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지식의 원전 4. 마녀 사냥 제프리 케인스
(참고 사항) 파란 글씨는 편저자가 쓴 글이고, 아래 검정 글씨는 원저자의 글이다.
1612년 시인인 존 던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그대는 아는가? 심장으로 피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한쪽 심실에서 다른 쪽 심실로 어떻게 가는지.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심장 가운데에 심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격막이 있고, 거기에 피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살리우스는 이러한 구멍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시인 던을 알고 있었을 위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가 혈액의 순환을 발견함으로써 이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1615년 그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런던의 의과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지만 1628년이 되어서야 발표했다. 당시 많은 의학자들은 그의 위대한 발견을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라고 생각했고,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같은 이들은 심장이 하비가 주장하듯 근육으로 이루어진 펌프가 아니라 일종의 용광로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다.
찰스 1세의 주치의였던 하비는 에지힐 전투(1642~1646,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이 촉발되었던 전투-역자 주) 때 두 명의 공주를 보살폈는데, 그 동안 그는 울타리 밑에서 독서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왕실의 명령으로 그는 랭커셔 주의 마녀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하비의 전기 작가인 제프리 케인스의 다음 글에는 17세기 과학의 점진적인 진보를 통해 미신을 이겨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 사건은 1633년 랭커셔 주 번리 지방 근처의 펜들 숲에서 일어났으며. 하비는 그 다음 해에 입회인 자격으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이 북서부의 변경지방에서는 수년간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이 생각해 냈거나, 혹은 그들의 형이나 아버지가 가르쳐준 마녀와 관련된 이상한 헛소문이 돌아 큰 소동이 일고 있었다. 하비가 관여했던 사건은 1633년 2월 10일에 시작되었다. 에드먼드 로빈슨이라는 11살까지 소년이 파디햄의 치안판사인 리처드 셔틀워스와 존 스타키 앞에서 공들여 짜낸 증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만성절(1632년 11월 1일) 날 위트리 레인에서 야생 자두를 따고 있다가, 옆들에서 갈색과 검은색의 두 마리 사냥개가 자기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개들이 ‘황금처럼 빛나는’ 목줄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소년은 산토끼를 발견하고서 사냥개가 쫓지 못하도록 ‘루, 루, 루’ 소리를 냈지만 개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화가 난 소년은 목줄을 나무에 묶어 놓고 막대기로 개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개는 벌떡 일어서면서 디킨슨 부인의 모습으로 변했고, 갈색 개는 이름 모를 작은 소년으로 변했다. 놀란 로빈슨은 도망치려 했지만 부인에게 붙잡혀 버렸다.
부인은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면서 그가 입을 다물면 돈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그 돈을 거절하면서 “싫어, 당신은 마녀야”하고 외쳤다. 그러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쩔렁거리는 말 재갈과 고삐를 끄집어내어 개의 모습이었던 어린 소년의 머리 위에 얹었으며, 그 소년은 흰색 말로 변했다.
부인은 말 위에 올라타 로빈손을 그녀의 앞에 앉히고는 호스톤이라고 부르는 집으로 달렸다. 그곳은 마녀들의 집합장소로 알려진 곳이었다. 약 60명의 다른 사람들이 갖가지 색깔의 말을 타고 그곳에 왔고, 그들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 여인이 로빈슨에게 고기를 먹이고 유리잔에 있는 뭔가를 마시게 하려 했지만, 한 번 맛을 보고는 더 이상 먹기를 거부했다. 로빈슨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 헛간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천장에 있는 밧줄을 당기자, 연기가 나는 고기와 버터 덩어리, 그리고 우유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얼굴을 한 여섯 명이 같은 일을 반복하였고, 그는 무서움에 떨며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도망쳤다. 집으로 돌아온 로빈슨은 아버지에게 여인들이 가시로 사람의 형상을 찌르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로빈슨이 탈출한 것을 알고 마녀 집단의 사람들이 쫓아와 보가드홀이라는 곳에서 거의 잡힐 뻔했지만, 두 명의 기사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다. 로빈슨은 쫓아온 사람들 중 몇몇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로빈슨의 아버지는 로빈슨에게 소 두 마리를 외양간에 묶어두라고 시켰다. 소에게 가는 길에 그는 앨러스라는 벌판에서 어떤 소년을 만나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심하게 싸웠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와 같이 싸운 소년은 가재처럼 갈라진 발을 갖고 있었다. 두려워진 로빈슨은 도망쳐 소들을 찾아 헤매다가 등불을 발견하고는, 자기의 친구들이 가져온 것이라 생각하여 그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다리 위에는 한 여인이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돌아서다가, 다시 가재 발을 가진 소년과 마주쳤다. 그에게서 등짝을 세차게 맞은 로빈슨은 그만 울어 버렸다. 로빈슨의 아버지는 이 이야기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로빈슨을 찾으러 나섰다가 두려움에 울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으며, 15분 정도가 지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로빈슨은 치안판사 앞에서 호스톤에 있었던 사람 중에서 그가 알고 있는 17명의 이름을 불었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진술했다.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교구의 여러 교회들을 돌면서 그곳에 모인 군중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마녀라고 지목했고, 이런 봉사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들은 킬드윅에 있는 교회에 들르게 되었는데, 이곳의 보좌신부인 데이비드 웹스터David Webster는 1677년 마녀사냥에 의해 범해지는 과오를 밝혀낸 『거짓으로 만들어진 마녀를 밝힌다The Displaying of Supposed Witchcraft』라는 책을 지은 사람이었다. 웹스터는 소년이 보고들은 이상한 것들이 진짜인지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소년을 책임지고 있는 두 사람은 이미 두 명의 치안판사에게 증언을 했다며 대답하지 못하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거의 30명 정도가 감옥에 갇혔고, 분노한 이웃들은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랭커스터에서 열린 재판에서 죄수들은 그들의 몸에 의심 가는 표시가 있는지 수색을 당했으며, 17명이 이 징표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몸수색에서는 마녀의 몸에 나타나는 징표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악마와 연합한 사람의 몸에 악마가 그 징표를 새기는데, 징표가 있는 부분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감각이 없어진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한 명 이상의 의사와 같은 성별의 배심원이 피고인을 철저히 검사해야 한다는 법률조항이 있었다. 피고인의 머리를 완전히 깎고 신체의 모든 곳을 만진 다음, 굳은살이 발견되면 그곳을 침으로 찔러보아 감각이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감각이 없으면 그것은 유죄의 증거가 되었다.
또한 마녀를 섬기는 마귀나 마귀새끼에게 먹일 젖꼭지와 비슷한 것이 있는지도 수색했는데, 이러한 마귀나 마귀새끼는 쥐, 생쥐, 개구리, 두꺼비, 새, 파리 또는 거미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더 큰 고양이나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였다.
제임스 국왕은 그의 『귀신론Daemonologie』에서 언급하듯이, 마녀를 구별하는 두 가지의 ‘좋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징표를 찾아서 감각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에 뜨는지를 보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마귀가 든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가벼워서 연못에 집어넣으면 둥둥 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7명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중에 7명은 다행스럽게도 살고 있는 곳이 달라 체스터 교구의 주교인 존 브리지맨John Bridgeman에게 보내졌다. 주교가 감옥에 갔을 때 그들 중 세 명은 이미 죽었고, 네 번째 죄수인 제넷 하그리브는 심하게 앓고 있었다. 나머지 세 명 중 두 명은 마녀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세 번째 사람인 마가렛 존슨Margaret Johnson은 6년 동안 마녀로 지냈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1633년 3월 9일 에드먼드 로빈슨을 심문했던 치안판사들 앞에서 홧김에 다음과 같은 진술을 했다. 악마가 ‘실크로 된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가 영혼을 내어준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그녀가 원하면 얼마든지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거나 복수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녀가 동의하자 악마는 자기를 메밀론Memillion이라고 부르게 하였고, 그녀가 부르면 언제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로빈슨이 진술했던 그날 호스톤에서의 모임을 부인하였으나, 그 다음 일요일날 그곳에 갔었으며, 여러 가지 사악한 계획을 세웠다고 시인했다. 그녀는 더 나아가 ‘그 마녀들은 악마가 그들을 찌르게 하는 뾰족한 뼛조각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젖꼭지 모양의 피부가 없지만 악마가 찌른 곳에서 피가 나오면, 그런 마녀들은 더 강력해져 결국 젖꼭지 모양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허풍을 떤 후 그녀는 ‘이런 고난이 오게 된 후 영혼이 그녀를 떠나고 다시는 악마를 보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주교는 조사를 마친 후 주 장관인 존 코크John Coke 경에게 이 사건을 보고 하였고, 결국 이 사건은 찰스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찰스는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1세보다는 덜 경솔한 사람이었다. 그는 옥새관인 맨체스터 백작 헨리 몬테규Henry Montagu에게 명하여 궁정의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리게 하였다.
찰스 국왕폐하의 신하인 외과 의사 알렉산더 베이커와 클로우스 귀하
그대들에게 명하나니, 조사에 참여할 산파들을 선정하여 이들과 함께 최근 랭커스터 주 장관이 보고한 마녀사건과 관련된 여인들을 면밀히 조사 관찰하여 이상한 징표가 있는지 확인하라. 더불어 국왕폐하의 신하인 의사 하비 씨로 하여금 조사에 참여할 상기의 산파들을 교육시키도록 하라.
1634년 6월 29일 화이트홀에서
맨체스터 백작, 헨리
건강이 회복된 제넷 하그리브를 포함하여 4명의 죄수들이 런던으로 압송되어, 그리니치의 십태번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들은 몽크웰 가에 있는 의사회관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보고되었다.
서기 1634년 7월 2일 런던 몽크웰 가의 의사회관 홀에서 우리는 국왕폐하의 명을 겸손히 받들어, 아래에 이름이 적힌 의사들과 산파들이 하비 박사의 지도 아래 랭커스터에서 온 여인들을 성심껏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사옵니다.
제넷 하그리브와 프랜시스 디컨슨, 그리고 메리 스펜서의 경우, 그들의 음부나 다른 신체 부위 어디에서도 젖꼭지 비슷한 모양이나 다른 징표를 발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마가렛 존슨의 몸을 조사한 결과, 음부와 항문 사이와 왼쪽 엉덩이 가장자리에서 젖꼭지 비슷한 모양을 발견하였사옵니다. 첫 번째 것은 여인들의 젖꼭지와 모양이 비슷하였지만, 저희 판단으로는 치질이나 거머리에 물렸을 때처럼 항문의 피부가 끌려나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사옵니다. 두 번째 것도 여인들 가슴의 젖꼭지와 모양이 비슷하였지만 주의의 피부와 같은 색깔이었고 움푹 들어간 곳이 없었으며 그곳에서 피나 다른 즙 등의 유출도 없었사옵니다.
산파 명단: 마가렛 프랜시스, 안나 애쉬웰, 오렐리아 몰린스, 프랜시스 팔머,
아미스 윌러비, 캐더린 매누쉬, 레베크 레인, 클리프톤,
시벨 펠립스, 조안 센션스.
의사 명단: 알렉산더 리드, 클로우스, 리치 왓슨, 알렉산더 베이커,
제임스 몰린스, 리처드 메잎스, 헨리 블레이크리
이 보고서에는 하비 자신이 서명하지 않고 알렉산더 리드가 대신 그의 자리에 서명했지만, 하비의 정확하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깃들어 있다. 이 조사 결과, 마녀로 몰렸던 7명 중 4명은 국왕을 면접한 뒤 사면으로 풀려났다. 그 후 소년 로빈슨은 그의 아버지와 함께 런던으로 끌려와 단독으로 재조사를 받았으며, 결국 자기가 거짓말을 했음을 고백했다.
그가 얘기한 바로는, 그의 아버지와 다른 몇 사람이 돈을 벌 목적으로 로빈슨에게 거짓 이야기를 꾸미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호스톤에서 마녀를 만났다고 진술한 시간에 로빈슨은 다른 사람의 과수원에서 자두를 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