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1-2 11 전포田圃 밭과 채마밭 2 전가즉사田家卽事 三首
其一
일간모옥의산강一間茅屋倚山岡 한간짜리 허름한 집 산 언덕에 기대 있고
장반옹고어정장場畔翁姑語正長 마당가에선 영감과 할매의 말이 한창 길구나.
미해평생영작록未解平生榮爵祿 평생에 벼슬과 녹봉으로 영화 누리진 못하였고
지과졸세부농상只誇卒歲富農桑 그저 한 해의 농사와 누에치기가 풍작임을 기꺼워할 뿐.
계교일만우양하溪橋日晩牛羊下 시냇가 다리에 해 질녘이라 소와 양이 내려오고
추롱풍고화출향秋壟風高禾秫香 가을 언덕에 바람 불자 벼와 차조가 향기롭다.
대득아동고백주待得兒童沽白酒 아이가 막걸리 사오는 것 기다렸다가
선취고반환인상旋炊菰飯喚人嘗 재빨리 고미밥 짓고는 맛보자며 사람을 부른다.
한 칸 띠 풀집이 산비탈에 기대있고
뜨락 한편의 노부부는 긴긴 이야기를 나누네.
평생 부귀영화를 누려 본 적이 없고
단지 농사와 베 짜는 일만 잘되면 흡족했다네.
해지면 소와 염소 떼를 계곡의 다리로 몰아오고
밭두렁 높은 가을하늘에 바람이 불면 알곡이 익네.
심부름 보낸 아이가 맑은 술 사오기를 기다렸다가
센 불로 나물밥지어 함께 드시자며 사람을 부르려네.
►산강山岡 높지 않은 산. 언덕
►‘자랑할 과, 노래할 구誇’ 자랑하다. 자만自慢하다
►화출향禾秫香 벼와 차조가 익는 향기
►선취旋炊 빨리 밥 지음. 센 불로 밥을 지음.
►고미菰米(=고반菰飯) 풀 나물 섞어 지은 밥
‘고菰’는 창포와 같은 물풀인데 그 풀에서 나는 쌀.
<줄[菰米]>
성미한性微寒 무독無毒 성질은 약간 차고, 독은 없다.
고인이위미찬古人以爲美饌 옛날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으로 여겼는데
작반역취삽作飯亦脆澁 밥을 지으면 또한 부드러우면서도 껄끄럽다.
/<식물본초食物本草>
감랭무독甘冷無毒 맛은 달고, 성질은 냉하며, 독은 없다.
해번열조장위解煩熱調腸胃 번열을 풀어주고 장위를 조화롭게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고菰은 줄풀이라고 하는 얕은 물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식물로서
우리나라의 갈대 정도 되는 크기이나 굵기는 더 굵다.
어린 밑줄기는 ‘교백茭白’이라 하여
죽순정도의 굵기로 죽순을 요리하는 것과 같이 음식에 많이 사용된다.
이 줄풀의 이삭을 ‘고미菰米’라 하여 벼처럼 食用하였다.
한적하고 풍요로운 시골 풍경이다.
노인 부부가 시골에서 세금 걱정 없이 부지런히 농사일을 하며
이웃 간에 정겹게 살아가는 광경을 읊었다.
상상만 해도 꿈에 그리던 평화로운 정경이다.
매월당은 이런 곳에 정착하여 저 농부처럼 마음 편하게 살고 싶었으리라.
其二
문정계군탁만화門靜鷄群啄晚禾 대문 앞은 조용하고 닭들이 늦벼를 쪼는데
초문남사양신차初聞南舍釀新醝 남쪽 집에선 새로 담근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격양가파최과소擊壤歌罷催科少 격양가 끝나도록 세금 재촉하는 이 거의 없고
새사인귀취무다賽社人歸醉舞多 토지 신께 제사한 이는 돌아오며 취해 춤추는 이 많구나.
구우취래아공굴區芋脆來兒共堀 두럭 토란 연해서 아이들이 모두 캐고
향등숙처수친사香橙熟處手親槎 향기로운 귤이 익은 곳에서 손으로 친히 따네.
로옹희설앙전숙老翁喜說秧田熟 늙은 영감 밭벼 익은 걸 기뻐하여 말하며
질독구우하단사叱犢驅牛荷短蓑 새끼 달린 소 모는데 짧은 도롱이 메었구나.
조용한 사립문 곁에는 닭들이 늦벼를 쪼아 먹고
남쪽 이웃집이서 새 술을 걸렀다는 소문을 설핏 들었다오.
배불리 먹고 놀아도 세금 독촉이 거의 없으니
풍년 감사제를 드린 뒤 취하여 너도나도 춤추며 귀가하네.
구석 땅의 토란이 연해지니 아이들이 함께 캐내고
향기로운 귤 익어가는 곳은 내 손으로 비틀어 딴다.
늙은이는 밭벼가 잘 익었다고 기뻐서 말하며
송아지와 어미 소 몰며 짧은 도롱이 메고 온다.
►만화晚禾 만도晚稻. 늦벼
►‘술 차/소금 차醝’ 醝 술. 백주白酒(빛깔이 흰 술) 곡식穀食의 이름
►격양擊壤 고복격양鼓腹擊壤. 배불리 먹도 발을 구름. 풍년으로 太平聖代를 노래함.
►최과催科 조세租稅를 독촉함
►새사賽社 풍년豐年 감사제感謝祭
►구우區芋 숨겨진 곳에서 자라는 토란土卵
►향등香燈 유자柚子. 등자橙子
►‘비빌 차搓’ 비비다. 손으로 문지르다. 끊다
►앙전秧田 모판. 못자리
►질독구우叱犢驅牛 소리를 질러 소를 몰고 감.
►‘도롱이 사, 꽃술 늘어질 쇠蓑’ 도롱이. 덮다
격양가擊壤歌는 농사가 끝나고 한가하게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풍년가를 부르는 것이다.
최과催科는 세금(租稅) 내라고 독촉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科’자는 수확한 벼를 말로 되어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세금의 뜻이다.
새사賽社는 추수가 끝난 후 토지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서양의 추수감사제와 같다
앙전秧田은 말 그대로는 ‘모판’ 즉 ‘못자리’인데 의미상 ‘밭벼’로 해석하였다.
앞 구절에서 토란을 캐고 귤을 딴다 하였으니 이때는 양력 10월경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지에서는 논농사를 짓지만 산간지역에서는 대부분 밭벼를 재배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것은 거칠어 질박하지만 역시 마음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다.
其三
서엄인가사주향西崦人家社酒香 서쪽 마을 사람의 집에 제사 술이 향기롭다고
촌동래보로선상村童來報老先嘗 동네 아이 와서 노인들 먼저 맛보시라 알리네.
처도야채화근백妻桃野菜和根白 아내가 뜯은 들나물은 뿌리까지 하얗고
아적산리대엽황兒摘山梨帶葉黃 아이가 딴 산배 가지 누런 잎새 달려 있네.
불식간과사정전不識干戈事征戰 방패와 창 들고 싸우는 일 모르고
유지경누족도량唯知耕耨足稻粱 같고 김매어 벼와 기장 풍족함만 알 뿐이라.
전가소락장하사田家所樂將何事 전가의 즐거운 것 그 무엇이겠는가?
한배봉려폭태양寒背蓬廬曝太陽 추우면 등 대고 집 앞에서 햇볕 쪼이는 것일세.
서쪽 산동네 사람들의 제삿술은 잘 익었고
동네 아이가 와서 어르신이 먼저 맛보라며 알리네.
아내가 뜯어온 들나물과 하얀 뿌리나물
아이가 따온 산배에는 누런 잎이 붙어 있다오.
전쟁에 나가 전투하는 일은 알지도 못하고
오로지 밭 갈고 김매어 벼와 기장 풍년농사만 안다네.
농촌에서 그것 말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 또 뭘까
추운 날 오두막집에 등짝을 대고 따뜻한 햇볕을 흠씬 쬐는 거라네.
►간과干戈 방패와 창. 전투戰鬪를 말함.
►정전征戰 전투에 출정出征함
►경누耕耨 경운耕耘. 밭 갈고 김을 맴
►봉려蓬廬 봉실蓬室. 가난한 집
大陽(太陽)은 태양과 같이 해를 뜻하기도 하지만 불을 때는 아궁이의 불이나 불을 때서
방안의 따끈따끈한 아랫목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제사 지낼 술이지만 이웃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로
맛을 보라는 핑계로 먼저 마셔보게 한다.
아이도 산에서 딴 배가 노랗게 익어 먼저 먹어도 될 텐데
굳이 집으로 가져와 할아버지 맛보시라 한다.
세 首가 모두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다./블로그: 맑은 마음의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