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초대석
분재 외 4편
김정원
그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야무진 바람의 가지와 뿌리가 무참히 잘려 나가고
사람이 원하는 수형으로 사육되는
소사나무
노예 발목에 채운 차꼬 같은 화분 밖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기 뜻대로 사는 나무들이 보기에
아름답기보다는 괴로운 기형이다
나 자신이 바라는 내가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내가 된 꼭두각시 인생처럼
밑동이 굽은
후회가 굵다
철인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
지난해 가을
텃밭에 모종한
배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기 위해서
험상한 꼴로 땅을 기는
애벌레의 시간처럼
모질고 긴 겨울에도
주저앉지 않은
그 배추는
기어이 봄에 이르러
한 폭의 배추를 넘어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운다
다가올 세상에
치열한 사상의
씨앗을 맺으려고
월출정
김정원
송홧가루 수북이 쌓인 팔각정 마루, 한 여자가 걸터앉았다 일어난 자리에 반질반질한 반달이 뜬다
득도하려면
김정원
사람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근원
두 가지를 아세요?
스님, 신부님,
결혼하세요
얼른 결혼해서
낯설고 다른 둘이 살아보세요
그런 둘이 지지고 볶고 살면서
아이를 낳아 길러보면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굳이 참선하지 않아도
애써 고행하지 않아도
절로 성당으로 깨달음이
날마다 달려올 것이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지구가 왜 끊이지 않고 돌아가는가
경전에도 없는 길이
백주 대로처럼 환하게 손짓할 거외다
단풍잎
김정원
맑고 파란 하늘로
무성히 거슬러 오르던
힘찬 연어 떼
머나먼 고향 땅에 닿아
후끈한 몸으로 산란하고
울긋불긋 달군 삶을 식히며
자기 할 일 다 마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홀가분한 목숨들
영혼을 맡긴 하늘에 사선으로 난,
다시 못 올 바람 쌀쌀한 계단을
깐닥깐닥 내려온다
김정원
전남 담양 출생. 영문학박사. 2006년 《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아득한 집』 외 다수, 동시집 『꽃길』이 있음. 수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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