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9】
고종은 왕실의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895년 고종 32년에 내장원을 설치했다.
이후 내장원의 기능을 더욱 확대해 1899년 12월에 내장원 산하에 인삼 및 홍삼에 대한 관리를 담당할 삼정과를 설치했다.
이로 인해 국내의 홍삼 판매는 국영사업으로서 내장원의 독점 영역이 되었다.
홍삼 무역으로 인해 자본을 축적해가던 개성상인들에게 이런 변화는 낯선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재배한 인삼을 내장원에서 거두어 가고 그 대가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배상금을 받게 되자 반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문제는 조선 인삼업을 노린 일본인들의 침탈 행위였다.
개항 후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대청,대일 무역에서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조선인삼을 손에 넣고자 혈안이 됐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의 거류민들은 처음에는 소량의 홍삼을 빼돌려 중국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홍삼 무역이 큰 수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안 일본인들은 1894년부터 아예 규모를 키워 홍삼 제조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비밀리에 제조한 소량의 홍삼으로는 성에 차지 않자 아예 인삼밭 전체를 빼앗으려고 나선 것이다.
1900년 내장원의 수장 이용익은 일본의 미쓰이물산회사와 7년 동안 홍삼 위탁판매 계약을 맺는다.
애초 계약은 미쓰이물산이 수고료를 받고 홍삼을 중국에 수송 보관하는 일만 맡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결국 수출 홍삼 전량을 미쓰이물산이 독점하게 된다.
1908년 홍삼의 전매제도가 실시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홍삼은 총독부 전매국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고, 미쓰이물산은 독점적으로 홍삼을 수출하게 되었다.
1916년 중국 시장에서 조선산 고려인삼의 평균 가격은 한 근당 150원 내외였고,미국산은 20원 내외,만주산은 8원 내외,일본산은 5원 내외였다.
조선총독부 전매국은 1931년 4월 이마무라 도모에게 ‘人蔘史’ 집필을 외뢰한다.
이마무라는 1934년 8월부터 1940년 3월까지 9년 동안 총 일곱 권의 인삼관련 저서를 펴냈다.
총독부가 이런 간행사업을 기획했던 이유는 중요한 자원인 조선의 인삼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본격화한다.
이미 1930년을 전후하여 중국에서 전개되던 排日운동과 대공황이 겹치면서 미쓰이물산의 對중국 홍삼 수출은 침체기에 들어갔다.
수출용 홍삼이 쌓이게 되자 미쓰이물산은 조선에서 판매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