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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3강 - 3 (2010. 5. 3)
世主妙嚴品.
七,大衆의 得法과 讚佛-1,十地位衆-(1)第十地의 妙焰海天王- 나,偈頌讚歎~(2)第九地의 可愛樂天王-가,天王衆의 得法
天王衆의 得法이 있었고, 그 다음에 나 에가서는 偈頌讚歎(게송찬탄).
이렇게 과목이... 보면 다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 偈頌讚歎(게송찬탄)
爾時(이시)에 妙焰海天王(묘염해천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
하사 普觀一切自在天衆(보관일체자재천중)하고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佛身普遍諸大會(불신보변제대회)하며
充滿法界無窮盡(충만법계무궁진)하시니
寂滅無性不可取(적멸무성불가취)로대
爲救世間而出現(위구세간이출현)이로다
如來法王出世間(여래법왕출세간)하사
能然照世妙法燈(능연조세묘법등)하사대
境界無邊亦無盡(경계무변역무진)하시니
此自在名之所證(차자재명지소증)이로다
佛不思議離分別(불부사의이분별)하사
了相十方無所有(요상시방무소유)하고
爲世廣開淸淨道(위세광개청정도)하시니
如是淨眼能觀見(여시정안능관견)이로다
如來智慧無邊際(여래지혜무변제)하사
一切世間莫能測(일체세간막능측)이라
永滅衆生癡闇心(영멸중생치암심)하시니
大慧入此深安住(대혜입차심안주)로다
如來功德不思議(여래공덕부사의)여
衆生見者煩惱滅(중생견자번뇌멸)이라
普使世間獲安樂(보사세간획안락)케하시니
不動自在天能見(부동자재천능견)이로다
衆生癡闇常迷覆(중생치암상미부)일새
如來爲說寂靜法(여래위설적정법)하시니
是則照世智慧燈(시즉조세지혜등)이라
妙眼能知此方便(묘안능지차방편)이로다
如來淸淨妙色身(여래청정묘색신)이여
普現十方無有比(보현시방무유비)라
此身無性無依處(차신무성무의처)하시니
善思惟天所觀察(선사유천소관찰)이로다
如來音聲無限碍(여래음성무한애)하사
堪受化者靡不聞(감수화자미불문)호대
而佛寂然恒不動(이불적연항부동)하시니
此樂智天之解脫(차낙지천지해탈)이로다
寂靜解脫天人主(적정해탈천인주)여
十方無處不現前(시방무처불현전)하사
光明照耀滿世間(광명조요만세간)하시니
此無碍法嚴幢見(차무애법엄당견)이로다
佛於無邊大劫海(불어무변대겁해)에
爲衆生故求菩提(위중생고구보리)하사
種種神通化一切(종종신통화일체)하시니
名稱光天悟斯法(명칭광천오사법)이로다
爾時(이시)에 妙焰海天王(묘렴해천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普觀一切自在天衆(보관일체자재천중)하고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그랬습니다. 이 10명 대표. 10명도 사실은 대표인데,
대표중의 대표는 妙焰海天王이다. 그렇게 됐습니다.
간혹 11명도 나오는데 대개 10명입니다. 10명을 한 반으로 우리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10명 전후로 한 반을 만드는 것이...
뭐 인연 따라서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렇게 하고 여기 이 형식을 보면 대표도 뽑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또 그리고 그 분들이 사는 곳. 장기, 무슨 경력, 이런 것들도... 여기 득법에 대해서 나온 것이,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앞에 10명이 나왔으니까 게송도 10게송입니다.
4구 일곱 자 네 구절. 그러니까 7언 절로 되어있지요.
7언 절 열 게송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곱 자로써 네 구절이 한 게송이고요. 그런 것이 열 개가 되어있습니다.
그 순서도 앞(3강-2)에 나온 천왕들 순서하고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게송도 두 줄을 하나로 해서 번호를 매기면 됩니다.
앞에서 번호 매겼듯이요. 예를 들어서
佛身普遍諸大會하며 充滿法界無窮盡하시니 寂滅無性不可取로대 爲救世間而出現이로다. ←이것이 한 게송인데요.
여기 위에다가 1번 해놓고 그 다음에
如來法王出世間하사 ←여기다가 2번 해놓고요.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겨 가면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많이 나올 테니까요.
처음 구절이 법당 주련용으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입니다.
1. 佛身普遍諸大會(불신보변제대회), 부처님의 몸은, '
佛身이라고 하면 물론 2700년 전 그 역사적인 부처님도 아니지만, 그것을 물론 포함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법당마다, 도량 도량마다 등상불로 모셔놓은 그 부처님이 아니면서 그것도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슴 가슴마다 정말 昭昭靈靈(소소영영)하게 살아 있는 그 한 물건. 우리의 본심. 그것과 아울러서 이 우주 천지만물의 근원.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뜻으로 佛身.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諸大會. 모든 법회, 모든 큰 법회에 다 두루두루 가 있다. 그래서 充滿法界無窮盡(충만법계무궁진)이라. 법계에 충만해가지고 다함이 없다. 窮盡함이 없다. 어디 없는데 없다 이 겁니다.
그래 심한 표현으로, 옛날 춘성스님께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어떤 이교도가 하나님은 無所不在(무소부재)하다고, 안 계신데 없다고 그러니까 듣다듣다 귀찮아가지고 “야 그럼 똥통 속에도 있느냐?” 그랬더니,
“어찌 神을 갖다가 똥통에다가 비유하느냐?”
“아니 우리는 똥이 그대로 부처님인데,”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 수좌로 망월사에 갔을 때 들었습니다. 充滿法界에 無窮盡이라. 그렇게 되면, 이 글대로라면 어디 없는 데가 없지요.
寂滅無性不可取(적멸무성불가취)로대, 그러나 그 본체는 寂滅해요ㆍ고요해요ㆍ텅 비었어요ㆍ어떤 개체로써의 성품이 없어요.
無性(무성)입니다. 성품이 없어서 취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연필 같으면 제가 연필을 딱 잡으면 이것이 취하는 것이지요. 꽃 한 송이 딱 취하면 잡는 것이고요. 사람하나 딱 지목하면 그것이 취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그렇게 개체적으로 어떻게 형상을 갖춘 존재가 아닌 까닭에, 그러면서 모든 존재에 다 스며있는 까닭에 취할 수가 없다.
그러나 爲救世間而出現(위구세간이출현)이라.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어디에든지 다 나타난다.
出現한다.
이제 며칠 안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부처님은 사실 그 날 오는 것도 아니고, 늘 와있고, 이런 차원으로 부처님을 가르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대승불교이고, 특히 화엄경입니다. 소승불교 같은 데는 석가모니 한분,
역사적인부처님, 그분만을 부처님이라고 대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옛날에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이나 이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것 참 너무 잘못해석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석가모니 생각하고 또 알고 하는 바로 그 사실. 그 사실이 또 살아있는 부처님입니다. 그것을 어찌 우리가 부처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음속에 내가 아는 만치, 내가 배운 만치, 또 내가 느낀 만치 내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이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또 나아가서 모든 두두물물이 전부가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이런 표현을 앞으로 十玄門(십현문)이야기할 때 또 나오겠습니다만,
因陀羅網境界門(인다라망경계문)이라고 하는, 말하자면 제석천의 궁전을 덮고 있는 그물에 달린 구슬처럼, 영롱한 구슬이 서로서로 반영해가지고 다 반영하면서 머금고 있고, 머금고 있으면서 또 비춰주고요. 서로 주고받고 하듯이 佛身이라고 하는 것,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 진리의 몸입니다.
진리의 몸이고 이치의 몸이지,
“몸 身” 하니까 우리는 고정된 어떤 형체로서의 몸을 떠올려서 착각하기가 쉬운데, 그런 것이 아니지요.
2. 如來法王出世間(여래법왕출세간)하사
能然照世妙法燈(능연조세묘법등)하사대, 여래법왕이 세간에 출현하시사, 能然. 능히 태운다. 그러할 然자는 불태울 燃(연)자하고 같이 씁니다.
옆에 불 火가 있는 것을 생략하고, 그러할 然자만 써가지고...
照世妙法燈. 세간을 비추는 묘법의 등불을 비춘다 然. 부처님 오신 날의 뜻을 정말 잘 밝혔네요. 여래법왕께서 세간에 오셔가지고 능히 세상을 비추는 묘법의 등불, 진리의 등불. 미묘한 진리의 등불을 비추는 사람. 그것이 말하자면 부처님이 하실 일이고, 하신 일이고요. 또 우리 불교가 해야 할 일이고요. 등을 다는 그런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바로 알고 달면, 등을 천 개 만개 달아도 그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를 모르고, 생략해 버리고 등만 단다면 사실은 하나도 많지요. 등 참 아름답게 잘 만들어 달았지요? 여기(문수선원)...
能然照世妙法燈이라. 세상을 비추는 미묘한 법의 등불을 비춘다. 이 속에 불교 다 있습니다. 불교가 이 세상에 등불 역할을 해야 돼요. 등불 역할을 하는 것이 불교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境界無邊亦無盡(경계무변역무진)하시니, 경계가 가이없고 또한 다함이 없으시니, 此, 이것은 自在名之所證(차자재명지소증)이로다. 이것은 자재명칭천왕이 증득한 바로다.
이것이 여래법왕이 출세간에서 능히 세상을 비추는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 그 등불을 밝히는 데는 그 경계가 가이없고 다함도 없다 하는 세 구절까지를 부처님의 덕을, 그리고 또 이 사람이 본 부처님. 이 사람이 본 불교. 이것을 이 세 구절로 표현을 했지요.
이 의미는 此는, 이것은, 自在名稱光天王(자재명칭광천왕)이 증득한 바로다. ←(3강-2, 2)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전부 이 형식입니다.
첫 구절은 이름이 없고, 첫 게송은 이름이 없고 두 번째 게송부터는 전부... 마지막 네 번째 구절은 전부 그 사람 이름입니다.
천왕이면 천왕. 보살이면 보살. 무슨 건달바면 건달바. 전부 그들의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네 번째 구절은 꼭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3. 佛不思議離分別(불부사의이분별)하사,
부처님은 불가사의하다.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는 그런 경지가 아니다 이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요량하고, 사량 분별하는 그런 분별을 떠났습니다. 정말 아까 첫 구절에 佛身普遍諸大會(불신보변제대회)해서 充滿法界無窮盡(충만법계무궁진)이라고 佛身을 그렇게 표현 했는데, 정말 불가사의하지요. 제가 뭐라고 설명을 했습니다만, 그 설명도 부족하고, 또 설명을 했더라도 또 그것이 얼른 납득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不思議離分別입니다. 부사의하고 분별을 떠났어요. 납득이 잘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사량 분별을 떠나있는 그런 경지다. 물론 우리의 공부가 깊어지면 차츰차츰 이해되겠지요.
了相十方無所有(요상시방무소유)하고,
相 = 형상. 형상이 시방에 있는 바가 없음을 요달 하고, 형상은 이 세상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시방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있다고 보는데, 부처님은 相이 十方에 無所有.
존재하는 바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爲世廣開淸淨道(위세광개청정도)라. 세상을 위해서 널리
淸淨한 道. 아주 훌륭한 도를 열어서 보이셨다.
아무 것도 없다고 보면서 왜 그러면 부처님은 오랜 세월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8만4천 법문을 하셨는가? 淸淨道를 가르쳤는가?
그것은 爲世. 세상을 위해서다. 중생을 위해서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爲世廣開淸淨道라. 淸淨한 道를 널리 펴보였다.
여기도 淸淨 道라는 것 하고,無所有라고 하는 것도 본래 무소유이기 때문에, 淸淨 道도 공성입니다. 空性(공성). 텅 빈 이치. 모든 존재의 텅 빈 이치를 淸淨이다 그렇게 말 합니다. 공이라는 뜻입니다.
如是는, 이와 같은 것은 淨眼能觀見(여시정안능관견)이로다. 淨眼.
세 번째 보세요. 세 번째 이름이 淸淨功德眼天王(청정공덕안천왕). 이랬습니다. 청정공덕안천왕이 능히 觀見. 살펴보았더라. 청정공덕안을 淨眼이라고 이렇게 간략하게 했지요. 그 다음에 네 번째
4. 如來智慧無邊際(여래지혜무변제)하사,
여래의 지혜는 邊際가 없어요. 가이없어요.
一切世間莫能測(일체세간막능측)이라.
세상 사람으로서는 능히 측량할 길이 없어요. 일체 세상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할 길이 없어요.
永滅衆生癡闇心(영멸중생치암심)하시니,
영원히 중생들의 癡闇. 어리석고 어두운 그 마음을 소멸하게 해주시니,
大慧入此深安住(대혜입차심안주)로다.
네 번째 可愛樂大慧天王(가애락대혜천왕)이지요. 대혜천왕이 여기에 들어가서 깊이 안주했더라. 이 내용이 참 좋네요.
이 대혜천왕은 부처님의 여러 수 억 만 가지의 능력ㆍ지혜ㆍ자비가 있는데 여기서 세 구절로 표현한 이것을 중점적으로 본 겁니다.
이것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그래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지요.
우리도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불교가 뭡니까?” 라고 물어오면,
여러분 마음에 딱 박힌 것. 얼른 떠오르는 것, 그것부터 이야기할 겁니다. 이것이 그런 식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수 억 만 가지겠지요?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내용. 이것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길 가다가 어떤 사람이 물었다면...
이것이 그와 같은 식입니다. 如來智慧는 邊際가 없는데 一切世間이 도대체 측량할 길이 없다. 영원히 중생의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소멸하기 위해서 대혜천왕이 여기에 들어가서, 이 도리에 들어가 가지고서 깊이 안주했더라. 그 다음에 다섯 번째
5. 如來功德不思議(여래공덕부사의)여, 여래의 공덕은 불가사의 하며,
衆生見者煩惱滅(중생견자번뇌멸)이라. 중생이 여래의 공덕을 보는 사람마다 번뇌가 저절로 소멸해 버려요. 아~, 사실 부처님의 그 경지ㆍ부처님의 공덕ㆍ부처님의 지혜ㆍ부처님의 자비ㆍ그것이 어떻다 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함으로 해서 우리는 저절로 사실 번뇌가 사라져요.
그거 뭐 알뜰히 번뇌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번뇌 없애는 노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훌륭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해함으로부터 내 속에 아주 그 알량한 좁은 소견, 소인배 같은 그 소견들은 저절로 소멸되지요. 왜냐? 대인의 훌륭한 것이 태양처럼 빛나니까요.
소인다운 아주 작고 소견머리 없는 것이야 거기에 말하자면 명함을 못 내지 않습니까? 구름 몇 조각 떠 있다 하더라도 밝은 태양이 탁 떠올라버리면 그 구름 몇 조각은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아, 이거 좋은 표현입니다. 불가사한 여래의 공덕을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생각할 때, 그것을 이해함으로부터 우리들의 번뇌를 소멸한다.
普使世間獲安樂(보사세간획안락)케하시니, 널리 세간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시니, 세간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시니
不動自在天이 能見(부동자재천능견)이로다. 능히 그것을 보았더라.
앞에서 5번 不動光自在天王(부동광자재천왕)그랬지요?
그 번호를 꼭 매겨야 돼요. 그래야 얼른얼른 찾아보기 쉽지요.
不動光自在天王은 부처님의 바로 그러한 면을 이해했고, 그 이해한 것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렇게 보겠습니다.
이 다섯 번째 구절 아주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가 불교를 이해하게 하는... 안 되는 것 그저 아등바등... 기도 하려고 향을 꽂아놓고, 옛날에는 시계가 없어서, 우리 어릴 때는 시계 없었어요. 그래 향을 꽂아놓고 기도를 하는데, 그 향이 두 개가 타면 한 시간 쯤 된다. 그러거든요. 그 날은 왜 그리 습기가 많아서 향도 그리 느리게 타는지... 습기가 많으면 빨리 안타는 겁니다.
문 열어놔도 소용없어요.
그래서 추워도 막 문을 열어놓고 바람이 들어와 빨리 타게 하고요.
여러분은 그런 꾀 모르지요? 어릴 때 기도할 때 꾀 나면 다 그렇게 할 겁니다. 허허허허허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식으로 아등바등 힘들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자연스럽게 부처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면 저절로 내 마음이 정화돼요. 저절로 정화됩니다. 법당에 오는 것하고, 우리가 개인 방에 들어가는 있는 것하고 우리 마음자세, 태도가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법당에 그냥 가가지고 좌선을 하든지 낮잠을 자도 법당에 가서 낮잠을 자면 꿈도 달리 꿔요. 공부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돼야 된다고요. 억지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우리가 부처님의 그 지혜와 복덕과 진리의 가르침을 순조롭게, 아주 순리로 접하다 보면 저절로 편안해져요. 이 분은 그런데다 중점을 두고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6. 衆生癡闇常迷覆(중생치암상미부)일새
如來爲說寂靜法(여래위설적정법)하시니, 중생의 어리석음의 어둠은 항상 우리를 덮고 있어, 이것이 문제예요. 癡闇이 문제예요.
어리석음이 문제입니다. 그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은 결국은 寂靜法이다 이것이지요. 공성ㆍ무아ㆍ무상ㆍ무안이비설신의ㆍ무색성향미촉법ㆍ나는 없다라고 하는 그 寂靜法. 거기에 막혀가지고 우리가 어리석은 겁니다.
그것 하나... 모든 것이 있다. 내 것이다. 라고 꼭 그냥 너도 있고ㆍ나도 있고ㆍ사랑도 있고ㆍ미움도 있고ㆍ온갖 감정은 그냥 너무너무 확실하게 있다. 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어리석음이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고통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衆生癡闇常迷覆일세. 치암이, 어리석음이 항상 우리를 덮고 있을세. 여래는 그들을 위해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寂靜法. 이것은 空法입니다.
空性에 대한 이치입니다. 無我에 대한 이치를 적정법이라고 그래요.
無相의 이치고요. 반야심경의 이치고요. 적정법은 반야 600부의 가르침이고요. 是則照世智慧燈(시즉조세지혜등)이라.
이것은 세상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라. 하~ 참, 좋지요? 이것은 곧 세상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라. 妙眼能知此方便(묘안능지차방편)이로다. 여섯 번째 妙莊嚴眼天王(묘장엄안천왕)이라고 했어요.
그 묘장엄안천왕이 능히 이방편을 잘 알았도다. 그 다음에 일곱 번째
7. 如來淸淨妙色身(여래청정묘색신)이여
普現十方無有比(보현시방무유비)라, 如來淸淨妙色身이여, 여래의 청정. 아주 뛰어나고 미묘한 色身이여 普現十方無有比라, 시방에 널리널리 어디 안 나타나는 데가 없는데, 비교할 데가 없더라.
此身無性無依處(차신무성무의처)하시니, 이 몸이라고 하는 것, 여래신ㆍ부처님의 몸. 맨 첫 구절이 佛身普遍諸大會(불신보변제대회)였잖아요.
여래신이라고 하든지, 불신이라고 하든지 그것은 큰 차이 없습니다.
진리의 몸.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色身. 妙色身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적인 그런 묘색신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普現十方無有比입니다. 온 시방에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관계없이 다 거기에 스며있다. 이치로써ㆍ진리로써 스며있는 것이지요. 此身은 無性無依處라고했잖아요. 이 몸은, 이 진리의 몸은 성품도 없어요. 어떤 개체적인 성품이 없어요. 그리고 또 의지할 곳도 없어요. 개체적인 성품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이런 개체적인 몸뚱이가 있으니까 어디든지 의지해야 돼요. 땅위에 앉든지 의자에 앉든지 뭘 어디에든지 의지해야 되는데, 부처님의 몸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우리에게 참 잘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성품이 없으니까 의지처도 없다. 善思惟天이 所觀察(선사유천소관찰)이로다. 선사유천왕이 관찰한 바로다. 그 다음에 여덟 번째
8. 如來音聲無限碍(여래음성무한애)하사,
여래의 음성은 限碍가 없다. 한계가 없다 이 말입니다. 한계가 없고, 걸림이 없다. 堪受化者靡不聞(감수화자미불문)이라. 능히 교화를 받는 자에게 있어서 들리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 소는 소대로 듣고ㆍ말은 말대로 듣고ㆍ미국사람은 미국사람대로 듣고ㆍ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듣고ㆍ다 그 근기 따라서ㆍ수준 따라서 다 듣게 된다. 그래서 여래 부처님은 無限碍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 꼭 뭐 이렇게 말하는 음성으로 생각하면 화엄경을 좀 더 우리가 달리 봐야지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소리ㆍ또 우리 한국말이면 한국말ㆍ영어면 영어ㆍ이런 뜻이 아닙니다.
如來音聲無限碍라고 하는 것은요. 이미 표현하고 있는 그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 꽃 한 송이가 있다. 꽃 한 송이는 꽃 한 송이대로 자기의 음성을ㆍ자기의 색깔을ㆍ자기의 향기를ㆍ자기의 어떤 성품을 다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보는 사람마다 다 그것을 느낍니다.
堪受化者靡不聞입니다. 능히, 堪자는 능히 라고 하는 뜻입니다.
능히 교화를 받는 자에 있어서 듣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으되
而佛寂然恒不動(이불적연항부동)하시니, 부처님은 寂然해서, 고요한 그 자리에 있어서 항상 동하지 않으시니 此樂智天之解脫(차낙지천지해탈)이로다. 이것은 낙지천왕의 해탈이로다. 此樂智 그랬는데요.
여덟 번째 可愛樂大智天王(가애락대지천왕)그랬는데, 줄여서 낙지천왕의 해탈이로다. 그 다음에 아홉 번째
9. 寂靜解脫天人主(적정해탈천인주)여,
고요한 도리로써, 寂靜의 도리로써 해탈하신 天人主이여, 부처님을 이렇게 표현했네요. 천상과 인간의 주인이여, 그것은 寂靜解脫을 했기 때문에 또 이렇게도 표현 하는 겁니다.
寂靜解脫天人主여, 十方無處不現前(시방무처불현전)하사,
시방에 어느 곳 마다 現前지 아니함이 없으사, 시방에 어디든지 다 現前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막 그대로 쉽게 이해하기로 하면, 시방에 존재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天人즉 여래이고 부처님이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十方無處不現前했으니까, 시방에 어느 곳 마다 다 있다.
光明照耀滿世間(광명조요만세간)하시니, 그 모습 그대로 光明으로 자주 표현을 하고 있어요. 그것이 光明照耀입니다. 滿世間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그 모습 그대로 자기표현 하고 있어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저 나무는 나무대로ㆍ구름은 구름대로ㆍ하늘은 하늘대로ㆍ물은 물대로ㆍ또 소나무는 소나무대로ㆍ감나무는 감나무대로ㆍ밤나무는 밤나무대로 전부 뭐라고요? 光明照耀滿世間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다 자기표현 하고 있어요. 光明照耀입니다.
그 광명을 비추고 비춰서 세간에 가득하여, 此無碍法은 嚴幢이 見(차무애법엄당견)이로다. 아홉 번째 천왕이 普音莊嚴幢天王(보음장엄당천왕)이라고 했으니까, 此無碍法은, 이 걸림이 없는 법. 정말 걸림 없는 도리지요.
걸림 없는 도리는 엄당천왕이 본 것이다. 그 다음에 열 번째
10. 佛於無邊大劫海(불어무변대겁해)에,
부처님은 끝없는 큰 겁의 바다에서
爲衆生故求菩提(위중생고구보리)하사, 중생을 위한 까닭에 보리를 구했다. 여기 보리라는 말이 나왔는데, 우리 보리라는 말을 참 잘 쓰지요?
보리심ㆍ삼먁삼보리. 또 특히 근래에 남방불교ㆍ티벳불교가 많이 들어오면서 보리라는 말이 더 우리 귀에 익숙합니다. 특히 티벳불교는 보리라고 하는 이 한 마디로써 불교 전체를 표현합니다. 그냥 보리ㆍ보리. 하면 사전 보면 覺이라고도 하고 道라고도 하고, 그래봐야 그것도 또 애매한 겁니다.
깨달음이니 뭐 도니 그런 것...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지혜와 자비입니다. 지혜하고 자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보리예요.
깨달았다고 하는 것도 결국 지혜와 자비입니다.
그래 제가 티벳불교에 오래있으며 공부하고 온 사람한테 물었더니,
“자비를 뜻하는 것이다. 특히 달라이라마스님은 자비를 보리라고 한다.” 그러더라고요. 자비심을 보리라고 많이 한다. 지혜가 물론 겸비 돼야 됩니다. 지혜 없는 자비는 바람직한 자비가 아니지요.
보리라고 하는 한 마디로 참 좋은 말인데, 지혜와 자비를 항상 같이 떠올려야 됩니다. 그래 중생을 위한 까닭에 보리를, 지혜와 자비를 구했다.
種種神通化一切(종종신통화일체)하시니, 가지가지 신통으로써 일체중생들을 교화하시니 名稱光天이 悟斯法(명칭광천오사법)이로다. 명칭광천왕이 이 법을 깨달았더라.
이렇게 해서 열 분이 낱낱이 부처님의 특징을, 한 분도 같은 표현이 없고, 물론 비슷한 것은 있습니다만, 전부 특색 있게 부처님의 면면을 본대로 이렇게 소개하는 그런 讚佛頌(찬불송). 또는 歎德頌(탄덕송). 덕을 찬탄하는 그런 게송이다.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읽고 입에 익숙하도록, 이런 게송은 입에 익숙하도록 읽고 써보고, 그렇게 할수록 맛이 더 납니다. 자꾸 맛이 납니다.
아주 여러 가지 맛이 납니다. 여기서 설명 들었던 것 하고 또 다른 그런 맛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 다른 것. 금강경이나 법화경이나 능엄경이나 아기자기한 그런 경전들은 그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고 비유도 많고 그래서, 얼른 이해되고 짧은 이야깃거리도 되고 그런데, 화엄경은 그렇지 못해요.
화엄경은 보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참 막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에 마음을 좀 기울여가지고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고 재미를 붙이고 맛을 들이기로 하면, 정말 다른 경전하고 비교가 안 돼요. 글도 참 아름답고 뜻은 말할 수 없이 깊고요. 또 우리 일상생활하고 곧 바로 연결이 되고요. 생활하고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꾸 익숙하게 읽고 눈여겨보고요. 또 이렇게 해석해보고 저렇게 해석해보고요. 우리 생활하고 연관시켜서 해석해보는 그런 자세가 있으면 화엄경을 참 잘 만났다. 화엄경 참 좋다 라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可愛樂天王(가애락천왕)입니다.
(2) 第九地의 可愛樂天王(제구지 가애락천왕)
가, 天王衆의 得法(천왕중 득법)
復次可愛樂法光明幢天王(부차가애락법광명당천왕)은
得普觀一切衆生根(득보관일체중생근)하야
爲說法斷疑解脫門(위설법단의해탈문)하고
淨莊嚴海天王(정장엄해천왕)은 得隨憶念(득수억념)하야
令見佛解脫門(영견불해탈문)하고 最勝慧光明天王(최승혜광명천
왕)은 得法性平等無所依莊嚴身解脫門(득법성평등무소의장엄신
해탈문)하고 自在智慧幢天王(자재지혜당천왕)은
得了知一切世間法(득요지일체세간법)하야 一念中(일념중)에
安立不思議莊嚴海解脫門(안립부사의장엄해해탈문)하고
樂寂靜天王(락적정천왕)은 得於一毛孔(득어일모공)에
現不思議佛刹無障礙解脫門(현불사의불찰무장애해탈문)하고
普智眼天王(보지안천왕)은 得入普門(득입보문)하야
觀察法界解脫門(관찰법계해탈문)하고 樂旋慧天王(낙선혜천왕)
은 得爲一切衆生(득위일체중생)하야 種種出現(종종출현)호대
無邊劫(무변겁)에 常現前解脫門(상현전해탈문)하고
善種慧光明天王(선종혜광명천왕)은
得觀一切世間境界(득관일체세간경계)하야
入不思議法解脫門(입불사의법해탈문)하고
無垢寂靜光天王(무구적정광천왕)은
得示一切衆生出要法解脫門(득시일체중생출요법해탈문)하고
廣大淸淨光天王(광대청정광천왕)은 得觀察一切應化衆生(득관
찰일체응화중생)하야 令入佛法解脫門(영입불법해탈문)하시니라
復次, 또 다시
1. 可愛樂法光明幢天王(부차가애락법광명당천왕)은,
得, 얻었다. 무엇을요?
普觀一切衆生根(득보관일체중생근)하야, 일체중생들의 근기를 널리 관찰해서 爲說法斷疑(위설법단의)하고, 그들을 위해서 설법해서 의심을 끊고, 疑心이라고 하는 것도 번뇌에 해당되지요. 貪ㆍ瞋ㆍ癡ㆍ慢ㆍ疑(탐진치만의). 5邪중에...
根本煩惱(근본번뇌)다섯 가지 중에도 의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심” 하니까 조금 ‘의심 없는 사람도 있는데,’←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疑惑(의혹)이라고 표현을 많이 합니다. 의혹은 곧 미혹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설법으로써 다 끊어버린 그런 解脫門(해탈문)을 얻었고, 두 번째
2. 淨莊嚴海天王(정장엄해천왕)은 得隨憶念(득수억념)하야,
得隨은 기억입니다. 기억을 따라서 令見佛(영견불), 부처님을 보게 하는, 기억을 따라서 부처님을 보게 하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고,
3. 最勝慧光明天王(최승혜광명천왕)은
得法性平等無所依莊嚴身解脫門(득법성평등무소의장엄신해탈문)을 얻었다. 법신이 평등해서 의지할 바가 없는 그런 장엄의 몸이다. 이것은 뭘 장엄해서 장엄이 아니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法性平等이니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꽃송이면 꽃송이, 줄기면 줄기, 잎이면 잎, 뿌리면 뿌리, 그 무엇이든 간에 평등해요. 法性은 平等해서 어디에도 의지할 바 없는 그대로가 또 장엄신입니다. 뿌리는 뿌리대로 장엄신입니다. 저 땅 속에 있지만 그대로 장엄신입니다. 그런 해탈문을 얻었다. 또
4. 自在智慧幢天王(자재지혜당천왕)은
得了知一切世間法(득요지일체세간법)하야, 일체세간 법을 了知해서, 일체세상 법을 잘 알아요. 그래서 一念中(일념중)에, 한 생각 가운데
安立不思議莊嚴海解脫門(안립부사의장엄해해탈문)하고,
불가사의한 장엄의 바다를 安立했다. 세웠다. 우뚝 세웠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세간 법을 잘 아니까요. 한 생각 가운데 불가사의한 그런 세상 장엄을 그대로 마음속에 다 갖출 수 있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제가 그 전에 어떤 연극한 비구니스님 대담한 것을 읽었는데요.
어떤 세속 기자가 세상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느냐? 물었더라고요.
“세상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니까
“세상사에서 어떻게 살던 간에 그 다양한 세상 사람들의 삶을 5분이면 다 꿰뚫어 버린다. 5분이면 다 생각해서 나는 이해하고 만다.”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다 이 겁니다. 세상사는 빤하다 이것이지요. 한 순간에 그것도...
어떤 기특한 삶을 살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몇 푼어치 안 된다.
“5분이면 모든 세상 사람들의 삶을 다 나는 꿰뚫는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옛날에 연극하던 사람인데 지금 아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5. 樂寂靜天王(락적정천왕)은 得於一毛孔(득어일모공)에,
한 毛孔에 現不思議佛刹無障碍(현불사의불찰무장애), 불가사의 불찰을 나타내는 데 장애가 없는, 불가사의한 이 세상을 나타내는데 장애가 없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이것도 역시 事事無碍(사사무애)입니다. 一毛孔에 現不思議佛刹하는데 무장애하다. 무장애가 뭡니까? 事事無碍를 無障碍라고 이렇게 한 것이지요.
一毛孔에, 눈에 보일 듯 말듯 한 그 우리 신체에 모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중에 한 모공 속에 불가사의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이 세계를 나타낸다 이 말입니다.
一微塵中含十方. 그런데 아무장애가 없어요. 그런 해탈문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事事無碍의 이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6. 普智眼天王(보지안천왕)은 得入普門(득입보문)하야,
넓은 문에 들어가서, 이것은 말하자면 어떤 지혜의 문이라고 말씀 할 수가 있습니다. 觀察法界(관찰법계), 법계를 관찰했다. 지혜를 말한 것이니까요. 지혜의 문에 들어가서 법계를 관찰하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고,
그 다음에 일곱 번째
7. 樂旋慧天王(낙선혜천왕)은 得爲一切衆生(득위일체중생)하야
種種出現(종종출현)호대, 無邊劫(무변겁)에 常現前解脫門(상현전해탈문)이라. 그랬어요. 일체중생을 위해서 가지가지로 출현해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되 하~ 無邊劫에, 끝없는 그 세월 속에서 항상 나타난다. 어느 한 순간만 중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늘 끊임없이 중생을 위해서 일하는 그 모습. 우리 보통 근기는 참 어렵지요.
신심 날 때 한번 시작해 놓고는, 나중엔 용두사미가 돼서 감당도 못하는 그런 예들이 많은데, 우리가 배울 바이지요. 일체중생을 위해서 種種으로 출현하되, 한량없는 겁에 항상 출현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그 다음에 여덟 번째
8. 善種慧光明天王(선종혜광명천왕)은
得觀一切世間境界(득관일체세간경계)하야, 일체세간의 경계를 관찰해서 入不思議한 法(입불사의법). 불가사의한 법에 들어가는 解脫門(해탈문)을 얻고, 그렇습니다. 세상 속에 불법이 다 있어요. 불법 떠나서 세상없으니까요. 세상 법 잘 관찰하면 그 속에 불가사의한 도리를 깨닫게 돼요.
화엄경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세상사 속에 다 불가사의한 법이 있어요. 참 좋은 표현이지요. 觀一切世間境界하야, 일체세간 경계를 관찰해서 부사의한 법에 들어가는 解脫門을 얻었다. 우리가 생활하는 속에 유치원을 운영하든지ㆍ복지관을 운영하든지ㆍ노인당을 운영하든지ㆍ뭘 하든지, 아니면 집에서 살림을 살든지ㆍ농사를 짓든지ㆍ모든 것 속에 우리의 마음이 거기에 게제 되어있으면, 불가사의한 이치를 다 깨달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아홉 번째
9. 無垢寂靜光天王(무구적정광천왕)은
得示一切衆生出要法(득시일체중생출요법). 出要,
저 앞(3강-2)에는 出離(출리)라고 했는데 같은 뜻이라고 했지요?
出要. = 出離. 일체중생에게 출요 법을 보이는 생사해탈ㆍ너와 나ㆍ옳고 그름ㆍ모든 상대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치를 보여주는 解脫門을 얻었다. 그 다음 열 번째
10. 廣大淸淨光天王(광대청정광천왕)은
得觀察一切應化衆生(득관찰일체응화중생)하야, 일체 應化 중생들을 관찰해서, 꼭 맞추어서 교화해야할 중생. 應化가 그 말입니다.
갑이라고 하는 사람은 갑이라고 하는 어떤 습관과 생활과 성질에 딱 맞게 그것을 관찰해요. 그래가지고 令入佛法解脫門(영입불법해탈문)이라.
참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불법에 들어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일방적으로 여기도 예를 들어서 욕심 같아서는 일대일로, 그 사람의 어떤 근기에 맞추어서 딱 딱 그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또 상황이 그것이 아니면, 그렇게 일방통행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여기에는, 이 천왕은 일체중생에게, 일체 應化중생에게, 딱 맞추어서 교화해야할 중생을 관찰해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불법에 들어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