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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09
1. 영업 3팀 / 낮
능글거리는 웃음으로 쳐다보고 있는 박과장.
상식, 동식 : !!
박과장 : (웃으며) 여~ 오과장님, 안녕하세요? 이제 한 팀이네.
상식 : (자기도 모르게 굳어지는 얼굴이다)
그래를 흘깃 봤다가 웃으며 동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박과장 : 아~ 김대리!~ 잘해보자고~ 언제 봐도 일 잘 하게 생겼단 말이지~ (일부러 뒷덜미를 기분 나쁘게 힘을 줘서 잡는다)
동식 : !!
박과장 : (그래를 흘깃 본다)
그래 : (숙이며) 장그래라고 합니다.
박과장 : 아~ 니가 그 낙하산 계약직?
일동 : !
박과장 : (거침없이) 고졸이라며? 운 좋네? (웃으며 상식에게) 얘 어떻게 들어 온 거예요? 끗발도 별로라며?
상식 : (본다)...
박과장 : (동식자리 가리키며) 내 자린 저기죠? (가면서 그래 흘깃 보고 히죽) 잘해 보자. (자리로 가서 가방을 탁! 놓고 앉는다)
그래와 동식, 상식을 보면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상식.
김부장(e) : (화난) 무슨 소리야?
2. 김부장실 / 낮
인상 쓰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김부장.
상식 : 다른 사람으로 보내 주십시오. 어려우면 인력 충원은 없던 일로 해주시든지요.
김부장 : (보던 서류 파일철을 탁 접으며) 야, 오과장. 왜 이래? 애처럼?
상식 : 영업3팀에 도움이 될 사람을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김부장 : 그게 박과장이야. 이 회사에서 박과장만한 중동통이 또 어딨어?
내가 자원본부 있을 때도 실적 하나는 기차게 내는 놈이었어.
상식 : (후....)
김부장 : 이래저래 100%로 맞는 사람이 어딨어? 서로 맞춰 가면서 지내는 거지. 일만 생각하라고, 일만.
상식 : .....
3. 탕비실 / 낮
속 타는 듯 '후~ ' 하는 얼굴로 들어오는 상식. 복사 하고 있는 정과장을 만난다.
상식 : 야, 정과장.
정과장 : (흘깃 본다) 네?
상식 : 박과장 니가 추천했다면서?
정과장 : 에? 아~ 네. 그 친구 실력 좋잖아요.
상식 : 이거 왜 이래. 누가 똥 치우는 거 몰라서 그래?
정과장 : 똥이라뇨?!
상식 : (물 받으며) 귀 닫고 사는 거 아냐. 나도 들을 만큼 듣는다고. 너 지난 번에 데리고 있을 때 고생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정과장 : 적당히 능력 있는데 자원본부랑 안 맞는 거 같아서 그래요.
저희 팀 있을 때도 내가 리더십이 좀 더 좋았다면 그 친구가 그랬겠나 싶은 거죠.
상식 : 이렇게까지 자기를 죽여서라도 보내고 싶은 정도의 사람이라고 들리는군.
정과장 : (뜨끔해서 더듬는) 아, 뭐.. 무슨 그런
상식, 물을 꿀꺽 마신 후 쓰레기통에 컵 던지고 나가 버린다.
4. 영업 3팀 / 낮
박과장, 그래를 앞에 세워 놓고 구경하듯 보고 있다.
자리를 옮긴 동식은 신경이 쓰이지만 모른 척 하고 키보드를 치고 있다.
박과장 : 고졸도 아니고 검정고시야? 야~ 너 진짜 개천에서 용 났구나.
동식 : (손을 멈춘다)
그래 : ...
박과장 : 여기 오기 전엔 뭐했어? 신기하네. 입사 피티는 어떻게 통과했어?
김대리, 과제 미리 빼돌리고 그런 건 아니지?
동식 : (일그러지는 얼굴로 천천히 돌아본다.)
박과장 : 뭐 할 줄 아는 건 당연히 없을 테고, 어디 보자. 응. 예쁘장하게 생겼으니까 얼굴마담하면 되겠네.
동식 : (확 굳은 얼굴로 그래와 박과장을 번갈아 본다)
박과장 : (빙글빙글 웃으며) 영업직은 얼굴도 실력이니까 너무 주눅 들지 말고. 여자친군 있지? 사진 좀 줘봐.
동식 : (가만히 있는 그래를 화난 얼굴로 보는데)
상식(off) : 사귀는 건 천천히 하고 자리 정리부터 해.
박과장, 보면 상식이 굳은 얼굴로 들어오고 있다.
박과장 : 에이~~ 오과장님. 부하직원들 있는 데서 해라가 뭡니까. 해라가. 제가 쫌 그렇잖습니까?
상식 : ... 전에 부서에서는 어땠지?
박과장 : 그야 당연히...
상식 : (책상 위 수화기를 들며) 어, 이과장. 박과장 당신 팀에 있을 때 호칭 어떻게 했어?
박과장 : (뜨끔)
상식 : 알겠어. (수화기 내려놓고) 내가 무리한 건 아닌데 말이지?
박과장 : (능글맞게) 아~네네~. 뭘 또 확인까지...
상식 : (그래 보며) 넌 왜 계속 서 있어?
자리에 앉는 그래를 보는 동식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5. 옥상 정원 / 낮
마른 담배 입에 물고 서 있는 동식. 짜증 난 듯 담배 구긴다.
앞에 그래, 커피 마시고 있다.
동식 : 왜 아까 그냥 맹하게 있었어?
그래 : 네?
동식 : 허기사 장그래씨가 어떻게 당하겠어 그 양반을. (짜증) 아니 왜 하필 박과장님을 보낸 거야?!
(그래 보고 다시 후~) 깝깝~해졌다. 우리.
동식을 쳐다보는 그래에서. 타이틀 <미생 제 9화>
6. 원인터 외경 / 낮
상식(e) : 장그래, 회의 자료 준비해줘.
7. 영업 3팀 / 낮
바쁘게 일하고 있는 영업 3팀. 턱을 괴고 낭창하게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박과장.
그래, 박과장에게 자료를 준다.
그래 : 회의 자룝니다.
박과장 : (턱을 괸 채 한손으로 흘깃 본다)
상식 : 우리 그 동안 진행한 중동 관련 아이템 자료야. 할 만한 게 있는지 봐.
박과장 : 무슨 벌써 일을... 나온지 사흘 밖에 안됐어요~ 아직 팀 분위기 파악도 못 했는데.
상식 : (본다)
박과장 : (상식 흘깃 봤다가) 뭐 이렇게 페이퍼가 많아. 이걸 언제 다 읽으라고.
(건성으로 자료 넘기며) 아.. 이런 건 (무시하는) 열라 빡세기만 할 거 같고. 들이는 품에 비해 팔릴 쪽은 별 거 없고.
야, 고졸! (낄낄) 이건 니가 뽑은 거냐? 낄낄. (웃으며 그래를 본다)
그래 : ...
동식 : (욱해서 본다.)
박과장 : 오과장님, 이거 안돼요~ 중동 여기가 의욕만 갖고 되는 데가 아니라니깐.
상식 : (보다가) 그럼 박과장이 할 만한 아이템 라인 좀 잡아와 봐.
박과장 :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아~ 참 과장님. 제 말을 뭘로 잡수시나. 업무 분위기 파악 좀 하자니까요.
고스톱을 쳐도 중간에 낀 놈은 판돈도 좀 보고 판세도 보고 하는 거 아닙니까? 어후~ 참!!
탁 일어나서 건들건들 나가는 박과장.
화를 참는 동식과 굳은 얼굴로 보는 상식. 조용히 보는 그래.
8. 철강팀 +통로 / 낮
출장 준비 중인 강대리, 가방에 넣을 서류 등을 정리하고 있다.
강대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서 있는 백기의 표정이 무겁다.
/헤드헌터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백기. 창밖으로 강대리가 지나가는 걸 보고 멈칫한다.
가방을 들고 갑자기 돌아서는 강대리 때문에 백기, 깜짝 당황하는데.
강대리 : 내일 올 겁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하세요.
백기 : ... 알겠습니다. (인사하면)
강대리, 백기를 다시한번 봤다가 나간다.
강대리가 멀어지는 걸 보던 백기, 자리로 와서 선 채 핸드폰 전화 한다.
백기 : 네, 장백기입니다. 면접날짜 정해졌나요? (듣고는) 네. 평일이네요. 아닙니다.
(회사 다이어리를 열어 달력을 편 후 10월 20일쯤에 동그라미를 치며) 하루 휴가 낼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있는 원 인터의 CI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보는 백기,
그때 자원팀 쪽에서 날아드는 하대리 소리.
하대리(off) : 야! 누가 너한테 이런 거 챙겨 달랬어?!
백기, 자원팀 쪽을 보면.
9. 자원팀 / 낮
인상 확 쓰고 앉아 있는 하대리 옆에서 커피를 내밀고 있는 영이.
하대리 : 시키지도 않은 일 하지 마! 저리 치워!
하대리, 컴퓨터 작업하던 문서의 인쇄를 누른다.
프린트 용지없음 버튼에 불 들어오는 걸 본 영이, 프린터로 가서 용지를 채운다. 프린트가 된다.
기가 막혀서 보는 하대리에게 프린트 된 서류를 가져오는 영이.
하대리, 못마땅하게 보고 확 뺏어서 스템플러로 찍으려고 하는데, 심이 없다.
영이, 얼른 비품함으로 가서 심을 찾아와 건넨다.
하대리 : (폭발) 야!! 안영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영이 : 말씀대로, 업무에서 빠지겠습니다.
하대리 : !! (약간 당황하는 얼굴로 보는)
영이 : 대신
하대리 : (인상 쓰고 보면)
영이 : 그 건 하시는 동안 하대리님 허드렛일을 담당하겠습니다.
하대리 : (어이 없는) 뭐?
영이 :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대리 : (노려보다가 화나서) 그래? 좋아. 해!
두리번거리다가 책상 밑 휴지통들을 본다.
하대리 : 쓰레기통들 좀 싹 비워와. 그리고 (자기 쓰레기통 발로 꺼내 밀며) 깨끗이 씻어다 놔.
영이 : (본다)
하대리 : 왜? 이건 못하겠어?
영이 : 아뇨. 하겠습니다. (쓰레기통 수거하는데)
하대리 : 씻는 김에 다른 사람들 것도 다 씻어다 놔.
영이 : (멈칫) 네 알겠습니다.
영이, 쓰레기통 들고 나가는데 들어오는 정과장과 유대리, 깜짝 놀라서 본다.
정과장 : (어이없어) 쟤 왜 저래?
하대리 : 제가 시켰어요. 너무 하고 싶다기에. (다시 일하는)
정과정 : 야. 너 진짜 왜 이래? 한다고 저런 걸 시켜도 돼?
유대리 : (놀라) 그러게 말예요.
정과장, 유대리, 어이 없이 보고, 하대리는 일만 하고 있다.
10. 철강팀 / 낮
굳은 얼굴로 쳐다 보고 있는 백기. 양손에 두 개씩 쓰레기통을 들고 화장실 쪽으로 가는 영이를 보다가
불끈한 얼굴로 확 따라 나간다.
11. 영업 3팀 앞 통로 / 낮
쓰레기통을 들고 가는 영이의 뒤를 화난 얼굴로 따라 오는 백기, 빨리 걸어가 쓰레기통들을 확! 뺏어든다.
깜짝 놀라 보는 영이.
영이 : 장백기씨.
영업3팀 안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그래가 돌아서다가 이 광경을 본다.
백기 : 이게 안영이씨가 팀의 일원이 되는 방법 입니까?
영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그대로 들고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는 백기.
영이, 당황해서 백기를 보다가 화난 얼굴로 남자 화장실 쪽으로 확 간다.
놀라서 보는 그래.
12. 남자 화장실 안 / 낮
마지막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큰 쓰레기 통 안에 쏟아 붓는 백기.
소변기 앞에 서 있던 동식, 놀라서 바라보고 있다.
세면대 위로 쓰레기통 탕! 놓는 백기.
동식 : (어리둥절해서) 뭐, 뭐 (하는데)
영이 : (화나서 확 들어오며) 장백기씨!!
동식, 기겁해서 앞으로 밀착한다. 당황한 영이, 얼른 나가고.
차가운 얼굴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쓰레기통을 씻는 백기.
13. 화장실 앞 영업3팀 통로 / 낮
영이, 화난 얼굴로 서 있다.
그래, 영이를 보는데 동식, 뻘쭘한 얼굴로 나와 영이 옆을 지나 영업3팀으로 간다.
잠시 후 백기, 물기를 대강 닦은 쓰레기통을 양손에 들고 나온다.
영이, 확확 가서 쓰레기통을 확 빼앗아 든다.
영이 : 잠깐 봐요. (확 돌아서 간다)
백기, 가는 영이를 굳은 얼굴로 보다가 쳐다 보고 있는 그래를 본다. 그래도 본다.
그냥 확 가는 백기.
14. 영업3팀 안 / 낮
동식 : (멍~ 보며) 저 분위기 뭐냐? 저거 저거 연애 비스무리한 저 분위기.. (그래 보며) 쟤들 연애하는 거 아니지?
그래, 동식을 봤다가 다시 멀어지는 영이와 백기를 본다.
15. 중앙정원 / 낮
화난 얼굴로 정원 일각으로 확확 걸어가는 영이, 뒤를 따라 가는 백기.
백기 : (화난 소리로) 영이씨나 나나 여기서 이런 대접 받을 사람들 아니잖아요.
회사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미련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영이씨도 미련이면 그냥 마음 접어요.
영이 : (멈춰 선다. 돌아 보며) 장백기씨,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내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
백기 : 져주라고 한 건 이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지고 들어가는 게 안영이 씨가 찾은 방법입니까?
영이 : (보다가) 네. 적어도 저한텐 그래요.
백기 : 그건 방법이 아니에요.
영이 : 그럼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백기 : (멈칫)
영이 : 어떤 거요? 알면 좀 말해 주세요. 열심히 해도 안 되고 안 하면 더 안 되는 이 상황,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백기 : (보면)
영이 :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백기 : ....
영이 : 이미 나에 대해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학교에서 배운 거엔 없더란 말이죠.
영어 속에도, 수학 속에도 답이 없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냥 무식하게 하는 거예요.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거란 말이죠.
백기 : (보는)
영이 : 이게 내가 찾아낸 방법이에요. 장백기씨는 장백기씨 방법을 찾았다고 하니까
서로 상관하지 말고 각자 방법에 충실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백기를 지나쳐서 가려는데)
백기 : 난 회사, 그만 둘 겁니다.
영이, 놀라서 돌아본다. 굳은 얼굴로 영이를 쳐다보던 백기, 돌아서서 간다.
16. 16층 엘리베이터 앞 / 낮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성대리와 마주치는 석율.
성대리 : (활짝) 어?! 우리 석율!
석율 : 아, 대리님. 지금 막 태진실업에 서류 보냈습니다.
성대리 : (어깨동무하며) 잘했어 잘했어. 역시 믿고 보는 우리 한석율이야. 고생했어! 커피 한잔 할래?
석율 : (천진난만) 네!
성대리 : (카드 꺼내며 장난스럽게) 젤 비싼 걸로 먹어. 나도 한 잔!
성대리, 석율에게 카드 착! 내밀면.
17. 커피숍 안 / 낮
내밀어진 카드를 점원이 받아서 긁는데 삑!! 하는 소리 낭창하게 들린다.
석율 : (당황)
점원 : 손님, 한도 초과인데요.
석율 : 네?
점원 : (다시 해본다. 삑~) 안되는데요..
석율, 당황해 하다가 지갑에서 자기 카드를 꺼내 준다.
석율 : 여기요.
18. 섬유1팀 / 낮
인터넷으로 뉴스 보고 있는 성대리에게 커피 내미는 석율.
성대리 : (커피 받으며) 아~ 땡큐~ (태연하게 모니터에 집중하는)
석율 : 저.. 대리님 카드.. (내밀면)
성대리 : 아, 카드. (받으며) 땡큐. (계속 일하는)
석율 : (잠시 머뭇하다) 한도 초과던데요.
성대리 : 어? (돌아보며) 그래?? 아! 맞다!! 얼마니? (지갑을 꺼내 연다)
석율 : 구천,
성대리(o.l) : 이런.. 현금이 없네..
석율 : (당황) 아.. (얼른) 괜찮습니다. 제.. 제가 쏘는 걸로 하죠.
성대리 : 그래? 역시 진짜 남자 한석율!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다시 모니터 보려다가) 아참! 폴리에스테르 건 말야.
이따가 캐나다 바이어가 전화 올 거야. 그때까지 아이템 리스트 좀 뽑아서 준비해 둬야겠다.
석율 : 네? 캐나다요?
성대리(o.l) : (모니터에 집중한 채) 그 쪽 시간으로 오전 11시쯤 한댔으니까 우리 쪽 시간으로는.. 밤12시쯤 되겠다.
석율 : (흔쾌하지 않은 얼굴로) 여.. 열두시요..?
성대리 : 아! 그리고 내일 말이야. 우리 부서 임원진 조찬 모임 수행 좀 해.
석율 : 조.. 조찬이요?
성대리 : 응. 다섯 시 반까지 킹스 호텔로 가서 준비하면 돼.
석율 : 다.. 다섯 시 반이요? 새벽 다섯 시 반이요?
건성으로 ‘어~’ 하며 모니터 보며 커피 빠는 성대리를 멍~하게 쳐다 보는데.
성대리 : 아참! (휙 돌아 보며) 난 내일 아침 일찍 출장이라 못 간다.
석율 : (멍~)
19. 휴게실 / 낮
털썩 앉는 석율, 미심쩍은 얼굴로 갸웃한다.
석율 : 이상해... (갸웃) 이상해...
/석율 : (피식) 난 우리 성대리님이 너무 찾아서 탈이고. 하하.
성대리 : (돌아서서 석율 손에 서류 한 무더기 주며) 재무부장님 봤구나.
성대리 : 응, 하회탈이라며? (또 서류 한 무더기 얹으며) 괜찮은 분이야. 합리적이고, (또 한 무더기 얹으며) 신입들 의견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음.. 한마디로 열린 사람이지! 우리 한석율씨처럼. (또 얹는다)
성대리 : (일어나며) 그거 처리 좀 부탁해. (휙 나간다)
석율 : 이건 ... 뭐랄까... 꼭 알바하고 돈 못 받았을 때랑 같은 느낌이야. 뒷통수 맞는 느낌.
전화하는 석율,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가까이 들린다. 어리둥절하는 사이.
그래(e) : 네, 한석율씨.
석율 : 아, 장그래. 나 지금 휴게실인데 잠깐 볼 수 있어?
그래 : (탕비실 쪽에서 쑥 내밀며) 왜요?
석율 : 어?? (오라고 손짓한다)
그래 : (찡그리고 가며) 무슨 일입니까?
석율 : (한숨 쉬며) 내 얘기 좀 들어봐봐. 듣고 판단 좀 해 봐봐. 우리 성대리님이 너두 알다시피 인품이 훤칠하신 분이잖아.
그래 : 모릅니다.
석율 : 어? 아, 어쨌든. 근데 이상해... 암만 생각해도.. 성대리님 말야,
그래(o.l) : 일을 떠넘기시는 거 같습니까?
석율 : (깜짝) 어? (그래를 멍~ 본다) 어.. 니가 봐도 그래?
그때 울리는 그래의 핸드폰.
그래 : (받아서) 여보세요.
박과장 : 어, 난데.
그래 : 누구십니까?
박과장 : 야!! 이 자식아! 넌 상사 목소리도 몰라?!
그래 : ! 네. 박과장님.
20. 영업 3팀 / 낮
상식, 결재 서류화일 들고 들어오며, 동식에게.
상식 : 자원 철강팀 EPC TF 건 프린트 좀 해줘.
동식 : 네.
상식 : (빈 박과장 자리보고) 박과장 아직 안 왔어?
동식 : 네.
상식 : (그래 자리를 돌아보며) 장그래는?
동식 : 아, 글쎄요. 방금까지 있었는데?
21. 거리 일각 / 낮
박과장 구두를 들고 서 있는 그래. 이리 저리 보며 박과장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한다.
박과장(E) : 내 차롄가?
22. 당구장 안 / 낮
큐대에 초크 능숙하게 묻히고 슬리퍼 질질 끌며 다가오는 박과장. 거만하게 큐대를 들고 당구대 앞으로 와서 치려고 폼 잡는다.
상대 : 근데 아까부터 계속 휴대폰이 울리던데..
박과장 : (공치는데 집중만)
상대 : 괜찮아요? 박과장님?
박과장 : (날카롭게 공을 조준하며) 눈앞의 위기를 먼저 타개하라. (공을 딱 치면)
흰 공이 이리저리 움직여 붉은공과 노란공을 맞춘다.
상대 : 끝나고 사우나 가실 거예요?
박과장 : 응.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샷 계산한다) 어.
남자 : (공 치며) 할인권 있는데 드려요?
박과장 : 야 자식아. 나 필립호텔 사우나 멤버십 회원이야. 어따 대고 동네 목욕탕을 들이 밀어?
남자 : (슬리퍼를 보며) 그거 신고 호텔 가시게요?
박과장 : 미쳤냐? (공을 딱 친다)
23. 회사 근처 거리 일각 / 낮
전화 중인 그래, 신호만 가고 안 받는다. 난감해서 두리번거리는데
저~ 쪽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박과장.
박과장 : 어이!
그래 : (보고 달려 간다)
박과장 : (구두 보고) 어, 줘.
그래, 내려 두면. 박과장, 갈아 신고 슬리퍼를 발로 슥 밀려.
박과장 : 갖다 둬. 난 이전 거래처 사람이 찾아 와서 잠깐 만나고 올라 갈게. (간다)
슬리퍼를 줍는 그래 너머로 유유히 사라지는 박과장 모습.
24. 영업3팀 / 낮
약간 굳은 얼굴로 슬리퍼 들고 들어오는 그래.
동식 : 뭐야?
그래 : 아닙니다. (하면서 박과장 자리에 놓아 둔다)
동식 : (인상 확!) 박과장님 어딨어?
그래 : 거래처 사람 만나고 있습니다.
동식 : (약간 어이없이) 무슨 거래처? 방금 온 사람이.
그래 : 자원3팀 계실 때 거래처랍니다.
동식 : (기가 막힌 헛웃음)
상식 : ....
동식 : (그래에게) 전화해봐.
그래 : 네. (전화기 든다)
25. 사우나 사물함 안 / 낮
벗어둔 옷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 징징 울리고 있다. 핸드폰 액정, 영업 3팀이 뜬다.
26. 사우나 안 / 낮
뜨거운 물 안에 개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과장. 눈을 감은 채 한 손을 욕조에 걸치고 여유 있게 앉아 있다.
/상식 : ... 전에 부서에서는 어땠지?
박과장 : 그야 당연히...
상식 : (책상 위 수화기를 들며) 어, 이과장. 박과장 당신 팀에 있을 때 호칭 어떻게 했어? (듣고) 알겠어.
박과장 : (뜨끔)
상식 : (수화기 내려놓고) 내가 무리한 건 아닌데 말이지?
상식 : 우리 그 동안 진행한 중동 관련 아이템 자료야. 할 만한 게 있는지 봐.
눈을 뜬다. 흥!하며 한쪽 입술이 기괴하게 삐죽 올라간다.
박과장 : 별 것도 아닌 새끼가. 같이 월급 받는 주제에 목에 힘주긴. (비식)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양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박과장 : 여기가 신세계네. 이 맛에 회사 다니는 거지. 안 그렇냐? 박종식! 흐허허허허~
사우나탕 안에 울리는 박과장의 웃음 소리.
27. 철강팀 / 저녁
강대리 자리에 전화가 울리고 있다.
백기, 힐끗 보고는 무시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상식, 철강팀으로 들어온다.
상식 : (강대리 자리보고는) 이 친구 어디 갔어? 퇴근했어?
백기 : (꾸벅 인사하며) 아닙니다. 바이어 수행 때문에 포항 가셨습니다.
전화 계속 울린다. 말이 잠깐 끊긴다.
백기, 신경 쓰이지만 모른 척 상식을 보고 있는데, 전화는 계속 울린다.
상식, 갑자기 강대리 자리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상식 : 네, 원인터 철강팀입니다.
백기 : (당황해서 보면)
상식 : 네, 강대리 출장 중입니다. 어디라고 전해 드릴까요? (받아 적고) 네,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화 끊고 메모를 백기를 주며) 전해줘.
백기 : (당황해서 보다가 받아든다)
상식 : (파일 내밀며) EPC TF 건 강대리가 만든 보고서 검토 다 했으니까 철강 팀에서 먼저 결재 올리라고 해.
라인은 다 괜찮은 거 같다고 말이야. 자원팀이랑 우리팀에서도 결재 올려야 하는 급한 건이니까 오는 대로 바로.
백기 : 네. 오시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식 : (나가다가 획 돌아보며) 차과장은?
백기 : 과장님은 지금 미얀마 현지 출장 중이십니다.
상식 : (백기를 슥 보더니) 여기도 인력 충원해야겠네.
백기 : (당황하는데)
상식 : 몸은 콩밭에 보내기로 한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 텃밭에 있는 거 아니지?
백기 : (당황) 네?
상식 : 수고해. (간다)
굳은 얼굴로 상식을 보다가 손에 쥔 메모를 본다.
28. 영업3팀 / 저녁
상식이 들어오면 가방을 싸고 있는 박과장.
동식과 그래는 굳은 얼굴로 각자 할 일 하고 있다.
박과장 : 시간 참 성실하게 간다. 벌써 퇴근 시간이네?
상식 : 박과장, 어디 갔다 왔어?
박과장 : (흘깃 보며) 네? 아~ 나 참. (그래 보며 벌컥) 야! 계약직. 너 말 안했어? 거래처 사람 만나러 간다고 했잖아!!
상식 : 거래처 사람을 사우나에서 만나나?
박과장 : (뜨끔해서 보면)
상식 : 사우나 쑥내가 아직까지 진동이야.
박과장 : (빙글~ 웃으며) 아~ 나 참. 상식이형 그 개코는 죽지도 않았네.
상식 : (차갑게 굳어지는 얼굴) 박과장. 사적인 자리 아니면 호칭 제대로 붙여.
박과장 : (멈칫) 아~ 나.. 알았어요. 안 보는 새 엄청 권위적이 됐어. 옛날엔 안 그랬는데.
동식 : (점점 구겨지는 얼굴)
상식 : 업무시간에 사우나 가는 것도 이제 그만 둬. 엄연한 근무태만이야.
박과장 : (번득이듯 노려보는) 예예~ 잘못 했습니다. 일, 해야죠. 일.
(책상 위 그래가 줬던 기획안들을 픽 잡아 죽죽 넘기다가) 할랄? (상식 보고) 이거, 할랄 유통 사업, 해 볼까요?
상식 : (박과장 보다가) 할 만한 아이템이야?
박과장 : 뭐~ 당장 큰 몫은 아니지만 중동 쪽 환경 파악하는 데는 딱이거든요.
영업3팀 입장에선 스터디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상식 : 좋아 그럼,
박과장(o.l) : 근데요, 중동아이템은 혼자 못합니다.
상식 : 김대리,
박과장(o.l) : 장그래면 되요. 장그래 주세요.
그래 : ! (본다)
동식 : 박과장님, 장그래씨는 아직,
박과장(o.l) : 안돼요? (그래 보며) 왜? 케파가 안돼? (상식 보며) 뭐, 대단한 서폿도 필요 없어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할 줄 아는 일 시키지 뭐. (그래 보며) 고등학교는 졸업했잖아? 아! 못했나?
상식 : 박과장,
그래 : (상식에게) 과장님, 허락하시면 제가 박과장님 서포트하겠습니다.
동식 : 장그래씨, 무슨 존칭이 그래?
박과장 : (확 보면)
동식 : 오 과장님과 박 과장님, 누가 더 위야? 존칭을 겹으로 쓰는 게 어딨어?
박과장 : 야, 김동식. 넌 뭘 그런 걸 따져? 괜한 시비 만들지마.
동식 : 넌이라뇨? 넌이 뭡니까? 박과장님!
박과장 : (인상)뭐?!
상식 : 그만.
박과장 : 야~ 뭐, 팀 위계가 개판이야. 대리가 과장한테 개기고.
김부장(off) : 어~? 분위기 좋은데? 벌써 친해졌어?
보면 통로 저 쪽에서 웃으며 다가오고 있는 김부장.
박과장 : (활짝 웃으며) 아!! 부장님! 오셨습니까? (얼른 나간다)
29. 영업3팀 앞 통로 / 낮
김부장 : (나오는 박과장 보며) 어때? 3팀?
박과장 : 환상의 팀웤이 기대되던데요?
김부장 : 3팀 사업 중요해. 힘 좀 써줘. 내가 각별히 신경 써서 배치한 거니까.
박과장 : 잘 알고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요즘 공은 어디로 치러 가시나요?
김부장 : 지난번에 잘못 쳐서 손목이 안 좋아 쉬고 있어. 아무튼 기대가 커. (영업 3팀 안으로 대고) 수고들해.
3팀 일동 : (인사) 안녕히 가십시오.
박과장 : (허리 90도로 숙이는 박과장) 살펴가십시오.
김부장, 멀어지자 스윽 허리 펴는 박과장.
박과장 : (이마에 핏대. 혼잣말) 이렇게 엿 먹이시는 거 아니시지 말입니다.
구겨진 얼굴로 그런 박과장을 쳐다 보는 상식, 동식, 그래.
30. 술집(오봉자 싸롱) / 밤
착잡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는 상식, 그래, 동식.
상식 : 원래 일 잘하던 사람이었어. 중동 전문가라 우리 팀에 도움이 되는 것도 확실하고.
동식 : 알죠. 자원 2팀에 계실 때 요르단 일억 이천만 불 수출계약 달성은 거의 전설이었잖아요.
자원 2팀 단독으로 이룬 최대 성관데. (그래 보며) 그때 박과장 활약이 대단했었지.
그래 : (약간 놀라 보면) 그랬어요?
동식 : 그땐 대리였을 땐데 현지 업체 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했거든. 자타가 공인하는 계약의 일등공신이었지.
상식 : (술잔 들고 혼잣말처럼) 그때부터였지. 아슬아슬해 보인 게.
동식/그래 : (상식을 본다)
상식 : (술 탁! 마시고) 안고 가자. 영업3팀에 온 이상 우리 사람이야. 일은 놓쳐도 사람은 안 놓치는 게 우리 팀훈이잖아.
동식 : (심드렁하게) 과장님 개훈이겠죠.
상식 : (동식에게) 어감 참 난센스하다. (그래에게) 내일부터 할랄 붙어서 서포트 잘 해줘라. 힘들겠지만 참고.
너 그거 전매특허잖아. 참는 거.
그래 : (당황) 네?
동식 : 전 그것도 맘에 안 들어요. 장그래씨. 사람이 왜 그래? 업무적으로 모자라는 걸 지적당하는 건 당연한 건데,
인신공격은 다른 문제라고. 싫으면 싫다는 말을 확실하게 해. 자존심도 없냐는 소리 듣기 딱 좋잖아.
그래 : ....
그래를 흘깃 보고 술을 마시는 상식.
31. 그래의 집 거리 일각 / 밤
약간의 술기운을 안고 걸어오는 그래.
상식(e) : (그래에게) 내일부터 할랄 붙어서 서포트 잘 해줘라. 힘들겠지만 참고. 너 그거 전매특허잖아. 참는 거.
32. 그래의 집 마당 / 밤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그래. 손에는 캔 맥주 하나 더. 한 모금 마시고..
동식(e) : 전 그것도 맘에 안 들어요. 장그래씨. 사람이 왜 그래? 업무적으로 모자라는 걸 지적당하는 건 당연한 건데,
인신공격은 다른 문제라고. 싫으면 싫다는 말을 확실하게 해. 자존심도 없냐는 소리 듣기 딱 좋잖아.
다시 한 모금 마시는 그래. 방을 돌아 본다.
33. 그래의 방 / 밤
바둑 기보들을 모아 둔 상자를 여는 그래. 뒤적 뒤적 찾다가 여러 바둑 고수들의 어록이 메모되어 있는 노트를 꺼낸다.
씁쓸한 얼굴로 넘겨 보는 그래.. 그중 이창호 9단의 말들이 보인다.
해당 글귀를 읽는 그래.
그래(e) :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dis. <인서트// # 4>
박과장 : 고졸도 아니고 검정고시야? 야~ 너 진짜 개천에서 용 났구나.
<인서트// # 9> 쓰레기통 비우는 영이.
<인서트// # 8화에서> 카페에서 헤드헌터와 얘기하고 있는 백기.
그래(e) : 순류順流에 역류逆流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dis. <인서트// #28>
그래 : (상식에게) 과장님, 허락하시면 제가 박과장님 서포트하겠습니다.
그래(e) :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대로 노트 속 어록을 보고 서 있는 그래..
34. 원인터 외경 / 아침
35. 로비 엘리베이터 안 + 15층 엘레베이터 밖 / 아침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래. 잠시 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백기의 소리. “잠시만요” 하며 밖에서 열림을 누른 듯 다시 열린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타던 백기, 그래를 보고 멈칫한다.
그래 : 안녕하세요.
백기 : 안녕하세요. (닫힘 버튼을 누르고 선다)
둘 사이 말없이 약간의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백기를 보는 그래.
<8화 #73씬> 커피숍 안에서 헤드헌터와 얘기 나누고 있는 백기와 그런 백기를 보고 있는 강대리의 굳은 얼굴.
상식(off) : (중얼거리듯) 저 친구, 성급하네..
그래 : 저.. 장백기씨.
백기 : (본다) 네?
그래 : (쉽게 묻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백기 : 왜요?
그래 : 아, 아니.. 저.. 백기씨 자원2팀 인턴이었죠?
백기 : 네.
그래 : 박과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같은 자원 본부분이었으니까 좀 알지,
백기(o.l) : (딱딱하게) 지금 저더러 상사 뒷담화를 하라는 건가요? 장그래씨?
그래 : (당황) 아,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백기 : .....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먼저 내리는 백기. 멈춰서 돌아보고.
백기 : 장그래씨한테는 좀, 벅찬 분 일거예요. 장그래씨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래 : (보는)...
백기 : 하는 말 일일이 귀담아 듣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할 거예요. 무시하세요.
가는 백기를 보는 그래.
36. 영업3팀 / 낮
여전히 태만한 자세로 있는 박과장.
그래, 출력 되고 있는 프린트물들 모아 스탬플러로 찝은 후 박과장에게 갖다 준다.
그래 : 할랄 고기 관련 유통업체 리스트입니다.
박과장 : (흘깃) 어. 벌써? (비웃듯 놀리듯) 야~ 정말 듣던 대로 능력 있는 미달신입이네?
동식/상식 : (반쯤 돌아본다) / (본다)
박과장 : 어떻게 찾았어?
그래 : 기존에 할랄 관련 사업 진행한 팀이 있는지 찾아서 업체 연락처 받았구요.
아랍관련 업체들도 연락해서 할랄 관련 사업 가능한지 알아 봤습니다.
박과장 : (피식) 제법인데? 아! 근데 말야. 물론 내가 쉬운 서폿만 시키겠지만 그래도 기본은 할 줄 알아야 하잖아.
그래 : 네..?
박과장 : 기본 말야, 기본. 예를 들어.. 무역용어 같은 건 다 알아야지.
너 에이에스(a/s)가 뭔 줄은 알아? 냉장고 수선해주는 그런 게 에이에스가 아냐.
상식/동식 :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다시 일에 열중한다)
그래 : 엣 사이트 (At Sight), 어음이 제시되자마자 인수하거나 지급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박과장 : 오~ 제법인데? 볼륨 레이트(Volume Rate)는?
그래 : (거침없이) 대량화물의 할인의 일종으로서 컨테이너 수가 증가함에 따라
운임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싼 운임율을 합니다.
박과장 : (조금 얼굴이 굳는다) 녹다운(Knock Down)?
그래 : 기계를 부품 단위로 쪼개 수출하여 현지에서 조립·판매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완성품의 관세가 부품보다 높고 인건비가 싼 국가의 경우 비용이 상당히 절감되어 수입업자에 유리합니다.
상식 : (일하며 피식 웃는다)
박과장 : (약간 일그러진 얼굴로) 더블류 엠(W/M)?
그래 : 운임계산 기준으로서 중량을 사용하느냐 용적을 사용하느냐는 선박회사에 선택권이 있다는 뜻입니다.
박과장 : (말없이 그래를 노려보는 듯 아닌 듯한 시선으로 본다)
그래 : (표정의 변화 없이 시선 받으며 서 있다)
박과장 : (갑자기 영어로) 헬로우 미스터 장? 우리는 할랄 식재료가 비할랄 제품과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된 것으로 간주 합니다.
포장 과정은 이해가 되는데 보관 과정은 이해가 안 되는 군요.
그 쪽에서 저희에게 제시할 수 있는 보관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그래 : (멈칫, 당황)
상식 : (본다)
박과장 : 바이어 쪽에서 이런 질문이 오면 어떻게 할 거야? (보며) 못 알아듣겠어? (억지로 비웃듯) 아~ 깝깝~하네.
상사에선 영어야 말로 기본 중에 기본인데, (상식에게) 얘 답 없네요. (웃으며 일어나 나간다)
그래 : ....
상식 :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유치하긴.
동식 : (웃는)
37. 통로 + 15층 문 앞 안 + 밖 / 낮
웃는 얼굴이 점점 구겨지면서 잔뜩 화가 난 듯 걸어가는 박과장 사무실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본다.
일하고 있는 그래가 보인다.
박과장 : (내뱉는) 건방진 자식...
들어오려던 백기가 그런 박과장과 그래를 본다.
박과장, 열 받은 얼굴로 나가려고 확 돌아서다가 백기와 마주친다. 인사하는 백기에게 ‘응’ 하며 받는 둥 마는 둥 확 가는 박과장.
쳐다보는 백기.
38. 철강팀 / 낮
백기, 들어오는데 통화 중인 다인.
다인 : 네, 알겠습니다. 강대리님. 네. (전화 끊고) 장백기씨, 강대리님 오늘 못 오신답니다. 일정이 이틀 늘었다고 하네요.
백기 : (자리에 앉으며) 알겠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켜는데)
다급히 오는 유대리. 백기, 인사하면.
유대리 : 어, 강대리님 오늘 오지? 언제 들어 온대?
백기 : 오늘 못 오신다는데요.
유대리 : (난감) 어? 못 와? 아..
백기 : 무슨 일이신데요..?
유대리 : EPC TF 건 예산안 변경된 거, 오늘 재무팀에서 추가결재 해야 된다고 각 팀별로 제출하래.
철강팀 것도 준비해야 할 텐데..
백기 : (딱히 할 말이 없어 본다)...
유대리 : 장백기씨가 진행 할 수 있나? 별 거 아닌데.
백기 : (살짝 놀란다) 네?
유대리 : 전체 보고서는 강대리가 다하고 갔으니까, 그거 결재문서에 맞게 한 다섯 장 정도로 요약하고,
변경 예산안이랑 타임테이블 줄여서 넣으면 돼.
백기 : (좀 머뭇거리고)
유대리 : 어? 왜? 못하겠어? 인턴 때 비슷한 업무 서폿도 했잖아..
백기 : (표정이 굳는다) 강대리님이 좋아하시지 않을 겁니다.
유대리 : 지금 강대리랑 통화해 볼게. (급히 간다)
백기, 그대로 서 있는다.
다인, 그런 백기를 보는데... 천천히 걸어 나가는 백기.
39. 탕비실 / 낮
긴장한 얼굴로 물을 마시는 백기. 바깥쪽을 돌아본다.
40. 철강팀 + 포항 공단 일각 / 낮
조금 긴장해서 굳은 얼굴로 들어오는 백기.
다인 : 커피 한잔 드릴까요?
백기 : (쳐다보지도 않고) 됐습니다.
다인 : ... (자리에 앉는다)
백기, 자리에 앉아 강대리 책상 위 EPC껀 파일홀더를 쳐다본다.
유대리(e) : 지금 강대리랑 통화해 볼께.
약간 긴장한 얼굴로 강대리 책상의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 백기.
잠시 후.. 백기 책상의 전화벨이 울린다. 확 쳐다보는 백기. 안 받고 보고만 있는데..
다인, 눈치 보면서 당겨 받으려고 한다.
백기 : 그냥 둬요. 제가 받을게요. (한번 더 울리는 걸 보다가 받는다. 정돈된 목소리로) 네, 원인터 철강팀 장백기입니다.
강대리(e) : 장백기씨, 난데요.
백기 : (순간 긴장)
강대리 : 자원2팀 유대리한테 얘기 들었는데.
백기 : .....
강대리 : (잠시 침묵하다가) 처리할 수 있겠어요?
백기 : .....
강대리 : .....
백기 : 알겠습니다.
강대리 : 그래요. 회사 그만둔다고 아무렇게나 설렁설렁 하진 않겠죠.
백기 : !!! (당황)
강대리 : 부탁해요. (끊는다)
백기, 전화를 끊는다. 강대리의 자리로 가서 파일 홀더를 쳐다보다가 들고 자리로 온다. 파일 홀더를 연다.
41. 몽타쥬 / 낮
- 서류들을 펴 놓고 컴퓨터 작업하는 백기
- 캐비닛 열어서 다른 서류들 꺼내고
- 다인한테 뭘 달라고 해서 프린트 해서 주는 다인
- 다시 또닥또닥 키보드 치면서 일하는 백기
- 드디어 완성된 결재 문서, 첫 화면에 <미얀마 EPC TF팀 예산안 수정> 문서 타이틀이 보인다.
왼편 결재 선택 창에서 재무팀 차장, 재무팀 부장, 클릭해서 넣는 백기.
오른편 상단 결재 창에 재무팀 이철진 차장, 재무팀 김선주 부장하고 뜬다.
백기, 결재 요청 버튼을 누르면, 결재를 요청합니다. 하는 메시지가 뜬다.
42. 영업3팀 / 낮
프린트 물과 책상 위 이런 저런 서류들을 모아서 탁탁 정리해서 박과장을 갖다 주는 그래.
손가락으로 책상 톡톡 치면서 턱 받치고 보고 있다.
그래 : 과장님. 할랄 고기 도축방법 및 종류별, 국가별 인증방법과 절차 조사 마쳤습니다.
박과장 : 어. (틱, 성의 없이 받는다)
그래 : (가려는데)
박과장 : 야, 어깨 좀 주물러봐. 아파 죽겠네.
상식/동식 : (본다)
박과장 : (시선 아랑곳 안하고 목을 돌리면서) 아, 뻐근해. 뭐해?
그래 : (가만히 있는)
박과장 : 못해?
그래 : 아닙니다. (박과장의 어깨를 주무른다)
박과장 : 어후~ 시원해. 어후~ 너 지압 배웠어? 손가락에 기가 팍 들어갔는데? 너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들진 않겠다.
오과장님, 얘 진짜 잘하는데요?
상식 : (본다.. 다시 일하면서) 적당히 했으면 그만하지. 장그래씨 할 일도 많을 텐데.
박과장 : 아~ 나. 이게 얼마나 걸린다고. 야, 됐어. 다 풀렸다.
그래,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자리에 발을 책상 위로 턱! 올리는 박과장.
박과장 : 발도 좀 주물러.
일동 : !
박과장 : (실실 웃으며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그래를 본다) 뭐해?
그래 : 네. (박과장의 발을 잡으려는데)
박과장 핸드폰 온다.
박과장 : 아, 잠깐만. (몸 바로 하고 활짝 웃으며 받으며) 아~ 김사장님.
(일어나 나가며) 아~ 전 잘 있죠. 예예~ 일은 잘 되시죠? 아~ 예. 저 팀 옮겼습니다.
통화하며 멀어지는 박과장을 보는 상식, 동식, 그래.
동식 : 후... (그래를 본다) 장그래씨. 나 잠깐 볼까..?
그래 : (본다)
43. 옥상 / 낮
담배를 무는 동식, 그 앞에 그래.
동식 : 거, 뭐야.. 그...거 이름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 : 네?
동식 : 이름이 그래라서 그래 그래 예스 예스 네네 하는 거냐구.
그래 : (본다)
동식 : 아니면 아니다, 싫으면 싫다, 못하겠으면 못한다, 말해. 말해도 돼. 비단 박과장님 일 때문에만 이러는 거 아냐.
그래 : (본다)
동식 : 보통 신입으로 입사하게 되면, 회사의 현실에 좌절하든 오버하든 어떤 식으로든 자아가 돌출되기 마련이거든.
근데 당신은 그게 없어.
그래 : ...
동식 : 뭐든 우리 뜻을 기꺼이 따르고 한 마디 불평이 없지.
그래 : 모두들 잘해 주시니까,
동식(o.l) : 당신은 정말 모든 걸 수용하겠단 자세로 회사에 들어 온 것 같단 말이야. 이건 말하자면.. 출소한 장기수 같달까?
그래 : !!
동식 :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래 : (시선을 떨군 채 그냥...)
동식 : 좀 심했나? 미안해. 그런데 말야, 장그래씨는 정말 그래. 솔직히 장그래씨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
내가 아는 건 고졸 검정고시에 그 나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밖에.
대체 어떤 과거가 있으면 이렇게 희생적이고 협조적일 수 있지?
그래 : ....
동식 : 가까운 시일 내에 <장그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좋겠어.
그래 : ....
44. 섬유팀 / 낮
초췌한 모습의 석율, 일하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 차리려고 뺨을 치는데 문과장 들어오다 보고.
문과장 : 그러지 말고 잠깐 눈 붙여. 밤샘 야근에 조찬 준비에 한 숨도 못 잤지?
석율 : 아, 네. 괜찮습니다. 과장님.
문과장 : 원래 임원조찬은 대리급이 수행인데 고생했어. 성대리도 힘들겠네. 야근하고 출장까지.
석율 : 야...근이요?
문과장 : (중얼거리듯) 안 가도 되는 출장은 뭐 하러 굳이 자원해서 가. 고단하게.
석율 : (깜짝) 안가도 되는 출장이요?
문과장 : 캐나다 폴리에스테르 수출 건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성대리 사업이라 너는 잘 모르지?
석율 : 아, 그거라면 제가,
성되리(o.l) : (불쑥 들어오며) 과장니~임!! 다녀왔습니다. 석율, 별 일 없었지?
석율 : (좋지 않은 얼굴로 보며 인사하는데)
문과장 : 고생했다. 폴리에스테르 건은 정리 된 거 있어? 지금 보고 들어가게.
성대리 : 예!
성대리, 자리에 앉아 사내인트라넷 메일함 열어보고는 짜증이 스친다. 석율에게 사내 메신저로 다라락 메시지를 친다.
성대리(E) : 석율씨, 폴리에스테르 건 아이템 뽑은 거 메일 아직 안 보냈네?
일을 했으면 나한테도 참조로 해서 자료를 줘야지. 잊었어? 잘 하더니.
석율 : .... (굳은 얼굴로 해당 프린트 파일을 들고 가서 건넨다) 여깄습니다.
성대리 : (받아서 문과장에게 갖고 간다) 어제 새벽까지 제가 전화 다 해보고 그쪽 요구대로 리스트 수정했습니다.
이익도 3%이상 장담합니다.
석율 : (어이없이 보는)
과장 : (파일 넘겨보며) 중국에서 수입해서 팔면 괜찮겠어. (파일 탁 덮고) 빨리 빨리 진행하자고. (들고 나간다)
성대리 : 예, 과장님! (신나게 석율에게 와서) 들었지? 빨리 진행하자.
석율 : 대리님.. 잠깐만 할 얘기가 있는데요.
성대리 : 어? 무슨 얘기?
45. 옥상정원 / 낮
성대리 : 뭐? 못해?
석율 : 네. 너무 바빠서 못하겠습니다. 그냥 대리님이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성대리 : (어이없어서 보면) 뭐?!
석율 : 대리님 일 아닙니까? 폴리에스테르 수출 껀도, 오늘 아침 조찬 모임도.
성대리 : 야, 한석율.
석율 : 저 지금 과장님이 던져준 다음 분기 일로 진짜 바쁜데 대리님 일까지, 못 하겠습니다.
성대리 : 뭐..뭐? 내 일을 못 해? 야, 너 진짜 말 이상하게 한다. 그럼 지금 내가 내 일을 너한테 떠 넘겼다는 거야?
석율 : 그런 면도 없잖은 거 같고요.
성대리 : (버럭) 야!! 아휴~ 요새 신세대 신입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넌 선배를 그 정도도 못 도와줘?
그리구 내가 너 일 가르쳐 준 거지, 내 일을 떠넘긴 거야? 말 똑바로 해!!
일그러지는 석율의 얼굴 위로.
다인(e) : (눈치 보는 소리로) 장백기씨, 재무팀에 올린 보고서 회신이 왔는데요.
46. 철강팀 / 낮
일그러진 얼굴로, 보고서 <미얀마 EPC 사업> 제목이 있는 첫 번째 장 오른쪽 상단 결재란에
재무팀 보류 마크를 보고 있는 백기... <보류>를 클릭한다. 보류 이유에 아무 내용도 없다.
완전히 굳은 얼굴로 유대리에게 전화를 거는 백기.
다인, 눈치 보다가 슬쩍 나간다.
47. 소회의실 / 낮 (* 특별히 소회의실 번호가 붙지 않으면 3곳 중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회의준비 셋팅 중인 유대리, 백기와 통화 중이다.
유대리 : 뭐? 재무팀에서 보류시킨 이유가 없어? (퍼뜩 떠오르는) 아하.... (중얼거리듯) 김선주 부장님 또....!
일단 보류 이유가 없다는 건 김선주 부장님의 독특한 의사전달 방식인데,
48. 철강팀 / 낮
백기, 전화기 든 채 집중해서 듣고 있다.
유대리(e) : 이유를 네가 직접 알아내라는 뜻이야. 기본도 안됐거나, 정말 잘 돼있는데 중요한 게 빠졌거나 그런 경우가 많아.
백기 : (얼굴 확 굳어 버리는) 네...
유대리(e) : 왜 알지? 우리 팀 안영이도 지난 번에.. 니가 기본이 안됐을 리는 없고, 뭘 빠뜨렸는지 다시 봐.
백기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끊고, 자기가 작업한 파일을 다시 본다. 그 위로.
유대리(e) : 기본도 안됐거나, 정말 잘 돼있는데 중요한 게 빠졌거나.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백기!
백기 : (내 뱉듯이) 빌어먹을 기본!
백기, 강대리의 책상 위 결재 서류 파일박스를 확 돌아 본다. 가서 아무 거나 하나를 꺼내 대조해 보다가 치밀어 오른다!
백기 :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49. 자원팀 + 15층 입구 / 낮
영이, 화이트보드에 세정제를 뿌려가며 닦고 있다.
하대리, 정과장, 유대리는 책상에 앉아 바삐 일하고 있다.
하대리, 급히 서류 들고 일어나다가 그런 영이를 본다. 멈칫, 스트레스로 후~
하대리 : 야, 안영이.
영이 : 네.
하대리 : (조금 노려보듯 보다) 여기 내 책상도 좀 닦아. 키보드 틈새 틈새 먼지도.
영이 : 네. (가서 닦는다)
하대리, 기가 막힌 듯 본다.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정과장 소리.
정과장 : 어이, 안영이. 내 자리도 좀 같이 닦아 줘.
유대리 : 나도~
하대리 : (나가려다 말고 본다.)
영이 : (걸레 들고 유대리 쪽으로 간다)
하대리 : 허...! (기가 막히다. 휙 나간다)
정과장 : (유대리에게) 서류 아직이야? 서둘러. 회의시간 다됐다고.
유대리 : 됐습니다!
유대리, 서류 챙겨 들고 일어나다가 커피 가득한 머그잔을 쳐서 떨어뜨린다. 퍽! 사방으로 커피를 튀기며 깨지는 커피잔.
놀라는 일동. 영이의 블라우스와 하의에 무참하게 튄 커피자국들.
유대리 : (바닥만 보며) 아, 진짜.. 안영이 빨리 좀 치워줘.
정과장 : (서둘며) 서류 괜찮아? (유대리 손에 들린 서류 보고) 됐네. 조심 좀 하지. 빨리 가자. (영이 보며) 안영이. 치워.
후다닥 나가는 두 사람. 영이, 쭈그리고 앉아 깨진 잔을 골라 쓰레기통에 담는다.
그래, 어두운 얼굴로 15층 입구를 막 들어오다가 자원팀에서 영이가 그러고 있는 걸 보고 멈춘다.
분노를 삭이며 들어오던 석율도 그래가 서 있는 너머로 영이를 본다.
휴지로 바닥을 닦던 영이,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나간다.
50. 자원팀 앞 통로 / 낮
나오는 영이, 그래, 석율과 마주친다.
그래 : 있어요. 제가 갖고 올게요.
영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화장실 통로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는 그래.
영이, 머쓱하게 석율을 보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석율.
51. 자원팀 안 / 낮
대걸레질을 하고 있는 그래. 옆에서 깨진 컵을 수습하고 있는 영이와 석율.
다가 와서 통로 파티션 너머에 서는 백기. 이들을 본다.
석율 : 우리 기수 왜 이러냐? (그래 행색 보며) 아무나 차대는 축구공에 (영이 보며) 구박받는 콩쥐에 (백기보고) 푹 절은 배추에
(자신 내려다보며) 호구까지... 어이구야~
영이 : (묵묵히 일만 한다)
석율 : 아씨! 안영이. 들이 받어! 내가 뭐라고 했어? 강하게 나가라 그랬지!
그래 : (화분을 들어 조금 옮기고 닦으며 자기도 모르게) 위기십계에 세고취화라고 있거든요.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멈칫한다... 다시 닦으며) 그러니까,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게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되는 거거든요.
각각의 표정으로 그래를 보는 영이와 석율과 백기.
그래. 화분을 제자리에 옮겨 놓고 대걸레 들고 나간다.
여전히 한 곳에 서 있는 백기의 곁을 그래가 스쳐 지나간다. 백기, 그래를 돌아본다.
석율 : 뭐, 뭐라는 거야?
영이 : ......
백기 : ......
백기 핸드폰 진동 울린다. 헤드헌터 이지현의 전화다. 받는다.
백기 : 여보세요.
헤드헌터(e) : 써치 앤 브레인 이지현입니다. 내일 면접 일정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백기 : (다시 철강팀 쪽으로 걸어가며) 아.. 내일이죠. 네. 가능합니다. 월차 낼 겁니다.
52. 철강팀 / 낮 (*맨 먼쓰 :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월 인원을 나타내는 숫자)
들어오는 백기. 책상 위에 보류된 재무팀 결재 파일 프린트 물과 강대리의 결재 서류를 펴서 다시 본다.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노려보듯 비교해서 보지만 도통 모르겠다.
그때 탕비실에서 나오던 상식, 그런 백기를 보다가 다가온다.
상식 : 재무팀에서 빠꾸 먹었다매?
백기 : (깜짝 놀라 보고 당황해서 인사하고) 네...
상식 : 빠꾸 이유도 못 받았대매?
백기 : (당황한)
상식 : 재무팀 다녀오는 길이야. (백기가 들고 있는 예산안 파일을 휙 낚아 채 보며) 이거야?
백기 : (당황한) 아, 네...
상식 : (슥, 슥 넘겨 본다) 일정은 이렇게 말로 풀어 놓으면 안 돼. 결재 틀에 맞게 표로 만들고,
맨 먼쓰(Man Month)는 니가 계산해서 넣어야지. 빠지니까 가격만 있고 인력이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잖아. 계산이 필수라고.
(보다가) 하하..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양식은 참 신선하네. (백기에게 파일을 휙 건네준다)
파일을 받는 백기의 흔들리는 눈빛...
강대리(e) : 이 듣도 보도 못한 양식은 뭡니까? 이 줄 간격하며, 원인터 통일 양식 안 배웠어요?
누가 마음대로 그렇게 일 처리하래요.
백기 : ......
상식 : 수정해서 빨리 제출해. 재무팀 자꾸 쪼더라. 하회탈 마녀가 들들 볶는 모양이야.
(나가면서 중얼중얼) 장그래도 저렇게는 안하는데.
백기 : ......
53. 영업 3팀 / 밤
그래, 문서를 정리하며 일하고 있는데 동식 들어온다.
동식 : (그래를 흘깃 보고, 상식에게) 과장님,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상식 : (보고) 들어가.
동식 : (가방 들고 나가는데)
상식 : 장그래, 너도 퇴근해.
그래 : 아, 네 과장님.
그래, 가방을 챙기면서 가고 있는 동식을 본다.
54. 원 인터 밖 / 밤
그래, 밖으로 나오는데 가방 든 영이가 부른다.
영이 : 장그래씨.
그래 : (돌아보고) 아, 영이씨.
영이 : 퇴근?
그래 : 네.
서로 꼬질꼬질한 옷을 본다. 영이, 웃으며.
영이 : 오늘 참 열심히 살았네요.
그래 : 그렇네요.
영이 : 내일 또 보도록 해요.
그래 : (웃으며) 네.
박과장(off) : 어이, 계약직.
그래, 보면 밖에서 들어 온 박과장이 슬렁슬렁 다가 온다. 영이, 목례하지만 박과장 무반응.
박과장 : 퇴근?
그래 : 네.
박과장 : (기가 찬 듯 웃으며) 세상 좋아졌네. 칼 퇴근.
영이 : 가 보겠습니다. (인사하고 간다)
박과장 : (영이를 흘깃 보며) 쟨 아마 시집가면 제 2의 선차장 되거나 시집 못 가면 김선주 부장처럼 될 꺼야.
(낄낄 웃다가 그래를 흘깃 보고) 내일 봐. (슬렁슬렁 들어 간다)
그래 : (인사한다)
박과장. 비웃듯 그래 쪽을 돌아 봤다가 피식 웃으며 들어간다.
가는 박과장의 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던 그래..
/동식 : 당신은 정말 모든 걸 수용하겠단 자세로 회사에 들어온 것 같단 말이야. 이건 말하자면.. 출소한 장기수 같달까?
/동식 :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는..
/동식 : 대체 어떤 과거가 있으면 이렇게 희생적이고 협조적일 수 있지?
그래(e) : 출소한 장기수.. 그게 뭐 어쨌단 겁니까.... 지금 이렇게 전부 보여지고 있는데, 과거가 왜 필요하다는 겁니까....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신호가 가고 딸깍 받으면.
동식(e) : 어, 왜?
그래 : 어디까지 가셨어요?
동식(e) : 지하철역.
그래 : 잠깐, 거기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동식(e) : 어? 왜?
그래 :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55. 몽타쥬 / 밤
#-1. 골목. 어색한 모습으로 저벅저벅 가는 두 사람.
#-2. 그래 집 앞.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사람. 약간 어색한 얼굴로 그래의 집을 보는 동식.
문을 열고 먼저 들어서는 그래. 뒤따라 들어 가는 동식.
56. 마당 / 밤
찜질방 빨래 옷을 잔뜩 널고 있는 그래모. 빨래 너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와 동식이 들어오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모 : 일찍 왔네에~ 씻고 밥 먹어라. 고등어조림 해 놨다. 양념을 잘못해서 꼬리 쪽은 비리더라.
그래 : (동식을 보고 빙긋 웃었다가) 맨날 비려.
그래모 : 그러니까 오늘은 꼬리 쪽을 누가 먹을란가 꼭 정하고 들어가자고. 엄마라고 비린 것도 막 주워 먹을 수 있을 거란
고정관념은 버리고. 가위 바위 보 하자. (손을 털며 돌아서다가 동식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응?
그래 : 저희 팀 대리님이세요.
동식 :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그래모 : (환하게 웃으며 손을 덥썩 잡고) 아이구. 상사분이 여기까지. 저녁은요?
동식 : 아닙니다. 곧 갈 껍니다. 장그래씨가 뭘 보여줄 게 있다해서요.
그래모 : (그래 보며) 응? 뭘?
동식 : (넉살 좋게) 글쎄요? 감춰 둔 색시 같은데요?
그래모 : (농담 안 받고 꿈벅꿈벅 동식을 본다)
동식 : 어... (당황하는데)
그래모 : (갑자기 들고 있던 빨래로 그래를 때리면서) 너 이놈의 자슥!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니?! 응?
뭔 짓을 하고 돌아 다니기에 그런 추잡한 소문이나 흘리고 다녀?!
그래 : (태연하게 한숨 쉬고 있고)
동식 : (당황해서 말리며) 아..아.. 아녜요! 어머니! 농담이에요. 농담입니다.
그래모 : (동식을 확 보며) 농담?
동식 : (쫄아서) 네. 농담이요.
그래모 : (보다가 멀쩡한 얼굴로) 알아요.
동식 : (당황하는) 네?
그래모 : 나도 농담이야. 농담이 이 정도 수준은 돼야지. 상사 대리님껀 아주 못 쓰겠더만. 재미도 없고 감동은 더 없고.
동식 : (멍~)
그래 : 들어 가요. 대리님. (들어 간다)
동식 : (멍~)
57. 그래의 방 / 밤
문이 열리며 물과 잔이 든 쟁반을 들고 그래모가 웃으며 들어 온다.
밥을 다 먹은 그래와 동식.
그래모 : 어떻게 입맛에 맞나 모르겠네.
동식 :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래모 : 다행이네.
상을 보는데 고등어 조림 꼬리 쪽은 남았다. 그대로 빤~히 남은 꼬리를 보고 있는 그래모.
동식, 그래모의 시선을 따라 보며 당황하는데.
동식 : 아.. 그게
그래 : (심드렁하게) 진짜 비려서 못 먹겠어.
그래모 : .... 그래? 그럼 뭐 엄마가 먹어야지.. (동식을 본다)
동식 : 아.. 아니,
그래모 : 난 또 손님 취향은 좀 다른가 싶어 내놨더니.
동식 : 아.. 아니,
그래 : (상을 들고 일어나 나간다)
그래모 : (다시 공손하게) 그럼 편히 있다 가세요. (나간다)
동식 : (엉거주춤 일어나고)
그래 다시 들어오면 멍~하게 서 있는 동식.
그래 : 우리 엄마식 유머예요. 당신은 재밌다고 저러시는데, 하나도 안 웃겨요.
동식 : 어..허허. (어색하게 웃으며 방을 휙 돌아 보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방이 왜 이렇게 썰렁해?
그래 : 다... 버렸으니까요. 출소한 장기수한테 옥중의 물품은 쓸모없으니까요.
동식 : 그건 내가 좀 무리한 표현이었어. 미안해.
한쪽 구석에 있는 바둑판과 바둑알.
동식 : 웬 바둑이야?
그래 : .... 바둑을 뒀었습니다.
동식 : (의외라는 얼굴로 본다) 바..둑..?
그래 : (옅게 웃으며) 네.. 어릴 때 장난삼아 삼촌이 가르쳐 줬는데 재능이 있어 보였나봐요. 곧 본격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됐죠.
<# 57-1. f.c// >
- 바둑을 두는 7살 그래, 그대로 바둑 두는 청소년 그래로 바뀐다.
- 도장에서의 청소년 그래. 도장 친구1과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청소년 그래.
- 기보를 보며 연구하는 청소년 그래.
그래(e) : 본격적인 세계란... 바둑만을 위한 세계를 말합니다. 연구생, 바둑도장 동기가 친구의 전부고,
기보를 보며 하루 열 시간 넘게 바둑만을 두는 세계. 10대 때의 제 세계입니다.
그래 : 프로기사를 꿈꿨었죠. 물론 실패해서 대리님 앞에 있지만요.
동식 : (본다)
그래 :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걸 버렸지만, 유일하게 버리지 않은 게 있어요.
옷장에서 기보집 더미를 꺼내놓는 그래. 보는 동식.
그래 : 연구생이 되고, 제가 뒀던 모든 바둑들의 기보입니다. 판마다 제가 왜 이겼는지 졌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적은 겁니다.
그러면 사범님께서 (보여주며) 이렇게 첨언을 해주시죠.
11살 때부터 이걸 해왔습니다. 이걸 보면 당시의 모든 게 떠오릅니다.
동식 : 대단하군.. 대단해. (글씨가 빼곡한 A4 용지 묶음을 보고) 이건 뭐지?
그래 : 이 회사 들어와서 둔 대국들입니다.
동식 : 대국?
그래 : 저 혼자서, 하루를 한 판의 바둑으로 보고 둔 일기대국이죠.
동식 : 하~ 절묘한데? (보면서) 근데 왜 하루가 여러 장이야?
그래 : 바둑에 다면기라고 있어요.
그래(e) : 기본적으로 바둑은 1:1인데, 다면기는 바둑의 고수가 여러 명의 대국자와 바둑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은 고수가 다 이기죠.
그래 : 사회에도 다면기가 있더군요. 그런데 사회의 다면기는 좀 다른 것이... 하수도 다면기를 둬야한다는 겁니다.
그래(e) : 김대리님과의 한 판이 있고, 과장님과의 한 판이 있고, 타 부서와의 한 판에, 경쟁상대와도 판을 벌여야 하죠.
그리고 언젠가는 회사 자체와도 한 판을 둬야 할 것입니다.
바둑판과 바둑알을 자기 앞으로 끌어 놓는 그래.
그래, 흑돌을 쥐고 접바둑의 8점을 깔면서 계속 말한다.
그래 : 바둑에서 접바둑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4점 8점을 먼저 두고 시작하죠.
동식 : ...
그래 : 그러나... 사회에선, 하수 즉 신입사원을 상대로 고수가 접바둑을 둡니다. 고수가 이미 4점, 8점,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백돌을 깐 곳에 들어 가는 거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하수인 흑돌의 규칙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죠.
동식 : 흑돌의 규칙?
그래 : 덤을 남겨야 합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 남만큼 해선 이길 수... 자리 잡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신입사원이라는 건,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더 남겨야만 하는 사람 아닙니까?
동식 : .....
58. 주택가 외경 / 밤
멍멍멍멍~ 개 짓는 소리가 동네에 울린다.
59. 동네 일각 골목 / 밤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동식과 그래.
동식 : 우리 회사는 어떤 연으로 들어 온 거야?
그래 : 후원자 분이 계세요. 성원실업이라고.. 중소기업인데 거기 사장님이시거든요. 최전무님과 친분이 있으신가봐요.
동식 : 아... 장그래씨, 전무님 낙하산이었구나. (혼잣말처럼) 아! 그래서 그때 과장님이..
상식(o.l) : 나 가.
동식/그래 : (놀라 보면)
상식 : (버럭) 나가라구! 이 새끼야!!
그래 : 네?
동식 : 아냐. (웃으며) 완전 실세 낙하산인데?
그래 : (웃는) 전무님은 기억도 못하실 거예요. 저도 회사 와서 한 번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없고요.
동식 : 근데 그 후원자 분은 이왕 취직시켜 줄 꺼 좀 빨리 도와주지.
그래 : 도와주셨었죠.
동식 : (본다)
그래 : 검정고시 치르고 바로 그분 회사에 취직시켜 주셨어요.
동식 : 근데 왜 그만 뒀어?
그래 : (힘없이 웃으며) 그땐 바둑 두던 과거를 숨기지 않았어요. 처음엔 호기심 어린 호의, 점점 차차 의구심 어린 시선,
그러다가 불편한 확신으로 이어지더라구요. 바둑을 둬서 융통성이 없다. 바둑만 둬서 고지식하다..
1년 겨우 다니고 군대로 도피했어요.
동식 : 그래서.. 우리한테 과거를 그렇게 숨기는 거였어? 실패자로 보일까봐?
그래 : .....
동식 : ...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어. 나도 지방대 나와서 취직하기 힘들었는데 합격해서 입사해보니까 말야,
성공이 아니고 문을 하나 연 느낌이더라고.
<인서트>
# 59-1. 철강팀/ 깊은 밤 모니터 불빛만 파르스름한 어두운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백기 책상 위 보류된 결재서류를 쳐다본다.
들어서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다시 들여다 보는 백기.
# 59-2. 영이의 집/ 깊은 밤 책상 서랍을 여는 영이, 깊숙한 곳을 뒤적여 옛 회사의 사원증을 꺼내서 보는 영이..
동식(e) :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그래(e) : 그럼 성공은요?
동식(e) :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느냐에 달린 문제 아닌가?
일을 하다보면 깨진 계약인데도 성장한 것 같고 뿌듯한 케이스도 있어. 그건 실패한 걸까?
60. 버스 정류장 앞 혹은 지하철 역 앞 혹은 동네 어귀 일각 (밤)
멈춰 서는 그래, 동식을 보고.
그래 : 졌어도 기분 좋은 바둑이 있어요. 그런 걸까요?
동식 : 잘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까? (악수 내밀며) 내일부터 다시 잘 지내자.
그래 : (보다가 잡으며) 감사합니다.
동식 : 참. 사실 나 트위터 아이디 있어. 근데 쓸 말이 없어서 놔두고 있었어. 그래씨도 할래? 팔로우로 신청해.
그래 : 어느 게시판에서 직장상사와는 하지 말래요. (웃는)
동식 : (웃는) 그럼 갈게. 장그래씨.
그래 : 잘 가세요.
저벅저벅 가는 동식을 쳐다보는 그래.
61. 원인터 외경 / 낮
62. 헬기 옥상 층 계단 / 낮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백기.
63. 헬기 옥상 / 낮
문을 열고 나오는 백기.. 난간 쪽으로 간다. 말없이 멀리 본다...
펼쳐진 빌딩 숲... 생각이 깊은 얼굴로 빌딩 숲을 쳐다 보는 백기.
/강대리를 들이받는 백기.
강대리 : 장백기씨는 우리 팀에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습니까?
백기 : 지금은 배울 때가 아니라 써먹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백기 : 그렇다면 저는 더더욱 잘못된 대우를 받았군요. 말씀하신 그 기본은 학교, 인턴, 신입교육 때 충분히 다졌습니다.
강대리 : (차분하게 본다)
백기 : 강대리님이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면, 왜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강대리 : 잘못된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줬습니다.
백기 : 기회요? 오타체크하고 양식 만들고 실무직 업무가 기횝니까? 제게 기본을 가르친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냥 저를 싫어하시는 거라고 생각 되는데요.
강대리 : 아직도 멀었네요.
백기 : .....
석율(e) : 그냥 들이받아.
백기, 멈칫해서 돌아 보면 열 받아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석율.
석율, 백기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울분을 토해낸다.
석율 : 선배고 뭐고 받아 버리라구!!
백기 : (보는)
64. 철강팀 / 낮
백기, 전화기 앞에 서서 한동안 쳐다만 보고 있다. 결심한 듯 전화기 든다. 신호음이 들린다. 한참 후...
강대리(e) : (차분한 소리) 여보세요.
백기 : ...
강대리(e) : ...장백기씨.
백기 : !!
강대리(e) : ....
백기 : ....
강대리(e) : 예산안 때문에 전화 한 거 아닙니까?
백기 : ...네.
65. 거리 일각 / 낮
서류가방을 들고 걷던 중인 강대리다.
강대리 : 어느 부분입니까.
백기(e) : ... 기본이 안됐다고 보류당했습니다.
강대리 : ... 맨 먼쓰(Man Month) 안 넣었죠?
66. 철강팀 / 낮
백기 : (약간 놀라며) 네.. (보류 서류 보며) 어떻게 넣어야 합니까?
강대리(e) : 전체 프로젝트 4개월에 1800만원이니까. 중급 인력 4명으로 인력수를 분류 하세요.
백기 : 네.
강대리(e) : 한 명당 450만원으로 통상 계산 하거든요. 인력으로 계산하면 돼요.
백기 : (빠르게 적는다)
강대리(e) : 배관 설계도면도 빠뜨렸죠?
백기 : 배관 설계도면....
67. 거리 일각 / 낮
강대리 : 전에 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게 우리 쪽에는 안 맞아서 업체에서 바꿔 보내준 것이 있어요.
그건 다시 반영을 해야 합니다. 분기 계획서 내에 첨부해 둔 게 있을 꺼예요. 신다인씨한테 찾아 달라고 하세요.
백기(e) : 네. 그럼 타임테이블이랑 예산에도 반영을 해야겠군요.
강대리 : 그렇죠. 저번에 말한 것처럼 회사 폼에 맞게 여백 주고, 파일 틀에서 벗어 나지 않게 비고 항목 더 넣어서.
이전에서 몇 퍼센트 변경 된 건지 맞춰 올리면 돼요.
68. 화면분할 / 철강팀 + 거리 일각 / 낮
# -1 철강팀. 메모를 마친 백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 -2 거리 일각. 강대리도 말이 없다... 한참 후 먼저 말을 하는 강대리.
강대리 : 장백기씨.
백기 : 네...
강대리 : 내일, 봅시다.
백기 : ... (쉽게 말을 하지 못하다가) 네.
69. 철강팀 / 낮
전화 끊는 백기. 말없이 그대로 있다가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강대리의 자리를 돌아본다. 빈 강대리 자리가 왠지 든든해 보인다.
백기의 얼굴에 살짝 스치는 미소.
70. 옥상 정원 / 낮
그래, 트위터에서 원인터내셔널 김동식을 찾아낸다. 팔로우하기를 꾹 누른다.
71. 몽타쥬 / 낮
#-1. 영업3팀. 동식, 트위터에 들어온 그래의 팔로우 신청을 본다. 둘 다 팔로잉1, 팔로어1.
그래(e) : 보이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왜 자기를 고백할까.
# -2. 옥상 정원. 멀리 바라보는 그래의 시야에 들어오는 빌딩 숲.
그래(e) : 바둑은 전체가 부분을 결정한다. 19×19의 바둑판이 결정한 세계.
#-3. 철강팀. 키보드 위를 날아가듯 가볍게 타자를 치며 수정하는 백기.
#-4. 자원팀. 정과장, 하대리, 유대리에게 열심히 커피를 나르고 전화를 받는 영이.
#-5. 섬유팀. 부르르~ 쥔 주먹으로 성대리의 뒷통수를 노려 보고 앉아 있는 석율.
그래(e) : 바둑판이 무한하다면, 세상이 무한 캔버스라면, 이기고 지는 게 가능할까.
이 땅이란 전체가 ‘나’라는 부분을 결정한다. 위로 받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나를 보여주는 사람들.
#-6. 그래, 몸을 돌려 옥상정원을 걸어 나오고 dis.
#-7. 구름 다리를 지나고 dis.
#-8.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dis
#-9. 15층에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0. 15층 안 통로를 걸어 오는 그래.
72. 영업3팀 앞 통로 + 영업 3팀 / 밤
그래, 통로를 웃으며 걸어 들어오는데 상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으로 주식을 보고 앉아 있는 박과장에게 다가간다.
그래, 들어서는데.
상식 : (박과장에게) 너랑 더 이상 이렇게는 일 못하겠다.
그래 : (멈칫 선다)
박과장 : (미간을 찌푸렸다가 천천히 상식을 본다) 뭐라구요?
상식, 굳은 얼굴로 박과장을 보고 박과장 역시 상식을 험상궂게 쳐다 본다.
놀라 굳은 얼굴로 그들을 보는 그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