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골 내려올 때가 50대 후반.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샘물처럼 솟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이 재미있어 날 밝기를 기다리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농사 초보가 겁도 없이 전문농사꾼 흉내를 내다보니
한해는 고추농사로 성공해보겠다고 간 크게 비닐하우스부터 짓고,
연탄 500장 들여놓고 화덕 8개에 환풍기까지 설치!
엄청나게 투자를 했다.
몇 포기를 심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수확은 500근 정도 성공.
나름 애지중지 선풍기도 틀어주면서, 정성을 다해 건조를 시켰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마.
결국 고추가 썩어나가더니
금쪽같은 고추 100근은 그대로 버리고
가까운 친척들이랑 친구들에게 나눠줄 거 챙기고
남은 걸 팔다보니, 투자한 금액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추에 점 하나만 찍혀도 불량품으로 분류가 되니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건 결국 우리 몫.
생각하니 죽도록 농사지어 남는 건 없고,
불량품은 우리가 먹어야하니
뭐하는 짓인지 농사에 회의가 들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직접 농사지어 메주 쑤어 된장 담근다는 욕심으로 콩을 심었다.
수확을 했지만 도리깨 하나 준비도 못하고
추수하는데 필요한 도구는 오로지 빨래 방망이가 유일했다.
기계로 타작을 하기에는 양이 턱없이 부족하고 빨래방망이로 추수하기엔
양이 좀 많아 다른 농부들의 콩 타작 사례를 인 선생(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천막을 펴서 추수한 콩을 깔고, 그 위에 다시 천막을 덮어
자가용으로 왔다 갔다 하면 최상의 수확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큰 효과 없이 고생만 하고,
결국 콩 농사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콩 두말이라고 해야 그 당시 5만원이면 사먹는데
유기농으로 먹겠다고 그 고생을 하다니
내 건강과 수명이 얼마나 연장될지는 몰라도 참 미련한 짓을 많이도 했다.
시골 출신이라도 남편이 평생 월급쟁이로 살다보니
농사라고는 모르고 살다가 이사 와서
천지 분별도 못하고 농산물이라고는 생긴 건
다 심어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또 한 번은 들깨 농사에 대한 상식도 없이 들깨 농사를 시작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들깨 추수한 것을 방망이로 두드려서 잎만 걷어내고
물에 깨를 씻는다고 담그니
깨가 온통 물에 둥둥 뜨는 게 아닌가.
썩어서 쭉정이가 된 건줄 알고 계속 물을 부어 따르면서 씻다보니,
어느 순간, “쭉정이가 왜 이렇게 많지!?”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새 남은 건 흙과 모래뿐이었다.
너무 가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그 해 들깨 추수해서 얻은 것은 모래와 흙이 뿐이었다.ㅎㅎㅎ
이래서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16년 동안 본전 생각나게 하는 지긋지긋한 농사
올해는 다른 이에게 경작을 의뢰하고 나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이 홀가분하다.
진즉에 농사는 포기했어야 이마에 연륜의 골이 덜 패이고
손가락과 다리에 퇴행성관절염으로 2급 장애인은 안 되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이렇게 회고담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본다.
첫댓글 사진속의 고추는 정말 탐스럽습니다!
올해 수확한 고추인지요?
저도텃밭을 가꾸어 봤지만 남는게 없더군요.
농부들이 존경스럽더라고요~~
올해 우리 먹을 것 수확한 고추랍니다.
농사 진즉에 그만 두었어야 하는건데...ㅎㅎ
전문 농사하시는 분들은 거의 기계화로 하니까
수입도 짭짤 한 것 같아요..
저도터밭농사는 매일 적자죠 그래도 흙을 만지고 몸을 움직이고 자라는것 보는 재미 때문에 적자 농사를 버리지 못하네요~~올해 감자4박스 고구마 2박스 고추 50근 참깨 15되 등등..각종 채소는 덤으로 먹고 ..그래도 기름값도 안되는데 ㅎㅎㅎ
이렇게 흔적 남겨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녁엔 남편 즐겁게 놀라고 PC 완전 양보하고 나니
많은 답글들이 올라 왔지만 새벽이 되어야 컴퓨터가 제 차지네요..ㅎㅎ
적당한 노동과 수확은 건강에 좋지요..
그래도 고액의 농산물 고추와 참깨를 그 정도 하셨으니
결실이 좋은 편이네요..
우리는 고구마 한 박스도 안되어 이웃에서 한 박스 사 놓고
고추도 30근 정도하고 지금 금값 김장 배추도
잘되어 배추를 잘 먹고 있답니다.
농사를 과하게 만 안 짓는다면 재미도 쏠쏠 하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열심히하면 수지를 맞출순있는데 쉽지않아요 전68세에 회사관두고지금7년째 사과농사짓는데 아직 재미는보지못했지만 여가를 잘이용하고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고스톱황제님
농사는 전문 농사꾼 아니면 힘들긴 하지요.
7년 쯤 과수농사에 투자하셨으면 이제 결실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마음 비우고 여가를 즐긴다 생각하시면
건강에도 좋은 일이지요
적당한 노동은 아무 것도 안하는 무기력 상태보다는 훨씬
보람있는 일인 것 같아요.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이렇게 답글 주시니 고맙습니다.
@큐티여사 농사에 재미를 느끼며 살려고 합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고스톱황제
맞아요. 그 동안 들인 노력과 경비를 제하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는 농사 일이지요.
가끔은 그래도 옛날 아버지, 어머니 따라 논 밭에 나가 거들던 일이 생각이 나요.
힘들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뒷산에 가서 나무 하던 일이라든지, 냇가에서 멱
감고 가재 잡던 일도 생각이 나고요.
이슬기님은 답글 하나에도 추억을 소환하는 글이 늘 좋습니다.
우리는 펜션과 겸해서 농사를 지으니 골병 드는 농사지만
씨 뿌리고 자라는 과정과 결실의 기쁨 흙과 더불어 산다는 게
비록 적자 농사라도 삶의 활력이긴 하지요..
하시는 일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