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시온 산의 성지들
예루살렘 성의 남서쪽에는 시온산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이층 방이 자리한 곳입니다. 예수님 시대만 해도 이곳은 예루살렘 성안에 해당하였지만(마르 14,13.15)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슐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을 다시 지을 때 성 바깥이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였습니다.
시온은 히브리어로 ‘찌욘’입니다. 어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메마른”(이사 53,2)을 뜻하는 ‘찌야’와 어근이 같은 걸로 추정됩니다. 예루살렘은 광야를 낀 건조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찌욘의 어근을 ‘방어하다’라는 뜻의 ‘짜나’로도 봅니다. 왜냐하면, 옛 예루살렘 성은 시편의 찬양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감싸고 계시다(시편 125,2)”. 다만, 본 글에서 소개하는 시온산은 구약성경의 시온산과 동일한 곳은 아닙니다. 본디 시온은 다윗 성(2사무 5,7; 1열왕 8,1)과 성전(시편 78,68-69)을 가리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윗 성의 위치가 잊힌 결과, 잘못된 장소에 시온산의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래도 중요한 성지가 이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파스카 만찬을 함께하신 “큰 이층 방”(루카 22,12)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 이후에도 이 방에서 자주 모인 듯합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마티아를 사도로 뽑은 곳이 이곳 이층 방이고(사도 1,13-36), 오순절에는 성령강림 사건도 일어납니다(2,1-13). 오순절(五旬節)은 구약성경의 주간절(週間節)과 같은 절기인데요, 파스카로부터 사십구(7x7) 일이 지난 오십 일째에 해당하여(신명 16,9) 그런 명칭이 붙었습니다. 신명 16,12에서는 주간절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명시하는데, 그 외 구약성경에는 이날의 의미를 풀이해주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 이후부터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온 날이라는 전승이 생깁니다. 실제로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아온 “셋째 달”(탈출 19,1; 24,12)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첫째 달 중순에서 약 오십 일 뒤이니 근거 없는 전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주간절에 십계명을 받았듯이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셈입니다.
이 이층 방은 최후 만찬 기념 경당과 성령강림 기념 경당으로 나뉘어 있고, 아래 층은 다윗 임금의 가묘입니다. 원래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소유였지만, 오스만 투르크 시절 이슬람교에 넘어간 뒤 사원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도 메카의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랍이 있습니다. 그래도 성체성사가 기원한 최후의 만찬 장소답게 펠리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요(사진), 예수님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펠리칸은 먹을 게 없으면 제 살과 피를 뜯어 새끼를 먹인다는 새입니다. 1948년에는 이곳이 이스라엘 정부에 넘어가지만, 성찬 전례가 유래하고 성령께서 임하신 이층 방은 시온의 백성에 접붙여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으로 소중한 구원의 장소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6월 5일(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