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의 항복한 군사 20만 명을 속여 신안에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고, 그 장수들을 왕으로 봉했으니 그 죄가 여섯이다!" ─ 사기 고조 본기
"더욱이 그 남은 군사들을 속여 제후군들에게 항복시킨 다음 진나라에 들어오다가 신안(新安)에 이르자 항왕이 20여 만에 달하는 그들을 속여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 놓고도 유독 장한(章邯), 사마흔(司馬欣), 동예(董翳) 등만이 목숨을 건짐으로 해서 진나라의 부형들은 이 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은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오늘 항우가 그의 위세를 믿고 이 세 사람을 삼진의 왕에 임명했으나 진나라 백성들은 아무도 그들을 믿고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 사기 회음후 열전
보통 항우의 학살을 이야기하면 진나라군 20만을 학살한 이야기를 주로 언급하지만, 실제로 항우는 이 전대미문의 학살이 있은 후에, 함양에 입성한 후에도 학살을 자행했다. 이미 여기서부터 항우는 스스로 언급한 학살의 이유는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 무슨 위협이 된다고 학살을 자행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심지어 이러한 종류의 학살은 항우에게 있어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항우는 이미 이러한 전례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아직 항량이 살아있던 시절 항우는 별동대를 이끌고 양성(襄城)이라는 곳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쉬울 것 같았던 싸움은 성안 사람들이 힘을 모아 싸움으로서 의외로 어렵게 전개되었는데, 기어코 성을 함락시킨 항우는 성 내의 모든 사람들을 구덩이에 파묻고 죽여 버렸다.
이후 신안에서의 학살이 있던 후에 제나라를 공격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나라의
전영(田嬰)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서 항우는
항복한 전영의 병사들을 모조리 파묻어 생매장 했다. 이러한 면으로 볼때 신안에서의 대학살은 급작스러운 행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항우가 밥먹듯이 자행하던 만행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만 제외하면. 또한 학살은 진나라 병사들에 대한 우려때문에 자행된 일이었는데, 사실 장한이 처음 부대를 일으켰을 당시 주력은 여산에서 일하던 죄수들이었다. 그 죄수들이 각지에서 끌려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 학살된 인원 중에는 진나라 출신이 아닌 타국 사람들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학살은 윤리적으로도 용납받을 수 없는 행위이며, 그 점만으로도 항우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떠나 전략적인 관점으로도 항우의 학살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였는데, 이러한 학살로 항우가 얻은 이득은 당장의 수고로움을 던 정도 밖에 없었고, 이는 모두 장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져왔다.
우선, 진나라는 이 당시 결국 망국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과거 열국을 호령하던 진나라의 그 생산력이 어디로 가는것은 아니었다. 전국칠웅이 쟁패할 당시 진나라의 생산력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압도할 정도였고, 항우가 모든 진나라 사람들을 개미 잡아 죽이듯 학살하고 진나라의 강산을 모조리 불태우지 않는 한 이것들이 단시간 내에 사라질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항우는 신안에서 진나라 병사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이후 함양에서 만행을 부린 후 진나라의 왕인 자영마저 살해하였다. 상식이 있는 진나라 사람들이라면 항우에 대해서 이를 갈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유방 이라는 괜찮은 대안마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제나라에서의 학살도 마찬가지였다. 항우는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포로들을 생매장하고 힘없는 부녀자와 노약자들을 모조리 묶어 포로로 만들어 버리고, 많은 고을에서 학살을 자행했는데 이러한 행위는 공포감을 주어 더이상 반항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제나라 사람들은 이에 대해 겁을 먹기는 커녕, 초나라의 만행에 분노하여
오히려 더 크게 들고 일어서면서 더욱 결사적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틈을 타 제나라의
전횡(田橫) 다시 수만명의 군세를 일으킬 수 있었다. 결국 항우는 이렇게 제나라에서 시간을 허비한 끝에 유방이 팽성까지 함락하는 것을 두고봐야 했다.
항우의 이러한 행위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역효과들은
일본군이
중일전쟁 당시 벌이던
삼광 작전(三光作戰)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삼광 작전 당시의 일본군이 이러한 작전으로 게릴라를 뿌리 뽑기는 커녕, 오히려 저항만 거세지게 했다는 측면에서 그러한데, 초한전쟁 말기에 항우는 외황(外黃)을 공략하다 쉽게 항복되지 않아 짜증이 나 이곳에서도 15살 이상의 사람은 모조리 죽이려고 시도했다. 이때, 13살 짜리의 아이가 항우를 만나 충고를 해주었던 일이 있었다.
"사나운 팽월이 우리를 해칠 수 있기에, 외황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다가 짐짓 항복한 척 하고 대왕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왕이 오시더니 외항의 백성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고 하십니다. 어찌 백성들이 대왕께 몸을 의탁하려고 하겠습니까? 이곳 외황 동쪽 양나라 땅의 10여 개 성은 모두 두려워하여 필사적으로 항거하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항우는 외항의 주민들을 학살하지 않고 용서해주었는데, 이후 항우가 동쪽으로 진군하자
여러 성들이 항복을 해 왔다. 죽이고 겁을 주어서 굴복시키려고 했을때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투쟁하던 사람들이, 자비로움을 보이며 유화책을 쓰자 동조 해왔던 것이다.
13살 짜리 애도 아는 사실을 모르던 항우나, 일본군이나 반면에 유방은 항우와는 대조적인 포지션으로 인해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다. 함양에 입성하던 한나라군은
장량의 충고를 들은 유방의 결정으로 인해 아예 함양 내에 발도 들이지 않고 주변에 진영을 차려 백성들이 엄한 피해를 입는것을 막았다. 이때문에 진나라 사람들이 유방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후에 입성한 항우가 저지른 만행을 생각해보면 이후 진나라 사람들이 어느 쪽 편을 들었을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이후에 초한 전쟁 당시 관중을 장악했던 유방은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조조의 원소군 포로 생매장이나
서주 대학살이 실제
정사 삼국지에서 특별히 사건 이후에도 비난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없어 당대에 인식이 낮게 취급되는 측면에 비하여, 이 항우의 학살들은 여러 차례 만행으로 언급이 되고, 유방 역시 항우를 비난하는 소재로 썻으며, 한신은 한술 더 떠 전략적인 관점에서 이 학살이 한나라가 중원으로 나서는 것을 막는 삼진(三秦)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로 평가하는등 당대에도 충분히 주목을 받은 일이었다. 즉, 짤 없이 쉴드 불가능한 악행이라는것.
그러나 이 모든 막장 짓에도 불구하고, 가장 황당한것은 항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이래 지금으로써 8년이 되었다. 몸소 70여 차례의 전투를 겪었고, 내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모두 목을 베었다. 나의 공격을 받은 성들은 모두 항복을 해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어 이로써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졸지에 이곳에서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 - 사기 항우 본기"
즉,
나는 잘못을 한게 없고, 졸라 잘 싸우기만 했는데, 지금 내가 망하게 된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하늘이 나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학살 관련한 부분만 해도 그렇고, 그외에 항우의 여러 실책을 고려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발언.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사마천을 비롯한 후대의 역사가들은, 항우의 인식에 대해 이러한 평을 남겼다.
"항우는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그의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워 옛 것을 따르지 않았으며 패왕의 업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려했다. 이에 5년만에 나라는 망하고 그 몸은 동성(東城)에서 죽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은 참으로 그의 허물이라고 하겠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용병을 잘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으니 어찌 그가 황당무계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사마천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초가 해하(垓下)에서 패하여 바야흐로 죽게 되었는데, 말하기를 '하늘아!' 라고 하였다니, 믿겠습니까?" 이에 대답하였다. "한은 여러 정책을 다하였고, 여러 정책은 여러 명의 힘을 다하게 하였지만, 초는 여러 정책을 싫어하고 스스로 그 자신의 힘을 다하였던 것이오.
다른 사람을 다하게 하는 사람은 이기고, 스스로 다하는 사람은 지는 것이오.""그러니, 하늘이 무슨 까닭이겠소." ─
양웅
첫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얘기긴 하지만, 역시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수 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전쟁중이긴 하지만 저런 짓을 한 항우도 나름 이름을 남겼으니까요.
나름이 아니라 경극에서는 '비운의 영웅'이 되죠;;
그나마 유방이 승리하고 한나라를 건국해서 이게 역사에 학살로 남았지 항우가 승리하고(이런 짓 하고 승리할 수 있을리가 없지만) 새 왕조를 세웠다면 이것도 묻혔겠죠.
항우가 2만의 군대로 장한의 20만 대군을 격파했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20만의 포로를 생매장했다면, 실제 항우와의 전투에서 받은 진나라군의 타격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역사는 정말 생생한 교과서이군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유명한 장군, 왕들은 싸이코 패스였을 듯.
잔혹한 마피아 보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했을 것 같습니다.
돌대가리네
내정은꽝이였네..
그많은 사람들의 원혼이 항우를 가만두었을리가 없죠. 영혼 같은게 없더라도 하늘은 분명 있으니.....
"르네 그루세는 몽골이 전략적으로 사용한 학살 작전이, 중동에선 큰 효과를 거두었지만 중국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던 것이 중국인은 숫자가 너무 많아서, 학살로 공포를 일으키는건 불가능했다. 라는 언급까지 했다"ㄷㄷㄷ
20만 명을 어떻게 구덩이에 파묻어 죽일 수 있었을까요.. 구덩이 크기가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너무 넓으면 운동장처럼 이리저리 도망쳤을 것이고.. 그렇다고 깊게 만들자면 또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