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민어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만 되면 올 해는 민어를 제대로 먹어야지 생각하는데 그게 현실로 실현되는 것은 10년에 한 번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민어가 ‘백성의 물고기’라는 말은 예전부터 믿지 않았는데 그게 잘못 전해진 말이라고 합니다. 민어(民魚)가 아니고 민어(鰵魚)·면어(鮸魚)라고 하던 것이 근래에 와서 민어(民魚)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많이 잡혀서 여름에 백성들도 보양식으로 먹었다는 얘기가 일부 있지만 그때도 귀한 생선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민어를 제대로 먹으려면 네다섯이 30만원이 넘게 드는 비용이라 생각은 있어도 민어를 먹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런데 수족관에 있는 민어는 전부 가짜라고 해서 또 놀랐습니다. 민어는 살려서 수족관에 넣을 수 있는 생선이 아니라고 하니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벌써 여름입니다. 슬금슬금 민어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름 보양식의 대표 주자가 되었지요. 민어는 어쩌다 여름 생선이 됐을까요? 여름에만 잡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더욱이 민어는 여느 제철 생선과 달리 선어회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행기자가 생선회 먹는 법’ 두 번째 순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이른바 계절 별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이 칼럼은 100% 취재를 바탕으로 삼았지만, 100% 진실이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바다가 그만큼 넓습니다.
민어 산란기는 늦여름입니다. 하여 여름에 제일 살이 오릅니다. 조선 시대 복달임으로 민어를 먹었다는 기록이 알려진 뒤 부쩍 관심이 커졌지요. 개고기 식용 문화가 자취를 감추자 민어 인기가 폭등했다고 말하는 수산업자들도 있습니다. 일종의 대체재라는 주장인데, 저에겐 제법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문제는 여름 민어가 너무 비싸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몇 년 새 여름 보양식으로 민어가 뜨면서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전남 목포에 가면 민어 거리가 있는데, 거기서도 여름엔 1인당 5만원 가까이 줘야 민어 정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급증한 수요만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해서입니다. 하여 남도의 일부 생산·유통업자들이 봄에 잡은 민어를 냉동시켰다가 여름에 내놓는다고 합니다.
민어는 제철 생선인데도 숙성해야 더 맛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맛 칼럼니스트들이 있습니다.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목포시청 관광경제수산국장에서 퇴임한 김천환(61)씨는 소문난 낚시광입니다. 이 양반이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습니다(물론 낚시꾼 말은 절반만 믿어야 합니다).
”민어는 선어회가 맛있다고요? 민어 활어회 먹어봤어요? 내가 18㎏짜리 민어를 낚시로 잡았었거든요. 그걸 배에서 바로 회 떠서 먹었어요. 그 맛을 여태 잊지 못해요. 민어 활어회 먹어보고 선어회가 더 맛있다고 하면 나도 인정할게요.”
민어는 깊은 바다에 사는 생선입니다. 부레가 커서 물 위로 올라오면 바로 죽습니다. 하여 민어는 활어회로 먹고 싶어도 먹기가 힘듭니다. 목포 어시장에 여러 번 나가봤는데, 두 시간 전에 잡아 왔다는 데도 허연 배 드러낸 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서울 횟집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민어는 민어가 아닙니다.
애초에 민어를 숙성해서 먹은 건 선어가 더 맛있어서가 아닙니다. 활어를 구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숙성 기술이 발달한 일본 문화의 영향이 컸다고 하네요. 일제 강점기 전에 우리 민족은 말린 민어를 쪄서 먹거나 탕으로 끓여 먹었거든요. 현재 목포 민어 거리의 40년 된 민어 집들은 보통 24∼36시간 숙성한 민어를 회로 내놓습니다. 입에서 사르르 녹지요.
저는 선어회와 활어회는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즐긴다면 선어회가 좋고, 쫄깃쫄깃한 식감을 찾는다면 활어회가 낫지요. 배에서 갓 잡은 물고기 바로 회 떠서 드셔 보셨나요? 18㎏ 민어까지는 아니었지만, 저도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동시에 저는 일본 후쿠오카의 미슐랭 3스타 스시집에서 먹은 숙성 광어회 초밥도 잊지 못합니다.
네, 생선은 무조건 큰놈이 맛있습니다. 대물 생선 요리는 요즘 유행하는 미식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전남 여수에서 배로 2시간 30분 거리에 거문도가 있습니다. 삼치로 유명한 섬이지요. 거문도의 겨울은 삼치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 거문도에선 삼치를 회로 먹습니다. 삼치도 회로 먹느냐고요? 저런, 삼치는 회부터 먹습니다.
거문도에선 1m짜리 삼치도 흔합니다. 서울 생선구이 식당에서 파는 고등어만 한 삼치는 삼치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고시’라고 따로 부르지요. 이 섬에 소설 쓰는 한창훈(58) 형이 삽니다. 삼치랑 고시랑 어떻게 다르냐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답하더군요.
“개구리 새끼가 개구리냐? 올챙이지? 올챙이가 개구리랑 같냐?”>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고시가 삼치냐?'는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병아리를 닭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닭은 먹어도 병아리를 먹지 않는 것처럼 고시가 삼치가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생선에선 그런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맛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선어회가 활어회보다 더 맛이 좋다는 얘기가 많고 일본사람들은 활어회보다 선어회를 더 선호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저는 회는 당연히 활어회가 백 번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선어회를 더 선호하는 것은 예전에 물고기를 살려서 가지 오지 못했던 터라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옛날부터 회를 좋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일본사람들도 냉동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부터 생선회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살려서 가지 오지 못했기 때문에 선어회밖에는 없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회맛을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입맛이 더 낫다는 말은 웃기는 소리이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게 최고입니다. 요즘 토착왜구 욕하면서 생선초밥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던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생선회를 꺼리지는 않지만 민어회보다는 개고기수육이 백 번 낫고 초밥보다는 그냥 회로 먹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