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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가분야 : 문화복지 제출자: 조성현(2010.5,21)
2. 제 목 : 우리의 잊혀진 역사 간도(間島)를 테마로 한 가칭)간도아카데미(전시관) 건립추진 타당성 검토의 건
3. 사업현황 가. 안양시는 안양예술공원 인프라 기반 조성방안 모색 중 나. 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 육성사업 등 다.안양예술공원 구. 유유 안양공장부지활용 기존 건축물을 재활용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방안 추진 중 라. 안양예술공원 명소화사업 추진 등 마.항일관련 사료전시(서이면사무소, 안양역사관), 바. 원태우 지사 등 항일운동가 흉상건립 및 민족정신 계몽홍보 사. 항일유족들이 안양에 거주(이종걸 국회의원 등)
4. 제안의 배경 -안양의 항일운동 정신을 간도사료관 건립으로 이어가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전기를 마련 -중국의 눈치를 보며 외교마찰 및 갈등을 우려 중앙정부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우리의 옛영토 간도 관련 타 도시 보다 우수한 역사교육문화컨테츠 확보 및 선점하여 우리안양을 전국에서 찾는 민족교육의 장(場)으로 가꿈(도시브랜드 가치 제고)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국민계몽이 시급한 사업으로 우리 옛땅 간도를 체계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사)간도되찾기 운동본부 안양지부(손상윤 지부장)의 회원에 따르면 중앙본부에서는 혼자 보기엔 귀중한 간도관련 학술자료(간도관련 고지도, 서적류, 간도가 한국영토임을 입증하는 희귀자료 등 사료) 수천 점을 보유 안양시를 비롯한 전국지자체에 무상 기증할 뜻이 있다고 저에게 밝힌바 있음 -사)간도되찾기운동본부(gando.go.kr)는 2004년 설립 이래 간도영유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전국순회사진전시회 및 학술대회개최, 백만명 국민서명 운동전개, 간도되찾기 대학생 자전거 국토순례, 간도역사 알리기 강연회 등 개최를 통해 간도협약 원천 무효화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또한 간도지역에 대한 무지불식과 간도되찾기국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간도되찾기운동본부는 매월 한번 안양을 찾아 회원 및 시민을 대상으로 간도관련 사진자료 및 고지도, 동영상 자료 및 강연 등을 통해 우리땅 간도에 대한 정보제공 및 계몽운동을 펼치고 있다.
5. 간도 문헌 조사연구: - 간도회의록(헌법의 영토조항에 관한 제헌국회논의 1948.7.1) - 간도영유권관련 국회 대정부질문 및 답변(14대국회 7차본회의 1995.10.20) - 간도영유권관계발췌문서(국회의장 정일권 1975.9.15) - 간도 귀속문제(신기석 1995) - 간도협약에 관한 외교사적 고찰(노계현 1966) - 간도한국인이민의 기원과 한국인사회의 형성(고승제 1973) - 간도영유권 분쟁시기에 있어서(김득황 1973) - 간도협약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이일걸 1992)
6. 간도관련 국제적 국내적 현상파악 -간도협약은 1909년 을사늑약에 의거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당사자인 조선은 배제한 체 지금의 동북3성 지역인 간도를 청나라의 영토로 인정한 청일간의 외교협약이다. -2009년은 우리의 고토 간도가 중국정권으로 넘어가게 된 청일 간도협약 체결 100년이 된 해이고 광복이후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겪고 국가경제 발전에 전념하느라 간도협약과 간도문제는 우리기억에서 잊혀져만 갔고 대한민국에 간도가 우리의 땅임을 계몽하고 홍보하는 전시관이 없다. -반면 일본은 부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감래하며 독도를 일본땅 이라고 국정교과목에 포함시켜 편찬하는 등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우기는 점에 비해, 우리 대한민국은 간도협약이 국제법상 효력이 없다(무효)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음에도 중국정부에 소극적으로 처신하는 사이 중국은 동북공정 사업 등으로 대한민국을 우습게보며 넘보고 있다.(사견)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는 영토와 관련된 국가적 중대사안 임에도 불구하고 간도가 대한민국의 땅임을 중국에 적극적 문제를 제기할 경우 외교분쟁을 우려 소극적인 대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간도협약은 엄연히 우리역사에 존재했고 그 협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인조약이다. -북방민족나눔협의회는 간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중국에 통고하는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외교통상부에 제출했는데 청원서에는 “우리정부가 국제정치의 현실은 우리가 간도 영유권문제를 외교적으로 제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를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결국 이는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국가 구성의 3대 구성요소의 하나인 영토를 포기하는 망국적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라고 내용을 담고 있다. -북방민족나눔협의회는 우리정부가 ‘간도협약의 무효’임을 통고하고 간도영유권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 줄 것을 외교통상부에 촉구했다.(2010.2.10). -2009년 9월 4일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뉴욕지역본부와 민족자주연맹 공동으로 유엔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협약체결 100년 해를 당하여 간도협약 무효와 잃어버린 땅 간도를 되찾자는 의도에서 ‘간도협약 무효 및 간도반환 소송’을 제기하는 소장을 제출하였고,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서류를 우편으로 그리고 확인 통보를 발송하여 북방민족나눔협의회/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는 공식 접수받음(->국내 및 국외에 간도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장차 간도지역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될 전망이다.) -이명박대통령 또한 서울시장 재임시절 “경제와 국방은 국제협력의 문제지만 영토는 배타적, 즉 타협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간도 고토회복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검토 중입니다” 라고 의견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도문제는 중국의 동북공정 당시 국민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다시 잊혀져 학계에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 지속적으로 후손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전무한 상태이다. -사)간도되찾기운동본부(www.gando.or.kr)는 “이제 역사가 흘러 청나라는 중국으로 조선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일본이 우리의 영토를 중국에 넘겨준 간도협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중국에 통보하고 간도협약 이전의 상태에서 국경 재조정을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대 중국관련 강력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002년 2월부터 공개적이고 대대적으로 시행한 동북공정을 통해 “고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한국에서는 동북공정이 단지 “중국의 한국고대사 빼앗기 공작”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동북공정에서 고구려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의 현실적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북공정의 실체가 간도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2009년 10월 북·중수교 60주년을 맞아 중국 원자바오총리의 방북으로 북중간의 경제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의 교통인프라와 연계한 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대와 동북3성(간도)개발을 통한 실지 점유를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포석된다. 결국 중 장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근래 중국당국은 최근 고구려가 축성한 성을 없애고 그 위에 중국식성을 축조하여 만리장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홍보로 역사를 왜곡하며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을 기만하며 우습게 여기고 있다(kbs 역사프로그램에 반영). 우리가 중국에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조성현 평가위원 사견).
7. 간도관련 최근 동향 - 민간단체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gando.go.kr)의 꾸준한 홍보활동으로 간도관 련 홈페이지에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방문 관심이 늘고 있음 - 2009년 8월15일 광복절 부산국제외고 등 2개교는 연합하여 피켓 시위 등 간 도캠페인 행사를 갖은 바 있다. - 젊은 역사 선생님들이 과거 깊이 배우지 못했던 간도의 역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학생들에게 간도관련 숙제를 내는 등 역사 선생님 위주로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 -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간도협약 체결일(1909년 9눨 4일) 즈음에는 간도관련 뉴 스와 기획보도를 하고 있고 역사스페셜(KBS)에서도 간도문제를 다루었음. -청일 간도협약 체결 100년을 맞은 2009년 8월~9월 간도관련 인터뷰 및 기사 언론에 쇄도(봇물) -2009년 8월15일 KBS 9시뉴스에는 간도되찾기 대학생 자전거 국토 순례단에 참여한 대림대 엄세혁 학생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모르는 간도라는 땅을 알리고 다녔다는 것에 대해 보람차고 가슴 뿌듯하다’ 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일대 독도·간도센터는 2009년 9월 4일 ‘간도의 날을 맞아 대구시 동구 망우공원내에 있는 광복회관 항일운동기념탑 광장에 실물과 같은 크기의 백두산정계비를 복원 제막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도 독도와 함께 간도도 우리가 지켜야할 땅으로 간도관련 부스를 마련하고 우리의 고토간도를 홍보하고 있음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관한 결의 안’을 자유선진당 이명수국회의원 이 대표발의하고 50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동서명하여 국회외교통상위원 회에 제출(2009.8.28) -사)간도되찾기운동본부는 자전거 간도되찾기 전국투어, 간도협약 100년 학술대회, 국회 간도자료전시회, 간도 및 재중국 조선족 문제에 관한 학술토론회 개최, 국회의원 간담회, 국회 외교통상부 간도협약 무효안 제출, 민족자주연연맹 등과 공동으로 유엔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협약 무효 및 간도반환 소송제출’, 간도의 날 선포 및 기념식개최, 간도관련 언론 및 인터넷홍보, 간도신문 발행 사업, ‘어린이 우리 땅 간도 바로알기’ 간도책자 편집위 구성 및 제작 등으로 간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국민계몽
8. 학자 등 간도관련 견해 -자유선진당 이명수 국회의원은 “1909년 9월 4일 청일과 체결한 간도협약 이후 36년의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남북대치의 민족적 불행을 겪으면서 100년이 다되도록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간도협약은 일제가 권원 없는 3국의 영토인 간도를 임의로 청나라에 넘겨준 것으로 국제법상 효력이 없다.“ 라고 밝히면서 ”간도는 우리의 옛 영토 이었지만, 이미 중국이 실효적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회복과 반환을 요구하기에는 어려움은 있으나 통일한국이라는 미래를 대비하고, 암울했던 민족의 과거사를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으로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국가적 중대 사안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의 옛 영토에 대한 시대적 소명의식을 재정립해야한다는 차원에서 간도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원천적 무효를 선언하는 결의안을 제안(2009.08.28)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은 간도협약이 국제법상 무효인 조약이면 상대국인 중국에 이 조약의 무효를 문서로 통보하는 것이 정부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리지 말고 헌법 66조 제2항에서 규정한 영토보전의 책무를 보전하라고 촉구한다. 결국 간도협약 무효문제도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부의 입장은 우리가 보전해야할 간도영유권을 포기해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간도협약의 무효통보는 국가이익 중 핵심이익이자 영토보전의 권리를 행사하는 우리정부의 고유한 권리로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정부는 주권을 가진 정부라고 할 수 없다. 우리정부는 간도협약의 무효를 통보하지 않음으로서 간도지역에 대한 ‘점유시효’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훗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될 경우 우리가 불리할 것이 뻔한데 정부는 ‘간도협약 무효통보’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간도 및 재중국 조선족 문제에 대한 학술대회(2009.11.18)에서 해외한민족연구소 이윤기소장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2년 중·일간에 체결된 평화조약에서 간도협약을 포함한 1941년 12월 9일 이전 중·일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가 되었다 이제 역사적인 과제인 간도영유권 문제를 제대로 연구하고 방책을 강조해야한다고 밝혔다. -또한 최장근교수(대구대)는 토론에서 ”우리정부의 간도 영유권에 대한 분명한 주장이 없는 한 ‘한중 간도영유권 분쟁은 없다’며 정부차원의 간도영유권 주장을 촉구했다. 최장근교수는 통일이 성취되면 국경문제가 중대한 외교문제로 등장할 것이 명약관화 하므로 간도문제에 대해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철저히 연구하는 것은 국가적 중대사라고 밝힌다. -연세대 김우준교수는 “간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결코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닌 한국의 정당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헤럴드 경제 2009.09.03일자 발췌) -인천대 노영돈 법학교수는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점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의 조선․중국 침략당시 맺은 모든 조약이 무효화됐음으로 간도협약 역시 무효이다 -신형식 이화여대 교수는 만일 고구려가 중국의 영토였다면 그들의 코앞에 쌓은 그 많은 고구려 성곽과 천리장성을 막아야했다. 그러나 막았다는 기록도 없고 막지도 못했다 -(권순창 23, 아주대)독도도 빼앗기고 있는데 무슨 간도냐고 않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의로 간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지금학생들은 간도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다.(2009년 8월15일 뉴스천지 발췌)
9. 관련학회: -백산학회(1966.4.27 창립) 회장 : 신형식 총무간사 : 육낙현 이융조, 박용운, 이범직, 이현희, 공석구, 이문기, 전호태, 한규철
-간도학회(2004.2.6 창립) 이일걸, 노영돈, 이성환, 김우준, 최장근, 이성환, 김현영
-간도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모임 김원웅, 장경수, 김재윤, 강창일, 우제항, 이승희, 한광원, 노영민, 이원영, 신국환, 김재홍
10. 간도 사료관의 학술적·교육적 가치 -이러한 간도문제는 독도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물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교육되어져야할 국가적인 교육이슈이며 역사적 소명인 것이다. -이러한 간도는 위치적으로 중국에 위치하여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자치단체는 없으며 이 국가적인 역사교육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국가의 장래를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만이 그 연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시의 자매도시인 울릉군에서 독도 아카데미를 개설 독도지킴이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적 문제라 해서 꼭 중앙정부에서 만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사고의 틀에서 탈피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국가의 중요한 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도의 학술적·교육적 가치는 매우 높다 하겠다. -일제에 저항하는 항거가 과거 우리안양에 있었고(원태우지사의 사례 등) 항일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안양(이종걸 국회의원, 이형진 야구협회회장 등 유족) 임을 감안 항일운동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안양의 항일 사료전시관 및 부대로 간도를 테마로 한 역사문화콘텐츠를 개발하여 우리안양을 전국에서 주목받는 역사 및 민족교육 교육의 장(場)으로 육성하여 교육문화도시 안양의 도시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11. 기대효과 -간도아카데미(전시관) 건립시 수도권 지역 유치원, 초․중․고·대학생 등의 영토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한다면 학술적 교육적 가치는 매우 높음 -안양예술공원 내 예술품․물놀이시설(워터랜드)들과 연계한다면 1일 (역사․예술․ 레저)역사교육 프로그램 상품으로 개발 가능 -전체적으로 안양예술공원의 명소화 추진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됨
※북방민족나눔협의회 간도되찾기 운동본부 안양지부(손상윤 지부장)에서는 혼자보기엔 귀중한 간도관련 학술 자료(간도관련 고지도, 서적류, 간도가 한국영토임을 입증하는 희귀자료 등 사료) 수천 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안양시를 비롯한 전국지자체에 무상 기증할 뜻이 있다고 저에게 밝힌바 있어(안양시에서는 전시공간만 제시하면 됨), 이 뜻을 안양시가 받들어 수렴하여 국가에서 나서지 않는 역사문화컨텐츠를 타 도시 지자체보다 우리안양이 먼저 선점하여 간도관련 전문 전시관을 꾸민다면 전국에서 민족의식 교육의 장(場)으로 주목받는 이색박물관으로 각광을 받으며 전국에서 우리안양을 찾아 지역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끌어 올릴 것으로 주목된다.
12. 외교통상부의 입장 -북방민족나눔협의회가 ‘간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중국에 통고하는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청원서 제출(2010.02.10)에 대해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3월 9일자 회신에서 “1905년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이 무효인 만큼, 이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이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게 1909년 청과 체결한 간도협약도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주장만으로 간도 영유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전제하고 시효에 관련해서는 “국제법상 시효취득에 대한 일반원칙은 없으며, 시효의 완성여부도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될 사안입니다.”, “간도문제는 여러 나라와 관련된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인 바, 앞으로 좀 더 정확한 역사자료 수집 및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밝혔다.
13, 안양의 항일운동 -일제강점기 안양에 인재가 나오는 것을 막고 민족의 정기를 훼손할 목적으로 삼성산 일대에 혈침을 여기저기 많이 박았다는 제보가 있음(삼성산경로당 어르신 등 제보) -삼성산 경로당 어르신의 제보에 따르면 안양예술공원 인접 삼성산 석산에서 혈침을 제거한 적이 있다고 하심 -일제에 항거한 안양출신 원태우(元泰祐1882~1950)지사의 사례, 원태우지사는 안양출신 애국지사로 1905년 11월 17일 일제가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조약에 비분강개하여 단신으로 애국의거의 거사를 감행했다. 1905년 11월 22일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역을 경유 서리재고개(현, 안양육교)를 지날 때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힘으로서 자주독립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체포되어 모진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으며 평생을 불구로 지내다 1950년 6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셨다. -서이면사무소, 안양역사관(평촌아트홀내)관 운영 안양시 항일관련 사료 및 자료전시 -항일운동의 유족 등 후손 들이 안양거주 이회영의 손자 이종걸 국회의원, 이형진 야구협회장 등 -이종걸 국회의원의 부친 우당 이회영은 안양과는 연고는 없지만 나라를 빼앗긴 100년 전인 1910년 12월 10일 6형제의 온 가문의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 망명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항일 투쟁에 앞장서나 안타깝게도 끝내 독립운동을 보지 못하고 일제 치하에서 옥사한 역사속의 인물이다.
14. 간도아카데미 조성 추진방법 -간도협약 체결일(1909년 9월 4일) 즈음하여 안양시평생학습원 석수도서관 1층에 시민을 대상으로 간도사료 기획전시 추진(관장 또는 열람팀장 등 도서관관계자 사전 기획전시 협의) 또는 평촌아트홀내 기획전시실 간도사료 기획전시 추진(1차) -간도사료 기획전시의 반응을 평가하고(평가를 떠나서 민족의 영토와 관련된 학술적 의미가 큰 자료이므로) 안양예술공원 문화재와 연계하여 구.유유부지에 가칭)간도아카데미(사료관)을 꾸며 간도관련 사료(지도, 도서류 등)를 체계적으로 진열 전시하여 역사 교육 문화 예술 프로그램 운영방안 모색 -관련 학회자료 기증(무상)받아 간도관련 사료전시, 시청각교육, 체험 공간 등 조성-북방민족나눔협의회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발행한 간도우표(나만의 우표 2종발간) 등 전시, 간도지역 개척과 생활상 사진 및 자료전시, 백두산정계비와 관련된 자료전시, 서양지도에 나타난 간도 등 지도 류 전시 -민족의식 및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역사교육의 산실을 제공 -안양1번가 서이면사무소의 항일운동 관련자료 및 평촌아트홀 안양사료관의 안양항일운동사료와 연계하여 우리 땅 간도를 적극 홍보 -안양예술공원 인프라와 연계 간도관련 사료를 전시하는 전시관을 꾸미고, 예술공원 문화재와 연계하여 우리의 고토 간도가 우리 땅임을 적극 홍보 및 계몽(2차) -기타 추가적인 안양의 항일운동 관련 사례 발굴조사 및 자료화 데이타베이스관리 -필요시 안양의 항일운동전시관을 별도로 꾸미고 부설로 간도 아카데미전시관을 운영하는 방안도 모색 (항일투쟁 모습을 담은 사진 등도 함께 전시, 일본만행 전시, 체험학습 등) - 타 지자체 민족의식고취와 관련 전시관 우수사례 등 조사 분석(벤치마킹 등) 예시)천안 독립기념관, 울릉군 독도아카데미, 거제도포로수용소전시관 등
15. 조성부지 -안양예술공원 구. 유유공장부지 복합문화 공간조성 시 테마전시관 검토 -도서관 신축 시 부설 간도관련사료실 추진 검토 -기타 적절 후보지 물색(국립수의과학검역원 부지 등) ※안양시에서 검토하고 있는 구.유유복합문화공간 조성과 관련하여 김중업 전시관 이외에 유유부지복합공간 조성 시 국정국어교과서류를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안양책박물관, 간도관련사료를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간도아카데미, 유유부지 출토유물(안양사명문와편외+청동용두 등 유유가 보관하고 있는 기출토물)을 종합 전시하는 통일신라중초사관 및 고려 안양사전시관 등으로 꾸며 안양예술공원 관광인프라와 연계 구. 유유부지를 꾸며 역사교육문화공간으로 조성했으면 합니다.(조성현 평가위원 사견)
16. 전시일자 등 기타사항 석수도서관 1층로비에서는 도서수집가인 안정웅시설관리공단 이사장(전,안양시만안구청장)의 개인소장 자료인 1946~2006년까지 발간된 문학잡지 창간호(150권을 기획전시하고 있다. 향후 김운기안양시검도회장(국어교과서 수집가)의 6.25이전 국정국어교과서류, 단군관련 책 수집가의 도서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단군관련 서적류 전시는 10월 3일 개천절에 즈음하여 해 주시고 간도관련 단체의 진열전시를 8.15일을 전후해서 또는 간도협약 체결일 9.4일에 즈음하여 ‘간도, 우리민족의 발상지를 찾아서’ 라는 테마로 진열 전시하여 국민들의 관심과 경각심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주무부서는 적극 검토요망 드립니다.
17. 결론 조성현 평가위원의 사견으로는 안양예술공원 구.유유부지를 안양시에서 검토하고 있는 고.김중업건축사료관 이외에 중초사지(안양사지)에서 수습된 명문기와편 및 (주)유유보관 중인 청동용두 등 1959년 당시 제약공장 신축 시 수습된 유물 등을 전시하는 고려 안양사 테마박물관, 국정국어교과서를 전문적으로 진열 전시하는 안양책박물관(가칭, 국어교육사 사료관), 우리의 고토(옛땅) 간도관련 사료를 전문 전시하는 가칭)간도아카데미(전시관) 등 사라져가는 민족의식 및 역사의식 등을 고취하는 학습의 장(場)으로 꾸며 안양예술공원 관광인프라와 연계 역사 교육 문화 예술탐방 코스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사려 됩니다. 특히 간도관련 민간단체(사단법인)에서는 간도관련 방대한 희귀적 역사자료(지도, 서적류 등)를 보유하고 있고 이 사료를 안양시 등 희망하는 지자체에 무상기증 전시하고 싶다는 뜻을 저에게 밝힌바 있어 간도관련 자료를 안양시가 선점하여 우수한 양질의 문화컨텐츠를 확보한다면 안양의 교육문화발전 및 지역의 브랜드가치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례로 안양시 자매도시인 경북 울릉군의 ‘독도 아카데미(전시관)’는 울릉군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며 관광볼거리와 연계하여 멀리서 배를 타고 찾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8. 간도가 왜 우리의 영토인가? (간도지역의 개척과 생활상-간도신문 2010년 제 20호-) 일찍이 간도는 고조선을 잉태한 우리 민족의 발상지였고 고구려 북방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으며,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주 활동 영역으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우리민족의 영토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에는 우리민족의 고대 후손들(토착인)과 여진족, 거란족이 각지에 흩어져 살았으나 이후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유리한 우리민족이 대대적으로 이주해 개척을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간도의 주인으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하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전투 등 항일무장 투쟁의 근거지로 민족정신을 일깨운 현장이다. 이처럼 우리 땅 간도는 우리민족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우리민족이 대규모 간도이주를 급격히 촉발시킨 계기는 1869~1870년 2년에 걸친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의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과 1880년 회령부사 홍남주에 의한 경진개척(庚辰開拓)이다. 홍남주는 민생고해결을 위해 집단개척을 했다. 이에 조선관청에서는 관원을 파견하여 우리민족이 개간한 토지를 조사, 등록하고 토지대장을 만들어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북간도개척 분위기가 고조되고 서간도 일대에 우리민족 인구이주가 급증하자 1889년 조선정부에서는 평안도 관찰사로 하여금 압록강 대안지역의 우리민족 집거지역에 행정구역을 설치하여 조선정부의 관할내로 편입시키도록 하여 행정업무를 관장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은 조선인들의 간도 이주를 더욱 가속 시켰다. 이후 간도인구는 더욱 늘어나 광복직전 간도거주 조선인 수는 약 216만 명에 이르렀다. 이시기 간도는 항일 투쟁의 무대가 된 곳으로 즉 서간도 지역에는 대한독립단과 서로군정서, 북간도지역에 대한독립군과 북로군정서 등 수십 개에 달하는 항일 무장 단체들이 조직되기도 했다. 간도개척의 선구자 마을 명동촌은 애국지사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민족의식을 고취, 집결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한 민족운동의 요람,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명동촌에 1908년 명동서숙을 세우고, 이어 1909년 명동학교를 개교한 규암 김약연은 북간도 한인사회 첫 단체인 간민회의 총회장으로 3월13일 북간도 용정의 반일 시위운동에서 발표한 ‘독립선언포고문’에 서명한 17명 대표들 중 첫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평생 민족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했던 규암 김약연선생의 제자에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앓으면서도 별처럼 순결한 영혼으로 숨져간 민족시인 윤동주, 통일의 염원을 외치다 고인이 된 문익환 목사 등은 북간도 명동촌이란 고향이 낳은 대표적 인물이다. 북간도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헤는 밤’의 무대이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간도신문 2010년 제20호(‘간도가 왜 우리의 영토인가’ 등 일부 발췌外 인용) 간도신문 2009.12월 특집호(총19호)ㅡ이명수 국회의원 “간도협약 무효확인 결의안 국회제출”外 발췌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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