속세의 삶이란 영겁 속 찰나의 한 점 티끌과 같은 것이어서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허무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우리의 삶 또한 그러겠지요/ 어느 날, 생전 생각지도 않았던/ 지리산 화엄사 계곡물 만나듯/ 세월은 또 무심히 흘러가겠지요” 라며 생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자각하며 나약한 운명론적 존재로 현실의 자아를 수용하고 마는 것이다. 둘째 수의 결말부에 와서도 “가슴 속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부디 가지 마세요/ 세찬 계곡 물소리 들으면/ 그만 나도 모르게 슬퍼지는 마음/ 추스릴 자신 없으면/ 달밤에 화엄사 계곡엔 가지 마세요”라며 절대자에 대한 외경심을 드러내며, 나약한 존재의 한계성을 역설적으로 경계해 주고 있다.
(전략)
대당신교 미니스커트 묘족이나
은빛 물결이 아름답다고 은담이라 불리는 은담 동족이나
나무와 풀이 무성하다는 빠샤 묘족이나
(중략)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같더라구요
-「사람 사는 곳」
모를 심는다고
묘족이라 부른다네요
언제부턴지 깊은 산 속
다락논을 일구며 사는
(하략)
-「묘족」
족히 천년은
지금 그대로 있었을 것 같은
바닷가 다랭이마을
얼마나 가파르면
다랭이 논에서 일하는 처녀
치마 속이 훤히 보인다고 했을까
(하략)
-「남해, 다랭이마을」
(전략)
칠월 땡볕에
옥수수 수염 한없이 길어지고
허물어진 담 귀퉁이 타고 오는
능소화 애처로운데
대낮에도 뻐꾸기 울음소리 들리는
가르마 같은 길 따라 걸어가면
여지껏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런, 산안마을이 있답니다
-「산안마을」
이처럼 시인이 찾아 떠나는 행선지는 화려한 문명의 도회지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듯한 원시의 세계들이다. 중국 귀족성의 소수민족인 묘족이 사는 오지이거나, 충청도 단양의 산골인 산안마을, 또는 남해 바닷가의 가파른 땅 다랭이마을 같은, ‘사람 사는 곳’들이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고 한다. 사람 사랑에 이끌려 지구촌의 숱한 ‘사람 사는 곳’을 찾아 견문을 넓힌 김 시인의 시안(詩眼)만큼이나 그의 시는 심오하고 투명하게 다가온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같다”라며, “다락논을 일구어 모를 심고 사는 묘족의 마을”이나 “족히 천년은 지금 그대로 있었을 것 같은 바닷가 다랭이마을”이나 “옥수수 수염이 한없이 길어지고, 대낮에도 뻐꾸기 울음소리 들리는” 산안마을 모두가 “어디든 다 같은 사람 사는 곳”임을 시인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다.
3. 꿈과 사랑, 꽃들의 이야기
시인들의 비밀 통로는 바로 시다.
간결하고 압축된 일본시의 전형인 하이꾸(俳句)가 연상되는, 김 시인의 시가 바로 이 시집의 3부와 4부의 시들이 아닌가 한다. 5,7,5의 3구 17음절로 된 일본 고유의 시이며, 특정한 시절이나 자연에 대한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가 하이꾸다. 일상의 삶과 자연이 본질적 소재이며, 언어적으로는 표현의 편의성과 함축적인 동질의식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애매성이 그 특징이다. 또한 자연환경에 기인한 찰나의 감성과 노장사상 등이 그 사상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보겠다.
김경실 시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화장이 없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질박한 시감(詩感)속에 녹아 있는 의미체들, 이는 마치 아포리즘적인 경각성의 산문과 미려하고 함축된 운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서사시를 보는 듯, 또는 감성어린 한 편의 자전적 에세이를 대하는 듯하다.
‘작은 꽃 세상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 여인의 삶, 한 시인의 삶이 풀어놓은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는 짜릿한 재미를 맛보게 된다. 꽃을 노래한 수십 편의 시들, 그것들은 따로 따로 독립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전편을 연독해보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관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꽃’이란 공통분모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내포된 시적화자의 인생론은 한결 같은 주제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삶에 대한 진솔하고 순수한 고해 속에는 전통적 규범에 얽매여 인종하며 살아온 한국 여성들의 운명적인 원(怨)과 한(恨), 그리고 비애(悲哀)가 스며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염세적이거나 절망적인 넋두리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에서 미래에 대한 밝은 기대와 희망으로 자기 긍정과 자기 확신의 힘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건강한 시정신과 온전한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작은 꽃 세상’이라는 표제로 연결된 3부와 4부에 묶인 39편의 연작을 보면, 일차적으로는 꽃이 가지는 외모나 속성을 시적화자의 눈으로 그려내며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외형의 묘사나 서술이 아니다. ‘꽃’이라는 존재에 내포된 함의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사상 등, 시인의 가치관을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사물의 이름을 명명(命名)하는 자이다”라든가 “시인은 삶의 예지자”란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시인이 가지는 소임은 언어의 재창조자로서 언어의 재해석으로 모든 존재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쯤에서 김경실 시인이 풀어내는 ‘작은 꽃 세상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세계인지 탐미해 보기로 하자.
기다리다
기다리다
내 안에서 그만 활짝 피었답니다
그대
뒷말 마셔요
-「산벚꽃」
어디선가 쪽-하고
입 맞추는 소리 들릴 것 같은,
동그랗게 입 모아 내민 모습이
보일 것 같은
쪽, 쪽, 쪽
-「쪽물」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얼굴 보면 속마음 다 보인다니까요
어찌 아느냐구요?
그냥요
-「달개비꽃」
위에 예시한 시들은 ‘작은 꽃 세상 이야기’ 1,2,3의 전문들이다. 극히 짧고 간결하다. 그리고 그 형식이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된 대화체이다. 마치 소설이나 수필의 한 부분을 옮겨놓은 것처럼 객관적 서술의 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하이꾸에 나타나는 대화체 양식도 우연히 닮아 있기도 하다.
극도로 절제된 여백미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무언가 다양한 의미의 여운을 던져 시의 깊이 속으로 빠져들게 해준다.
시인의 꽃 세상, 그만의 화원에는 어떤 ‘꽃’들이 있으며, 그들은 각각 어떤 색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자.
예쁘게 생긴 것이
어염집 처자 같진 않지만
그래도 예쁜 걸 어쩌나요?
예쁜 것은 죄가 아니랍니다
-「유홍초」
위의 시는 삶에서 자기 위안이랄까, 자기 도취랄까 긍정적 심성의 태도를 읽게 해준다.
살기가 만만치 않던가요?
마디마디 굳은살 박혔군요
그래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답니다
-「마디풀」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우리네 조상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 태도를 읽게 해 주는 시로 세파를 이겨내는 힘 같은 것, 한국인의 끈기를 느끼게 해준다.
눈이 언제 맞았는지 모릅니다
작정한 일 아니었으니
그래도 굳이 말하라시면
나도 모릅니다
-「수국」
예나 지금이나 남녀의 연분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인연이 운명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가 보다. 작정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게 바로 남녀 간의 사랑 아니겠는가.
점잖게 불러서 복주머니지
원래는 개불알꽃이라 한다네요
어찌나 우습던지
내 설움까지 보태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었답니다
그런데 왜 가슴이 허전할까요?
-「개불알꽃」
우리네 선조들의 언어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이름, 그 해학과 기지 속에는 서민들의 고통과 간난(艱難)까지 일시에 날려버릴 익살과 풍자가 깃들어 있는데, 이 시의 백미랄까 화룡점정은 결구 “그런데 왜 가슴이 허전할까요?”라는 대목이다. 단순히 복주머니꽃의 생김새만은 아닐 터, 본능 뒤의 쓸쓸함이나 감정 배설 뒤의 그 허전함 같은 것, 일종의 카타르시스의 여진이라 하겠다.
여리고 여린 그대여,
이 험한 세상 어찌 산답니까?
혹시,
뒤에 누가 있습니까?
-「어리연꽃」
속된 말로 과거의 ‘빽’이란 말과 현재의 ‘스폰서’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인간의 삶이 부대끼는 세상에는 언제나 존속해 왔던 말이다. 특히나 연약한 여인들이 세파를 견뎌내는 산 수단으로 예나 지금이나 그 뒤에는 은근히 돌봐주는 힘센 자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의 세상에서, 특히나 ‘어리연꽃’과 같은 순결한 꽃에게 내가 어찌 이런 해독을 할까. 시인에게 결례가 된 것 같아 면구스럽다.
미련없이 산뜻하게 잊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지만
어디 잊는 일이 그리 쉽던가요?
그래, 자꾸 돌아서는 마음 붙잡느라
가을해가 짧습니다
-「망초꽃」
꽃의 이름만큼이나 동경과 연모의 감정이 밀려오는 시이다. 이토록 짧은 시 속에서 이렇게 애틋함이 가득 찬 시심을 담아낼 수 있는지 시인의 높은 시작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산뜻하게 잊자고”“몇 번씩 다짐하지만”“잊는 일이 쉽던가요?” 그 어떤 말도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연의 끝 행이 주는, 간절하고도 아쉬운 정한이야말로 이 시에 대해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엄마 몰래 구찌배니 발랐군요
맨 얼굴이 더 예쁜데
어떤 노래 가사처럼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시간입니다
-「앵초」
사춘기 소녀의 순애보처럼 너무나 순수하게 다가오는, 꽃의 이름만큼이나 앙증맞은 소품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시간’이 아아 옛날이 되고만 지금, 시인은 그때 그 시절이 무척 그리운가보다.
이상은 제3부에서 앞서 예로 든 3편을 제외한, 그 다음의 7편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음미해 보았다. 지면관계로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은 독자들의 몫으로 양보하기로 한다.
4. 내면에 투영된 다양한 정서들
앞에서 작위적인 선택 없이 인용한 ‘작은 꽃 세상 이야기’ 연작시 1에서 10까지의 작품을 일별해 본 결과, 김경실 시인이 가진 시작법상의 특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간결한 압축’이라는 전통적 본질에 충실하며, 수식어나 보조관념을 가급적 생략하고 절제하여 소담한 ‘여백의 미’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언어가 김경실의 시 속에 놓이면 산뜻하고 신선한 은유와 상징으로 변모함과 동시에 감칠 맛 나는 시어로 기능하며, 독자의 감정선(感情線)을 붙잡는 의미체가 되고 있다. 또한 그만의 독특한 화법과 시상 전개가 언어의 의미를 극대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감추어 왔던 삶의 뒷이야기를 들으러 그의 화원으로 다시 들어가 조심조심 꽃잎을 열고, 밀실을 들여다보자.
두 눈을 현혹하는 화사한 색감, 후각을 마비시키며 강열한 향기를 뿜어대는 꽃들의 세상, 시인이 그토록 드러내기를 꺼려했을 내밀의 정원. 어쩌면 위험한 외출이며, 화려한 여행인지도 모를 ‘작은 꽃 세상’, 그도 하나가 아니고 복수의 공간을 제공해 주어 궁금해 했던 시인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지만 그에게는 이러한 통설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우아하고 후덕한 시인의 외모만큼이나 그의 내방에 장식된 가구나 치장들도 간결, 소탈하고 단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찬찬히 그 내부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고상한 명품들임을 어렵잖게 알 게 될 것이다. ‘꽃’이란 퍼소나에 너무 깊이 가려져 사리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의 시는 결 고운 비단, 모시나 인견 같이 담박(淡泊)하고 섬세하며 은은한 윤기가 느껴지는 ‘한국 여인의 소리’임을 깨닫게 된다.
김경실 시인의 시를 읽고서 게송이나 법문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단순히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 때문에서가 아니라, 사물을 관조하고 재해석하는 데에 무리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담한 철학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에 마치 선시를 대하는 듯하기도 하다.
그는 많은 여행을 통해 풍경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균형 잡힌 관점을 키우는 데 더 비중을 둔 것 같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그는 이미 꿰뚫고 있었던 걸까? 그가 찾아가는 길의 끝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고, 소통과 공감이 있고, 사랑이 깔려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꽃’이란 탈을 쓰고서 자기의 인생에 대한 소견을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주며, 정의(情意)가 담긴 삶의 편린들을 통하여 그만의 시평선(詩平線)을 확장하며 다채로운 색조의 정서를 분사하고 있다.
문도의 정진과 영광을 빈다(시인․한국문협부이사장)
*2012년 8월 8일 갑동서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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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꽃을 찾아 떠난 길에서 만난
화엄세계
김경실 시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화장이 없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질박한 시감(詩感) 속에 녹아 있는 의미체들, 이는 마치 아포리즘적인 경각성의 산문과 미려하고 함축된 운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서사시를 보는 듯, 또는 감성어린 한 편의 자전적 에세이를 대하는 듯하다. …김경실 시인의 시를 읽고서 게송이나 법문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단순히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 때문에서가 아니라, 사물을 관조하고 재해석하는 데에 무리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담한 철학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에 마치 선시를 대하는 듯하기도 하다. 그는 많은 여행을 통해 풍경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균형 잡힌 관점을 키우는데 더 비중을 둔 것 같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그는 이미 꿰뚫고 있었던 걸까? 그가 찾아가는 길의 끝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고, 소통과 공감이 있고, 사랑이 깔려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꽃’이란 탈을 쓰고서 자기의 인생에 대한 소견을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주며, 정의(情意)가 담긴 삶의 편린들을 통하여 그만의 시평선(詩平線)을 확장하며 다채로운 색조의 정서를 분사하고 있다. ― 김종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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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실 시인∥
∙ 강원도 고성 출생(충남 금산에서 성장)
∙ 1991년『월간문학』신인상 등단
∙『이르쿠츠크의 아침』『장체 가는 길』『누란 시집』『화엄계곡』
∙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인협회 회원
∙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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