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선생님이 예전에 파사니금기를 번역하면서 파사와 왕위를 다툰 사람이 일지라고 하였는데,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과연 사서를 번역해 본 사람은, 번역한 것을 읽는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지요.
일지신군은 파사와 동복형제입니다.
계보를 살펴보면
1. 대노(아리)-일지
2. 차웅(운제)-아리(유리)-파사
둘 다 아리의 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일지는 왕위계승권이 있었고, 왕위를 노렸습니다.
파사이사금기에는 삼황 중에 남해, 유리가 포함되고 마지막에 탈해가 되어야 하는데, 탈해가 탈락되는 현상이 보입니다.
아마, 이것은 일지가 왕이 되기 위해 삼황에 아버지 대노신군을 포함시켰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라디오님이 대노신군이 왕이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대노신군은 왕위에 오른적이 없습니다.
아달라기에도 명백히 대노신군이라 지칭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지가 탈해계의 등을 업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는데, 일지의 부인 중에 야비가 낙랑 출신이고
일지의 딸은 낙랑국의 왕후입니다.
이런 것도 라디오님은 모르겠지요. 일본 것을 퍼와서 나르느라 아무것도 모를테니 말이죠.
참 답답합니다. 복붙로 우둔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어야하는데..
첫댓글 일지의 마누라가 총6명입니다.
라디오 말이 맞는지 상장돈장 계보를 찾아 봐요.
확인해 보소...
5명 + 1명 = 총 6명.
비판을 가해 봐요.
님이 직접 찾아 봐요..
1명이 더 잇어요.
그것을 찾으면 머리가 좋은거고 그런거죠..
지금 계보를 찾으니.. 7명이 아니고.. 6명이네요.
정정합니다..
정확히 상장돈장에 5명이라고 나옵니다. 한나, 아세, 아리, 사을나, 야비 그외에 더있을 수도 있겠죠. 상장돈장이 다 적은 건 아니니까
@훈군(訓君) 야비가 아니고 나비입니다.
진짜 멍청한 소리만 하네요. 과다흑치가 부인이 몇 명이었는지 압니까? 그럼 과다흑치도 왕입니까? 도대체 그런 왕이어야 부인이 많다는 사고는 어디서 가지고 있는건지?
과다흑치의 부인은 모릅니다.
과다흑치= 왜인 일 가능성이 높아요..
我利는 남편이 3명이다.
이런 것은 라디오가 올린 글이 이미 잇으니 쉽게 파악이 될겁니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만 자꾸 하는지? 과다흑치의 부인은 최소 10명은 넘습니다.
初代王:威名日王 (41年)
일본놈이 위명일왕의 재위기간이 41년이라고 적어 놧어요.
4 ~5년전에 정성일씨랑 논쟁을 하던 것이 기억이 날 겁니다.
라디오: 정성일님은 혁거세가 재위 40년을 역임햇을거라는데.. 이 40년이란 재위기간은 너무 깁니다.
믿지 못 하겠군요.
줄여서 22년이나 25년으로 생각합니다.
정성일: 혁거세의 자녀가 많은데.. 라디오처럼 재위기간을 25년정도를 줄이면..
혁거세의 자녀가 많으므로.. 자녀들을 낳기에는 재위기간 25년은 빠듯합니다.
이렇게 논쟁을 햇엇죠.
몇년이 지나자.. 라디오는 틀렷고.. 정성일씨가 옳앗죠..
初代王:威名日王 (41年)
일본놈이 막 적어 놓은게 아니에요.
혁거세의 재위기간을 41년으로 해 놧습니다.
저거 보고 놀랫죠.
재위 40년은 정성일씨가 줄곧 주장해 오던 재위기간이였습니다.
진짜 답도 없이 멍청한 소리만 하는군요. 자기의 지식도 없이 퍼나르기만 하고 짜맞추기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그 라디오님이 퍼온 사람이 왜 그런 년도를 배치하고 그런 식으로 했는지는 생각해봤습니까? AD.42년이나오죠. 그 기년에도. 그 기년에 탈해와 수로왕의 싸움에서 수로왕이 승리했다는 설화가 있어서 탈해왕 이전의 왕을 수로왕이라고 하여 한 것입니다. 그래서 AD.57년부터 즉위한 다파나국에서 파견한 탈해왕의 재위기부터는 삼국사기와 일치하고 있죠.
이야 정성일 선생이 40년이라고 주장했는데? 똑같네 이거네 ㅋㅋㅋ 이러고 퍼와서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팔공산님은 삼국사기 기본 기년에 맞추어 남당유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으니 대단한거지, 라디오님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시끄럽게 떠들기만 한 것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