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나는 온실 속의 화초 같다. 어릴 때부터 좋은 것만 보고 자랐고 초특급 범생이의 길을 걸었다. 지금 내 홈그라운드는 내 방과 독서실과 교회와 중국어 학원이다. 그 이상과 이하를 벗어나지 않고 내 홈그라운드를 지킨다. 세상의 좋디좋은 일부분만 몸소 부딪혀본 내게 소위 불량청소년 또는 가출청소년을 바라볼 때, 그들은 그냥 ‘나쁜 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연예인을 보는 것과 같이, 그들도 그냥 딴 세상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과연 불량청소년 또는 가출청소년이 본인과 본인의 그룹을 바라볼 때, ‘나쁜 사람’이라고 느낄까? 임솔아의 최선의 삶은 자신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불량청소년과 가출청소년으로서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휘갈겨 쓰듯 서술한다. 그녀가 서술한 16살의 자기 모습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친구와 노는 아이였다.
당연시하는 것이 다르고, 노는 홈그라운드가 다르기 때문일까. 다르기 때문에 내가 불량청소년과 가출청소년을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름을 나쁘고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초에 선입견을 품고 그들에게 다가갈지도 모른다. 너무 다르기에 쉽사리 그들을 받아들이고 품기 쉽지 않다.
중학생인 나는 집에서 가족과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고 수업에 빠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가출하는 것이 당연하고 수업을 땡땡이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술을 마시고 담배도 당연히 피워야 한다. 내가 본 그들은 범법행위를 밥 먹듯이 저지르는 나쁜 사람이었다.
나는 중학생인 가출청소년들이 아저씨들이나 오빠들과 술을 마시고 성폭행을 당하는 현실이 당연한 건 줄은 몰랐다. 내가 보기에는 범죄 현장의 한 장면이었지만, 작품 속 소영은 그저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는 성폭력이 어떻게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소영은 사랑이란다. 그들은 서로 모여 패싸움도 한다. 네 편 내 편이 갈라지고 링이 형성된다. 싸움에서 지면, 해당 애의 편을 들었던 애들은 반대편 팀으로 합쳐져 결국 무리에서 진 사람은 영원히, 서서히 도태된다. 정말 나쁜 아이들이다. 패싸움하다니. 그것도 다 큰 중딩들이 말이다.
그렇다면, 가출청소년과 불량청소년들의 반대인 나는 과연 착한 사람일까?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오히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나쁜 사람에 좀 더 가깝다. 그럼 가출청소년과 불량청소년들은? 표면적으로는 나쁘고 불량하지만, 착할 수도 있다. 나보다 더 착할 수도 있다. 나는 착하지만 나쁠 수도 있고, 그들은 나쁘지만 착할 수도 있다. 단지 나와 그들을 선과 악으로 규정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모든 사람은 다 죄가 있고 악한데, 단지 가출청소년과 불량청소년들은 그 죄가 수면위로 더 쉽게 떠오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죄를 깊숙이 숨기며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당연시되기에, 몰라서 드러나 있는 죄와 가까이 살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몰라서 지은 죄도 죄이긴 하나, 알고 지은 것보다는 낫다. 따라서 그들이 결코 우리보다 나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다 죄가 있기에 우리가 선하고 그들이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나와 다르면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세속적인 사람=나쁜 사람’이 공식이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박혀 있는 양 저 공식으로 사람을 쉽사리 판단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과 반대되면 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불량청소년들이 나에게는 세속적이고 나쁜 것으로 보였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상당히 세게 주장하는 편이다. 즉, 나라는 사람의 의견이 변화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강하게 단정 짓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닌데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사상교육을 너무 강하고 탄탄하게 받아놓은 탓인지, 죄와 죄가 아닌 것을 구분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 (교회에서 사상교육을 받진 않고 그냥 교회학교를 사상교육이라고 표현한 것이니 오해는 말길 바란다. ㅋㅋ 하지만 내가 다녔던 교회는 다음 세대 양성 같은 것을 중요시해 교회학교가 탄탄했다. 거기서 배운 내용을 거의 까먹은 지 오래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 알기에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앞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살펴보고 그중에 가장 바람직하고 추구할만한 걸 선택해 보아야겠다.
불량청소년들과 우리는 원래 인간은 악하기에 누가 딱히 착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사회가 정해둔 틀과 규칙을 깬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악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배경과 당연시하는 것들이 다르기에 각각 추구하는 것들이 다를 뿐이다. 또 불량청소년들이 딴 세상 사람 이야기 같다고 해서 그들을 등한시하고 살아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궁리를 좀 더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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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의 최선의 삶을 읽고:
초딩은 읽지 않길 바란다. 읽지 말라면 읽지 말라는 거지 괜한 오기를 부려 읽지 않길 바란다. 벌써 세상의 잔혹함을 알지 않아도 된다. 중딩쯤이면 읽을 만하나 구조적으로 정리된 소설이 아니고 휘갈겨 쓴 느낌이기에 읽을 때의 난관을 겪을 수 있다. '아니, 이 문장을 누가 말한 거야 그래서? 아, 문맥상 이 사람이겠구나.' 하며 추측해 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다. 짧은 편이고 효과적으로 가출 팸과 청소년에 대해 서술한다. 사실일 것 같아 무서운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이 현실이고 사실이라고 믿기에, 더 무섭고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