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독말씀>
참 어머님의 인류를 대신한 참아버님 시묘정성 3년 1095일
"비가 몹시 내려서 길이 질척거릴 텐데요, 오늘 하루는 쉬시지요" 권하는 사람은 나의 안위를 먼저 염려합니다. 가을이 되면 폭풍이 몰아치고, 겨울이 되면 함박눈이 쏟아져 쉬어야 할 이유와 핑계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나는 새벽이면 집을나서 산에 올랐습니다. 청평 천성산 자락에는 남편의 묘소가 있습니다.
남편이 성화한 후 나는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리고, 남편이 잠든 본향원을 오르내리며 마음속으로 남편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었고, 내 생각이 남편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초창기 교회로 돌아가 신령과 진리로서 교회를 부흥시키겠습니다 ' 언제나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보금자리,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가 나의 꿈입니다. 그 꿈은 문선명 총재가 꾸었던 꿈이기도 합니다.
남편과 나는 한평생 무수히 많은 일을 겪었고, 나만이 간직한 사연은 그보다 더 많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보다 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날 이후 한시도 쉬어 본적이 없습니다.
작은 오솔길 양편에는 허리 높이의 휘어진 소나무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겨울에는 꽃들이 자취를 감쳤다가 봄이되면 경쟁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에서 피어납니다. 나는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들풀들과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무척이나 아름답게 자태를 뽐냅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꽃들을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오솔길을 걸어 오릅니다. 발걸음이 힘들기는 해도 내 마음은 들꽃처럼 평화롭습니다.
이윽고 묘소에 당도하면 잔디에 섞여 혹 풀이 돌아나지는 않았는지, 산짐승들이 파헤치지는 않았는지 찬찬히 살핍니다. 묘의 잔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푸르러지고 있습니다. 묘 앞에 앉아 홀로 기도를 올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들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고, 소나무처럼 굳은 심정을 지니기를 바라고, 묘의 잔디처럼 늘 푸르게 살아가기를 간구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들풀들과 소나무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 자연의 친구들아 내일 또 만나자꾸나. " (평화의 어머니 p.27)
천천히 내려오는 오솔길은 어제와 똑같은 길이지만 날씨는 매일 변합니다. 햇별에 따스한 날, 바람이 부 는 날, 갑작스레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 는 날, 함박눈이 하늘을 회색빛으로 뒤덮는 날--- 그럼에도 나는 문총재가 성화한 2012년 9월 이래 3년 1095일 동안 한번도 시묘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예례 전통에서 시묘는 돌아가신 부모에게 돌려 드리는 효성입니다. 부모의 묘 서쪽에 여막을 짓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땅에 묻힌 부모와 3년을 함께 삽니다. 그 3년은 아들 딸이 태어나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과 사랑 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는 시간과 같습니다. 그러니 시묘는 말하자면 보은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모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 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의 친부모에게 조차 그럴진대 참부모가 인류의 아픔과 슬픔을 탕감해 주기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 땅에 현현하신 참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희생의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여전히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청맹관이와 같은 삶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아내인 내가 온 인류를 대신해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묘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 시묘 정성이 끝난 2015년에 나는 세 계 인류를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역사 이래 가장 의미 깊은 선학평화상이 오랜 준비 끝에 출범했습니다. (평화의 어머니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