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면소재지는 나진리, 관할 법정리는 10개이다. 시내 읍.면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다.
이 지역에서 말을 기르던 목장(牧場)이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는데, 본래의 뜻은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이란 책에 나오는 주나라의 이야기 『주서(周書)』에서 인용된 고사이다. 이 중 귀마우화산지양(歸馬于華山之陽)이라는 구절(句節)에서 화양이라는 뜻을 인용하게 되었고, 곡화목장을 관리하던 감목관이 거주하던 돌고개마을의 뒷산 이름도 화산이었던 것이 고지도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삼국시대부터 돌산현소속에 있었고 통일신라때는 여산현이었다가 고려시대는 돌산현으로 환원되어 1350년에 현령이 배치되었지만 조선시대 1414년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안 도서를 독자의 군현으로 편제하기보다는 수군 진지로 편성하고자 하는 방침과 관련이 있어 폐현되어 고돌산진 지역이자 순천부 지역으로서 소라면 상도에 속하였다가 그 뒤 곡화목장을 설치하여 감독관을 두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이를 폐지하고 1897년 여수군에 편입되어 "화양면"이라 하여 나지·소장·석교·서상·서하·봉동 등 3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안면 성본리 일부를 병합하여 나진·서촌·안포·옥적·용주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 화정면 여자리에 속했던 운두도지역을 1983년 화양면 이천리로 편입하었고 1986년에 여천출장소의 여천시로 승격당시 용주리 송소마을이 쌍봉동(법정동:소호동)으로 편입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통합으로 여수시 화양면이 되었다.
동·서·남 3면은 가막만(駕莫灣)과 장수만(長水灣), 여자만(汝自灣) 등 바다에 면하고 도서지역인 화정면(華井面)과 접하며 북쪽은 소라면(召羅面)과 접한 고돌산반도 지역이다. 북쪽의 비봉산(飛鳳山), 서쪽의 서이산과 이영산(二影山), 남쪽의 고봉산(高峰山)과 봉화산(烽火山) 등 해발 200~400m의 산지 사이에 화양·대옥·석교·소장·소옥·이목천 등 20여 개의 소하천이 농경지를 가로 지르며 흐르고 있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며, 연안의 바다는 갯벌이 발달한 지역과 갯벌이 없는 암반 지역으로 나뉘어진다.섬은 운두도, 자래섬, 소운두도, 간도, 대락도, 소락도, 삼섬, 목도, 장재도, 마물도, 죽도(백로도래지), 오란도등 그 외의 작은 섬들이 있다.
화정면소재지는 백야도에 있는 백야리, 관할 법정리는 10개이다. 시내 읍.면에서 가장 면적이 좁은 곳이다.
『돌산읍지』에 화개면과 옥정면이 각각 수록되어 있고, 『신구대조』(여수)에는 화정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 지도에서는 『동여비고』(전라도)에 돌산포 남쪽 해안에 백야, 제리 등이 섬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후 『해동지도』(순천), 『광여도』 등 대부분의 고지도에 고돌산진 남쪽 해안에 화정면의 섬들이 묘사되어 있다. 『돌산군읍지』에 따르면 화개면은 개도의 화개산에서, 옥정면은 백야도의 옥정산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1998년 화개면과 옥정면이 통합되면서 합성 지명으로 화정면이 되었다.
전라남도 여수시의 서남부 해안 보돌바다(保突海)에 위치한 면이다. 북쪽 납계도(蠟鷄島)에서 남쪽의 개도(蓋島)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고흥군과 경계한다. 조선 시대 돌산진의 관할지역이다.
여자도권ː 대여자도, 소여자도, 매물섬, 동도, 동굴섬, 납계도, 죽도
서부권ː낭도, 사도, 적금도, 둔병도, 치도, 만월도, 상과도, 하과도, 미섬, 홍도, 조발도, 목도, 증도, 장사도, 추도, 상계도, 하계도, 부도, 장구도, 상화도, 하화도
동부권ː백야도, 제도, 개도, 자봉도, 야도, 고여
1896년 돌산군의 화개면(華蓋面)과 옥정면(玉井面)이 된다. 여자도 ·백야도 등 북부 지역은 화개면이 되고, 상화도 ·하화도 ·개도 등 남부 지역은 옥정면이 되었다. 1914년 화개면과 옥정면을 통합해 화정면이 되면서 여수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에 여천군 화정면이 되다. 1998년 삼려통합으로 여수시 화정면이 되어 지금에 이른다.
소라면소재지는 곱창으로 유명한 덕양리이고 죽림택지개발지구를 통해 여수시의 읍면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여수반도 서부 읍.면지역 중심지역이다.
소라면(召羅面)의 지명 유래는 주삼천과 율촌면 신풍리의 신풍천이 봉두와 대포 지역을 지나 소라천에 유입되어 비단을 짜듯이 교차하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교류지 역할을 하는 포구였다고 하여 부를 소(召)자와 비단 라(羅)자를 따서 부른 소라포구(召羅浦口)가 면의 동북쪽 지역에 있어 유래하였으며, 또한 조선시대에 소라포면(召羅浦面)이라 부른 데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한자 소(召)는 조라고 읽기도하여 일제강점기까지도 현재의 소라면과 화양면 지역을 합쳐서 조라포면이라고 말하였다. 1789년(정조 13)의 『호구총수』를 살펴보면 조라포면은 상도와 하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소라면 대부분 지역이 조라포면 하도였고 화양면 지역은 조라포면 상도에 속해 있었다. 소라의 본래 발음은 조라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조라를 소라로 읽기 시작한 것은 근대식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던 1914년 이후이며, 일부 노인들은 1950년대 이후에도 조라포면이라고 불렀다,원죽마을은 죽림마을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으로 이름그대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서 지어졌다고 하며 죽림청풍(竹林淸風) 고사용출(高士聳出)이라 하여 예로부터 뛰어난 선비가 많이 배출된 마을로 전해 온다.
동쪽은 행정동 기준으로 여수시 쌍봉동과 여천동.주삼동.삼일동, 남쪽은 화양면(華陽面), 북쪽은 율촌면(栗村面)과 접하고, 서쪽은 여자만(汝自灣)에 면한다. 섬달천도, 복개도, 모개도등 외 작은섬들이 있다.
현재의 소라면 지역은 고려시대 940년(태조 23)에는 무주 승평군 여수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1406년(태조 6)에는 순천부 소라부곡 소속이었으며, 1897년(고종 34)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수군 덕안면에 속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여수시 승격 분리로 전라남도 여천군 소라면이 되었고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화정면(華井面) 여자리(汝自里)에 속한 달천도(達川島)가 편입되었으며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에 따라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으로 되었다.
▶산행일ː2024년 02월 02일(금)
▶산행지ː 문덕산(130.5m) 사방산(177m) 성주산(251.7m) 안심산(347.9m)
▶코스ː 화련삼거리-문덕산-사방산-성주산-창무성지-안심산-유심천온천
▶난이도ː B+
▶누구랑ː번개 팀 8명(깃대봉 뉴해운 망개등 산다람 시호일 열심히 일광)
▶시 간ː13:26∼15:34(휴식.점심.목욕포함 02ː08분)
▶거 리ː약 4.69㎞ (오르내림포함 약 5.16km)
▶날 씨ː흐림 구름 (구름조금)
☞화련삼거리(들머리)ː전남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250-9
☞유심천온천(날머리)ː전남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117-25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큰일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너의 맘을 숨겨라.
마음을 숨기는 이유는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속임수나 모함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창'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마음의 '방패'를 가져야만 지혜로운 책략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원사에서-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