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롬16:1-2)
2019.9.8 평신도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만약 어떤 한 사람이 4개월 동안 연속해서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들은 총 인원수가 250만 명 이였다면? 만약 한 사람이 일생 동안에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했고, 그 중에 백만 명이 결신했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목회자가 아니고 평신도였다면?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킨 인물이 바로 19세기 가장 위대한 부흥사였던 드와이트 무디(D. L. Moody,1837-1899)다. 가끔 무디를 목회자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는 침례교 출신의 평신도로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무디는 미국 메사추세츠주(州)의 노스필드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무디가 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는 17살 때부터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구둣방에서 점원으로 일했으며, 19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의 영향으로 복음적인 회심을 체험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무디는 목소리도 쉰목소리 비슷하게 컬컬해서 그의 말을 알아듣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설교문에는 많은 문법적 오류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약점들 때문에 오히려 더 겸손해 질 수 있었고,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무디는 평소에 좌우명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I can't. But God can.)”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차별 없이 구원받듯이, 하나님의 일에는 차별이 없다. 흔히 하나님의 일꾼하면, 목회자나 선교사 또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이들을 먼저 연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각자의 달란트들(재능, 은사, 중보기도, 각종 분야 등)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교단적으로 평신도주일을 제정한 것이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의 이름들을 거명하면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들은 평생 잊지 못할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거명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평신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인 1-2절에 보면,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뵈뵈(Phoebe)라는 자매다. 다 같이 읽어 보자.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16:1-2)
보통 우리들이 서로 대화하다가 어떤 교회의 이름이 나오면(“00교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이미지로 떠오르고, 어떤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다(“00교회? 아~ 독사 같은 00가 다니는 그 교회?”).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은 우리교회 이름이 나올 때 가장 좋은 이미지로 먼저 떠오는 사람이 되자.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는 자매는 겐그레아라는 이름이 나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참 좋은 성도였다. 겐그레아는 안흥항처럼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11km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시골동네 항구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이곳에도 교회를 세웠는데, 뵈뵈는 그즈음에 믿기 시작했다. 뵈뵈는 ‘밝다’, ‘빛을 비추다’라는 뜻이다. 뵈뵈는 그 이름의 뜻대로 보석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았다.
오늘 본문에 보면, 뵈뵈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는 말과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쓰인 ”일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인데, 이 단어에서 집사(deacon)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이로보건데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문의 정황으로 볼 때 혼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문화에서 여인이 혼자 장기간 여행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꾼이나 집사라는 단어보다도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은 “보호자라”는 단어다(“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여기에 쓰인 보호자라는 말은 ”프로스타티스(προστάτις)“인데, 그 뜻은 ‘후원자’, 또는 ‘좋은 친구(good friend)’이다. 영어성경에서는 ”큰 도움(a great help)“ 또는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뵈뵈라는 여집사는 평상시에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탁월했고, 꾸준히 후원하고 품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란 무슨 일이 있어도 배후에서 책임져 주고, 지지해 주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이 프로스타티스 즉 후원자와 좋은 친구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뵈뵈를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뵈뵈에게 영적인 보호자였듯이, 뵈뵈는 사도 바울과 여러 성도들에게 탁월한 도움을 주는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뵈뵈는 비록 시골동네에 사는 연약한 평신도 여집사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심장 속에는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그녀를 겐그레아교회 1등 신자로 만들어 주셨다. 아마 사도 바울이나 겐그레아교회 성도들은 그녀의 섬김으로 인해서 안정감과 행복을 얻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뵈뵈같은 성도가 많은 교회가 행복한 교회다. 참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안흥교회에는 뵈뵈와 같은 성도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행복한 교회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 더욱 뵈뵈와 같이 여러 성도들과 사역자들의 보호자가 되고, 주님이 주신 행복을 전염시키는 전염력이 강한 성도가 되기로 결심하자.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 곁에 있으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안정감을 주고, 계속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이런 삶을 살 때가 바로 내 인생의 전성기다.
그러나 뵈뵈의 전성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녀 인생의 진짜 최고의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추천하노니(1절)”라는 말 속에 숨겨져 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다. 그런데 이 편지를 로마까지 갖고 가서 전달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여집사 뵈뵈였다. 뵈뵈를 추천한다는 말은 뵈뵈가 로마서를 들고 로마에 도착하면, 사도 바울을 대하듯이 그녀를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대우하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 주변에는 많은 성도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연약한 그녀를 콕찍어서 로마서를 가슴에 품고 지중해의 거친 파도를 건너가게 하셨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평소 작은 일에서부터 착하고 성실하게 충성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사명을 맡긴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단지 로마서라는 두루마리 편지만을 품은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의 편지를 통해 변화될 유럽의 수많은 영혼들과 세계영혼을 품은 것이다. 이것이 그녀 인생의 최고의 클라이맥스라고 확신한다. 이 모습이 바로 지금 이 순간 평신도주일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뵈뵈는 별볼일 없는 작은 항구에 사는 평신도 여집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교회와 목회자와 세계선교를 위한 도구로 쓰임 받았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이 사는 안흥항 신진항 태안지역에서도 동일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차별 없이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시고, 우리 모두는 누구나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 집사처럼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의 보호자가 되고, 우리교회의 자랑거리, 예수님의 자랑거리가 되자. 뵈뵈가 로마서를 품에 안고 지중해를 건넜던 것처럼 우리들도 십자가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거칠고 황무한 땅에 사는 이웃들, 세계영혼을 향하여 나아가자. 그래서 주님과 함께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와 클라이맥스의 때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첫댓글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