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경주에 고모부가 하시는 과수원에서 여름을 나곤 했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경주시내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지나서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이 그 지역이다.
지금은 강위로 큰 다리가 있지만 60,70년대에는 비가 많이 오면 과수원이 있던 지역이 고립이 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어른들의 등에 업혀서 강을 건너던 생각이 난다. 강을 건너고 나면 강둑을 지나 길가 한 쪽으로는 탱자나무담들이 이어지고 과수원을 향한 길양쪽으로 수레바퀴자국이 나있고 가운데는 엉겅퀴나 이름 모를 잡풀들이 보드랍고 촉촉하게 솟아 있었다.
얼마간을 걸어가면 왼쪽으로는 수박과 참외가 익어가는 밭이 나오고 그 가운데로 동네아이들이 모여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는 원두막이 서있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수백년 동안 은둔왕국을 지키는듯한 철문이 보인다.
기억속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있고 철문은 녹이 슬어있어 마치 세월을 그대로 담고있는 할아버지의 얼굴같이도 보인다.
철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수백그루의 사과나무들이 거대하게 서있다.
지금의 사과나무는 사람키보다 조금 큰 정도이지만 그때에 국광, 홍옥, 스타킹등의 사과나무는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거인들이었다. 왼쪽으로는 각종 채소를 키우는 밭들이 이어지고 그 밭 너머에는 동화에 나오는 말하는 키다리아저씨같이 포플라 나무들이 수십그루가 도열을 해있다.
한참을 걸어들어가면 돼지우리가 왼쪽으로 있고 과수원지기가 사는 언덕이 오른쪽으로 나온다.
언덕의 초입에는 반지하로 만들어진 창고가 있다. 늦여름 사과를 수확하면 나무괘짝에 담아 그곳에서 보관을 한다.
언덕을 오르면 자그마한 흙집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 그 방에서 화투놀이를 사촌누나와 하던 생각이 난다.
부엌에서는 나무가 타고 있는데 나는 어릴적부터 불놀이를 좋아해서 늘 어른들에게 ‘너 밤에 자다가 오줌 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루는 그 작은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련히 수만명의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밖에 나가 소리나는 쪽을 보니 셀수도 없이 많은 철새들이 포플라 나무들 위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새였는지는 모르겠다. 먼길을 날아와서 쉬고있는 새들을 보며 나는 그 새들이 부러웠다.
서울에 있는 엄마생각에 밤마다 울고 있어서였는지…
엄마는 꼭 내가 잠을 자는 사이에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다시 엄마를 볼 날은 셀 수도 없이 멀기만 했다.
잠깐 딴짓을 파는 사이 거짓말같이 그 많은 새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느껴졌던 그 적막감과 그 허전함은 지금도 내 팔뚝과 허벅지를 스치는 찬 공기와 같이 느껴진다.
농약을 칠때는 과수원 가운데 있는 우물에 고여있는 짙은 녹색의 액체로부터 전기펌프로 통통대며 수십개의 호스로 뿜어진다.
아이들은 그런 호스가 엉키거나 꼬이지 않게 어른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땀을 흘린다.
바람이 불고나면 동네사람들이 광주리를 가지고 과수원에를 들어온다.
그들은 오원인가를 내고 나무밑에 떨어져있는 채 안익은 돌사과들을 주어서 사간다.
그 사과들을 삶아서 먹는다는 말을 들었던듯 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사라호라는 태풍이 왔을때 과수원 너머에 강이 범람을 해서 온 과수원이 잠기고 모든 작물과 돼지들이 떠내려 갔다고 한다.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사촌누이에게 물었더니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사과 과수원은 벌써 수십년전에 파헤쳐지고 이제는 동네인지 비닐하우스인지가 들어선거 같다는 말 이외에는…
과수원 앞에 흐르는 강은 우리의 낙원이었다.
강에서 헤엄을 치고 잠수를 하며 가끔씩 종아리에 붙는 거머리에 질겁를 하기도 했다.
강가에서 운이 좋은 날에는 까맣게 윤이 나는 자수정을 주었는데 우주를 들여다보는듯한 신비함과 그 따뜻하고 매끈한 촉감은 내 손끝에 지금도 느껴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원두막에서 동네 아이들과 설익은 수박을 쪼개 먹으며 놀았는데 그 동그라하고 짧은 머리들에 반질거리는 피부 그리고 서울깍쟁이라며 나를 좋아해주던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추억은 왜 아름다울까?
그 나라에는 사고도 없고 싸움도 없다.
그냥 세월의 향기가 나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할일이 버거울 때마다 나는 그 과수원 풀길을 걸었다.
이제는 결코 갈 수도 없고 다시 찾을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에, 내 꿈속에는 조용한 첫사랑의 고백과도 같이 그곳은 영원히 존재한다.
david
첫댓글 실락원이네요. 지금은 잃어버린 천상의 낙원이요.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요. 없는 사람도 있어요.
고요한, 유려한 수필 잘 읽었습니다
늘 공감해주시고 따뜻한 댓글 달아주싱에 감사드립니다. 올 겨울은 미국이 한국보다 더 춥게 느껴집니다.
"사고도 없고 싸움도 없다" 마음에 울림이 있네요. 최소한 제 주변에서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이 땅에서도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왜 사람들은 자연과 같이 한결같지 않은지 수수께끼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아도 수 많은 말과 행동의 실수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david님은 주변의 모든것이 이야기꺼리가 되네요. 일상이 스토리텔링화입니다^^
쪽지를 드렸습니다.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avid 이제 확인했습니다. 쪽지 답장했습니다.
david 님의 순수하고 수채화같은 글 속에 제가 마치 경험하고 나온 듯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귀중한 과거로의 여행에 동참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공감의 댓글 감사합니다. 소중님은 어느 지역에서 거주하시는지요?
@david 네, 저는 부천에 살고 있습니다...고맙습니다. ㅎ
소일하는 관계로 이제사 추억을 탐독했네요
저는 중2때까지 10리나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며
남학생들과 어울려 과수원을 드나들었던 아릿다운 추억이 있습다
역이민공동체에서
보고 듣고 깨달은 삶도 10년 20년 세월이 흐른뒤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요
앞으로 펼쳐질 삶의 희노애락을 찬찬히 기록하며 인생을 논하여 보려구요^^
ys님이 우리 카페에 있으셔서 카페가 더욱 빛이 나는 듯 합니다.
유년의 값진 추억의 글 마치 함께한 느낌입니다. 그때의 상황이나 감정을 자세히 기록할수있는것도 타고난 재능이고 오래 오래 기억되려면 일기로 남기는 습관만큼 좋은게 없을것같아요 !ㅎ
추천합니다!!!
추천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국님!
아름다운 추억에 마치 저도 함께한 듯한 기분이네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서 자연 속의 추억이 없어서 부러워요.
저도 서울이 고향이지만 이런 시골의 추억이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