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4:1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종말이란 세상의
끝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성도의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것은 저 미래의 관점에서 오늘을 사는 것이며,
그리하여 오늘을 있는 그대로의 가치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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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나간 마 실은 바람피우기 딱 좋은 날입니다. 등산, 스키,
골프, 심지어는 낚시까지 죄다 발바리들의 명분일 뿐입니다. "나를 거룩함
으로 부르시고 성령을 주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아는 대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함'이기 때문에 내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알고 단정히 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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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에너지를 해결하려고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지나치게 오버해도 색욕을 좇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기 때문에 색욕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속여
빼앗는 것은 불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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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무리 멋져도 그것은 거룩한 사랑이 아닙니다.
불륜은 희락과 화평대신 스릴과 쾌락을 주는데 왜들 불륜을 할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기껏 몇 십 년의
쾌락과 하나님 나라를 맞바꾸는 어리석은 행위로 한방에 훅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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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하면 성령이 떠나가 버립니다. 이 때문에 다윗이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시편에서 탄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거룩하심으로 부르신 것을 인정
하시나요?
가족의 힘/황 인숙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듯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
보는 것이다. 반려자란 어떤 고민이건 의논할 수 있는 최상의 존재이리.
하지만 불륜을 누구에게 털어놓나?
가장 내밀한 희락, 혹은 고통과 슬픔을 아내와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으리.
하지만 차마, 절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데 화자는 대단하구나.
어쩌면 아내를 이만한 경지에 올리셨소?
여자들은 킹콩 같은 남자를 원하는 반면, 남자는 사이보그 같은 여자를
원한단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해주는 여자, 자기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
여자, 그러면서 예쁘고 돈 있고, 학벌 있고, 능력 있고 대화도 통하고 애
잘 키우고 섹시하기까지 한 여자 거기에 남자의 모든 결함을 감싸 안아
주는 여자, 세상에 이런 사이보그가 있을까, 그러니 남자들이 항상 헤매는
것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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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이란 윤리적으로 음란한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폴라니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악마의 맷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악마의 맷돌’은 모든 가치를 집어넣어 갈아서 오직 경제적
이익이라는 한 가지 가치로 만듭니다. 여자의 오빠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하인을
살해한 것 역시 결국은 ‘악마의 맷돌’ 때문입니다(왕은철,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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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장미요정’은 사악한 오빠가 자기 동생이 신분이 낮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동생이 사랑하는 하인을 산과 바다 너머로
사업 심부름을 보내는 척하다가 칼로 찔러 죽이고 목을 베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신분과 돈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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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맷돌이 그만큼 무섭다는 애기입니다. 단순히 동화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악마의 맷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맷돌에 넣고 갈면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자기중심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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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장과 부침을 반복하면서 아름답게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부르신 자들을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바울이 더 쓸 것이 없이 성도들은 배운 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 사랑을 유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사랑 때문에 거룩할 수 있었고 고난을 이겨낼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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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에는 다함이 없고 더할 나위 없는 사랑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라’고 당부합니다. 사랑은 한 번의
사건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출발은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내가 타인에게 짐이나
부담이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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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내 것을 나누고 어려움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로만 사랑을
떠들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하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외인들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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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나는 성적으로 순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재혼을 할까요? 말까요?
내가 범죄 하면 보혜사 성령님이 즉각 나를 떠나는 것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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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1-8)
a.마땅히 행해야 할 것:1-2
b.하나님의 뜻, 거룩함과 성적 순결:3-6
c.하나님의 부르심, 부정이 아닌 거룩함:7-8
형제자매를 기쁘게 하는 삶(9-12)
a.형제 사랑:9-10
b.형제사랑의 구체적 명령들: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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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형제들아(1a)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1b)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1c)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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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1e)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1f)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2a)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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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3a)
너희의 거룩함이라(3b)
곧 음란을 버리고(3c)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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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4b)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5)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6a)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 한 것과 같이(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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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6c)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7a)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7b)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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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8b)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8c)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9a)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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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10a)
과연 이것을 행 하도다(10b)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10c)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1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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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11b)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11c)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12a)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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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삶_a holy life
형제 사랑_brotherly love
선교적 교회_a missionar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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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종말 신앙은 현실 속에서 윤리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오니
성도는 삶속에서 복음을 구현해야 하는 존재들이나이다. 세상의 상식과
가치를 뒤엎고 아름다운 일상을 창조해야 되는데 말씀을 살아내지
못함으로 복음을 가로막은 것을 용서하지 마소서, 성령을 의지하여
성적인 유혹과 음란한 문화를 이기는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Since true end-of-life beliefs lead to ethical life in reality, saints are
beings who must embody the gospel in life. Don't forgive me for
blocking the gospel by failing to live the Word when I have to
reverse the common sense and values of the world and create a
beautiful daily life. Let the Holy Spirit be a family and church that
overcome sexual temptation and obscene culture.
2022.8.26.fri.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