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읍시다」 2024. 2.19
변합니다
문성란
쇠도 플라스틱도
언제나 그 이름
재활용돼 다시 태어나도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뭇잎은 달라요
1년 살고 나면
이름도 모양도 색깔도
지웁니다
다 비우고
변합니다
거름 먹고 자랐다고
거름이 됩니다
문득,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생명이 없는 것들은 재활용해도 그 이름 그대로 갖게 되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은
쉴 새 없이 모습이 변하지요. 다만, 변화의 속도가 느려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이어요.
나뭇잎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에는 파릇파릇 새잎 되어 돋아났다가 여름엔 푸른 잎이 되어 자라고,
가을엔 낙엽되어 떨어져서 마침내 거름으로 돌아가지요. 나뭇잎이 거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동안 가졌던 모든 것을 내놓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요? 거름 먹고 자랐다고
다시 거름이 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나뭇잎의 한살이를 보니 마치 성자의 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병호/시인ㆍ아동문학가)
* 문성란 시인인 2010년 <오늘의 동시문학>으로 등단했고, 2022년에 동시집 ‘나비의 기도’를 펴냈어요.
※ 출처 : 소년한국일보(https://www.kidshank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