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귀면
김경숙
상상 속에서 사는 귀신 얼굴은
본디, 세상에 없는 존재여서
고작 사람들의 두려운 곳에서만 산다
경주 황룡사터에서
연꽃봉오리 하나 물고 있는
오래된 귀면이 출토되었다
부라린 두 눈은 마치
삶의 나태함을 위협하는 듯
누구든 삶이 지겨울 때
각자의 두려움 속에 묻힌
귀면 하나씩 꺼내 보라는 듯
흉년을 견디며 전염병과 싸우며
천년을 넘게 버티느라
비록 몸뚱이는 잃었지만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있다
가장 귀한 것들은 귀신이 된다며
두려운 것은 곧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고
불타 없어진 법당 아래서
출토된 귀면이
큰소리로 외치고 있다
시작노트
시월, 구절초 향기가 눈부시다.
마당에 꽃들은 일렬로 피지 않아서 날짜들이 여기저기 꽃을 찾아다니며 달력을 자처한다. 봄이 생강나무를 찾아가고 해바라기에 여름이 들었다 가고 가을이 꽃무릇에 번지다 말라가고 동백나무에서 뚝뚝 떨어지는 겨울처럼 말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열두 달은 처마 끝에서 녹아내릴 것이고 담장 아래서 또 노랗게 돋아날 것이다. 그렇게 꽃 달력이 넘어간다.
피었다지는 꽃들 중에
혼자 보기엔 아까운 눈부신 날짜들이 있다.
2007년《월간문학》시 등단
제14회 천강문학상 대상
저서 :『빗소리 시청료』『먼지력』외
지헌야생화 연구소장
모던포엠 편집위원
웹진시인광장 디카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