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한 1,1-4; 요한 20,2-8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어제 강론 때 스테파노 성인의 품격이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성탄 다음날인 26일을 스테파노의 축일로 지낸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떤 분께서 ‘그러면 왜 사도 요한 축일은 27일인지’ 물으셔서, 제가 공부해서 말씀드리겠다 하였습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만족할 만한 설명은 찾지 못하였고요, 1945년에 출판된 ‘성 안드레아 매일 미사’(St. Andrew Daily Missal)라는 책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흠숭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노래한 요한 복음사가가 구유 곁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유 안에 계신 아기 하느님은 당신 주위에 순결한 영혼들을 모으신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순결한 정배 요셉, 어린 양의 피로 자신의 옷을 빤 첫 순교자 스테파노, 그리고 동정 사도인 요한이다.”
출처: Why is December 27 the feast of St. John the Evangelist? (aleteia.org)
결국 이 책이 말한 것은 사도 요한의 동정성인데요, 결혼을 했던 사도들도 있고, 결혼을 했는지 불확실한 사도들도 있지만, 사도 요한은 동정이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최고의 길은 순교였는데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더 이상 순교할 기회가 없어지자, 동정 생활이 제2의 순교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탄 다음 날에 순교자 스테파노의 축일을 지내고, 그 다음 날에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순교와 동정의 가치를 높인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순교할 수 없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동정을 지킬 수 없지만, 더 중요한 물음은 ‘나는 예수님을 얼만큼 사랑하는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가’일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형인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에 동행했으며,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또한 최후 만찬 때에는 예수님 곁에 기대어 있었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따라갔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가리키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한 사도 요한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로 표현하고, 그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가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믿었다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누구고, ‘사랑 안 하신 제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사랑 안 하신 제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성모님을 가리키며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듯,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랑하신 제자’도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우리도 구유 앞에 달려와 보고 믿어야겠습니다. 구유 옆에는 성모님, 성요셉,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인 우리 자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구유 앞에서 오늘 1독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묵상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생명의 말씀, 생명,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경배하고 사랑해야겠습니다.
https://youtu.be/oJiv5lnfnDg?si=CB877zbAB-VLDN6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