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푸른 안개, 칠장사 가는 길
수능 100일을 남겨 두고 성당의 수험생 백일미사에 참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아이 조부모가 모두 카톨릭 세례 교인이라 아이만 초등학교 3학년때 세례를 받았다. 모든 고3엄마가 성심성의껏 예수님께 부처님께 입시 기도를 하는데 나만 빽이 없는 것 같은 불안감이 살짝 엄습한다.
하여 고3수험생 아이 핑계를 대고 일요일마다 새벽 칠장사에 간다. 새벽 다섯시 출발해 아홉시쯤 돌아와 아이 아침밥을 챙겨주면 딱 맞다. 오전 없는 휴일을 보내는 내게 새벽 이슬길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려 일죽 톨게이트를 나갈 때쯤 동이 트기 시작한다.
점점 경계가 뚜렷해지는 사물들,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안개, 노란물이 찰랑거리는 가을 들녘, 대웅전에 참배하고, 나한전에 가서 백팔배를 끝내고 돌아나오면 뿌듯해진다. 하늘은 온통 붉은 노을, 관음전 창호지에 비친 문살은 또 얼마나 담백한지, 청명한 새벽 공기가 와락 다려든다.
1. 믿거나 말거나 죽일면장
중부 고속도로 호법 인터체인지를 지나 첫번재 나들목이 일죽이다. 안성시 일죽면.. 일죽 옆에 죽산면, 삼죽면이 이어진다. 일죽면의 옛 이름이 '죽일면'이다. 그 옆에 죽이면, 죽삼면이 있었는데 이름이 다 바뀌었다.
시골 운동회, 지금부터 죽일면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매일 매일 죽일 넘이 되는 불쌍한 우리의 죽일면장님. 매번 죽일면장이 되는 것이 너무 싫어 면장직을 그만 둔 뒤 죽일면이 일죽면으로 바뀌었다는 전설같은 사실. 뿌리깊은 나무의 민중자서전 시리즈 ‘숨어사는 외톨박이_남사당패의 마지막 꼭두쇠' 에서 남형우 옹의 사촌형이 죽일면장님이셨는데, 너무 괴로워 그만뒀단 얘길 읽었다. 웃자고 하는 전설인줄 알았는데 팩트였다.
2. 일죽과 죽산을 좋아하는 이유
일죽, 죽산이 속해있는 안성 땅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56억 7천만년 뒤 민초들을 구하러 올 미륵불의 땅이다. 매산리 태평 미륵, 미륵의 현신으로 여긴 기솔리 궁예 미륵, 애써 찾을것도 없이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밭 가운데에도 탑이 있고, 미륵이 있고, 당간 지주가 도처에 있는 미륵의 세상이다.
역사의 전면에 한 번도 화려하게 부상한 적이 없는 곳이나 안성은 삼남의 사람과 물자가 한양으로 몰려드는 기목이자 요지였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만년서생 허생이 책상 물림을 홀연히 거두고 임시변통한 만냥으로 한양으로 올라가는 과일의 길목을 막고 사재기하여 떼돈을 번 곳도 이 곳 안성장이었다.
3. 나한전과 어사 박문수
석고로 만든 일곱 나한은 깨달은 분의 위엄 같은건 느껴지지 않는 조악한(?) 모습이지만, 엄청 표정이 개구지고 귀엽다. 어사 박문수의 급제로 전설이 입증된 바, 시험합격에 관한 가피력은 대한민국 최고다. 합격의 간절한 염원에 온 몸에 손때가 묻어 꾀죄죄하다. 문화해설사분이 이곳의 나한님들이 팔공산 갓바위 부처보다 시험에 관한한 잽도 안되게 기도발이 좋다고 설명하신다.
서른둘까지 등원하지 못한 박문수는 과거 시험을 보러 고향인 충청도 병천을 떠나 한양 가는 도중에 이곳 칠장사에서 하룻밤 머물며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유과를 나한전에 올린다. 이에 감격한 나한들이 그날 밤 꿈속에서 문제를 알려줘 박문수는 과거에 급제한 뒤 어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시험문제 부정유출 대사건이다. 아무리 유과가 맛났어도 그렇지 나한님들 너무 하셨다.
칠장사에 가면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나한전, 일단 삼배를 올리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백팔배를 한 후 쌓인 방석에 기대어 다리를 펴고 잠깐 잠깐 조는 맛은 완전히 신선놀음이다. 엄숙해야할 절간에서 불경스럽다고 칠장사 보살님들이 보면 당장 쫒아와 호통 칠 일이지만, 나한전에만 가면 만사를 제치고 졸고 싶은걸 어쩌리. 그 맛에 칠장사에 가는걸.
4. 임꺽정과 갓바치
칠장사 나한전에 봉안된 일곱 나한은 혜소국사의 도력에 교화된 일곱 도둑의 설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곳이 칠현산 칠장사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일곱 현인으로 거듭난 칠장사의 도둑들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과 일곱 두령의 모티브가 된다.
백정출신으로 민초들에게 가죽신 짓는 법을 가르쳐 유기와 더불어 가죽신을 안성의 명물로 만든 갓바치. 갓바치는 10년동안 꺽정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자신의 애마 칠장마를 꺽정에게 줬다고 전해진다. 병해대사로 추앙받던 임꺽정의 스승이었던 갓바치 목불이 지금도 홍제관에 있으니 칠장사에 가면 숨은 그림을 찾듯 임꺽정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5. 불국토를 꿈꾼 미륵 궁예
임꺽정과 함께 명부전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궁예다. 신라 왕실의 서자였던 궁예는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한쪽 눈을 잃은 이후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한다. 명부전 뒤편의 궁지(弓地)가 바로 궁예가 활 쏘는 연습을 하던 곳으로, 활을 잘 쏘아 궁예라 불렀다 한다.
안성 땅 죽주에서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크게 세를 떨친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을 칭하고, 백성들은 또한 자신들을 구원할 대상으로 궁예를 선택했다. 한반도 중부 지방을 장악한 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태봉국의 기틀의 세운 것이 궁예란 사실은 역사가 궁예가 어떻게 묘사되든 위대한 일이었다.
6. 옥의 티, 칠장사 가는 길
칠장사 가는 길은 참으로 호젓하다. 산모퉁이를 돌면 내가 아는 풍경이 나타나고, 다시 모퉁이를 돌면 내가 아는 나무가 나타난다. 칠장사 가는 길이 이토록 익숙한걸 보니 어쩌면 전생에 칠장사 근처의 무지랭이 촌 아낙이거나 칠장사 공양간에서 밥을 짓던 공양주 보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칠장사 아래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마을 이름이 바로 '극락'이다. 극락이 뭐 별건가?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면 바로 그 곳이 극락이지. 그런데 아직도 칠장사 앞 '극락마을' 가는 이정표에는 '극락부락'이라고 써있다.
부락은 불가촉천민이 사는 곳을 칭하는 일본의 행정단위. 일제 강점기 때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부락'이란 명칭을 대부분 바꿨는데 칠장사 앞 이정표는 여전히 극락부락이다. 이십년전 안성시청 게시판에 사진과 바꿔야하는 이유를 함께 올렸는데 감감 무소식, 아직도 그대로다. 안되겠다, 생각난 김에 칠장사 갈때 매직 들고 가서 싹싹 지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