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는 송에서 고려로 가는 항로는 해양항로가 아닌 내륙과 해양항로를 이용허하였음을 강역고http://cafe.daum.net/dobulwonin/Gjtl/97 및 구당서<가탐도리기>해석등의 글에서 주장했고 역시 정리가 잘되어있는 이성근 (필명 History author)님의 카페글을 옮겨 재게시합니다.부분에 집중하지 말고 전체를 보시길 바랍니다. (운영자주)
봉래산은 바라보면 심히 먼데, 앞이 높고 뒤가 내려갔다. 뾰족하게 치솟아 있는 것이 사랑스럽다. 그 섬은 아직도 창국(昌國정해현을 말함)의 봉경(封境)에 속해 있다. 그 위는 극히 넓어 씨를 뿌릴 수 있어서 섬 사람들이 산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제34권봉래산(蓬萊山)-
창국의 위치를 감안하면 절강성 앞바다에서 제주도가 보여야 한다는 논리인데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이기는 하던데 솔직히 맑은날에나 잘보이더라 더우기 일본은 택도 없었다. 그럼 상식적으로 주산군도의 서쪽인 창국일대에서 제주도가 보인다면 이는 인간의 눈이 아니다. 차라리 포항에서 울릉도가 창국에서 제주도보다 훨씬 가까운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배의 항행이 봉래산을 지난 후에는 물이 깊고 푸른색이 유리 같으며 물결의 기세가 더욱 터진다. 큰 바다 가운데 돌이 있는데 그것을 반양초라고 한다. 배가 암초에 부딪히면 뒤집혀 물에 빠지기 때문에 뱃사공들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선화봉사고려도경 제34권봉래산반양초(半洋焦)-
아랍사람들의 기록에 주산군도를 신라군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신라군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백제기록에 월주에 백제땅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월주였던 절강성일대에는 흰김치를 담그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유선 NATV의 기획프로그램 <대백제>에서 이를 증명함-운영자주). 한족은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
주산군도는 고지도에는 주산이 아닌 봉황으로 표기된 것도 있다. 저곳이 바로 견휜의 백제수군과 궁예가 지휘하는 고려수군(왕건이 지휘한 것이 아니라 궁예가 지휘했음은 KBS다큐에서 밝혀냈다) 수백척이 뒤엉켜 싸운 곳이다. 지금 한반도 전라도 나주의 강일대는 과거에는 물이 풍부했다고 하나 빙신이 아닌이상 그렇게 좁은곳에서 대규모 해전을 벌였을리 없다. 병법이라도 읽어보고 그따위 주장하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백수양으로 표기한곳은 지금도 강폭이 30Km가 넘는다. 고대에는 더 넓었다. 나주앞의 강이 과거에 제아무리 넓어봐야 강폭이 1Km는 되었겠느냐? 수백척이 뒤엉켜 싸울려면 적어도 수십Km의 폭은 되야 마음놓고 싸울수 있다. 강폭 1Km내외에서 붙으면 너죽고 나죽자는 것 밖에 안된다. 이순신장군은 13척으로 죽을각오로 덤빈것이고 이당시 고려와 백제수군은 전함의수가 백제군이 조금 더 많을 뿐이지 임진왜란때의 이순신장군의 상황과 다르다
다시 남풍이 일어나 백수양으로 들어갔다. 그 근원이 말갈(靺鞨)에서 나왔기 때문에 흰색이 된 것이다. 이날 밤에 불을 치켜들었더니 세 척의 배가 호응하였다.-선화봉사고려도경 제34권백수양(白水洋)-
백수양 즉 흰바다이다. 내가 한반도를 제아무리 구글로 찾아봐도 흰바다가 없었다. 그런데 주산군도 위에 흰바다가 정말 존재했다.
황수양은 곧 모래톱이다. 그 물은 흐리고 또 얕다. 뱃사람이 말하기를 ‘그 모래는 서남쪽에서부터 와서 큰 바다 가운데 1천여 리에 가로놓인 것으로 곧 황하(黃河)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라 한다. 배의 항행이 이곳에 이르면 닭과 수수로 모래를 제사한다. 대체로 전후로 배를 몰고 모래를 지나가는 동안 해를 입은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익사한 혼을 제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구려(句麗 우리의 땅을 말함)로 가는 데에는 오직 명주(明州)의 길만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등주(登州)의 판교(版橋)에서부터 건너가면 이곳을 피할 수가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제34권황수양(黃水洋)-
이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고려땅에는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 있다라고 보면 된다. 즉 한반도가 아니라 서쪽의 대륙쪽에 고려중심부가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 고지도에 분명히 지금 천진과 청현 일대를 흑양 즉 흑수양 (검은바다)라고 분명히 표기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목표지는 바로 지금 천진시와 청현일대였던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아직도 왕건의 고려를 한반도 개성이라고 주장하면 자신의 머리를 의심해보기 바란다. -이상 카페 <손에 손잡고>에서 발췌-
아래는 운영자가 대청광여도를 기본으로 비정하는 양자-황하내륙수로 (푸른수계)인데 고대로 부터 신라-고려시대까지도 운하로 북진하거나 산동大野澤 부근에서 濟河를 타고 대명호를 거쳐 濱州와 利津縣을 통과해 북해(발해)로 들어가 天津과 滄州에 도달하였다. (이루트가 통일신라 가는길)
운영자가 정리한 내륙 해운항로로서 唐수도 장안에서 백제 사비,고구려 평양,신라 경주까지 이어져 운항 할 수 있다.
고-당전쟁시 등주는 구당서를 기준으로 윗지도상 濟南 인근으로 보이며 위 운하도의 대강을 이해하지 못하면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백제간의 전쟁과 高-唐,羅-唐 전쟁의 (海)戰史를 이해 할수 없음을 확실히 밝혀둔다.
첫댓글 운영자가 달려진 댓글 지웁니다.본사이트 내용 충분히 숙지하신후 궁금하시면 쪽지주세요.
배운다면서 자료요청하고 운영자 조금 늦게보아 대응이 늦으면 본인위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어떤 자세인지 궁금합니다. 될수 있으면 글 안올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