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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부족하게 받아도 문제지만, 넘치게 받는 것도 상처가 됩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꽃피는 4월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봄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탄산음료를 하루 2잔 이상 마실 경우, 천식위험이 4.7배 더 높아진답니다. 우리나라 천식 유병률(어떤 지역에서 일정기간 내 발생한 병자수와 그 지역인구에 대한 비율)은 2.4%라고 합니다. 탄산음료를 마시면 염증반응이 늘어 천식이 악화된답니다.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사랑을 쏟아부은 형제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때문에 시달린 적은 없는지요? 같은 배를 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찬밥신세인 자신과 달리, 다른 형제들은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부족해도 문제지만, 넘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쩌면, 과잉이 결핍보다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들 또한 ‘짊어지고 있는 상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이야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이렇게 된 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20,30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남아선호사상의 거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빠나 남동생에 비하여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딸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희정 씨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우리 엄마는 오빠에게 뭐든지 다 해주면서, 딸인 저는 소홀하게 대했어요. 딸은 키워봤자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하시면서.” 희정 씨는 현재 엄마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오빠 때문에 온 집안이 매일 전쟁 중이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30대 중반인데, ‘효자노릇은 그만두는 대신, 경제적 혜택도 포기하겠다.’고 나온 상황입니다. “전 몰랐어요. 오빠가 그렇게 힘들어한 줄을!”
“사랑은 부족하게 받아도 문제지만, 넘치게 받는 것도 상처가 돼요. 부담으로 다가오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오빠는 부모님께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대신, 본인의 자아를 갖지 못했을 거예요.”(출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정신과전문의 유은정 박사)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우리 때 어머니들은 ‘자신들도 남아선호 사상의 전적인 피해자이면서, 왜 그들 자신이 아들 타령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친정에서는 시누이 입장이지만 시댁에 가면 분명 올케가 되건만, 왜 친정에 오면 올케를 힘들게 하는 시누이들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 딸은 친정에 빨리 오지 않느냐?’고 하면서 ‘왜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려고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아무쪼록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해봅니다.(물맷돌)
[한결같이 따스하게 아껴주시는 여호와의 사랑이 영원하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이에게 그 사랑 영원토록 보여주시리라. 그 자식의 자식에까지 주님의 어지심을 보이시리라.(시103:17,현대어) 만일 여자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하나님을 믿고 조용하고 순결하게 사랑에 넘치는 생활을 한다면, 그들은 구원받을 것입니다.(딤전2:15.현대어)]
“어머니,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샬롬! 꽃피는 4월의 네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부산에 ‘중장년층을 위한 아파트’가 서는데, 보증금이 7~8억이고, 한 달 관리비가 300~400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든지 자유이겠지만, ‘돈 있는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도 아주 째끔은 헤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가지지 못한 자의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일까요?
독서실 아르바이트는 다른 알바에 비하여 심심했습니다. 모두 말을 아꼈고, 자동화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서로 마주할 일도 적었습니다. 저 역시 청소를 마치면 카운터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실이 마감하는 시간이 되면 늘 한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장 안쪽 자리에서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마감을 알리는 것이 저의 마지막 일과였습니다. 여느 날처럼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자, 그가 깜짝 놀라며 짐을 쌌습니다. 저는 카운터로 돌아와 그를 기다렸습니다. 허둥지둥 나온 그가 뜻밖에 저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기다려주셔서 고마워요.” 그러곤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어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의 따스한 말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며칠 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고기를 사 두었는데, 집에 언제 올 거냐?’고 물었습니다. 서울에 혼자 올라온 아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독서실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통화를 마치기 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말에 갈 테니, 그때 봐유~.” 아무래도 어색해서 사투리까지 써 가면서 인사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얼마 뒤,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 철들었네!”하시면서 이 일을 동네방네 자랑한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습니다. 독서실에서 그가 말없이 나갔더라도 불만을 품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어머니께 건넨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건넨 한마디가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최재연 / 충남 아산)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속담 중에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건만, 우리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런데, ‘독서실의 마지막 그 사람’은 꼭 필요한 말을 했습니다. 아니, 독서실 아르바이트생을 감동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기다려주셔서 고마워요.”(물맷돌)
[은쟁반에 담겨 있는 금사과가 보기에도 아름답듯이,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하는 말은 얼마나 듣기가 좋은가?(잠25:11,현대어) 나는 교회에서 방언으로 만 마디를 말하는 것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섯 마디를 말하기를 원합니다.(고전14:19,쉬운성경)]
당신은 지금 그 뭔가에 꽤 깊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남미 ‘에콰도르’엔 ‘멸종’이라는 뜻을 지닌 꽃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40년 전에 이미 멸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이 꽃이 에콰도르 서부에 살고 있는 걸 다시 발견했답니다. ‘종족보존의 신비’라고 해야 할까요, ‘끈질길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순희 씨는 물품매장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3~4번 쇼핑센터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두 개의 신용카드를 최대한도로 사용했고, 세 번째 카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쇼핑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순희 씨는 말합니다. 순희 씨는 ‘쇼핑중독자’입니다.
영철 씨가 좋아하는 취미는 스포츠시청입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순간 스포츠채널TV를 켜고, 아침에는 전날 밤의 스포츠뉴스를 봅니다. 그는 여섯 개의 스포츠잡지를 구독하고 있으며, 종종 스포츠경기를 보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이동합니다. 그는 스포츠에 연간 수천 만 원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경쟁의 스릴을 느끼고, 그것이 저의 불안을 해소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영철 씨는 스포츠의 ‘흥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 목사는 동료목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화하면 이 목사는 자신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친구를 도와주려고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최근, 그는 동료목회자들의 도움요청을 확인하려고 ‘무제한전화’를 걸 수 있도록 휴대전화요금제를 변경했습니다. 이 목사는 말하기를 “저는 사람들을 돕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을 땐, 저 자신의 문제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이 목사는 그 자신이 ‘남 돌보는 일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의 세 사람이, 겉보기에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곧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뭔가 해야만 하는’ 이들의 행동에는 그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박증’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오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기회는 소용돌이처럼 그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박적 사고와 행동은 ‘모든 중독(中毒)의 기초’입니다. 중독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으로서, ‘뇌가 망가져 제구실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혹은 ‘사용하고자 하는 갈망’이 너무 강해서 ‘집착’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손상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도, 계속 ‘반복적인 행동’을 멈출 수 없는 ‘뇌와 관련된 질병’인 것입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마빈 무어)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중독 상태가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때까지, 그 행위를 쉽사리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을 경우, 그 주변사람들이 그를 따뜻하게 잘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요컨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물맷돌)
[여러분은 유혹에 빠져, 주님을 버리고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것들에게 절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신11:16,현대어) 이 세상 유혹에 접할 많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그 기회를 바르게 이용하고 거기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7:31,현대어)]
‘우리나라 말과 글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샬롬! 어젯밤은 편안히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치매·뇌졸중·파킨슨병 예방하는 습관6가지’ 중 세 번째는, ‘관심분야 공부하기’입니다. 뇌는 능동적으로 사용할수록 활성도가 좋아지는데, 의학적으로 ‘뇌 가소성’이라고 한답니다. ‘일반인 대상으로 주5일 하루90분씩 3개월간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등 뇌가 생각하도록 유도했더니, 뇌의 활성이 확연하게 달라졌다’고, 중앙대의 한 교수가 말했습니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우리말을 하면서 영어 등의 외국어를 섞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전문직업인이나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과 단 10분만 대화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차별로 영어를 섞어 쓴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될 겁니다. 이런 현상이 제발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예외적인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때는 ‘듣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어느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조차 잘 들어보면, 쓰임이 완전히 틀리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어제 만난 대기업의 사보(社報)기자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비야 씨, 책을 읽어보니 아주 나이브(naive)한 것 같아 참 좋았어요.” 그에게 다른 뜻이 없었다면, 저에게 욕을 한 셈입니다. ‘나이브’라는 말은 ‘순수, 순진하다’는 긍정적인 뜻보다는 ‘경험이 짧아서 잘 속아 넘어갈 정도로 뭘 모른다.’는 부정적인 뜻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고백컨대,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것도 아주 중증(重症)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조사(助詞)’만 빼고 거의 모든 단어를 외국어(외래어가 아닌)로 썼습니다. 여러 이유로 외국에서 살았고, 또 몇 가지 외국어를 할 줄 알다보니, 이런 것이 오히려 당연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도 그렇게 쓰다보니, 어느 때는 정말 우리말보다 외국어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때도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처럼 ‘거슬리는 습관’을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차츰 우리말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라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80억 가까이 인구가 쓰는 말의 종류는 약 3,000~4,000개이고, 문자까지 있는 경우는 겨우 300개 남짓이라고 합니다. 현지인들 또는 여행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말과 글이 있다’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듣고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우쭐했는지 모릅니다.(출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오지여행가)
저도 한비야 씨의 주장에 적극 동의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는 ‘케어(care)’가 있습니다. 그냥 ‘보살핀다.’든지 ‘돌봄’ 또는 ‘간호’라고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케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케어’는 분명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저처럼 영어가 짧은 사람은 좀 잘난 척하려고 영어를 조금 써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되도록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처음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하나였다. 똑같은 말을 썼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창11:1,현대어) 그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그들도 알지 못하는 외국어(방언)로 말하기 시작하였다.(행2:4,현대인)]
당신의 ‘기억서랍’ 속에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샬롬! 밤새 별고 없으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두 번째 습관의 ‘지중해식 식단’이란, 밥을 지을 땐 현미·귀리 등 잡곡을 섞고, 채소로 만든 겉절이나 나물을 끼니때마다 챙겨먹어야 한답니다. 단백질은 고등어·꽁치 등 주 2회 먹는 해산물로 채우고, 소·돼지 등 붉은 고기는 월 2~3회 정도만 먹어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 뇌에는 ‘기억서랍’이 있습니다. 기억은 ‘시간순서’가 아닌 ‘감정의 강약’에 따라 정리가 됩니다. 화난기억일수록 앞으로, 기쁜기억은 뒤쪽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쁜기억부터 떠올리는 습관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넌 왜 맨날 정리를 안 해?”라는 한 마디로 싸움이 시작되고, ‘행복한 적은 아주 오래전 일 같다’면 ‘부정적인 기업서랍’이 꽉 찬 것입니다.
다행히도 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긍정기억서랍’을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취리히대학의 한 교수는 사람들에게 일주일간 ‘긍정장부’를 쓰도록 권했습니다. ‘즐거운 대화’ 혹은 ‘크게 웃은 일’처럼, 좋았던 순간 9가지를 매일 적은 사람들은 그날을 기쁘게 마무리했습니다. 손을 씻을 때마다 ‘좋았던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시기가 지나고,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피로가 먼저 찾아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애정이 식거나 상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쳤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 다음으로 ‘상대방’, 그 다음 ‘사랑’을 돌봐야 합니다. 그 자신이 건강해야 ‘좋은 관계 과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여인의 남편에게는 참기 힘든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 버릇을 고치라’는 부탁에도, 남편은 매번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짜증을 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좋은생각이 있어요! 다음에 내가 또 그러면 ‘핸드백 포인트’를 주리이다. 그래서 10점이 되면 핸드백을 선물하겠소!” 그 후 남편이 그 버릇을 되풀이하면, 그녀는 ‘곧 선물을 받겠네!’하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분노가 많은 그녀는 남편에게 ‘짜증 포인트’를 약속했습니다.
애정과 위로 역시, 관계를 건강하게 합니다. 한 심리학자는 ‘서로 칭찬하는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상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당신 참 멋져요!”대신에, “오늘 아침에 당신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아 나올 때, 머릿결이 햇살에 반짝였어요. 그 모습이 참 멋졌어요!”(출처; 좋은생각, 김보나 기자)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 풀렸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과거의 ‘좋았던 이야기’보다는 ‘안 좋았던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 중에서 ‘포인트’ 방법이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고쳐야 할 어떤 문제가 있는 가정이라면, 한 번 이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내가 어렸을 때 지었던 죄들과 주님께 반항했던 잘못들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기억해주시기 원합니다. 오, 주님! 주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좋으시고 올바른 분이시기에 죄인들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십니다.(시25:7-8,쉬운성경) 출산하는 여인에게는 출산할 때의 고통이 있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여인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너무 기뻐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16:21,쉬운성경)]
고통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건’입니다.
샬롬! 지난밤도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계속해서 ‘치매와 뇌졸중, 파킨슨병을 예방하는 습관 6가지’를 소개합니다. 두 번째 습관 ‘지중해식 식단실천’입니다. 과도하게 술을 마시면 뇌 속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시스템이 망가진다고 하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난답니다.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하면, 뇌 손상으로 치매 등 뇌 질환이 발병할 소지가 크답니다.
마음의 고통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고통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건’입니다. 사람은 고통을 싫어하지만, 정작 적절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면, 우리 ‘생명의 불’은 점차 꺼져갈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도 없거니와, 생명력을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우리 안의 저력을 발견하고 계발하도록 돕습니다. 물론, 고통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고통이 사람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이라는 재료가 친밀한 어떤 관계를 만나면,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그 고통을 다루어낼 수 있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마음이 넓다’고 하지요. 누군가에게 발을 밟힌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발을 밟힌 것은 약간의 고통을 동반하겠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라 다행이다.’ ‘시비 걸어서 좋을 게 없으니, 그냥 풀자!’ ‘용서해주자!’ 그러면, 화가 더 쉽사리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정서적으로는 화난 감정이 느껴지지만,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명랑하고 낙천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쉽게 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이 좁은 경우’입니다. 발을 밟힌 같은 상황에 대하여 ‘내 발을 감히 밟아? 가만두지 않겠어!’라는 생각과, 언짢은 마음을 곱씹으며 과거의 유사한 고통까지 더해서 더 고통스러워지는 감정, 분노하며 소리치고 싸우는 행동을 통하여 더욱 고통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경험이든, 그 경험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있다면 굳이 고통을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예로 든 간단한 고통의 경우는, 우리의 마음을 넓히면 얼마든지 그 고통을 다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의식적으로 깨달아지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단절로 인한 고통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 고통이며, 이 땅에서의 또 다른 관계상실을 경험하면서 더욱 커지는 고통입니다. 때로는, 우리 마음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그분이 주시는 생명이 있어야, 우리 마음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단절로 인하여 이 생명에 결핍이 올 경우에는 마치 지옥에서나 겪게 되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우울한 마음을 안아드립니다. 김민철 / 김민철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우리 의지만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이은해’는 ‘자기 남편을 죽여 놓고 보험사가 보험료를 안 준다’고 방송국에 전화했다지 않습니까?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를 포함) 주변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러지?’싶은 때가 있단 말입니다. 그건 자기 의지나 의식이 제어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작용하는 일’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코 소홀히 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물맷돌)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롬7:23-25,현대어)]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어저께 부활절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습니까? 계속해서 ‘치매와 뇌졸중, 파킨슨병을 예방하는 습관 6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손쓰는 활동’에는, 일기나 손 편지 쓰기, 뜨개질과 피아노 연주, 종이접기와 화초 가꾸기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아신다면, 이런 정보에 귀 기울여 실천해야 할 겁니다.
전화를 끊고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서 수원지방 검찰청으로 전화해서 방금 통화한 사람의 신분을 물어봤습니다. 한데 아뿔싸!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은행에 가서 확인하니, 이미 거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소를 사육하며 필요할 때 쓰려고 준비해놓은 마이너스 통장에서 2억 원이 인출되었습니다. ‘보이스피싱이구나!’하고 생각하니, 눈앞이 노래지고 다리 힘이 쭉 빠져서 저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전화발신지가 중국이라 수사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며칠 동안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동안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아끼며 살아왔는데, 이런 날벼락이라니! 차마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다가 일주일 후 아내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초췌해진 저의 몰골을 멍하니 쳐다보곤 말했습니다. “왜 제게 바로 말하지 않았어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저의 안식처이며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 우리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막힌 혈관이 확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자식들과 손자에게는 비밀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공중으로 허망하게 사라진 돈을 메우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소 사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두부공장에서 비지를 얻고, 동네에서 나오는 농산부산물인 고구마와 땅콩줄기, 배추와 무 등을 실어다 소에게 먹였습니다. 건축공사장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하고, 지하철로 짐을 배달하는 택배일도 했습니다. 사무실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등, 아르바이트마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7년 만에 잃은 돈을 만회했습니다.
이 일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억울해하면서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면, 건강도 해치고 가정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실수로 돈보다 더 귀중한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동안 고생만 해서 건강이 약해진 아내에게 보답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에 4㎞를 뛰고, 틈틈이 역기와 아령을 들었습니다. 우사에서 일할 때도 걷지 않고 뛰어다니는 습관을 들였더니, 체력이 좋아졌습니다.
지난 43년간 제 위주로 살았으나, 앞으로는 아내에게 맞추며 제가 아내의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우사 일을 조금씩 줄이고, 설거지와 청소 빨래, 그리고 반찬 만들기까지 살림을 익히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내는 ‘설거지 한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었다’고 잔소리하지만, 곁에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합니다.(출처; 좋은생각, 홍진호 / 경기 파주시)
보이스피싱 당하고 절망에 빠졌던 사람을 일으킨 것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한 이 말이 무저갱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던 남자를 잡아 세운 것입니다. 참 훌륭한 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잖은데, 이글을 쓴 이의 아내는 ‘돈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람 하나를 살린 겁니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그 자신의 가정’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물맷돌)
[네 집 안에 있는 너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너의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는 이와 같이 복을 받으리라.(시128:3-4,현대인) 남편들은 자기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기 바랍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곧 자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엡5:28,쉬운성경)]
언젠가는 ‘가볍고 강력하게 된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2022년 부활절을 하루 앞둔 주말아침입니다. 그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부활은 예수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로, 부활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어떠한 불의(거짓)의 세력과도 싸워서 이겨내고 무서운 세상욕심도 극복함으로써’ 부활의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수영선수 ‘조니 에릭슨’은 열일곱 살 때에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목 아래가 전부 마비되어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쓰라림과 좌절, 원망과 분노 속에서 하루하루 살다가, 결국은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활훈련과 심신치료, 부모형제들과 친구들의 협조로,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환상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게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한다. 지금 내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지만, 언젠가는 가볍고 강력하게 된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처럼 척추를 다친 사람에게, 뇌 손상을 입은 환자 혹은 조울증 환자에게, 어떤 소망을 주는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출처; 햇볕 같은 이야기, 김학규)
초등학교 3학년 때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남기고 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국은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짐승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것으로 끝내야 하는 걸까요? 인간을 창조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지 아니 믿던지 간에, 인간이 이처럼 허무하게 삶을 끝내고 만다면, 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일이겠습니까? 어쨌든, 인간은 다른 짐승들과는 뭐가 달라도 조금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렇습니까?(물맷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도 망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고전15:17-19,현대인)]
황제펭귄의 교훈
지구에서 가장 추운 남극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삽니다.
동물들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무리를 지어 떠납니다. 어떤 종은 추위를 피해 남극을 떠났고, 먹이가 풍부한 지역에 자리를 잡은 종도 있고, 남극에서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움직인 종들도 있습니다.
황제펭귄은 남극 중에서도 가장 춥고 먹이도 많지 않은 혹독한 내륙으로 이동했습니다. 제 아무리 남극에 사는 동물이라 해도 영하 40도의 추위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펭귄들은 허들링이라는 방법으로 무리를 지어 살아갑니다. 모기향 모양처럼 줄을 서 바깥 쪽에 있는 펭귄들이 차가운 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안쪽에 보호받던 펭귄이 밖에서 버티던 펭귄과 교대하며 추위를 이겨냅니다.
이렇게 조금씩 희생하며 서로의 체온을 지켜주자 황제펭귄이 머무는 남극의 가장 척박한 내륙은 오히려 천적도 없고 새끼들도 안전한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는 곳이 됐습니다.
남극 내륙에서 살아가는 황제펭귄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진리를 향한 공격과 비난이 더욱 거세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된 형제자매들과 연합함으로 승리하십시오. 아멘!!
주님! 사랑과 배려와 겸손으로 주님이 바라시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교회 안에서 먼저 주님 안의 진정한 형제자매의 모습으로 연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복음의 가치
미국 애리조나에 유명한 보석상이 있었습니다.
보석상은 이집트에서 ‘신이 내린 보석’, ‘행운의 보석’이라 불리는 좋은 등급의 터키석을 공수해왔습니다. 영롱한 파란빛의 터키석을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하며 고대로부터 행운의 상징이라는 점을 열심히 어필했지만 그 어떤 고객도 터키석을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잔뜩 난 보석상은 다른 보석을 구입하러 출장을 가면서 상점의 직원들에게 “터키석을 기존 가격 x 1/2에 파세요”라는 쪽지를 전해줬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보석상은 터키석이 모두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가격이 비싸서 팔리지 않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계부를 보니 몇 배나 많은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휘갈겨 쓴 보석상의 글씨를 잘못 알아본 직원들이 가격을 2배로 올렸는데 비싼 터키석이 진귀한 보석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사갔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치알디니는 이 내용을 소개하며 때로는 가격이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가격을 통해 물건의 가치를 매깁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예수님의 고귀한 보혈로 이루어진 가장 귀한 복음을 싸구려로 여기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죄에서 내 영혼을 살리신 놀라운 복음을 찬양하게 하소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 복음임을 잊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돈이 주는 행복
세계에서 최고로 돈이 많은 두 사람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난 해가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항공사, 영화사까지 소유하며 무려 2조가 넘는 유산을 남긴 하워드 휴즈는 돈만 많았을 뿐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강박증과 불안장애로 사람을 믿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 10년을 호텔에 숨어서 우유와 초콜릿만 먹으며 두문불출하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돈은 ‘항상 지금보다 많은 돈’이라는 말을 남겼던 휴즈의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10명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석유의 제왕이라 불리던 ‘폴 게티’는 휴즈보다도 재산이 무려 2배나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5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했고, 자녀들이 돈을 흥청망청쓰다가 건강을 잃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자녀들이 차례차례 술로, 마약으로, 사고로 죽는 것을 본 뒤 게티도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라는 우스개 명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조금만 살펴봐도 돈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어쩌면 불행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찾으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이 말하는 잘못된 행복을 좇지 않게 하소서.
인생에서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실수를 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받는 비결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미국의 국내 정책을 최고로 성공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습니다.
“정의가 피부색을 구분하지 않고, 교육이 인종을 상관하지 않고, 기회가 인간의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아야 진정한 노예해방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깨어있는 사람이었던 존슨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다음의 글을 적은 뒤 수시로 봤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사랑받는 9가지 법칙’
1.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라.
2.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마라.
3. 온유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라.
4. 가진 것을 자랑하지 말고 지식을 아는 체하지 말라.
5. 남을 도우려는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라.
6. 잘못은 사과하고, 오해는 풀려고 하라.
7. 좋아하는 척을 하지 말고 진심으로 좋아하라.
8. 축하의 말과 위로의 말을 잘 사용하라.
9.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서 또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셨습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사람을 통해 복음이 흘러가고 위로가 흘러가게 하소서.
환한 미소와 친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성도가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후회가 없는 이유
미국 시카고에서 가장 큰 농장의 상속자인 윌리엄 보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거액의 유산을 미리 받았습니다.
20살에 백만장자가 된 보덴은 예일대학교에 합격한 뒤 여유롭게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유럽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여행하던 그는 자신의 삶과는 너무 다른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고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보덴은 세계여행을 마친 뒤 일생을 하나님께 바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평생 봉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보덴은 항상 들고 다니던 성경 뒷표지에 “지체할 수 없다(No Reserve)”라고 적었습니다.
보덴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중국의 이슬람교도들에게 선교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먼저 이슬람을 알기 위해 이집트로 떠나며 이번에는 성경 뒤표지에 “후퇴는 없다(No Retreat)”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보덴은 이집트에 간 지 한 달 만에 뇌수막염에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원했던 중국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성경책 뒤표지에는 마지막으로 “후회하지 않는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결과에 상관없이 가치있는 귀한 삶입니다. 후회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칭찬의 표현
아침마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식사를 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찌개가 참 맛있네. 역시 당신 솜씨는 일품이야.”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사다 준 두부라서 그래요.”
부부는 식사를 하는 내내 서로 칭찬을 하다가 학교 갈 시간이 된 자녀를 깨워 도시락을 들려 보냈습니다. 점심시간이 된 자녀들이 도시락을 꺼내자 그 안에는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구나. 맛있게 먹고 파이팅!’
가까운 사이일수록 칭찬에 인색한 것 같아 억지로라도 칭찬할 시간을 만들기로 한 우리나라 어떤 가정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에게 매일 써준 편지는 ‘도시락 편지’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매일 몇 십 분씩 서로 칭찬을 하면서도 수년 간 같은 칭찬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칭찬하고, 더 격려하고, 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가정에서부터 칭찬과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고 단점은 흘려보내게 하소서.
매일 만나는 가족과 교회 사람들에게 첫 인사를 칭찬으로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신앙의 멘토
일본의 성공학자 혼다 켄은 수많은 자수성가형 백만장자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멘토’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전역의 백만장자들의 ‘39%’는 멘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다 켄은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을 늘 가까이에 두고 배우고, 삶의 지표로써 멘토를 잘 활용하기 때문에 멘토가 없는 사람보다 몇 배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포지셔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마케팅 전략가로 인정받는 잭 트라우트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혼자서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약 100분의 1, 즉 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함께 협력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3분의 1, 즉 33%가 넘습니다.”
국내 침구업계 1위인 이브자리의 고홍준 사장은 이 말을 인용해 만약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거의 100%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모세, 엘라사에게는 엘리야,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같은 신앙의 멘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함께 동역할 수 있는 귀한 멘토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또한 그런 멘토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아멘!!
주님! 신앙의 좋은 멘토를 주시고, 또 좋은 멘토가 되게 하소서.
말씀과 더불어 신실한 믿음의 동료들을 가까이 하며 은혜를 나눕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영향력과 모방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인 ‘래리 킹 라이브’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출연했을 때였습니다.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평소와 달리 진행자 래리 킹의 말투가 뭔가 이상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변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이 면밀히 분석해보니 래리 킹이 클린턴 대통령의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에 흥미를 느낀 학자들은 ‘래리 킹 라이브’를 좀 더 연구했는데 그 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서로 모방을 하는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사회자인 래리 킹이 게스트보다 높은 위치라고 느껴지면 게스트는 래리 킹의 어투를 따라했고, 게스트가 래리 킹보다 높은 위치인 경우 래리 킹이 게스트를 따라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상대방을 모방하는 경우 친밀감이 높아지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따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협상이나 거래를 잘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런 현상을 더 잘 이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기가 인정하고 우러러보는 사람은 저절로 따라하고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주라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고백한다면 내 삶의 영향력을 가장 크게 미치는 분도 주님이셔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는 선한 통로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허락하신 하루를 통해 조금 더 주님을 닮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화장실 앞의 어머님
초등학교 시절 충격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 순간 화장실 앞에 쓰러져 계신 어머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머님은 늘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셨던 건강한 분이셨습니다. 편찮으신 건 상상도 되지 않던 어머님이 쓰러지신 걸 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한참 울고 있었는데 어머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과로로 잠시 쓰러지신 건데 아들이 눈물을 쏟고 있으니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들 놓고 엄마는 절대로 죽지 않을 테니 그만 울어.”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를 혼자 두고 절대 돌아가시지 않을 거야.’ 어머님의 그 음성은 제 가슴에 지금도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귀에 들리는 또 하나의 음성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맨 마지막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8) 어머님의 음성도 제게 힘이 되는데 주님의 이 음성이면 우리에게 충분하다 싶어 오늘도 기운을 내며 살아갑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원더풀 차일드’로
어른이 돼도 우리 안엔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면 아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정상적이고 당연한 욕구들을 지니게 되는데, 어린이의 힘으로는 성취할 수 없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구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그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상처받은 아이’를 내면에 간직하게 됩니다.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기억이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면 극단적이면서 병적이거나, 다양한 중독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치료사가 ‘내면 아이’의 상처를 도닥이며 위로하면, 즉 치료사가 내면 아이의 부모 역할을 하게 돼 치유되면 ‘내면 아이’가 ‘놀라운 아이’, 이른바 ‘원더풀 차일드’로 거듭나게 된다고 말해줍니다.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시 131:2)라는 고백은 상처 입은 아이가 완벽하게 치유된 모습입니다. 국가도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잘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시기인 듯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한 알의 씨앗처럼
사람들이 유적지를 발굴하다가 연꽃 씨를 발견합니다. 그 씨앗이 발견된 곳은 적어도 천 년 전에는 호수였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어떤 연유로 호수가 매몰되면서 씨앗이 땅속 깊이 묻혔던 것이지요. 그 씨앗을 심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운 새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힘이 참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예수님은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밭에는 단단한 길가도 있고 돌밭과 가시덤불도 있습니다. 기껏 뿌린 씨가 싹도 틔우지 못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게다가 비까지 내리지 않으면 얼마나 노심초사하겠습니까. 그러나 농부는 씨 뿌리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씨 뿌리는 봄입니다. 이번 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고난주간이네요. 예수님이 한 알의 씨앗처럼 땅에 떨어져 죽으려고 아니, 봄의 새싹들처럼 다시 살아나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낮추고 생활을 삼가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날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지금의 유혹
십자가 아래에서 아우성입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막 15:32)”는 것입니다. 어찌하든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막으려는 세력들은 지금 그 사역을 그만두라고 예수님을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그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마의 카타콤베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지하 묘지였으니 그곳은 사람이 머물 곳도, 살 곳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곳에서 살아냈습니다. “이게 뭐 하는 것이냐, 지금 당장 살기 편하고 아름다운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유혹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들은 ‘지금의 유혹’을 그날의 기다림으로 이겨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금의 유혹이 있습니다. 내 목에 있는 십자가를 벗어던지면 안 됩니다. 조금 더 참아야 합니다. 그날이 옵니다. 그때까지 견뎌야 합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지금의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로벤섬의 축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부가 흑인 차별정책을 펼칠 때 흑인 정치범들을 로벤섬에 가뒀습니다. 여기는 사방이 상어로 득실거리기에 탈옥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훗날 남아공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도 여기서 18년을 갇혀 지냈습니다. 재소자들이 교도소 당국에 끈질기게 청원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축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3년 노력 끝에 드디어 매주 토요일 30분간 축구를 하게 됐습니다. 짧은 시간 맨땅에서 맨발로 하는 축구이지만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가 됐고 고난을 이기는 힘을 갖게 됐습니다. 만델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국이 저지른 최대 실수는 우리에게 축구를 허용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을 찬 것이 아니고 축구를 통해 서로를 붙들어 주었다. 서로에게서 힘을 얻었다. 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일으켜 주었고 그 과정에서 둘 다 강해질 수 있었다.” 고난을 혼자 이기려는 것은 또 다른 고난에 빠질 뿐입니다. 이제 코로나의 끝이 보인다고 조심히 말해봅니다. 여전히 힘들지만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하면 남은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으며 함께 힘내요. 파이팅.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간섭
알아갈수록 귀한 목사님이 계시는데 이분의 자녀 교육 철학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간섭을 줄일수록 아이가 건강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네 자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이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국제중학교에 다닐 정도로 머리도 명석한 친구였습니다. 신앙으로 더 잘 키우기 위해 세 명의 자녀와 ‘홈스쿨링’을 했다고 합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이들과 목사님은 힘든 과정을 겪으셨다 합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손대면 손댈수록 아이는 곁길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이 ‘주님께 맡기자’며 결단하자 이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더라 했습니다.
그 목사님 교회에는 권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글도 잘 모르는 분이라 하셨습니다. 글을 몰라 아이들은 스스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아이의 삶을 간섭하시도록 했더니 아이가 더 건강하게 자라났다고 합니다. 인생은 자신이 정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억압과 굴레, 문제를 극복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면서 어른으로 자라갑니다. 주님의 간섭이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세 가지 일
한 성도에게 최근 세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남편의 세례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례받기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뤄진 것입니다. 그 간절함이 무엇보다도 컸기에 기쁨 또한 넘쳤습니다. 이를 전하는 성도에게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기쁨도 있었습니다. 결혼한 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자녀가 생기지 않아 걱정했는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성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기쁨의 눈물이 고였습니다.그런데 기쁨은 거기까지였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임신한 딸이 걱정할까 봐 소식을 감추었다고 말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어떡해요”라며 기도를 부탁하던 성도는 “하나님께서 도우시겠죠”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성도를 도우실 하나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우리네 삶은 이토록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도우실 겁니다. 그래서 힘낼 만합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생명, 부활
T S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명명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절망에 휩싸인 유럽을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내면이 읽힙니다. 차라리 겨울이어서 흰 눈이 세상을 덮어버리면 가녀린 생명의 의지는 숨겨져 모른 척 지날 수도 있을 텐데, 봄이 되니 눈도 걷히고 생명이 움트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노출돼 생명의 길을 가야 하니, 그런 4월은 차라리 잔인하다고 고백한 듯합니다. 가장 강렬한 생명의 시기가 바로 4월이라는 역설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4월도 그런 역설적인 잔인함과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1960년 4·19혁명은 시위하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사망한 17세 김주열군의 슬픈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부터 50여년 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우리 생애 가장 슬픈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침몰하는 전 과정을 무기력하게 쳐다보며 흘렸던 눈물이 해마다 4월이면 어김없이 또 흐릅니다. 그러나 4월의 ‘잔인함’은 그런 슬픔 속에서도 또다시 생명을 키워내겠죠. 부활의 달이니까요.
김종구 목사(세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