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를 만드는 남자와 가사를 짓는 여자의 로맨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는 그 이야기만큼이나 영화의 테마가 된 노래 ‘Way Back Into Love 사랑을 찾아가는 길’ 또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텐데요. 이 노래가 지금도 여러분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그것이 멜로디인가요, 아니면 가사인가요? 사실 영화 속에서 이 노래를 함께 완성해 간 주인공 알렉스와 소피도 이 문제로 한창을 티격태격합니다. 음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멜로디’라고 생각하는 알렉스와 진심이 담긴 ‘가사’라고 주장하는 소피.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음악을 완성하는 멜로디와 가사 사이의 묘한 긴장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최유준 음악평론가의 칼럼으로 만나봅니다.
음악에 해박했던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당시의 음악이 화성의 논리에 빠져든 나머지 “말에서 완전히 분리된 예술”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순전히 물리적인 진동의 결합 효과로 국한된 음악은 자연의 목소리였을 때 불러오는 정신적인 효과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2007)은 로맨틱 코미디의 흥행 공식에 충실한 할리우드 오락영화지만, 사운드의 효과에 치중하여 노랫말을 하찮게 다루는 최근의 대중음악 풍토에 대한 루소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퇴물가수로 전락한 1980년대의 팝스타 알렉스가 인기 아이돌 가수 코라 콜먼으로부터 뜻밖의 듀엣 제의를 받아 그녀의 뮤비 촬영현장에 갔을 때, 동양풍의 이국주의와 섹시코드를 한껏 버무린 춤과 노래에 실린 가사는 대략 이랬다. “열반의 기쁨을 느끼고 싶어/ 오 샨티 샨티~/ 달콤한 구원과 불타는 열정을 원해”.
작은 공원에서의 이벤트 공연이나 소규모 모임의 초청 공연 무대를 전전하는 알렉스로서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단 2주일 만에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새로 써서 코라의 대형 콘서트에서 함께 불러야 하는 촉박한 일정의 미션이다. 곡은 직접 쓸 수 있지만 가사가 문제였는데, 우연히 만난 문학도 출신의 여주인공 소피가 작사가 역할을 해주게 된다.
이후 작사가와 작곡가로서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싹튼다는 통속적인 줄거리지만, 두 주인공이 각각 멜로디와 가사를 상징하거나 대변하는 점이 흥미롭다. 소피의 가사가 완성되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지친 알렉스가 “그냥 가사일 뿐이니 대충 내뱉으라”면서 ‘멜로디 우위론’을 내세우면, 발끈한 소피가 다음과 같이 답하는 식이다. “멜로디는 첫 인상, 육체적 매력과 같은 것이지만, 서로 사귀게 되면 그들만의 숨은 얘기들이 가사가 돼요.”
대중음악계에서 뮤직비디오의 시대가 열렸던 1980년대는 ‘가사(와 선율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악’에서 ‘볼거리와 사운드 효과에 치중하는 음악’으로 변해가는 이행기였다. 이 시기의 팝스타였던 알렉스가 가사를 다소 하찮게 여기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 가사를 다루는 방식이 좀 더 크게 바뀐 것은 1990년대 이후인데, 미디 컴퓨터 음악과 디지털 샘플링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대중들이 가사보다는 사운드 자체를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탓이 크다. 루소가 말한 “순전히 물리적인 진동의 결합 효과로 국한된 음악”은 아이돌 댄스그룹들의 미디 샘플링 음악에 가장 잘 부합한다. 음악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산업화된 음악생산과 소비 속에서 퇴행적 양태를 불러왔다.
영화는 아이돌 음악의 섹시 댄스를 잠시 멈추고 느린 발라드 선율에 실린 편안한 가사로 돌아오는 보수적 방식으로 안일하게 해피엔딩을 유도하지만, 영화 밖 음악계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기형화된 문화산업은 ‘노랫말’을 소홀히 다루는 정도가 아니라 ‘노래’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일단이 엿보인다. 여기서 알렉스는 <80년대 퇴물가수 배틀>이라는 텔레비전의 새 프로그램에 섭외 받아 제작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잊혀져 가는 1980년대의 가수들이 경쟁을 벌여 이긴 쪽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데, 그 경쟁 종목이 글쎄 권투란다. 2007년에 개봉된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나는 수년 후에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탄생할 줄은 미처 몰랐다. 권투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 탄생 배경과 발상은 거의 똑같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제는 일상화되어버린 크고 작은 서바이벌 음악제전에서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좋은 가사의 노래를 부르곤 하지만, 거기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사실상 ‘권투’와 같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화성 탓에 음악이 말을 잃어버렸다는 루소의 한탄조차 배부른 소리로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 최유준 (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등의 지면을 통해 음악평론가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과 대중문화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사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비평적 노력을 해왔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식인의 표상』,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 『아도르노의 음악미학』, 『뮤지킹 음악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