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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장 28-30절.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염려. 요약설교
오늘은 바울 사도가 복음 사역을 하면서, 당한 고난들보다도 더욱 애타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고난 당한 것보다도, 교회의 분쟁이나 성도의 믿음이 약해진 것을 더욱 염려하였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신이 장사하느라고 힘들고 고달파도, 자녀들이 아프고, 잘못된 길 가는 것을 더 염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를 본받아서, 자신의 삶이 고달픈 일이 있더라도,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고 기도하며, 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8절.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1. 바울이 당한 고난은 밖에서(παρεκτὸς: external) 오는 고난(23-27절)과 안에서(μοι: in me) 오는 고난(본 절) 두 가지였습니다.
교회 밖에서 오는 고난은 23-27절에서 살펴본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오는 고난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현혹된 것과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한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근본적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핍박과 생활고는 고사하고, 교회를 위한 심적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것입니다.
즉 바울의 마음에 늘 고통이 되는 것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된 것과 분쟁 소식과 타락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바울의 마음은 내가 이처럼 죽을 고생을 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애타하며 고심했습니다(행 20:29,30).
사도행전 20장 28-31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주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얼마나 애타하시는가를 느끼며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어떤 목사님(제일교회)이 자기 교회에 중직자들이 너무도 극단적으로 싸우시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애타하실까 자신의 마음이 정말 송구스러움을 실지로 느낀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자식들이 싸우면,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교회 안에서는 무슨 일이나 무슨 이유로든지, 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 불신자들은 싸우다가 결국 법정으로 재판하러 갑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세상 법정으로 재판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참고 당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억울할 때, 더욱 참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세상 법정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시비를 가리려고 하면, 불신 법관들이 교회들을 흉봅니다.
고린도전서 6장 7절 말씀처럼, 비록 내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5. 저는 연말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각 기관에 직분자들을 임명하는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직분자들 하나하나의 사정을 다 맞추어서 직분자 임명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당회에서 결의를 해놓으면, <한다 안 한다, 왜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고 했느냐> 하면서 얼마나 대항을 하고, 교회를 그만두겠다고 하는지 너무나 머리가 아픕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는데 젊은 사람들일수록 막말을 하고, 불신자같이 대항을 합니다.
6.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갈수록 젊은 사람들은 대항하고, 반항적인가 하고.
그런데 답은 하나 즉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젊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침략당한 경험도 없고, 배고픈 경험도 없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는 우리나라가 그 동안 너무나 평안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새벽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목사님들은 갈수록 목회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새벽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있냐를 따지면서, 신앙생활도 은혜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이해타산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7. 서울 흑석동의 어떤 교회에서 두 분 장로님들이 서로 원수 같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회계 장로님이 바람이 나서 교회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회계 장로와 원수지간이던 장로님이 박수를 치면서 그 보라고 하더니, 당장 치리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목사님과 다른 당회원들이 고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마땅히 책벌을 하고, 교회에서 쫓아내야 하는데, 문제는 지역 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나면,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선포했다고 합니다.
“장로님들 물론 아무개 장로님이 죄를 짓고 교회를 나간 것은 본인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회개하고 기도합시다.”
그러자 모든 장로님들이 숙연해져서, 더 이상 책벌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무사히 위험한 난관을 넘어갔다고 합니다.
8. 이처럼 우리들은 몸 된 교회의 한 지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몸에 손가락 하나만 아파도 온몸이 아픈 것이고, 한 몸에 눈이나 귀나 이빨이 아파도 온몸이 고통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 사도는 날마다 모든 교회를 위해서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아시고, 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교우들이 평안하고, 복된 생활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9절.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1. 바울은 약한 사람을 볼 때는 자기도 약한 수준으로 내려가서 그 사람을 밀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자기는 강하면서도 약한 사람과 보조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약한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오래 참으면서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눈높이를 낮춘 것입니다.
2. 구역에서 새 신자들을 양육할 때도, 이처럼 성숙한 신앙인이 새신자를 위해서 조심조심 돌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먼저 믿는 분들이 약한 신자를 배려하지 않고, 시험 되는 말과 행동을 막 하면, 새 신자가 넘어지기 쉽습니다.
성숙한 신자일수록 연약한 신자를 배려하고 절제하면서 양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예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는 친구였습니다
늘 열등감을 느끼는 거북이에게 자심감을 심어주려고 토끼가 거북이와 경주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토끼는 일부러 자는 척했습니다.
거북이는 토끼가 깰까 봐 모르게 살짝 옆으로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토끼는 거북이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자는 척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북이가 나의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었어도 좋았을 것을...
그래도 나는 깊이 잠든 척했을 것인데...
마침내 거북이는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경솔한 토끼를 욕하고, 성실한 거북이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한 편으로 아픈 마음이 있었지만, 거북이를 워낙 사랑했기에,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에게 칭찬을 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발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와 맞춰주어서 대등한 눈높이를 갖고자 했다는 비유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능력있는 성도들이 연약한 성도들을 배려해서 눈높이를 맞추어주고, 발맞춰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4. 본 절에서 '약해지다'는 말은 마음 아파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고전 8:13; 9:22).
바울은 신앙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결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해서 동정하고 함께 아파했습니다.
5. 바울의 이런 태도는 교회가 한 몸이며 같은 지체(유기체)라는 신앙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엡 1:22,23)
즉,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특징입니다.
6. 이처럼, 교회 안의 이상적인 기관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된 느낌을 소속원들이 느끼며, 서로 같이 즐거워하며 같이 맘 아파하는 하나 된 느낌이 있는 기관입니다.
아름다운 구역이 이처럼 좋은 분위기를 가지며, 아름다운 청년회, 아름다운 남전도회 등이 이처럼 마음이 하나 되는 분위기를 갖습니다.
저는 광주 동*교회에서 청년들(류*원, 윤*숙 부부가를 비롯한 40여 가정)과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동고동락하고, 함께 기도해주고, 함께 집에 가서 친교하고, 아이들조차도 친구가 되어주고, 힘든 일들을 내 일같이 도와주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이 청년들은 모두 찬양대를 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청년회 모임은 점심 후에 하는데, 먼저 목사가 성경을 설명하고, 토의식으로 공부하고, 기도는 가정마다 진솔하게 기도 제목을 내놓고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예배 시간까지 중간에는 가까운 가정에 가서 간식도 먹고 누워서 쉬었습니다.
그 때 청년들은 초등학교 정도 다니는 자녀들이 있었는데, 부모가 친하게 지내니까, 아이들도 친구가 되어서 저들끼리 잘 놀았습니다.
그 때 청년 부부들은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너무나 친밀해서, 광주 외곽지대에 땅을 사서 공동으로 집을 짓고 살자고까지 했습니다.
그 청년들이 지금은 모두 장로님들이 되고 권사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도 이런 이상적인 분위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지역의 모든 교회들과 시민들이 우리 교회의 은혜로운 분위기를 알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사 오면, 우리 교회에 가라고 전도하고 있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7. 가정도 이처럼 서로 마음이 하나 되고, 서로 아끼며 서로 위로하며, 힘들 때 서로 붙들어주며, 함께 웃고 함께 웃는 그런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이 아닙니까?
직장이건 어떤 모임이건,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가시는 곳마다 이런 화목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1. 여기서 <실족하게 되는 것>은 '죄에 빠지는 것'이나 '시험에 걸려 넘어져 믿음을 잃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애타한다>는 말(πυρόω: 퓌로오)은 '불'(πῦρ: 퓌르)에서 나온 말로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속이 불타는 것'을 가리킵니다(렘 20:9).
이처럼, 바울 사도는 마음속 깊이 목회자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2. 부모님들은 아이가 아프면 밤잠을 설치면서 아이를 돌봅니다.
제 아내도 큰 애가 아플 때 보니까, 종일 일하고서도 밤에 아이를 등에 업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셋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면, 밤 1시 넘어서 자고, 새벽기도회 참석하고, 날마다 도시락을 일곱 개씩 싸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부모님들은 자녀를 기를 때, 자녀가 아프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애타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노심초사 염려했습니다.
누가 약하면 바울이 약해졌고, 누가 실족하면 바울이 애타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마음은 모든 목회자의 마음일 것입니다.
심지어 짐승들도 자기 새끼에 대한 모성애는 지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에게 모성애와 같은 마음을 주십니다.
어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결석하면 마음이 안타깝고 애가 탑니다.
그런데 각 기관의 책임자들은 그렇게 마음이 간절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애가 타는데, 형제간들은 그렇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떤 자식이 잘못을 하고 오면 야단을 하더라도 안쓰러운 마음이 있는데 형제간에는 정말 미워서 야단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부모는 뒤에 가서 야단맞은 자식을 또 달랩니다.
이것은 목회자의 심정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성도들을 주님이 자기에게 맡겨서 자기가 주님 앞에서 회계할 자들인 것 같이 여깁니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예화> 봉사 된 아내를 사랑한 남편 이야기
남편과 아내가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살림이 어려워서 아내가 직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서로 위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눈이 어두워지더니, 완전히 실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날마다 버스를 타고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2년간을 도와주던 남편이 하루는 아내에게 이제는 당신 혼자서 직장에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너무도 분하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직장 계단을 더듬어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나는 동안에, 이제는 아내 혼자서도 안심하고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한 해가 다 저물어 갈 어느 날, 그날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려고 미리 문 쪽으로 갔을 때, 버스 기사가 이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남편분이 3년을 하루 같이 날마다 부인 뒤를 따라서 출퇴근을 하시고, 부인이 회사로 들어갈 때면, 뒤에서 손까지 흔들어주시니...”
그때, 부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 남편이 나 혼자 출근하게 둔 것이 아니라, 이제껏 내 뒤에서 항상 출퇴근을 돌봐주고 있었단 말인가!”
“아, 나는 남편이 나를 버린 줄 알고, 지금껏 미워하면서, 오기로 살아왔는데....”
“남편은 나를 독립시키기 위해서 아픈 마음을 가슴에 안고, 나의 원망과 미움을 이때까지 참으면서, 나를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구나!”
“아, 사랑하는 여보! 나를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래서 잠언 27장 5절에는, 숨은 사랑이 밖으로 드러난 사랑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각 기관에서 봉사하시는 직분자 여러분!>
바울 사도의 마음을 본받아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양들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은혜를 주시고,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30절.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1. 바울은 비록 자신에 대한 자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자랑했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간적인 자랑을 해야 하는(16-27절) <어리석음>을 멈추고, 다시 본질적인 주제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약함’이란 육체의 풍모나 신체적인 면에 있어서의 허약함, 세상적인 것을 가지지 못한 약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의 여정을 걸어야 했던 것 등이었습니다(11:23-27; 사 53:4).
그리고, 이러한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말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인간적인 면에서 약하면 약할수록,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었기에, 그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의미입니다(1:8-10; 3:5; 4:7,10,11; 12:5,9,10).
고린도후서 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2. 이처럼 바울이 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우상이 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약할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후 12:9)
이처럼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갑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3.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할 때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를 돌봅니다.
그러나 아이가 뭔가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조금 컸다고 말 안 듣고 혼자 밖에서 집에 들어오지도 않으면 엄마가 지켜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엄마 품에 파고들면 엄마가 돌봐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품에 나아가 새벽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성도들을 눈동자처럼 돌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셨습니다.
신명기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2: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추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밤낮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시편 121:5-8.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들을 천사들을 보내서 보호해주십니다.
마태복음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유행하는 재앙들이 닥치지 않게 보호해주십니다.
시편 91:1-16.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돌봐주시고,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