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칼국수를 먹다 (외 1편)
우대식
영주에서 동해로 가다가
태백 작은 마을에서 국수를 먹었다
우뚝우뚝 산 아래 그늘진 마을
눈이 쓸쓸히 내리는 날
한겨울에 냉이를 넣은 칼국수
작은 가게 안에는 사람 하나 없고
연탄난로가 냉랭히 앉아 있었다
어린 날 사북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은
내 모든 삶을 유폐시키고 싶다는 욕망이었음을 고백한다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고 자야 하는 사북 여인숙
긴 형광등을 두 방이 함께 써야 하는 그곳에서
한 마디 말도 없이
검고 검은 세상의 그림자를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그곳에서 추방되어
먼 나라를 떠돌다 이제 다시
사북 언저리에서 후춧가루를 듬뿍 친
칼국수를 먹으며
과연 내 삶은 옳은가
물어보는 것이다
눈송이는 점점 커져
오도 가도 못하는 산협 마을에서
내 멱살을 잡는 한 푼어치 평화와
또다시 싸움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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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方의 그늘에 서다
直方齋 마루 끝에 앉으니
굽은 허리가 펴졌다
이 집 그늘 저 아래가 피끝마을이다
피가 끝나는 마을,
피란 대저 운명이며
피란 대저 마음 이전의 마음이며
피란 대저 몸 이후의 몸이라는 사실
직방 퍼붓는 눈을 맞으며
가시 돋은 내 몸 들여다본다
검은 배 한 척 눈이 흐르는 莊園 위에 떠 있다
피를 선적한 배 한 척,
위리안치의 탱자나무 울타리를 직방으로 건너는 중이다
강철 같은 마음의 絃이 울릴 때
오도 가도 못하는 운명이란 어디에도 없으며
끝내 칼끝에서 솟아난 새 한 마리
희부연 하늘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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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 1965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단검』, 산문집『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