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먹거리, 환경, 생활습관을 통해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태초먹거리다.
책소개
방송출연에서도 “효소는 설탕물이다.”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분석화학자가 선한 양심으로 이야기하는 현대먹거리의 진실.
이 책의 저자는 분석화학박사로 국립대 교수이며, 토양, 농수산물, 공산품 등의 다양한 먹거리의 성분을 조사하는 한국분석기술연구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2009년 사랑하는 딸을 암으로 품에서 잃고 암환우의 생활습관과 먹거리에 대해 연구, 조사하여 3년간 국내외 강연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건강한 먹거리와 착한 먹거리에 대한 정보와 일상에서의 식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연은 물론,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에 다수 출연하여 젊은이들의 식습관과 스트레스 해소에 대한 강의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KBS1TV《아침마당》,《강연100도씨》, MBN TV《황금알》, 《엄지의 제왕》, MBC라디오《손석희의 시선집중》등에서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쓴 건강 서적 이상의 감동적인 내용을 방송인 이금희씨는 잘 소개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학자의 연구가 들어있습니다. 정성과 전문성이 절실함이 있는 충실한 책 한 권 건강 잃고 고통 받는 당신 손에 쥐어드리고 싶습니다."
태초먹거리 학교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 책의 시작은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두 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차례로는 “감사합니다.” 가 먼저 나오지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목적을 잘 설명해주는 부분을 먼저 소개한다.
2006년 2월 어느 추운 겨울날, 독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 중이던 나는 한밤중 한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후 나와 우리 가족의 모든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당시 전화 내용은 이랬다. 22살 딸의 가슴에서 작은 양성 혹이 발견되어 아주 간단한 수술을 마쳤는데 수술 후 조직 세포를 검사한 결과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학회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했고 그때부터 딸의 투병이 시작됐다.
모든 암환우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는 동안 온몸은 불덩이 같았고 물조차도 토해낸 후 힘이 빠져있던 딸을 바라보던 그때의 심정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딸의 고통을 마냥 지켜보던 나는 세상에 있는 온갖 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암에 특효라는 기능성 식품들이 넘쳐났고, 지인들로부터 암에 좋다는 음식, 상업용 제품, 방법까지 작은 것들도 놓치지 않고 추천받았다. 그중에는 악의를 갖고 상업적으로 암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이다. 아마 모든 암환우의 가족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시행착오였다. 내가 잡은 지푸라기가 특효약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과 불안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친 채 근원을 알 수 없는 정보에 흔들리며 시간과 돈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행착오는 지금도 대부분의 암환우와 그의 가족들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우리는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기뻐했다. 딸의 모습도 건강했던 예전의 모습과 똑같았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빠졌던 머리카락도 새로 나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믿어버렸다.
평안을 되찾은 딸은 졸업을 해야겠다며 서울의 학교로 돌아갔고 또다시 밤을 새우고 과로를 하며 투병생활에서 잃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1년 뒤, 딸은 그토록 원하던 학사모를 썼지만, 폐와 뇌, 온몸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다시 투병을 시작하게 됐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거치는 동안에는 암세포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면역세포를 비롯하여 정상세포도 많이 파괴되어 면역체계에 혼란이 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두 번째 겪은 시행착오였다. 무너진 면역력을 회복할 시간적, 정신적 휴식기 없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던 것. 암에는 분명 발병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제대로 찾지 않은 채 세상으로 들어가면 결과는 원점일 게 뻔하다. 지금도 역시 많은 환우가 완치되었다고 믿고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가서 같은 오류를 범하며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연약해진 몸이 암을 앓기 이전의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했었을까? 그 질문이 나로 하여금 견디지 못할 아픔과 죄책감을 느끼게 했고 나는 초기 암 판정을 받았을 때의 몇 배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정보를 스스로 연구하고 수집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발병 당시에는 그나마 유방암 초기라는 안도감이 있었는데, 재발 후에는 폐와 뇌를 비롯해 몸 수십 군데로 전이가 된 상태였기에 걱정과 염려뿐이었다. 이때부터 전 세계에서 암 치료로 유명하다는 병원과 참고 문헌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MD Anderson 병원, Mayo Clinic과 같은 유명한 암 치료 병원을 비롯하여 국내 병원 및 유럽 병원에서 암 치료 사례와 연구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평가하여 내 딸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울러 독일과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암 치료에 있어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 또는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에 대한 연구와 임상 사례가 매우 풍부하였기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했다. 또 미국을 비롯하여 멕시코, 남미 등에서 사용되는 민간요법들에 대하여도 알아봤다. 지구상에 그 무엇이라도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적용될 방법이 있다고 꼭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진짜 특효약, 완치 방법만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런 처방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에 희망도 빛을 잃어갔다. 단지 시간이 흐르고 암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흐려져 있던 그림이 퍼즐 맞추기를 하듯 한 조각씩 제자리로 끼어들어 가면서 암에 대한 발병과 치료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딸은 기다리지 못했다. 유난히 하늘이 높고 파랗던 어느 가을날, ‘감사’라는 말을 남긴 채 그녀는 하늘로 떠났다.
암에 대한 수없이 많은 자료를 찾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암치료 기술은 놀랍게 발전했다. 표적치료제 개발 및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들이 개발되어 거대 제약회사들에 의해 상업화되었다. 또 암 부위를 수술하는 외과적인 기술과 암을 조기진단 하는 검사방법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암 전문 병원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암 치료 시설들이 현대화되었다. 또 어느 국가든지 암을 완치 또는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는 암 전문 의사들이 언론 또는 방송 등에서 엄청나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암환우 숫자는 줄기는 커녕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일까? 왜 수많은 암 전문 병원에 환우는 많고 의사는 부족한가? 왜 암 전문 의사 한 명이 하루에 수십 명의 암환우를 진료해야 하는가? 그 짧은 시간과 기계적인 진료 가운데 암환우들의 운명이 과연 결정되어야만 하는가? 표준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암환우들은 왜 병원의 꾸준한 관리 없이 그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는가? 5년, 10년 또는 미래에 암환우가 될지도 모를 젊은이들이 미리 그 고통을 피할 수는 없을까? 암의 예방이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암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할 예방법은 진정 없는가?
2009년 가을, 사랑하는 딸을 내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그 후, 딸이 남긴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남은 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곳이 바로 ‘태초먹거리 학교’다. 태초먹거리 학교는 시작일 뿐이다. 비록 현재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함과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곳이다. 《본문12p~17p》
돌아가고 싶은 어제와 고통스러운 오늘, 막막한 내일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수없이 찔러댄 주삿바늘의 고통 가운데 잊지 않던 말.
핏줄을 못 찾아 당황한 간호사에게 웃음을 보이며 건네던 말.
더 먹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내게 “미안해요.”라고 속삭이며 덧붙이던 말.
아픔을 숨긴 채, 개다리 춤을 추면서 우리를 웃게 했던 말.
온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에도 가냘프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되뇌던 말.
제발 눈 좀 떠보라는 절규에 마치 나를 달래듯 한 자 한 자 토하던 말.
나의 인공호흡을 받으며 마지막 숨을 내몰아 쉬고 속삭이던 말.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웠던 투병생활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달라며 사랑하는 나의 품에 안겨 남긴 그녀의 마지막 말.
생의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오직 기쁨만을 주었던 사랑하는 나의 딸.
그녀가 25년의 짧지만 빛나는 생을 마감하며 아빠의 품에 안긴 채 남긴 마지막 말.
“감사합니다.”
매 순간 숱한 고통 가운데도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는 듯 늘 잊지 않고 고백하던 말.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벽 3시. 늘 비슷한 시간에 한두 번은 잠이 깬다. 그리고 되도록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잠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 안에 숨은 그리움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자고 있는 애 엄마가 들을까 입을 막고 숨을 죽이며 눈물을 참아 보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 우리 지은이 잘 데리고 계시지요?”
나의 눈물은 결국 기도로 딸의 안부를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타협을 한다.
25살. 내 곁에서, 또 세상에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아이.
내 전부를 다 내놓아도 아깝지 않았던 사랑하는 내 딸 이지은.
지은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하나님,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은이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분이 주신 삶의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감사는 절대자이신 그분을 향한 고백이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남긴 말이기도 했다.
지은이는 대학시절 유방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기쁜 마음으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산업디자인과 4학년에 복학해 친구들과 함께 졸업을 하기 위해 작품 활동에 매진했고 무사히 졸업도 했다.
하지만 각종 약물과 치료로 약해진 면역력이 회복될 시간도 제대로 갖지 않은 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졸업하느라 무리를 하여 암은 재발했고 전신으로 전이가 되어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지은이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힘이자 진통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엄마, 아빠에게 남긴 숙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가 내게 남긴 숙제다.
오늘도 여전히 그녀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암환우들. 병원에서 표준치료(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늘도 좋은 것들을 찾으러 온 천지를 헤매고 다니고 있는 그들에게 평안과 자신감을 줄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5년, 10년, 20년 뒤에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는 10대, 20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미래에 겪을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그들이 미래에 겪을 수도 있는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안타까워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딸 지은이가 내게 남긴 마지막 숙제다. 《본문8p~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