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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유튜브: 진리의 증인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다니엘 1:8-16)
서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주전(BC) 6세기 초에 서남아시아와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의 맹주로 군림하던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격파하고 이스라엘까지 정복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3년 동안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며 종주국으로 섬기다가, 반기를 들고 조공을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주전(BC) 605년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많은 왕족과 귀족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이때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친구들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뜻을 정한 다니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다니엘은 부정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본문 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였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이 내린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왕이 내린 음식이 왜 더럽고 부정한 음식이냐? 바벨론의 음식은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음식의 규례에도 맞지 않지만, 바벨론 왕궁에서는 먼저 우상에게 음식을 바친 다음에 먹었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우상에게 음식을 바치는 것은, 음식을 준 우상에게 감사하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우상에게 감사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20,에서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너희는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제사에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생각도 깨끗하고, 말과 행실도 깨끗해야 하지만, 음식도 깨끗한 것을 먹어야 합니다.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다고 우리 몸 안으로 귀신이나 우상이 들어오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다고 우상 숭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제사를 통해서 우상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지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우상의 능력과 우상의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상 숭배자의 생각과 주장이 얼마나 부정하고 불결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은 사탄, 마귀가 우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다고 우상 숭배자가 되느냐고 반문하며, 용감하게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영적 만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23,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따라가도, 신앙에 유익하지 않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으면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전쟁이나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될 처지라면 몰라도, 먹을 음식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습니까?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영혼을 더럽히는, 영적인 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니엘이 왕이 하사한 음식을 거부한 두 번째 이유는 바벨론 왕이 음식을 미끼로 다니엘을 바벨론에 동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치세에 능한 정치가였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수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포로 중에서 신체에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답고, 학문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골라서, 바벨론의 사상과 학문을 교육시켜, 바벨론을 섬기게 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포로들이 교육을 받는 3년 동안, 왕이 먹는 산해진미의 요리와 포도주를 하사하고, 바벨론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일본제국이 36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한 것처럼, 느부갓네살도 포로들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도 느부갓네살이 내린 음식은, 다니엘을 매수하고 기만하기 위한 미끼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 왕이 내린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고, 유대인을 바벨론에 동화시키기 위한 미끼였기 때문에, 왕이 내린 음식을 먹지 않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다니엘을 비롯한 네 명의 유대인 청년들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입니다. 포로는 노예처럼 절대복종의 의무 외에는, 어떤 자유나 권리도 없습니다. 포로가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왕이 내린 음식을 먹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먹으면 하나님과 믿음을 배반하게 되고, 먹지 않으면 왕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거룩한 뜻을 정하고, 선하고 의로운 결심을 하지만,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뜻을 정했으면 노력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세우고, 노력하셔야,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를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본문 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를 입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합리주의자나 불신자의 눈으로 보면, 다니엘의 시도는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왕에게 알려져서 왕의 노여움을 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자신의 생사보다 신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궁에서 그들을 감독하는 환관장에게 그들의 뜻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환관장은 “너희들 말대로 해서 만약 너희들의 얼굴이 왕궁에 있는 다른 소년들의 얼굴보다 해쓱하고 파리하게 보이면, 너희들 때문에 왕 앞에서 내 목이 위태할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너희들의 용모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왕에게 책임추궁을 당할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앞으로 열흘 동안 우리들은 채식과 물만 먹겠습니다. 열흘 후에 채식과 물만 먹은 우리와 왕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을 비교해서, 우리의 얼굴이 왕의 음식을 먹은 소년들보다 못하고 초췌하면, 그때는 당신의 뜻대로 따르겠으니 열흘 동안 시험을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약속대로 열흘 후에 채식과 물만 먹은 다니엘과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했습니다. 본문 15-16절에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고자 노력한 다니엘이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신앙에 실패하느냐? 믿음이 진실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기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데, 어떻게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불가능하고,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하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 없도록, 하나님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배제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현대 그리스도인의 문제가 무엇이냐? 아는 것은 많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맡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9절에 보세요.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건강을 지켜주실 줄 믿고, 왕의 음식을 거절하고, 채식과 물만 먹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은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두 도시에 사는 시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시적인 도시와 영원한 도시, 그리고 이 세상 백성이며 동시에 천국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나라와 두 도시에 사는 시민이기 때문에, 두 나라와 두 도시의 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두 나라와 두 도시의 법이 충돌하고 대립 될 때가 있습니다. 두 나라의 법이 충돌하고 대립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왕은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인이 돌아갈 나라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했습니다. 환관장은 하나님보다 바벨론 왕을 두려워했지만 다니엘은 바벨론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음식을 거부한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뜻을 세우고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뜻이 없이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새해를 맞이하면 뜻을 세우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잠언 16:9,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업과 인생을 계획할 때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형통할 수 없고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8:3,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하나님 말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길이 열리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육신의 떡도 얻고 영생을 얻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육신의 양식도 얻지 못하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무엇을 먹고살았습니까?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먹고살았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 동안 ‘만나’라는 하늘의 양식을 먹고,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를 마셨으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하늘에서 메추라기가 떨어져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물고기는 물살에 떠내려갑니다. 운명에 맡겨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성도가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에 도전합니다. 말씀에 불순종하고 진리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신앙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신앙과 인생에 승리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할 때 길이 열리고 신앙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처럼 일편단심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