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세이
첫 키스만 1001번째
하늘엔 벚꽃 비 내리던 4월
-AM 4:00-
아기별들도 잠이 덜 깬 새벽을 열어
어둠이 길게 누워있는 길을 남자는
두 팔에 끼운 목발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새벽을 깨운 남자 때문에
아기별들마저 곤한 잠에서 깨어나
남자의 길잡이 불이 되어주고 있었고
남자는
익숙한 듯 병원 앞에서 바람과 함께
멈춰서더니 문을 열고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 628호라고 적힌 병실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매일 사랑합니다. 춘자씨 ..
오늘 나랑 첫 키스 할래요”
라고
설렘을 얼굴 주름에 가득 매달고선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매일 이 길을 나선다는
이 남자는 지나간 일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병으로
집 앞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던 아내가 몸까지 점점 굳어져 결국 병원이 집이 돼버린
아내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말하더니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지난 그때를 더듬어 보다
되돌릴 수 없는 그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림처럼
누워 있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밤길 교통사고로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게 된 지금도
아내의 손과 발이 되기로 한 결심은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빨간 밑줄을 긋고
별표까지 치면서까지...
그나마
이 자리에서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는지 헤아릴 순 없지만,
아내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는 이 남자는
수저조차 들 수 없는 아내에게
밥을 먹인 후에야 자신의 식사를 챙겼고 손수 목욕도 시키고 화장품
까지 꼼꼼하게 발라주고 있는 하루하루가 이제 이 남자의 전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생에
한 번 오는 청춘이 아름다운 것처럼
부부 인생에 한 번 오는 이별은
더 아름다워야 하기에
오늘도
잠든 아내의 이마에
긴 입맞춤을 하고는
그림자라도 밟을세라
빈집을 지나는 바람처럼
걸어 나가더니
발길을 멈춰 세운 곳은 시장이었다
아내가 좋아했던 반찬들을
기억해 낼 때마다 까만 비닐봉지들은
남자의 손가락에서 늘어만 갔고
더 잘 보살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만든 반찬들로 손수 만들어와서는
두 눈만 뜨고 올려다보는 아내에게
“매일 사랑합니다. 춘자씨 ..”
“......”
“여보!.
오늘 나랑 첫 키스 할래요 ?”
오늘 남자는
997번째 첫 키스를 하는 거라며
아내의 손을 꼭 붙잡더니
“내가 당신 남편인 걸 까먹지 마”
라는
말 한마디로
마주 댄 두 볼엔 서로의 눈물이
저물어 가는 하루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또 그렇게 ...
만날 때마다
그렇게 기억했다가도
해와 달을 건너
다시 아침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누구세요?”
라고
묻는 아내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당신 나를 좀 죽여줘..“
남자는
타다만 연탄재가 되어
흐느껴 우는 아내를 애써 껴안으며
“당신. 미안해…. 나한테 욕해,
남편 잘못 만나서 병만 걸렸다고...”
아픈 가슴만
더 아픈 하루를 보내지만
오늘도 내 사랑에 꽃이 되어준
울다 잠든 아내를 보며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건 이 순간이 계속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만
우리가 적색 신호등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건 파란불로 바뀔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아닌가요..?“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아내지만
언젠가 일어날 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버텨갈 수 있는 거라며 ...
그 길 끝에
아내가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서 있다 해도
그손을 잡겠다는 남자는
부부라는
연분의 긴 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이 마지막이 아니라
봄이 오는 길목이라
생각할 수 있다며....
오늘 1001번째
키스를 하려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