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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에 관한 예화 모음
▣ 한 사람의 영향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다. 하나님이 함께한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한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한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낸다.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한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연다. 독일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하나 되는 것이 십자가 정신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든다.
/최낙중 목사(관악교회)
▣ 웨슬레의 개혁 운동
웨슬레가 살던 시대에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해감에 따라 새로운 도시 빈민층이 탄생하였다. 석탄에 의해 불이 붙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웨슬레는 킹스우드의 광부들에게 설교하면서 산업혁명에 의해 가장 잔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웨슬레는 석탄을 캐는 광부들에게 깊은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무료 의료원을 세우고 신용조합을 만들었으며 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했다. 그의 목회는 더 나아가 납을 캐는 광부들, 철공, 구리공, 석공, 하역부, 농장 일꾼, 죄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까지 포용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 사회의 희생제물이 된 사람들- 에게 웨슬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의 노력은 복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적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할 정도였다. 예리한 안목이 담긴 많은 글들을 통해 그는 개혁을 외쳤다. "땅에 홍수처럼 만연하고 있는 온갖 부정과 불의에 대담하게 항거하는 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가장 숭고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확신하였다.
▣ 종교개혁자 녹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녹스는 스코틀랜드를 기독교국으로 만든 성도인데, 그는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고, 부정에 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가 구교 세력을 회복시키고, 개신교를 압박하려 할 때에 녹스는 용기 있게 일어나, 그것을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개하고, 또 메어리 여왕이 구교도인 사촌동생 단리와 혼인한 일에 대하여 그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때 여왕은 스파이의 말을 듣고, 녹스를 불러다 놓고 울면서 말하기를 "네가 내 혼인 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녹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나라 백성의 일원(一員)으로 지었으니, 나도 이 나라에 해로운 일에 대하여는 미리 경고할 책임이 있다"
1562년에 메어리 여왕은 녹스를 반역죄인으로 죽이려 했으나, 녹스는 의회에서 진리대로 분명히 말함으로써 의회는 그에게 무죄선고를 하였고, 또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스코틀랜드는 드디어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나라에 해될 일이 있을 때, 국민은 경고해야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 일반이다.(삼하12:7)
▣ 종교개혁
본문: 시23: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때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아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 같은 사람은 수천 명도 더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루터가 심문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 속에 서있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살아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터 교황청은 무서운 원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진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의 부릅뜬 눈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의 가치를 더욱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축복의 상에 참여케 하소서
▣ 종교개혁
프린스톤 신학교의 유명한 성서 신학자인 오토 파이퍼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이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씀이 "자네들 그 종교 개혁을 마틴 루터가 일으킨 줄로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일세" 라고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게 아니면 누가 한 거냐? 도대체 그럼 누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노교수께서는 다시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루터가 그 갈라디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말씀이 그 안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그 사람을 폭발시켜서 루터는 그 진리를 전파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네." 종교개혁은 루터가 한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한 것이라고 아주 신중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때에 루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께서는 다른 것은 전부 참고하게 하고 오로지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을 한 학기 내내 Page by page, 읽고 토론하고 연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 주석을 두 번 썼습니다. 처음에 쓴 것은 좀 작고 뒤에 쓴 것은 아주 큰데 신구약 성경보다도 큽니다. 이 갈라디아 주석을 읽어 나가노라면 루터가 얼마나 갈라디아서에서 불같은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생명력을 경험했는지를 우리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진리, 이 생명력이 그를 포로해서, 그를 사로잡아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나를 잡아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 개혁을 외치는 소리
에스더는 이방 나라의 왕비가 되었지만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결국 에스더의 결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임했더니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신앙의 선배들인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했던 그 결과로 오늘의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개신교도 세월이 흐르면서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비성경적인 전통과 기득권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생명을 잃을지라도 진리를 위해 개혁을 외치는 소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9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 성경: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 창조적인 선각자
1904년 영국 웨일스에 한 젊은 광부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탄진으로 범벅이었고 손톱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휴식 시간, 탄광의 광부들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었으나 청년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었다.청년은 달변가가 아니었다. 학문에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청년의 꿈은 영국을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그는 한 목사를 찾아가 강연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자네 같은 탄광노동자의 강연에 과연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단지 30분만 강단을 빌려 주겠네."
청년은 강단위에 올랐다. 목사를 포함한 17명은 그의 강의를 듣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5개월 만에 웨일스 시민 10만 명이 회개했다.2년 만에 2백만 명의 영국인이 회개운동에 참여했다.학생, 법조인, 주부, 교사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통렬한 회개운동을 펼쳤다. 재판관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 기도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이반 로버츠]이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선각자>가 영국을 타락의 늪으로부터 구출해냈다. 새로운 역사는 항상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쓰여 진다.
▣ 딕시의 개혁
도로시 딕스라는 한 미국 여성이 일으킨 개혁 운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학교 선생으로 29살에 폐병에 걸려 각혈을 했습니다. 의사는 요양을 잘 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요양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신약 성경을 되풀이해서 읽다가 “예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목사님이 찾아와 그녀에게 캠브리지에 있는 교도소의 여자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녀는 교도소, 보호소, 병원 등을 방문하면서 정신병자들에게 행하는 잔학 행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새장, 벽장, 지하실, 마구간 등에서 사슬에 묶이고 벌거벗겨져 몽둥이로 매를 맞아 가며 복종을 강요당하는 정신병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주를 다니면서 정신병자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했습니다. 또한 캐나다,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이태리에서 이를 위해 가두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었을 때 그 병원의 원장은 미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 휘장을 걷어라
1917년경 김길창 목사는 함안 기동교회의 조사로 부임하였다. 26세의 젊은 그의 안목으로 볼 때 교회 안에 혁신해야 할 문제들이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교회 당 안의 남녀석을 구별하는 휘장 제거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토요일 밤 기동교회의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서 일대 계몽 강연을 했다.
"여러분, 장터에 가 보시오. 남자들만 모이는 시장이 있고, 여자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한 집안에서 남자들끼리 살고 여자들끼리 따로 삽니까? 주 안에서 한피받아 한몸 이룬형제자매를 이 때묻은 휘장으로 갈라 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열변에 청년들은 크게 지지하였고 이튿날 주일예배를 마친후 김길창 조사는 교인들에게 휘장무용설에 대한 열변을 되풀이 한후 휘장을 없앨 것을 제의하였다. 이 때 연로한 안 영수를 제외하고 모두 찬동하여 함안 기동교회는 한국 교회 사상 휘장 제거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경남노회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임사부(지금 정치부)에다 안 영수가 김길창 파면 신청서를 냈다. 그 내용은 "동방예의지국에 남녀가 유별하거늘 교회를 지도하는 조사가 본 기동교회당의 휘장을 제거하였기로 김길창으 조사직을 파면해 주시길 청원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경남 노회는 안 영수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김길창은 교회 조사일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길창이 파면당한 1주일 만에 문창교회 한석진 목사가 그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문창교회에 부임한 지 1주일째 되던 날, 한석진 목사가 예배후에 온 교인들을 남게 하고는 "여러분, 김길창 조사께서 기동교회의 휘장을 걷은 일은 장한 일입니다. 우리는 김조사의 의견을 들어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그 자리에서 문창교회의 누루직한 때묻은 휘장도 제거되었다.
▣ 신앙의 절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에 일생을 바쳤던 존 낙스는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신앙인이었다. 그는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19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으며 영국여왕 메리 1세의 극심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절개를 한번도 굽힌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핍박과 고난을 받을수록 기도와 신앙의 열기를 더해 갔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추모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도가 이곳에 잠들다."
▣ 사회개혁의 능력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라이맨 애보트는 부룩클린 플리머드 교회 목사직을 사임한다는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왔던 사회개혁과 자선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교구민들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이 결코 그런 식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십자가 외에는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절대적 신념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72)는 「박해의 상징」인 메리 여왕의 불의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 에 왕정파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가?』 지휘관이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 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 배를 멈추게 한 희생
대형 여객선이 서인도제도를 항해하고 있었다. 한 소년이 갑판에서 애완용 개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개는 소년이 공을 던지면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그런데 소년이 던진 공이 크게 튀면서 바다로 빠졌다. 개는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오기 위해 파도가 높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소년은 선장에게 달려가 배를 멈추어줄 것을 당부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배를 멈출 수는 없다"
선장의 대답은 냉정했다. 그러자 소년이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선장은 할 수 없이 배를 멈추었다. 소년의 생명을 포기하고 항해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년과 강아지는 모두 무사히 구출됐다. 거대한 여객선은 개 한 마리로 항로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항해를 멈추었다. 국가의 개혁도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개혁에는 반드시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 희생의 크기에 따라 개혁의 폭도 달라진다.
▣ 매력의 비결
17세기 영국에서 경건운동인 「퀘이커敎」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식을 부정하고 「내면의 빛」을 따르며 영적인 체험과 선행을 강조했다.
영국에서 이 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퀘이커 교의 귀부인이 『어떻게 자신을 가꿔 그런 매력을 지니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입술을 위해 진리를, 음성을 위해 기도를, 눈을 위해 긍휼을, 손을 위해 자선을, 몸가짐을 위해 정직을, 마음을 위해 사랑을 사용했습니다』
▣ 사회개혁운동가의 아내
웰델 필립스는 노예제도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봉기에 참된 용기가 필요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참으로 위대한 개혁운동가였다. 그는 그 자신의 대범한 성품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그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 병약한 그의 아내는 필립스의 강연 여행에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필립스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주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해 주었다.
"여보, 지금이에요. 망설일 것 없어요!"
▣ 도전하는 삶
친정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 도전하는 삶
「폐쇄공간에서의 한계」를 여성이 도전한다. 96년 12월부터 1년간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에 사상 처음으로 미혼의 여의사 이명주씨(26)가 파견근무를 한다. 지난 88년 준공, 지금까지 남자대원만 파견해 온 세종과학기지 월동대가 처음으로 여성대원을 파견하는 것. 이씨는 앞으로 고무 보트훈련, 스키훈련 등 폐쇄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의지의 新 여성시대"가 본격화되는가. 소외를 당하거나 밀폐공간에 들어섰다고 금방 의지를 포기하고 좌절하는 남성들이 부끄럽다.
▣ 교회의 책임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독일은 치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독일에서는 민족적 자각과 사회적 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농민해방 행정개혁 군제개혁 등이 진행되는가 하면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자성운동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베를린대학 교수였던 피히테는 나폴레옹 점령 하의 베를린 학사원에서 1807년 12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했다. 피히테가 강조한 것은 독일재건의 길은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개혁에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당면한 현실의 개혁과 발전은 국민정신의 거듭남으로 시작된다. 우리 나라 교육이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어우러져 엮어낸 실패작이다. 교회의 책임은 국민 정신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전인적 구원사건이 우리 속에서 구현될 때 개혁과 갱신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종순
▣ 등불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다.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김의환 목사(성복중앙교회)
▣ 어떤 탄압에서도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독일전란 때 자유를 애호하는 자였다. 나는 이것을 보수하기 위하여 대학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독재자의 탄압 아래서 모든 대학교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다시 신문 편집자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독일의 자유를 위하여 글을 쓰던 유명한 저술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만은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 나는 교회에 대하여 애정과 탄복을 느끼는 바이다."
▣ 공동 묘지화된 교회당
구라파 도처에 궁전 같은 교회들이 있고 교회 경내에는 대개는 공동 묘지가 있다. 구라파인들은 98%가 크리스찬이라고 등록이 되어 있으나 결혼식과 장례식, 평생 두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주로 노인들이 교회에 참석하는데 평균 3%가 출석 교인이어서 공동 묘지화된 교회를 보는 느낌이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 드리던 한국 교인들이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미국 교인수가 줄어들자 많은 교회들을 한국 교회가 접수하는 중이다. 미국 교회도 최후의 몸부림을 다하지만 미국의 영성의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의 기류가 태평양 시대 기류를 타고 한국에 그 중심이 머물고 있다. 이 부흥을 잘 감당하면 영광스런 통일 복음 민족이 될 수 있으나(겔39장, 신28장), 잘못 감당하면 지금 짓는 거대한 교회들이 공동화하고 공동 묘지 같이 텅 비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예수칼럼 : 김준곤-
▣ 교회를 재건하자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몰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채찍으로 내리치셨습니다. 당대의 성전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채찍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이 썩어 냄새나는 부패의 상징,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을 완전히 개혁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바로 이 성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을 독차지하고 있는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일반 백성들 속으로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성전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타고 앉아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려고 예수님은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 '출입금지'를 없애야
나는 교회의 청년부를 담당하면서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히려 믿음이 좋다고 칭찬 받았던 사람들이 전도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가장 잘 믿었던 사람들이 사회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제 우리는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출입금지' 라는 푯말을 치워야 한다.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콜롬비아 대학에서 학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한 교직원이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출입금지' 라고 쓰여진 잔디밭에 들어가서 잔디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잔디밭에 직접 가보았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왜냐하면 그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지 않으면 수업을 받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젠하워의 결정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치우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드시오."
우리는 간혹 신앙적인 명분을 구실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피곤한 사람들이 달려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문을 열어라. 그들에게 친절하게 해주고 가까운 친구처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당신은 늘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서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 중화 기독교
십억 인구를 가지고 최고의 정신 문화를 가진 중공에서 일어나는 일에 성령의 세계 선교사적 현장성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기독교의 최대 이단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가 문화 혁명의 광란을 전기로 결정적 퇴조를 보이기 시작한 곳도 바로 중공이다. 중국은 중화하는 마력을 가졌다. 몽고가 와서 이 중화의 대해에 빠져 죽었다. 불교도 빠져 죽었다. 러시아와 서구가 와서 빠져 죽은 곳이다. 일본도 왔다가 빠져 죽고 달아났다. 공산주의도 빠져 죽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중화 대해에는 모든 것이 남아 있다. 이 대해에서 일단 서구식 기독교는 적어도 중화 중국의 지하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가정 교회에 몰려나고 만 셈이다. 돈을 주면 오염된다고 기겁을 하며 거절하고, 월급받는 목사도, 싸움할 교권도 감투도 없이 모두가 믿음 때문에 매맞고 감옥에 가고 쫓겨다니는 죽다 남은 산 순교자들 형제 자매들, 그리고 누구나 전도자들인 5천만 중국 교회는 비서구적 미래 교회의 한 묵시적 모델일지 모른다.
-예수칼럼 : 김준곤-
▣ 고정관념 깨뜨리기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행크 루이세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모든 농구 코치들은 두 손으로 하는 슛을 가르쳤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주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 손으로 하는 슛 동작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지식의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비젼을 품는 신앙이 곧 개혁하는 신앙이다
▣ 앞장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고, 실망을 느낄 수도 있으며,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앞장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다.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할아버지의 기도》중에서 -
* 아무리 외로워도 누군가 앞장서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좋은 방향, 아름다운 쪽으로...
▣ 시급한 자신의 개혁
"영국 종교 개혁사"의 저자로 유명한 버네트에게는 툼슨이라는 방탕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버네트는 몹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었다.
"얘야! 무슨 일이 있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니?"
그러자 아들은 얼굴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아버지의 종교개혁사보다 더 중대하고 간절한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니?"
"제 자신의 개혁이에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의외구나. 어쨌든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쁘구나."
"아버지도 저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또 웃음거리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또한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겠어요. 어차피 자신의 개혁은 자신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과연 톰슨은 자신을 개혁시켜 훌륭한 민사재판 소장이 되어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 모짜르트와 화장실
몇 년 전에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전셋집에 살았을 때 문간방에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 몇이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함께 살았는데 그 중에 리더격인 한 사람은 자신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숙소에서는 기타소리와 음악이 가끔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지하방이나 단간방들은 화장실을 대문 옆에 한곳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들이 일터로 나간 다음에 보면 가관이 아니다 휴지며 소변기이며 엉망인 것이다 청소를 해주면서 나는 이렇게 독백을 했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면 뭐하나 화장실 하나 잘 쓰지 못 하는데..."
요즈음 교회 개혁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열심인 한 형제가 생각난다. 그는 그런 일에 사명감을 느껴서 행사에 참여도 하고 글도 올리는 모양인데 도무지 그 얼굴을 교회에서 볼 수가 없다 수요일은 아예 없고 주일도 안 보인다. 아마 서울서 교회 개혁을 위한 연대 모임에 참석을 하고 때로는 문제 있다고 여겨지는 교회 앞에서 시위도 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모차르트 음악을 백날 듣고 읍 조리면 뭐하나? 똥 오줌도 제대로 못 누는 인간이.... 교회 개혁을 백날 외치면 뭐하나 주일이 뭔지 교인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말이다"
▣ 순응주의자가 더 위험
우리가 안고 있는 위험은 난폭한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순응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초래된다.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은 욕지거리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나, 갑작스런 행동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지닌 도덕적 정중함이 뒤엎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마치 시장에서 몇 가지로 한정된 유형 속에서 자신들의 옷이나 가구를 고르듯이, 자신들의 미덕이나 기호를 조심스럽게 선택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안고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
▣ 전통의 종말
265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의 피아노 브랜드 ‘브로드우드’(John Broad wood and sons)의 명맥이 끊겼습니다. 브로드우드는 1738년 존 브로드우드가 수제(手製) 피아노를 만들어온 이래 그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영국 왕실에 피아노를 고정적으로 공급해왔고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도 이 회사 피아노를 사용했습니다.
19세기 후반 피아노가 상류사회의 필수품이 되면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때 영국에는 피아노 제작업체가 360개나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세기 초반 독일과 미국의 양대 회사 독주체제에서도 재래식 생산방법을 고집하다 사양길을 걷게 되고 최근에는 전자 피아노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더욱 재정적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브로드우드는 3세기에 가까운 전통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에 민활하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 미국 구세군의 시작
미국 구세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1880년에 레일턴 부장이 여직공 출신의 7명의 독신 여사관을 인솔하여 개척하였는데 그들의 나이는 18세에서 20세 사이였다. 이 운동은 어떤 교회와도 관계없는 근로계급을 구원하는 운동이었는데 미국에서 제일 가는 악의 소굴에서 시작되었다. 첫 해에 1,500명의 결신자를 얻었으며, 그들은 흑인전도에도 힘썼다. 이것을 기원으로 하여 오늘날 네 개의 군국(軍國, territory)으로 성장하였다.
▣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사람들은 보통 상식을 벗어난 일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쉽게 포기합니다. 전화, 비행기, 잠수함 등 모두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처음 그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시험할 때는 정신병자로 취급당하여 정신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다 하니 상식을 뛰어넘는 꿈을 갖고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문화나 인류의 발전은 그런 꿈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도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많은 사람들이 꿈조차 꾸지 않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해..."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걸어가는 용기를 내십시오. 첫 걸음을 내딛고 나면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 바꾸어라
달구지의 바퀴는 맨 처음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너무 쉽게 닳았습니다. 그래서 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쿠션이 없어서 엉덩이가 너무 아펐습니다. 그래서 쇠바퀴가 굴러가는 길바닥에 고무를 깔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편하고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넓고 긴 길바닥에 고무를 까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동력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길바닥하고 바퀴를 서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에이, 그건 말도 안돼. 단단한 쇠 바퀴도 차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데, 고무는 무거운 것을 올려놓기에는 너무 물렁물렁해서 적합하지 않아.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이 사람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고무속에 바람을 넣은 타이어를 개발해냈습니다. 순식간에 고무 길바닥과 쇠바퀴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저 딱딱한 길바닥과 고무타이어는 그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돌이 커 한번 바꿔 봅시다. 한번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 개척의 의지
"세상이라는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말 못하고 좇기는 마소가 되지 말고 싸움하는 영웅이 되라. 그럼 우리 박차고 일어나서 일하자꾸나 그 어떤 운명과도 맞부딪칠 심장 지니고 자꾸 이룩하고 자꾸 추구하면서 노력하며 기다리길 배우자꾸나"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의 “인생 예찬”이라는 시 가운데 수록된 몇 구절이다. 인생이란 부단한 도전이요 끊임없는 개척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긴장의 연속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전이 없는 삶, 개척을 포기한 생활은 흘려서 떠내려가는 것이지 결코 사는 게 아니다. 성도의 신앙도, 교회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해야 한다. 이 세계에는 개척하고 개척해야 할 분야들이 무궁무진하다. 목표가 있고 의지만 있다면 지금 곧 시작하는 게 가능하며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안일한 생각은 개척의 최대 장애물이다.
▣ 개척자 정신
1927년 시속 160㎞도 채 안되는 단발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 단한 사람은 30대의 찰스 린드버그였다. 당시 사람들은 "젊은이,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이런 일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는 일은 아닐세" 라고 하면서 비행을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린드버그는
"세상엔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의미없는 돈을 모으는 수전노들이 있습니다. 사고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72세까지 살았다.
▣ 한 손 점프 슛
행크 루이세티는 수십년 전 미국에서 활약한 농구선수. 그의 절묘한 슛동작은 관중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루이세티가 등장할 무렵, 거의 모든 농구코치가 두 손으로 하는 슛동작만을 고집하고 선수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그럴 때 한 손으로 하는 점프슛을 고안해 시도했다. 다른 코치들이 그것을 비능률적이라고 반대했지만 루이세티의 코치만은 한손 슛 사용을 허락하고 개발하라고 했다. 그결과 농구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한 손 슛으로 승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에는 비난과 조소가 뒤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와 사고의 판도를 바꾼다.
▣ 기독교 인구가 늘어간다고 살기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9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 윈 윈(win―win) 개혁
개혁은 고치는 것이다. 잘못된 뿔을 고치고 썩은 고름을 짜내는 것이다. 못 되기 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잘 되기 위해서 고치는 것이다. 요즈음 개혁이란 말이 유행한다. 개혁이란 본래 참신한 느낌을 주고 일단 희망을 준다. 고치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개혁이란 말이 듣기 싫어지는 것 같다. 개혁이 잘 되기 위한 진통이라면 싫어질리 없지만 개혁이라지만 뭔가 잘못된 것이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뿔을 고친다고 하는데 소가 죽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름을 짠다고 하면서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뿔을 고쳐서 소를 살리고 고름을 짜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바른 개혁이다. 소도 좋고 사람도 좋고 고름을 짜는 사람도 좋고 고름을 짜내는 사람도 좋은 개혁, 이것이 윈-윈(win-win)개혁이다. 성경은 개혁을 촉구한다. 구약에도 개혁이 있고 신약에도 개혁이 있다. 구약의 야곱은 우상숭배와 약속 위반한 자신과 가정을 개혁했다(창 35장). 요시야는 당시 부패한 종교계와 정치계를 개혁했다(역대하 34∼35장).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다(마 9:17).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다(롬 12:2).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 부도덕과 부패와 나태와 우상숭배 등으로 계속 비뚤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된 개혁은 개혁 주체와 객체가 순간마다 개혁되는 것이다. 개혁 주체로서 개혁 객체만 개혁하겠다고 하면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개혁 대상이면서도 개혁 주체로 가장하여 개혁버스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사람은 개혁을 가장 혐오스럽게 하는 최우선 개혁 대상이다. 개혁의 주체와 개혁의 객체가 자기개혁과 타인개혁을 동시에 진행하면 양자가 유익을 본다. 개혁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양자가 안정과 안보와 경제와 단결과 평화를 잃는 개혁은 ‘이기는’ 개혁이 아니라 ‘지는’ 개혁이다. ‘서로 이기는’ 개혁을 할 때 개혁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은 뿔도 고치고 소도 살리는 ‘윈-윈’ 개혁의 지혜를 모을 때다.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
▣ 성공의 지름길
성공의 지름길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개혁을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아셔야 합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단순히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어둠을 어둡다고 하는 것! 썩어서 냄새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개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둠에 빛을 비추는 것, 썩는 곳에는 소금을 쳐서 썩지 않게 하는 일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개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개선하기 위한 충고도 있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내가 그 부족을 채우는 필요자가 되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삶의 패턴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있는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사용하고 발전시키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안 되는 것들을 붙잡고 씨름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 루터의 생각
교회 개혁의 대명사 마틴 루터가 남긴 명언이 있다.
"새들이 우리 머리 위로 지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새들이 우리 머리 위에 둥지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은 차단할 수 있다. 세상이 악하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악에 스스로 귀속되거나, 악행을 범하지 않으면 된다. 호랑이 등에 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악에게 당하면 악으로 되갚아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귀중한 해답을 제시한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다. 악에게 지지 말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4∼21) 루터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동일하다. 우리의 생각도 동일해지기를 소망한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 정치개혁보다 교회개혁이 더 급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해야할 한국교회가 요즘 몇몇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신교 초기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종요한 역활을 했는데, 어이된일인지 인구의 20%가 넘는 기독교가 예전 같이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가 침체에 빠졌는 가를 요사이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리고 교권,교만에 빠져 자기들이 예수님 이상 되는양 행세하는 모습들이 결국은 한국교회를 잘못 인도하여 결국은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것 같다. 강단에서 무조건 함부로 자기식으로 성격을 해석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상대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안는, 정말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으니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제 역활을 할수 없고ㅡ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하게 깨닫고 주님앞에 회개하고, 정녕 자질이 없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에 급급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제 세상도 정치 개혁, 깨끗한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늦었지만 교회도 개혁이 되어야하고, 그 중심에 교회 지도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교회는 날마다 개혁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개인 소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일로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는 귀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민일보 독자란에서
▣ 참된 교회의 모습
나는 비통해하는 미망인과 두 자녀를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돌보아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무리의 자원 봉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접했다. 몇몇 성도는 그 미망인을 조용히 찾아가서 현재와 장래에 필요한 재정적인 문제에 관해 도움을 주었다. 남자들은 이 미망인의 어린 아들을 감싸안으며 슬픔을 위로하고 이것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해 따뜻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 성도들은 네 살짜리 딸아이를 품에 안고 성도들이 얼마나 그들 가족을 사랑하는 지 또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 지 말해 주셨다. 왜 모두가 이같이 했을까? 그 여인은 교회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길 때, 교회의 가족처럼 우리를 세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 안의 하나님의 백성보다 우리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인내심과 동정심을 갖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려움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코이노니아를 나누는 사람들처럼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단체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4- 47)
▣ 천국의 비전
종교개혁자 칼빈은 죽음 후의 영원에 대한 희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부끄럽게도 야수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세의 삶은 우리를 꾈 많은 유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이 죽음을 열망하기보다 죽음에 대한 큰 공포에 싸여 있어서 죽음을 언급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것은 기괴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통해 고국에 유하기 위해 망명지에서 다시 부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사실에서 위로를 얻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칼빈은 “죽음의 날과 마지막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급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려고 하거나 권력을 가지려고 하거나 많은 명예를 가지려고 하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천상의 비전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뜬구름처럼 여기고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을 때, 그는 참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천상의 비전을 가진 사람, 그래서 권력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움켜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리고 섬기고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 「영혼의 눈을 뜰 때」/ 이양호
▣ 말씀으로 돌아가자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글이었는데 제목이 '망하는 길 10가지'였습니다. 그 첫째가 "전문가나 컨설팅업체의 말을 100% 믿는다. " 그러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런 사례가 실려 있었습니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유명대학 K교수, 그의 강의는 늘 인기가 있다. 사람을 몰고 다닐 정도다. 그런 그가 한 초청 강연장에서 그 잘하던 강의를 망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청중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얄팍한 술수나 꾀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아는 지혜입니다. 초대 교회가 타락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막으로 나아갔던 사막의 교부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운동을 통해서 당시의 교회들이 새로워졌습니다. 중세 교회가 교권주의에 매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성경에서 개혁의 불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 서정오
▣ 개혁에 관련한 성경 말씀
0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왕상 15:11,12)
0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대하15:12)
0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하였더라(대하17:6)
0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18:31)
0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3:8)
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 21)
0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
0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19: 45, 46)
0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2:14- 16)
0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0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 개혁에 관한 금언
0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모방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하기 전에 먼저 개혁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콜롬부스)
0 개혁은 최고의 두뇌에서 시작하여 민중에게로 내려간다.(클레멘스 메터니히)
0 가난한 자는 궁핍 때문에 개혁하고, 부자들은 싫증이 나서 개혁한다.(타키투스)
0 스스로 단 하나의 결점을 고치기 보다 천 가지 미덕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더 쉽다.(부뤼엘)
0 그대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싫어한다면 자신의 결점을 고치도록 하라(토마스 스프래트)
0 많은 사람들은 나무가 베어져 넘어질 때 조각을 모으는 즐거움으로 나무를 베기 원한다.(토마스 풀러)
0 챨스 폭스는 모든 혁명 중에서 왕정복고가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고 말하고 개혁은 혁명의 필요성을 예방하는 최선의 양식이라고 부언하였다.(칼렙 콜턴)
0 자기를 개혁하는 사람은 떠들기만 하는 무능한 애국자의 무리 보다 대중을 개혁하는데 더 많은 공헌을 하였다.(죤 카스파 라비테르)
0 죄악의 고통은 때때로 교정과 개혁에의 자극제로서 매우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죤 포스터)
0 지옥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길은 멀고 무한히 어렵다.(죤 밀턴)
0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대 원칙은 창조주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대한 인간 영혼의 개인적 책임이었다.(탈보트 윌슨 챔버스)
0 그대가 한 인간을 개조시키고자 한다면 그의 할머니부터 시작해야 한다.(빅토르 위고)
0 참된 개혁가는 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선으로 채우고자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챨스 시몬스)
0 진실한 사회 개혁가는 복음의 충실한 전도자이며, 정말로 사회 완성에 능력있는 유일한 단체는 그리스도의 교회밖에 없다.(실리)
0 민중 개혁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려는 것을 자신들이 먼저 실천해 볼 필요가 있었다.(찰스 1세/영국 왕)
0 사회 개혁에 있어서 영속적인 발전은 모든 단계마다 이해력과 의지력에 호소하여 확인을 받지 않고 된 일은 없었다.(윌리엄 매튜즈)
0 썩고 오래된 집에 한 회칠을 하는 것과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짓는 것이 다르듯이 외적인 단순한 개혁도 재생과는 다른 것이다.(아우구스투스 토플레디)
0 모든 용기있는 탐험가와 개혁가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따돌림을 당하는 운명을 가졌었다.(죠지 차버)
0 종교 개혁가들에게는 대담성과 모험정신이 있는데 이를 인간들의 목적과 행위를 통제하는 일반적인 규칙으로 잴 수는 없다.(다니엘 웹스터)
0 가장 좋은 사람들은 과오로부터 빚어졌고, 대부분 조금 나빴던 일로 인해 훨씬 더 착해졌다고 말한다.(윌리엄 세익스피어)
0 욕망을 억제하고 고집 센 뜻을 꺾기 위해, 그리고 영혼의 제 2의 천성을 이루기 위해 의식적인 자책과 고뇌를 느껴야 한다.(니콜라스 로우)
0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빨래줄에 걸려 있는 바지처럼 대부분의 개혁가들도 맹렬한 동요를 겪으면서 동일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오스틴 오말리)
0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이 적이다. 따라서 새 시대는 언제나 구시대로부터 범죄시 된다(J.C.F. 쉴러)
0 우리들의 운명은 개척하는데 있다. 각각 사회에 있어서는 그 하나 위의 것으로 진보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F.M.C. 푸리에)
종교개혁은 진행형
역사는 기억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샘이다.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도 있지만, 사건의 흐름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기억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족할지 모르지만, 후자는 오늘의 삶 속으로 가져와 소화하고 생수처럼 마시고 힘을 얻어 결단하고 행동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종교개혁 사건은 역사적 유물도, 박물관의 전시물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이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기독교답지 못한 타락과 허물이 종교개혁의 현장이었다. 개혁을 외치며 개혁의 분신으로 자처하며 태어난 '개신교'가 어느새 개혁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외부의 개혁 요구에 자기방어로 맞서기보다는 하나님이 준엄하게 명하시는 '항상 개혁하는'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개혁하는 교회를 먼저 선택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종교개혁
본문: 시23: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때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아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 같은 사람은 수천 명도 더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루터가 심문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 속에 서있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살아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터 교황청은 무서운 원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진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의 부릅뜬 눈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의 가치를 더욱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축복의 상에 참여케 하소서
뭐가 문제인가?
요즘 교회신문을 보면 '개혁, 변화, 갱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뭔가 새로운, 혁신적인' 이런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저런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대답은 하나같이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위기의식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을 돌파할 만한 의지는 없는 셈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힘'이나 '능'은 인간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학설(이즘)이나, 무슨 세미나, 무슨 운동, 무슨 목회 방법, 설계도, 무슨 단체, 지식, 기술, 테크닉 요령 등등 이것이 21세기 교회의 대안이라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것들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적 수단과 방법들을 비웃으시며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어디 한번 해 보라고...
하나님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하나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유능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니라, 나는 못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 억지로 끌어내어 쓰시기를 좋아합니다.
ⓒ최용우
종교개혁자 요시야
본문 : 역대하 34: 1- 33, 열왕기하 23: 21- 25
오늘은 종교개혁에 앞장선 요시야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요시야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와주신다’ ‘여호와의 낫게 한 자’ 또는 ‘고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유대 왕 아몬의 아들로(마1:10),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 왕들 중에서 가장 경건한 왕입니다.(왕하23:25)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성실함에 비추어 요시야의 무가치한 후계자들을 정죄하였습니다.(렘22:15) 역대기에서 요시야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히스기야의 모든 장점들을 지닌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부 므낫세는 55년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다가 말년에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나라에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과거에 범한 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상숭배하던 백성들의 마음은 좀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도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2년만에 죽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런 사악한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평생 하나님만 섬기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다윗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확고 부동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선대의 악한 왕들이 섬기던 우상을 제하고 우상을 섬기던 제단을 훼파하였습니다. 그리고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고 정결케 하였습니다. 이 개혁은 유다 뿐 아니라 북국 이스라엘에 까지 미쳤으며 앗수르의 세력을 배제하는 운동이기도 하였습니다.
제사장 힐기야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내다가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책을 서기관 사반이 왕 앞에서 읽으니 왕은 옷을 찢고 발견된 율법책에 비취어 볼 때에 자기와 그 백성과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여호와께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말씀대로 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여호와께 알아 보기를 원했던 유다 백성들의 장래는 여선지자인 훌다가 예언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살지 않고 사신 우상을 섬긴 결과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히 자신의 옷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죽을 때까지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을 예언 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하여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백성을 모은 후에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먼저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언약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아가 사는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후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려고 유대국을 통과하는 것을 막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죽으니 전 국민이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대하35:24-25)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대적 배경
B.C. 640- 609년경, 애굽(이집트)과 바벨론(바빌로니아), 앗수르(아시리아)가 근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패권을 다투던 시기입니다.
2. 생애
① 부왕 아몬이 암살당하자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대하34:1)
② 즉위 8년째 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정을 펼쳤습니다.(대하34:3)
③ 즉위 12년에 모든 이방 우상을 파괴하고 이교의 예배를 폐함(대하34:3- 7)
④ 18년에 성전을 수리함, 이때 율법서를 발견하고 대대적인 신앙개혁 운동을 펼침
⑤ 애굽과 교전 중인 앗수르를 돕기 위해 므깃도 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하였습니다.
3. 성품과 행적
① 선왕들의 실책과 우상숭배오 인해 퇴락된 성전을 수리하여 예배의식의 규율을 확립히였습니다.
② 율법서를 발견하여 대대적인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③ 온갖 악행으로 범죄한 선대의 두 왕들과는 달리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율례대로 선정을 베푼 어질고 신실한 왕입니다.
④ 하나님께 옷을 찢고 눈물로 회개하는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앞서 성급하게 행동하는 일면도 있었습니다.(왕아23:29)
4. 종교 개혁자로서의 요시야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반기를 든 종교 개혁가들의 보편적인 사상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인본주의적인 악습과 제도를 개혁함과 동시에 평신도를 위한 성경 번역 및 성경적인 교리 체계를 수립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개혁 정신이 온 세계 교회를 변화시켰고 세계 도처에 많은 개신교들을 융성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개혁의 기치로 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사상은 일찍이 유다 왕 요시야의 치적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유다 역사상 전무 후무(前無後無)한 성군(聖君)이였으며 또한 하나님께 인정받은 인물로서, 오늘날 개혁 교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중심
요시야 종교 개혁의 첫 번째 목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하다는 말은 '따르다'(삼상30:21), '좇다'(신11:28) 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요시아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이것을 종교 개혁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이 매사에 하나님의 뒤를 따를 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말씀 중심
요시야 종교 개혁의 두 번째 목표는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시야는 말씀을 부흥시키고 또 그 말씀을 실행하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요시야 이전의 왕들은 우상을 섬기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였지만,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그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중세 암흑 시대에 교회의 부패에 의해 가려 있다가 종교 개혁자들의 개혁으로 다시 부흥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요시야는 말씀 중심의 개혁가였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이념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안주하던 종교가들을 질타하는 세례 요한에게서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 원리는 다시 정립되었고 후에 교회사 가운데는 또다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종교 개혁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약 오백년,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 상태는 어떻습니까? 과연 성경이 보여 주는 개혁 정신을 따라 하나님과 말씀 중심의 신앙 위에 굳게 서 있습니까? 우리 안에 그 어떤 부패적인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것을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이므로 개혁하지 않으면 점점 더 부패의 정도는 심해집니다. 또한 신본주위(神本主義) 신앙은 사라지고 말씀은 우리 삶에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개혁가의 자세로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에 바로 서야겠습니다.
5. 여호와를 향해 힘을 다한 사람 요시야
요시야는 불과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어 3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왕입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는 므낫세로 55년간 유다를 통치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무죄한 사람들까지 마구 죽여(21:16) 유다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 유명했습니다. 므낫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과 신하들은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몬 역시 그 아버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우상숭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신하들은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그 아버지처럼 수십 년간 이런 사람을 왕으로 섬기고 이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신복들이 왕을 반역하였습니다. 왕을 궁중에서 죽였습니다. 그러자 국민들은 또 반역한 신복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비록 어리지만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된 요시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22:2에 기록된 종합평가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그가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살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그는 선왕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불과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요시야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왜 왕을 죽였을까요? 할아버지에게 고생한 사람들이 아버지에게도 큰 소망이 없음을 알 때 살해한 것이 분명함을 알았을 때 요시야는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백성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고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배나 조상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나로 저분처럼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과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것인데 요시야는 후자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신하들이나 백성들에게 신뢰받기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니 하나님께라도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향해 힘을 다한 왕이라는 칭호를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입니다.
첫째, 요시야는 여호와의 전을 깨끗이 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히스기야가 죽은 이후 누구에 의해 청소되거나 수리된 일이 없었습니다. 60여 년이나 누가 돌보지 않았으니 지저분하고 낡을 대로 낡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옛날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위해 헌금을 모았듯이(12:4-14) 요시야도 성전 보수를 위해 은을 모았습니다. 요아스는 어머니(아합의 딸) 아달랴가 우상숭배 정책을 쓰면서 낡아진 성전의 보수를 위해 20세 이상의 장정에게서 주민세 성격의 은을 받았고 서원한 사람들이 몸값으로 드리는 은과 자원하여 드리는 은을 제사장들이 받아 성전 수리하는 데 쓰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그 교회의 성전을 보면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나 교역자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식어진 교회는 건물도 사방 구석이 낡고 지저분한 채로 있습니다. 누구나 청소하는 사람이 없고 덜렁거리는 창문을 고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는 교회는 항상 건물이 깨끗하게 청소 정리되었고 부서지고 낡아진 곳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성전 관리하는 모습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청소를 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모습과 그저 할 수 없이 한 사람의 모습은 큰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을 청소하고 보수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이 흔치 않던 시대에 발견된 이 율법 책은 대단한 선물이었습니다. 수십 년, 아니 그 이상 성전의 어느 구석이나 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이 보수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것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이 율법 책 때문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율법 책을 읽어본 서기관 사반은 왕 앞에서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었습니다.
거기에는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내릴 경고와 저주의 말씀인 신명기 28장이나 레위기 26장 같은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곧 이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도록 하였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여선지 훌다를 찾아갔습니다. 선지자는 왕이 읽은 재앙과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시야는 이 재앙에서 제외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다시 율법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율법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로 하였고 백성들은 그 언약을 따르기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요시야는 먼저 여호와의 전에 있던 우상숭배에 쓰이던 물건들을 꺼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아세라 상을 내다 불사르고 미동(남창)의 집을 헐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전에서 시작된 개혁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3:4-20까지 읽어 보면 얼마나 철저히 우상의 뿌리를 뽑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제까지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의미도 바로 기억하지 못하고 해마다 형식적으로 지켜온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전국에 있는 우상의 제단을 헐어 버린 요시야는 온전한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이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지킨 모습은 역대하 35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무튼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습관적이고 관례적인 주일 성수나 절기를 지키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주일에 하루, 주일을 성수하게 하시고 여러 기념할 절기를 주신 것은 그 의미를 바로 헤아려 하나님과의 신앙에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지나치는 절기는 차라리 지키지 않은 만도 못한 것입니다.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된 그날의 감격을 잊지 않고 지켜지는 유월절, 일 년의 풍성한 수확과 소출을 감사하여 드리는 수장절, 율법을 받아 언약 백성이 된 것을 잊지 않고 지키는 칠칠절이 의미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어진 절기마다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절기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의 잔해를 제거하는 종교개혁, 다시 새롭게 지켜진 유월절, 이 모든 것은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한 요시야의 값진 업적이었고 하나님은 이런 요시야를 인정하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
우리가 요시야를 통해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1. 요시야 왕은 태어나기 약 300년 전에 이미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해 “요시야란 아들이 태어나 우상숭배하는 제사장들을 죽여 그 뼈를 태우리라”(왕상13:2)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요시야는 멸망직전에 있는 유다왕국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통치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는 16세 때 여호와를 찾기 시작했고 20세 때는 예루살렘의 여러 우상들을 훼파하였으며 6세 때는 각 지방에 있는 우상과 그 단들을 다 훼파하였습니다. 이만큼 그는 일찍부터 신앙생활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2. 등극한 요시야는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 뿐 아니라 교회의 지체된 마음의 성전까지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마수가 뻗치는 곳은 어디든지 가지 말고, 죄악된 사람과는 교제를 끊는 단호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3. 요시야 왕은 즉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런 행위는 깊은 후회와 자책의 표시입니다. 요시야는 왜 그토록 자책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기준을 듣는 즉시,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요시야가 단지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바를 따르기 위해 결단했고, 명령을 내려 행동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의 응답은 즉각적이었고, 과감했습니다.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단지 즉석에서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한 진리를 찾고는 끝나지 않는가요? 또는 ‘며칠안에 시작하도록 하자. 언젠가 행동을 바꿀꺼야. 이건 그 당시에나 가능해’라면서 꾸물거리거나 적당히 합리화시키지 않는가요?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결단할 것은 결단하자.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즉시, 그리고 온전히 순종 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4.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순종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의 신령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5. 요시야의 개혁이 왕국분열 이후 전대미문의 대대적이고 전국적인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다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그의 개혁이 외형에 치우친 미완성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요시야의 개혁은 국가 외적인 생활에만 작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까지 파고드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를 완전히 소생시키거나 구원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개혁이란 마음으로 부터 시작되는 개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6. 요시야가 거의 60여년 동안이나 사회의 곳곳에 뿌리박힌 온갖 우상숭배와 악한 제도를 철저하게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악에 물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호한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요시야는 비록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왕하22:2)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관을 가졌기 때문에 과거의 오랜 악습과 부정을 척결할 수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다음을 묵상하자.
① 당신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② 당신의 경우 말씀의 즉각적인 적용과 순종에 방해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③ 당신의 습관 중 당장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9. 참고로 요시야라는 동명이인으로 두 사람이 있습니다.(대상4:34, 슥6:10)
지금 우리는 ‘교회 성장 감소’라는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이런 위기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무감각한 지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맞이하고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에 빠지지 말고, 요시야 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의 회복과 도덕성의 회복,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목회의 역량을 집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순교적 신앙의 유산으로 이러한 것을 되살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여! 다시 부흥을 일으킵시다! 다시 뜁시다! 다시 일어납시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교회 안에서는 신자인데 교회 밖에서는 신자가 아닌 이중적인 생활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해야 하겠으며 특히 목회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회개운동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섬김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섬기기 위해서 오신 예수의 몸입니다. 따라서 섬김의 종으로 오신 예수의 몸된 교회는 마땅히 섬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섬김을 거부하는 교회는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부정하는 교회요 예수의 정신에서 떠난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교회는 영혼이 떠난 몸과 같습니다. 교회는 섬김의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히 갱신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그리고 섬김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와 성도가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순종하고, 복음을 가지고 앞장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기도: 만왕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이 시대의 교회를 위해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교회만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며 구원의 도구임을 믿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교회와 목회자,그들이 선포하는 말씀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어주소서. 그리하여 그 말씀이 생명과 능력의 도구들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지금 이 세상은 흉악한 죄악들로 인해 가치가 무너지고 도덕을 상실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을 향해 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외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무엇보다도 교회를 앞장서서 섬기는 목회자들을 깨어 경건하게 하소서. 성도들이 진리를 붙들고 삶의 현장에서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31년간 유다를 통치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1) 성경대로의 개혁
요시야가 왕이 된지 18년에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때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서기관 사반은 율법 책을 왕 앞에서 낭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오늘의 신명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 놀라서 옷을 찢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오도록 하였다. 이때 여선지자 훌다가 있었는데 그녀는 유다 백성의 타락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뜻을 돌이키실 수 없을 만큼 노하신 것을 말하였고, 요시야는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마음으로 재난을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요시야 왕은 백성들을 성전으로 불러모으고 율법 책의 내용대로 하나님 앞에서 명하신 것을 다 지키고 행하도록 서약케 하므로 일대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요시야 왕의 부흥운동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성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2) 종교개혁에 앞장선 요시야
요시야 왕은 먼저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 숭배에 사용한 모든 것을 제거하였고, 다음은 지방 성소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유다 각 성읍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에 불러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하였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였다. 북쪽 이스라엘에도 영향을 미쳐서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때부터 내려온 우상을 모두 제거하였다(왕하23: 10- 20) 요시야 왕은 유월절을 성대히 지킬 것을 명하였다.(왕하23:21) 그것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도록 했는데 신명기 16장 1- 8의 말씀에 유월절을 지키는 규례가 기록되어져 있다. 이토록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유월절을 지킨 왕은 다윗,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 밖에 없었다.
3) 죽음을 일찍 맞이한 요시야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성경)을 온전히 준행한 것이었다(왕하23:25)
그러나 요시야는 38세에 므깃도 전쟁에서 죽고 나라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앞에서 본 곳처럼 이미 유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요시야 생전에 심판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려고 일찍 불러 가셨다. 이런 일은 요즈음도 가끔씩 일어난다. 요시야의 힘을 다한 종교개혁은 유다가 멸망함으로 허사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선택된 백성들 속에 전해져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루터가 1517년에 종교개혁을 실천에 옮긴 것은 좋은 예이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0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 위해 나에게서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0 나의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0 우리 교회의 자랑은 무엇인가 이야기 해보세요.
0 한국교회가 어떤 점이 개혁되어야 하는 지 이야기 해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교회가 먼저 개혁되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교회는 개혁돼야 하며 항상 개혁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늘 자신을 새롭게 개혁해야 합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영혼구원은 물론 사회개혁에 앞장서야 합니다.16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 운동은 ‘도대체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습니다. 공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듣고 공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에 참여하면서 그 안에 있으면 그저 구원이 보장된다는 식의 중세적인 틀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는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구호와 교리에 그치는 신앙이 아니라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 운동은 이런 위기의식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신앙의 개혁운동이 필요합니다. 광복 이후 줄곧 계속돼
온 정치권력의 부정부패, 법과 도덕을 지키면서 살기보다 한탕을 노리고 편법을 일삼아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풍조 만연,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배금주의 때문에 온 국민이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졌습니다. 이런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한국판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제 할 일이나 잘 하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병리현상과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서 배우는 윤리가 현실에서 무용지물로 취급되는 것처럼 신앙의 바른 정신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것입니다.세계의 청소년 중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가장 존경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현재 전통윤리가 급속히 무너지고 서양의 근대적 가치관은 아직 한국 현실에 들어맞지 않아 윤리부재 현상에 빠져있습니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삶에서 자신들이 따라야 할 삶의 모범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참된 신앙은 로고스(말씀)와 함께 파토스(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가 있어야 하는데 신앙인들은 파토스적인 실천이 없는 절름발이 신앙을 갖고 있고 이 사회는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는 방향 없는 파토스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새롭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사회를 개혁하는 것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교회를 제일 먼저 세우고 첫 수확으로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정치 경제 사법 교육 등 사회의 총체적인 기능이 신앙의 정신으로 구현되는 ‘시온성’과 같은 사회를 세우는 꿈을 갖고 이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갱신하는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책임과 실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인사제’의 정신으로 이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신앙적인 가치관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의 여러 이익집단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서로 갈등하는 사회 집단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안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고 한국을 존경받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실천하는 신앙, 개혁하는 신앙을 가집시다.
* 예화(2): 한 사람의 영향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다. 하나님이 함께한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한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한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낸다.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한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연다. 독일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하나 되는 것이 십자가 정신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든다.
* 예화(3): 벼락에 맞아 죽은 친구
어느 날 루터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게 되었다.그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루터는 오랫동안의 번민 끝에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와 경건 생활로 천국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그러나 고민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그 고민의 핵심은 고행이나 독신,청빈이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선일까 하는 문제였다.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번민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시작했다. 시편과 로마서 연구를 통하여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는 근본진리를 발견했다.그리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다.그는 구원의 진리를 설명할 때 믿음을 빈손에 비교하곤 했다. 빈손같이 자신을 비우라.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 의지하고 주께 맡기라.그러면 주님이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신다.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먼저 비우고 가난한 마음을 소유한다.
* 예화(4): 질투와 미움
사울 왕이 범한 죄 중의 하나는 질투와 미움이었다.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키워야 될 그가 오히려 다윗을 질투하여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다.그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풀어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굴 속에서 자기 옷만 찢기는 망신만 당했다.그때 사울은 깨달았어야 했다.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종 분노의 칼을 갈다 결국 자기가 먼저 죽는다.
요한 스타우피츠는 루터를 진심으로 아끼고 키워주었다.루터를 키워준 스타우피츠가 없었더라면 16세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을까.종교 개혁자 존 칼뱅을 키운 윌리엄 파렐이 제네바에 있었기에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성공했다.다소에 묻힐 뻔한 사울을 불러내어 안디옥교회에서 동역한 바나바의 섬기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도 우리 주변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생기면 감사하게 생각하고,귀하게 여기며 인정해줄 줄 아는 현대판 바나바가 정말로 필요하다.
* 예화(5): 칼뱅의 죽음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4. 찬송: (521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2.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3.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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