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0주일 강론 : 베엘제불과 성령(마르 3,20-35) >(6.9.일)
* 하느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악령의 지배에서 구하셨습니다. 성령의 보호를 받아, 이 세상에 있는 악령의 세력을 물리치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지난 6/3(월) 오전 사제모임 때, 이태리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 P 신부와 만났습니다. P 신부와 얘기하다 재밌는 내용들이 있어서 소개해봅니다.
P 신부가 이태리 로마 유학시절 기숙사에 살 때 아프리카 신부들이 많았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약속 개념이 없고, 안 씻는 사람이 많아서 암내(겨드랑이 냄새)가 대단합니다.(결코 아프리카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저도 유학 때 아프리카 신부들 몇 명 겪어봤는데, 그들 바로 곁에 있으면 냄새 때문에 정신이 멍해질 정도입니다.
신학교 때 전례부장을 맡아 규칙에 엄격했던 P 신부는 로마 기숙사에서 층 대표를 맡았는데, 아프리카 신부들에게 “저녁식사 후에 샤워하지 말고, 저녁 10시 이후에는 화장실 물 내리지 마라. 아래층에 있는 동료들이 공부하거나 자는 데 방해된다.”라고 했더니 P 신부를 싫어했답니다. P 신부가 군대를 다녀왔고, 라떼란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웃으면서 강압적으로 말하니까 힘들어했답니다. 그래서 그 기숙사에서 P 신부의 별명이 “베엘제불”이었답니다. “마귀 두목”이라는 뜻이죠.
어떤 행사를 마친 후, ‘오늘 행사 참 좋았다.’라고 P 신부가 느끼면 다른 사람들은 다 힘들어했답니다. 이렇게 P 신부는 규칙을 잘 지키며 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아도 P 신부 때문에 동료들이 힘들어했답니다.
아프리카 신부들이 P 신부에게 “Sei grande!”(너 대단하다.)라고 했는데,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가 느껴지잖아요? 자기를 비꼬는 것 같아 싫었답니다. 아프리카에는 외국 유학한 신부들이 거의 없어서, 석사학위 받지 않고 귀국해도 주교가 된다며, 성물방에서 주교 복장을 미리 샀다고, P 신부에게는 왜 안 사냐고 했답니다. 참 웃기는 신부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이태리어 표현을 아프리카식 억양으로 “Il Signore sia con voi.”라고 말하면 거부감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냄새에 아주 민감해서 제발 좀 씻고 살라고 얘기하면 싫어했답니다. 그렇게 관계가 악화되다가, 아프리카 신부가 P 신부를 학장 신부에게 고발해서 호출되었는데, 학장 신부가 “P 신부 마음에는 사랑이 없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괴로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아프리카 신부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엄격함 때문이었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예민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극도로 예민한 줄 몰랐답니다.
석사학위 후, 1년간 포콜라레 사제학교에 갔고, 인도 신부와 함께 같은 방을 썼는데, 2-3개월 살면서 인도 신부가 코를 너무 많이 곯아서 계속 참다가 학장 신부에게 말했더니, 그 얘기를 들은 인도 신부가 P 신부에게 화를 내며, 자기가 코 고는 것보다 P 신부가 코를 더 많이 곯아 괴로웠다고 했답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P 신부는 인도 신부의 말에 자신을 겸허하게 성찰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애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어쩌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죄짓게 하지는 않는지, 그들에게 마귀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2.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은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던 예수님께 “베엘제불이 들렸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약성서를 보면 베엘제불은 마귀로 간주되고 있고, 사탄과 동일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유다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신 기적이 하느님의 힘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탄인 베엘제불에게서 힘으로 일어난 것이라 주장하고, 또 예수님이 악마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영향력이 당시 사람들에게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완고함에 대해 비판하시면서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떤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긴 일을 성령의 힘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셨던 이유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 지난 며칠간 끔찍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4년 12월, 밀양 여중생 강간사건입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지만, 가해자 44명 중에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황당한 사건입니다. 그때 적절한 처벌을 했다면 지금 같은 후폭풍은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끝까지 찾아 제보해준 유투버의 집념과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 사건 이후, 피해자는 학교도 다닐 수 없고, 계속 피해를 당하며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습니다.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선량한 시민처럼 아주 멀쩡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태리 유학시절(2004.10-2005.8)이라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다시 알려져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회는 어린아이들을 괴물, 악마, 베엘제불로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피해자가 여러분 딸이나 손녀, 우리 성당 학생이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모른 척 발뺌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마귀의 노예가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