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게이트까지 쉼 없이 달렸다.
시기가 좀 늦기는 했지만 올해의 산 벚꽃들과 마지막 작별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서산 (龍遊池. 용유지)는 카메라를 소유한 진사라면 한 번쯤 다녀왔을 소문난 촬영지이다.
특히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오전 내내 카메라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용유지"는 표석에 용유지로 되어 있지만 입소문으로는 (龍飛池. 용비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모두가 탄성을 지르던 지난 날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이제는 연초록 물결에 밀려 스치는 바람에 속절없이 꽃잎을 날린다.
기하학적인 비율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자연 앞에서는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역시 소문대로 실망을 주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산벗 꽃은 만개했을 때도 아름답지만 만개 시기가 살짝 접어들 무렵
나무들의 연초록 새싹 45% 남은 꽃잎 55% 비율로 아직은 절반이 떨어지기 전 즈음 가장 아름답다고.
특히 물버들의 연한 초록물결과 색채가 적당히 섞인 산벗 꽃의 포근함이 과히 환상적이다.
초지와 물버들은 이미 완연한 봄이건만 건너편 산등이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카메라가 없다.
내가 소문에 의해 여기를 찾은 목적은 풍경을 담기 위함도 아니요
짬이 많아 소일하기 위함도 아니다.
단지 "용비지"가 산 벚꽃으로 아름답기가 단연 최고라 하여 혹여 이곳을 역어 도보코스를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거기다 시기를 잘 맞춰 꽃구경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허나 광활한 서산 목장은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철조망 울타리를 넘어야만 되고 또 일단은 출입 금지구역이라.
도보코스를 엮는 데는 무리가 있을 듯 아쉬움만 간직한 채 돌아서야만 했다.
아침 2018년 4월 16일(월) 07:40분.
현지에 도착해보니 와~우 장난이 아니다.
육중한 줌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는 진사님들이 사방으로 족히 버스 두대 인원은 돼 보인다.
저마다 포토존에서 나름대로 멋진 작품을 남기기 위하여 분주하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나도 사진 기술을 배워둘걸)
사진 기술을 배우지 않았으니 카메라는 물론 없고.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담으려니 나 자신이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자격지심일까! 하여튼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찍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그것도 아리따운 여성분이. 언 듯 보니 나보다는 연상인 듯 보였다.
a. 저기요. 혹 카메라를 안 가져오셨어요.
b. 아~네. 저는 사진 기술을 못 배웠습니다. 카메라도 없고요.
a. 아~네. 그런데 이 아침에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b. 음~ 여기가 풍광이 멋지다는 소문을 듣고 지나는 길에 들러 봤습니다. 한데 소문대로 아름답네요.
a. 여기는 출입금지구역이라 일반인들은 잘 몰라요. 아는 진사님들만 들어와요. 물론 저도 월담했지만요.
b. 아~ 그러시군요.
우리는 잠깐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요지는 이렇다.
당신께서는 삽교천 근방에 사는데. 매년 와서 촬영을 한다고. 올해에도 벌써 열흘째 왔다고.
그러면서 어깨에 카메라가 없는 것을 보면 자주 오는 진사님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에서 폰 사진 찍는 분이 처음이라는.
그래서 말을 걸었노라고.
용비지는 동틀 때도 아름답지만 해가 서천으로 기울 즈음 석양빛에 물든 풍광도 일품이라는 것.
전국을 누비는 도보를 하시니 촬영지를 추천해 달라는 등등.
대충 이쯤에서 우리는 인사를 하고 각자 갈길로 돌아섰다.
말씀대로라면 일몰 풍경도 봐야겠는데 하루 종일 어디서 뭘 할까.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이 글을 진사님들이 보신다면 촬영 수준을 논하지 마시길...
나는 사진 기술이 全無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담아본 것이니
스마트폰으로는 풍경을 담기가 한계가 있는지라 핑계를...
혹 관심 있는 분은 내년 4월에 잊지 말고 찾아보시고 아름다운 풍광을 멋스럽게 담아오시길 바랍니다.
용비지 가는 길은 일단 네비에 용비지로 치시면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lc에서 빠져나와 647번 국도로 해서 저수지 근처 마을까지 갈 수 있다.
마을을 조금 지나 목장 근처 농로에 차를 주차하고 <좁은 농로에 차량이 많으니 감안해야 됨>
출입금지 철조망 울타리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옆으로 비켜 용비지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개천을 따라 약 4~500m 걸어 들어가면 용비지 뚝이 시야에 나타난다.
뚝 앞에 출입을 금하는 철조망 문이 또 하나 있어 그 문을 넘어 뚝 계단을 오르면 감탄을 자아 낼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들어온다.
진사님들이 하도 많이 다니셔서 360도로 돌으며 무난하게 구경할 수 있다.
주변이 서산 한우 종목장이라 온 산등성이가 초목 등성이다.
산등성이에는 근처 마을에 사시는 나이 드신 부인들이 산나물 캐느라 듬성듬성 보인다.
이렇게 해서 꼬박 하루를 용비지와 함께 보냈다.
감동이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개심사 가던 중 인근 마을에 사는 산나물 캐는 40대 후반의 아낙과 대화중에
5 공화국 시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김종필 씨의 목장 이야기.
당시 마을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이야기 등등 많은 실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잠시나마 주변에 있는 산나물을 뜯어 주면서...
저 아래 신창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 옆으로 난 도로가 서해안고속도로 쪽에서 개심사로 올라가는 도로다.
그렇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침에 몇 장의 풍경을 담았으니 목장을 가로질러 등산로를 찾아 (개심사.開心寺)까지 왕복 등산 겸 도보를 하자.'
어림잡아 원점 회귀하면 대략 오후 4~5시 그때가 되면 석양빛에 물든 용비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