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해방 100년’을 특집으로 한 『푸른사상』 2023년 여름호(통권 44호).
1923년 5월,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라고 본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어린이 해방을 선언한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 선언을 주도한 방정환과 김기전은 어린이도 어른과 같은 독립된 인격체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해야 하며, 어린이를 보호하기보다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를 비롯해 수많은 어린이 문학지가 탄생했으며, 지역의 소년회 등에서도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인 이주영 회장은 어린이 해방 정신을 되짚어보고 오늘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김인숙 이사장은 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동화 속 인물을 살펴보며 진정한 어린이 해방의 의미를 찾고자 했으며, 이동순 조선대 교수는 동요를 중심으로 한국 아동문학의 전개 과정을 짚어보았다. 김림, 김옥성, 김이하, 나종영, 신수옥, 오새미, 임윤, 정윤천 시인의 신작 시와 김영, 김이삭, 김춘남, 박소명 시인의 신작 동시가 지면을 풍성하게 꾸미고 있고, 이청 소설가의 신작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김준태 시인의 「시 70년 오디세이」, 이혜원 교수의 「한국시의 심상지리」, 임동확 교수의 「생성의 미학」 기획 연재도 주목된다. 김수영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와 맹문재 시인의 대담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작품에 얽힌 배경과 사연을 실감 나게 들려주고 있다. 2023년 6월 10일 간행.
■ 목차
특집 | 어린이 해방 100년
이주영_ 어린이 해방 정신과 역사적 의미
[자료 1] 어린이날 어린이에 주는 글 _ 방정환
[자료 2] 개벽운동과 합치되는 조선의 소년운동 _ 김기전
김인숙_ 동화 속 어린이 인물의 현실과 해방 서사
이동순_ 어린이 인권운동과 동요운동
[자료 3] 십 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자료 4] 「어린이날」 선전문
신작 시
김 림_ 꽃발정(發情)
김옥성_ 예지몽
김이하_ 돌아보다·2
나종영_ 월등 도화 달빛 아래
신수옥_ 엄마의 에덴
오새미_ 손바닥에 고인 눈물
임 윤_ 이태원 불빛
정윤천_ 이모는 사막에서 온 염부(鹽夫)
신작 동시
김 영_ 노래를 불렀지
김이삭_ 굴 껍데기 목걸이 잠수함도 되고
김춘남_ 속 보이는 수박
박소명_ 호숫가 산
신작 소설
이청_ 신성한 밥통의 자유, 낮노밤노
기획 연재
김준태_ 시 70년 오디세이(21회)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La Divina Commedia)』
임동확_ 생성의 미학(6회)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파할 때 나는 자유다”
이혜원_ 한국시의 심상지리(8회) 동쪽 끝 별세상 ― 강릉
김현경 회고담・18
대담 김현경·맹문재_ 김수영 시 읽기(8)
■ 책 속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를 어른과 평등하고 완전한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 것은 동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은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어린이도 한울을 품은 사람이고, 노비도 한울을 품은 사람이고,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한울을 품은 똑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중략) 어린이 해방 정신은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존엄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간 해방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주영, 「어린이 해방 정신과 역사적 의미」, 11쪽)
100년 전 방정환과 김기전 선생은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어린이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고 선언했다. 재래의 윤리로부터 어린이를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하는 것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실행하여야 할 선언이다. 재래의 윤리란 낡은 관습이나 규범, 나이 서열 그리고 어른이라는 권위 의식 등이라 할 수 있다. (김인숙, 「동화 속 어린이 인물의 현실과 해방 서사」, 34쪽)
어린이는 민족의 미래를 이끌 기표가 됨으로써 주체로 부상했고 한국 아동문학을 탄생시켰다. “한글운동이 곧 애국운동이요, 민족운동이요, 구국운동이요, 갱생운동이어서 온갖 박해를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제2세를 위한 어린이 운동 역시 그들 일본인 위정자에게는 식민지 동화 정책의 암이요 가시”였지만 역사적으로 특별한 때에 동요가 탄생하였고, 노래와 분리되기는 하였지만 지금도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으로서 동요가 갖는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이동순, 「어린이 인권운동과 동요운동」, 55쪽)
화면 속의 몸들을 한참 보고 있자니 자신도 마름질을 기다리는 다음 차례의 물건처럼 여겨져 절로 숙연해졌다. 그 순간 정수리에 아주 차가운 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불현듯 찾아온 산뜻하고 청량한 기운으로 마음이 한껏 환해졌다. 시력이 나빠진 줄 모르고 있다 안경을 쓰고 나니 그제야 개안을 한 듯, A는 인생의 다음 장에 그려 넣어야 할 그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무한대로 가는 시작,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동그라미. 원이었다. (이청, 「신성한 밥통의 자유, 낮노밤노」, 113쪽)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우주 질서의 원리’를 설명해준다. 우주 안에서 모든 행성들과 존재하는 것들은 저희들끼리 질서를 가지고 있고 또 그로 하여 하느님을 닮은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단테가 천상으로 오르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모든 진리는 그와 같은 생명체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결국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말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하늘나라의 신비와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 단테가 마지막으로 다가서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김준태의 시 70년 오디세이」, 146쪽)
급박한 실존적 위기나 사회적 대재난 속에서도 곧잘 발휘되는 개인과 집단의 숭고한 행위들은, 따라서 주체 중심의 타자에 대한 고려나 타자와의 조율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선 무차별한 연대성의 실현과 더불어 사회적 공공성을 포함하는 우주 사회적 공공성 또는 ‘절대의식’에서 시작된다. 비록 평소에는 동물적인 저열함과 비열함에 함몰되어 있을지라도, 특히 바로 그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는 오랫동안 진부하고 부도덕한 악의 커넥션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혁명을 도모하거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의식에 기반한 ‘절대 공동체’(최정운)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임동확의 생성의 미학」, 172쪽)
강릉과 타지의 경계인 대관령이라는 거대한 관문은 강릉이 독자적인 문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 보호막이기도 하다. 강릉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유로운 인심은 이곳만의 고유한 역사적·민속적 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한 자양분이다. 강릉은 단오제나 관노가면극 같은 전통 연희가 면면히 이어지는 민족문화의 현장이며, 역대 뛰어난 문사들을 배출한 문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혜원의 한국시의 심상지리」, 177쪽)
김현경 김 시인이 큰 번역거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애틀랜틱』이나 『하퍼스』에 실린 글들을 번역해서 출판사에 팔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숨겨진 이야기 등 일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이었어요. 『희망』이나 『아리랑』 등에 갖다주었어요. 미도파 옆 뒷골목에 외국 잡지를 파는 가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 사이에서 김 시인의 별명이 ‘애틀랜틱’이었어요. “애틀랜틱이 부탁을 했는데”, “애틀랜틱이 왔다 갔어” 등으로 김 시인을 부른 것이었어요.
(「김현경의 회고담」, 204~205쪽)
https://naver.me/5s37VHQj
[여름호 발간] 시대를 울리는 문예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기 구독 운동에 함께해주시길 부탁해요. 작품 활동을 돕겠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