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흔들린다
지난 월요일 퇴근하며 강진 동성사거리 목화교 수양버들 강전지한 모습을 보았다. 해마다 연둣빛 가지 흔들며 가장 멋스럽게 봄소식을 알리고 여름에도 시원스러웠던 나무 밑 둥치엔 토막난 가지들이치 잔득 쌓여 있고, 나무는 전봇대처럼 보기 흉했다. 강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 한 그루였다. 꽃가루 때문이리라. 꽃가루 때문에 꽃솜 날리기 전 무참하다는 말이 어울리게 강전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지는 나무를 도무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실제적인 꽃가루 알레르기의 피해 때문일까 아니면 꽃가루 알레르기에 대한 막연한 루머와 편견 때문일까 의심이 든다.
어릴 때 생각해보면 서울에서도 수양버들은 흔했다. 태릉 봄소풍을 가며 중랑천 둑길을 따라 가득했던 수양버들과 거리에 날아다니고 굴러다니던 하얀 솜뭉치는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꽃가루 알레르기를 몰랐다. 우리 사회에 알레르기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수양버들은 거리에서 참사에 가까울 정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끔 지방을 내려갈 때 수양버들 가로수를 만나면 참 반가웠다. 더구나 동성사거리 목화교 수양버들처럼 제 수형을 가진 나무는 마음을 더욱 그득하게 해주었다. 내게 봄여름은 수양버들의 계절이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다면 나무가 가장 아름다웠을 절정의 때에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 다움과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옛모습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비록 봄과 여름의 절정 순간은 아닐지라도 이렇게나마 기억하고 싶었다.
수양버들의 꽃말이 ‘슬픔, 비애, 추도’라고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시편 137장)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