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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연 폭포 구경하기 : 복은남 언님의 임종
복은남 언니 임종
1993.06.06. 김준호 선생
하나님의 자녀들아 여호와를 찬양 하여라. 영광과 권능을 우리 주님 여호와께 돌리고 높이, 높이 드높여라.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 하여라 주께서 거룩하신 모습으로 거동하실 때 엎드려라. 여호와의 목소리 영광의 하나님이 주님의 목소리 드넓은 울려퍼진다. 여호와의 목소리 이렇듯 힘차시다. 여호와의 목소리 장엄하시다. 여호와께서 한번 소리 지르시자 힘없이 지는 구나. 여호와께서 한번 소리 지르시자 아름답다는 요단의 편백도 힘없이 부러지는구나. 하나님의 자녀들아, 여호와를 찬양 하여라. 영광과 권능을 우리주님 여호와께 돌리고 높이, 높이 드높여라.
그 장로님이 처음으로 예배당에 가서 들은 말씀은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일평생 명상하셨다. 하셨습니다. 또 알기 쉽게 설명을 제가 하지요. 예수님이 어느 수녀원의 곤솔라따의 방에 찾아 오셨다지요. 그래서 내가 부르는 대로 적어라. 그래 너무 황송해서 저 방에는 원장님 계시고 저 방에는 총무님 계시고 저 방에는 대학 졸업한 사람이 있고 다 나보다 똑똑한 수녀들이 저 방에 계십니다. 저 방으로 찾아가세요. 나는 무식하고 덕도 없고 주님께서 부탁하는 것을 감당 못하겠어요. 그랬지요. 그 말이 맞다. 저 사람들은 박사고 대학교 졸업하고 또 총무고 또 원장이고 다 유명한 분들인데 내가 아무리 내 말이라고 적으라. 해도 내일이면 자기 말로 말해버린다고 예수 말이라고 절대 말 안한다. 내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절대 말 안한다. 자기 자랑해 버리지 내 말을 안전해 줄 사람들이다. 너는 못났으니까 또 짜잔 하고 덕도 없고 이 식구 가운데 제일 실력이 없기 때문에 내가 너한테 부탁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너는 네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부름을 잘 할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 말씀 하셨지요? 그러니까 이곳저곳 소식을 들어봐요. 여기 귀일원이지요? 귀일원 말고 다 거기는 학자들이 모인 곳이거든 박사들이 모인 곳, 유명한 분들이 모인 곳이야. 그렇게 해서 살아가. 그런데 우리의 자랑은 곤솔라따 신부거든 학교도 못 다녔지. 또 유명하지도 않지 아무 실력이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은 내가 너희들을 택한 것은 심부름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친히 일 하시기 때문에 심부름을 잘 할 사람을 택해서 여기 모여 놨다. 그러시는 것 같아요. 우리들이 뭐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들 식구 가운에 뭘 해보십시오. 그렇게 실력이 똑 떨어지는 사람 하나도 없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살아가느냐? 하면 하나님이 시키셔. 이렇게, 이렇게 심부름을 시키신다고. 아무 계획도 없지요. 그때, 그때 그날따라 뭔 말씀을 시키시면 심부름하기에는 합당하다고 자기 심부름에 자기 자랑이 없다는 말이지요. 자기 자랑이 없고 고분고분하니 심부름 하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들어보세요. 저녁에 제가 이야기를 두 마디 할 텐데 한 분은 그저 어제 들은 이야기에요. 한 분은 우리 식구 이야기이고.
근 20여 년 전에 서독에서 보조 간호원을 이제 초청했기 때문에 한 200명이 비행기타고 들어갔다 그래요. 어느 지대에는 100명이 찾아 들어가고 어느 지대는 50명, 어느 지대는 30명, 전부 파송을 하고 꼭 둘이가 남더라. 그래요. 둘이, 그 간호보조원은 대개 21살인데 자기는 21살 인데 두 사람만 어느 지역으로 똑 떨어지더라는 거예요. 서독 어디인지 모르는데 거기 큰 병원인데 그 병원은 수녀님들이 경영하는 병원이더라. 그래요. 이 보조 간호원은 어느 간호원 수녀님이지요. 수녀님 조수로 딱 배속을 받았어요. 그런데 둘이 간 사람도 둘이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그냥 못 있고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말을 모르는 사람이 병원에 근무를 하고 직접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럼 그쪽 간호원은 이쪽에서 말을 전부 배워갖고 온줄 알고 믿어버리고 수술하고 있지 않아요? 그럼 무얼 집어주라고 그럼 집어줘야 하거든. 칼을 집어 주든지 핀셋을 집어 주든지 우물쭈물하고 눈만 뜨니까 당황을 해가지고 막 꾸지람 한단 말이에요. 생명이 죽어 가는데 왜 안주냐? 빨리 주라. 벌벌 떨어. 빨리 줘야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벌벌 떨어. 하루 이틀 아니고 한 달 두 달 전혀 말을 모르는데 그런데 결국은 무엇이 자기한테 부닥치냐 하면 종일 근속을 하고 이렇게 심부름을 하는데 전혀 의자가 없답니다. 환자 침대뿐이지 간호원이 앉을 의자가 없어요. 수녀들은 수도했기 때문에 잘 견딜지 몰라도 어떻게 이 다리가 아프던지 천근만근 몸이 막 땅으로 주저앉으려 해서 이렇게 문을 열어보니까 변소가 있다고 수세식 변소, 거기 가서 앉았다는 거예요. 쉬느라고 그렇게 앉았다. 그것도 한번 두 번이지 늘 앉다가 들켜버려. 수녀한테 아 똥 누는데 앉아있다고 어떻게 꾸중을 하고 막 박살을 치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욕을 하는지 거기 앉지 말라는 눈치를 챘더라고. 그래도 다리가 아프면 몰래 변소에 가서 앉았어. 그러는데 그렇게 말씀했다고 그래요. 수녀님이 이건 도저히 내 이 세상에 처음 봤다. 처음 봐. 간호원이 심부름하지 않고 변소에 앉아있다. 그건 정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럴 수가 있냐? 한번은 용서해 주니까 두 번은 쫒아낸다. 그랬어. 그랬다는 거도 지금 생각하면 그랬다는 거예요.
그때는 뭔 뜻인지 몰랐답니다. 원체 다리가 아프고 발이 퉁퉁 부으니까 또 몰래 앉았어요. 그래 세 번 들켰답니다. 그럼 이제는 세 번까지 순종 안했는데 이제는 데리고 있을 수 없다. 보낸다. 한국으로 보내버린다고. 그래 보내버린다는 말도 알아야 겁을 집어먹지 뭔 말인지 전혀 뭔 뜻인지 몰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밥을 먹던 사람이라 21살짜리인데 종일 우유조금 주고 빵 조금주면 어떻게 배가 고픈지 한이 밥이 먹고 싶어서 어떻게 배가 고픈지 밤중이면 혼자 울어. 아버지는 죽고 안 계시니까 엄마를 엄마, 엄마 부르고 울고 못 살겠어요. 못 살겠어요. 배가 고파서 못살겠고 종일 서있으라 하는데 못 앉게 한다고 막 울어싸고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왔던가? 하도 참 자기 신세가 서러워서 도저히 못 살성 싶어서 환자 주는 수면제를 모았답니다. 하나도 안주고 죽을만한 양을 한보따리 모아가지고는 완전히 자기가 죽었어요. 약을 먹고 죽었지요. 그 몇 달 만인지 몰라. 죽었는데 딱 살려 버렸대요. 그 간호원이 간호 수녀가 말이에요. 전혀 감사하지 않아요. 절망이에요. 절망, 그래 나는 죽을 자유가 없는가? 세상에 죽을 자유가 없는가? 내 소원은 죽는 것뿐인데 나는 왜 죽을 자유가 없을까? 그런데 몸이 원체 약을 먹고 오래 되서 깨어났기 때문에 전신이 굳어져 버렸어. 세상에 살아난 것 보고는 바빠서 그랬는지 내버려 뒀다는 거예요. 그러니 피가 안통하고 발뒤꿈치가 전부 썩었답니다. 피가 돌아가도록 간호를 해줘야 하는데 내버려둬 놔서 시체같이 이 아랫도리가 썩어버렸어요. 살이, 그 다음에 사 알고 치료해서 나았답니다. 나았는데 간호, 다시 말하면 병원이 간호원들이 수녀들 아닙니까? 수녀원 당국에서 회의를 했답니다. 서로 말이 안통한데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되었냐? 우리 책임이다. 우리 수녀들 책임이다. 말이 안 통하니까 왜 저런지 모르겠다. 왜 저런 경지에 들어갔는지 우리 연구해 보자. 연구를 해 보니까 배고프다는 거지요. 말이 안 통하니까 절망이다. 또 뭔 심부름하면 말이 안 통하니까 꾸지람 했단 말이지 눈총하고 우리가 안 가르쳤다. 우리 잘못이다. 그러면 저 사람을 한국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가르치자. 이래가지고 인제 말도 가르치고 거기서 지금 20여년 됐답니다.
그 한 병원에서 지금도 그럼 자기를 받아가지고 책임져준 수녀가 벌써 늙었어요. 그때 50대면 지금 70대 아니겠어요? 같이 위아래 방에 사는데 지금도, 백번 일을 잘해요. 아 충성을 다하지요. 노예같이 한번만 잘못하면 ‘이리와’해가지고 너 20년 전에 네가 이렇게 말 할 줄 모르고 이렇게 절망해 약 먹고 죽었을 때 내가 너를 살려놓지 않았냐? 죽 되풀이 한대요. 훈시를, 그럼 미워 죽겠대요. 아주 그 소리 듣기 싫고 열 번 잘한 거는 절대 칭찬 않고 한번만 잘못하면 너 이리와 너 언제 몇 년 전에 너 죽었는데 내가 살려놨지. 세상에 그 말같이 듣기 싫은 삶이 없는데 왜 거기에 있냐? 자기는 동양 양심이 있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내가 이 병원을 떠나 버리면 그만이야. 지금 그러나 나는 못 떠나는 것은 그래도 내 은인이다. 말이야. 저 미운 짓은 해도 내 은인인데 내가 어떻게 떠나느냐? 나는 배신할 수 없다. 그래 능히 다른 병원에 갈수 있어도 지금 20여년을 꼭 그 수녀 밑에서 지금 조수로 계신답니다. 계신데 제일로 서러운 것은 어째 그 병원에 한국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 일대가 그 속에 말 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슬프던지 기쁘던지 앉아서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너무 고독하다고 이제 말도 잘하고 서독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었지만 아무리 친해도 속에 깊은 말은 못하겠다는 거예요. 깊은 말을, 너무 고독하다는 거예요. 너무 고독하다 이제 돈도 많이 벌고 자기 인제 소위 말하면 단독 주택도 사고 별장 지대에다가 다른 것은 다 성공 했는데 너무 고독해 못살겠다는 거예요. 그럼 한국 오시라고 하니까 이미 늦었다. 그거에요. 한국 와서 어떻게 사냐? 거기서 벌써 생활이 연습이 되어가지고 거기서 살기 쉬운데 한국 올 마음도 없고 거기서 살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다. 그래요. 그래서 무슨 말 하냐하면 나는 세례는 안 받았어도 나는 진짜 하나님하고 친하다고 그 이야기에요.
지금 그러면 인제 환자가 60명인데 수녀들은 다 회의에 가버리고 밤중 당번을 60명을 혼자 지키라. 당번을 딱 정해주면 20년 동안에 한두 번 그런 일이 있었대요. 그러면 우물쭈물 잠자면 좋지만 책임이 딱 있다. 나는 한국서 온 사람인데 내가 오늘밤에 간호를 잘 못하면 큰 한국에서 욕이 말이야. 내가 잘해야지. 그럼 내가 어떻게 잠을 안자고 오늘밤 밤새도록 깨어있냐? 그거에요. 그래 잠을 안자기 위해서 잠 안자는 약을 먹는 답니다. 자기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공포심이 일어나 환자가 60명인데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도저히 혼자는 못 보겠어. 불안해. 공포심이 있어서 그래서 독방에 들어가서 소리가 밖에 안 들리는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 좀 도와줘요. 나 좀 도와줘요. 하나님 아버지 나 좀 도와줘요. 나 혼자 일 못 보겠어요. 자기 여동생이 서독에가 있어요. 어디 있는지 몰라 동생 좀 보내주세요. 그런데 전화가 따르릉 오더라. 그래요. 막 울고 있는데 얼른 방에 오면 자기 동생이 딱 전화하더라는 겁니다. 와 나 혼자 환자 60명이나 맡았다. 오늘저녁 나 죽겠다. 빨리 오너라. 그래 딱 오더라는 겁니다. 그래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라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는 확실히 우리 아버지다. 일생을 그런 거예요. 뭐 말도 안통하고 그렇게 객지에서 어려울 때 하나님 아버지를 불렀더니 딱 동생을 보내주더라는 거예요. 그런 일을 자기가 목격했다는 거예요. 몇 년 후에 또 한 번 전부 수녀들은 떠나버리고 혼자 병원을 떠맡았는데 꼭 몇 년 전 같은 불안증이 생겨가지고 공포심이 생겨서 그때는 용케 내가 맞아떨어졌는데 하나님 살아 계신가 모르겠다. 또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 나 혼자 일 못 보겠어요. 내 동생 좀 어떻게 보내주세요. 동생이 행방이 모르니까 그때는 전화가 안 오고 문을 탁 열고 들어오더랍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는 거예요. 나는 세례 안 받았어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 두 가지 일 뿐만 아니라는 거예요. 객지에서 말은 안통하고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앞이 꽉 막혔을 때 하나님 아버지 나 좀 도와주세요. 반드시 도와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꼭 말해요. 나는 세례는 안 받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나는 하나님 아니고는 어떻게 객지에 사느냐는 거예요.
그 외국 가서 혼자 그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며칠 후에 서독 들어가는데 인제 한국 무등산 와서 며칠 있었지요. 한국 와서 한국 사람을 만났으니까 내가 꼭 편지나 전화 한통이 답서를 해주고 전화를 받아주라고 왜 자기 친척한테 편지하면 열 번에나 한번 답장을 해준다고 그래요. 친척도 남이라는 거예요. 한국 와서 사람을 만난 것 같으니까 나를 조금 사랑해서 자기를 도와주려면 꼭 편지하면 답서를 주세요. 그런 부탁을 합디다. 그렇게 고독하다. 돈도 많이 벌었지. 아까 말씀대로, 자기 이렇게 별장도 갖고 있지. 천하에 남이 볼 때는 행복한데 그것이 자기한테는 제일로 서럽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 그 이야기를 왜 했냐? 말이에요. 점잖은 분이 절대 자기 비밀을 말 안 한답니다, 그리고 말해도 다 그걸 좋아할 사람도 없고 그래 걸인가를 불렀어요. 걸인가를 불렀는데 하늘에 별보다 내 마음에 상처가 많다는 노래가 나오니까 나같이 천하에 불쌍한 여자가 없는 줄 알았더니 나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있는가 보다 그래요. 상처가 별보다 많다고 그러니까 그래 자기 맘이 탁 열린 답니다. 아 나보다 고생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래 자기 이야기를 해요. 이렇게 남이 누가 알까 부끄러운 내 상처가 있다. 다 우러러 본대요. 자기를 우러러 보는데 그런데 내 가슴에 상처가 있고 서러움이 있다. 그러니까 참 마음이 열린다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인제 생각이 납디다.
여기 우리 우리식구 이야기를 합시다. 21세에 서독 갔으니까 20년이 훨씬 넘었으니까 50이 가깝지요. 그렇게 사신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일 제가 장로님 여기 오신 거 아닙니다. 은남 언니 함평에 만나보자고 매일 10일 전 부터 짰거든요. 그래 내일 이제 장로님 모시고 함평 가보려고 저기 와있어요.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본인이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 한 달 전엔가 그 복 집사가 저한테 왔어요. 누님 진찰해 보니까 암인데 본인한테 알려야 하는가? 알리지 말아야 하는가? 그게 분간이 안선다고. 그럼 같이 가 봅시다. 같이 나왔거든요. 그때, 와서 얼굴을 보니 말 할 수가 없어요. 아주 행복한데 뭐 당신이 병이 있다. 뭐 아무 까닭이 없더라고. 병 알면 뭣하고, 아니면 뭣해. 본인이 행복한데, 불행했을 때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이고 할 말도 없고 그냥 말 내지 말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원장님한테 알리지 말자는 거예요. 원장님도 마음이 약한데 친 동생이 아프다면 걱정 한다고 쉬쉬하고 원장님한테도 원장님 이 방에 앉아계셔. 아 그것도 좋다고, 걱정할 일을 뭐 알리냐? 그거에요. 다 알리지 말고 이대로 진행하자. 그럼 의학적으로는 상당히 병이 중하니까 그럼 불안하지 않겠어요? 옆에 사람들이 어찌되었든지 걱정이 됩디다요. 그래 한 보름 있다. 또 들어보면 또 잘 지낸다고, 요새도 말씀 들어보면 아주 다복해요. 대체로 그 병이 통증이 있지 않습니까? 통증을 모른다고, 그런 특혜를 받은 병이 있냐 말이야. 그전에 우리가 그 병 앓은 사람을 많이 봤는데 하루 밤이 천년같이 고통을 당하지요. 본인만 고생하지 않아요. 식구가 100이면 백 명이다 고생하거든요. 전식구가 잠을 못자구요. 같이 그런데 저렇게 의학적으로는 병이 있다고 하는데 몸도 부풀어지고 병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또 몸이 저렇게 통증이 없냐? 그것은 우리가 믿었으니까 이야기지요. 하나님께 영혼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본인이 하는 말이 아니고 그런 피조물인데 하나님의 딸을 시켜서 하나님이 다 좋으신 분이다. 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참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계신다. 그런 점이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안도와 주고야 그럴 수가 있냐? 그거에요. 말로 형용이 안 되어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시도록 섭리하신다. 사람은 아픈 사람한테 잘해주는 것 없지요? 물론 잘 하시겠지요. 즙도 짜서 주시고 지성을 다한다는 말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 이지요. 그러면 옛날은 그렇잖아요? 우리는 특별히 간호하는 사람 없지요. 특별히 간호 해 줄 수 있지만 서로서로 아픈 사람끼리 의지하고 살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말 들어보면 내일 가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따뜻하게 이름도 성도 없이 서로 도와주는 거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고 그렇게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 가사 우리가 내가 병들었다 합시다. 본인도 물론 병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옆에 사람이 잘해주기 어렵거든요. 섭섭하지 않게 서럽지 않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그걸 모르지 않아요? 주변 그거 아는 사람도 없어. 허허 하고 어린 자매들 옆에 있는 모양인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요. 물이 흘러가듯이 꽃이 피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시도록 사람을 살려주시는데 인제 두드러진 공이 있다면 이 선생님의 교훈은 학문을 반대했다. 초등학교도 보내지 마라. 중학교도 보내지 마라. 고등학교도 보내지 마라. 대학교도 보내지 마라. 학문 자체를 금했다. 그 점인데 지금은 금하지 못하지요. 필요에 따라서 할 사람은 하지만 그렇게 영혼을 바로 지도하신 어른이었다. 영혼 영혼을 순수하게 길러내는 방법 가운데 학교 공부를 해버리면 사람이 인공이 되어버리지 않아요? 자연이 없어진단 말이에요. 천연이 없어져버려. 그래가지고 사람이 인제 계산이 빠르고 그러지 않아요? 눈치에 빠르고 그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아요? 그러면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섭리 하신 것이지만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아무 공덕이 없어요. 가르쳤다든지 뭐 전혀 가꾼 것이 없지 않아요? 자연히 된 것이지요? 자연히 예수 믿고 거듭나가지고 봉사하고 살다가 몸이 나빠졌는데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야. 전부 하나님의 손길로 수양도하고 크고도 봉사도 하고 병도 들고 세상에 하늘나라에 가까워지지요. 전혀 무리가 없다는 말이에요. 타이른 다든지 이렇게 깨우쳐 깨닫는 다든지 이렇게, 이렇게 하라. 지도한 일이 없다.
성령이 친히 가르치시고 성령이 친히 지도하시고 성령이 친히 인도하시고 또 병이 들어서 친히 성령이 위로하시고 전혀 공포심이나 불안이 없잖아요? 그리고 인간적인 번뇌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험이 없어. 시험이, 타산이 없고 서러움이 없고 또 고독도 없지요. 지금 그러니까 하나님이 같이 하신 사람이 거의 같아. 서독 가서 성공 했다는 분과 연배가 인간적으로 비행기타고가고 취직하고 돈 벌고 인간적으로 그렇게 했지만 영혼은 지금 하나님이 없잖아요? 그런 분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그런 기적은 있어요. 그래 아직 확실치 않습디다요. 그런데 분위기는 종교 분위기거든. 수녀와 같이 살고 그 수녀하고 벽하나 사이 두고 지금도 같이 살았답니다. 그래도 종교의 힘이 자매한테 가지를 않아요. 수녀의 신앙이 자매한테 감화가 없어. 상당히 미워 죽겠어. 같이 사는 수녀가 상당히 밉지 존경도 안 되어요. 오히려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그 수녀와 아까 그 간호원 사이, 가르치고 같이 일하고 서로 너 언제 죽을 때 내 너 살려줬다. 기억하라. 그 소리가 고맙지 않고 미워 죽겠다는 거예요. 아이고, 저 소리 또 한다. 그렇게 사는 생활 과, 여기 은남 언니 여기 같이 고생하고 살던 병든 애기 데리고 가서 꼭 병아리들 같아. 병아리, 뭐 법도 없고 아무것도 몰라. 그저 울어쌓고 전혀 무리가 없어. 언니, 언니 이것 좀 먹어보라고 이것 좀 먹어보라고 그 집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그 영적으로 자연스럽고 평화스럽다.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시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 하나는 인작인데 무리가 있잖아요? 사람이 한 것인데 어렵고 하나님이 한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야.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일이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는 볼품없어요. 무식하고 병자들이고 아무것도 없어.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또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고독하지 않다. 이 말이야. 전혀 고독하지 않아. 그런 점이 다르더라. 그거에요. 비교해 보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여기 계시다. 우리 들 한 테 못 난사람 또 병든 사람 무식한 사람하고 같이 하신다. 그 점이지요.
성경말씀 5장 말씀 다 보셨지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똑똑하고 학문이 높은 사람에게는 다 숨기시고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그렇게 속없는 어린애기 같은 이들에게 나타나시니 감사합니다. 그 성경 보셨지요? 보셨으니까 인제 그런 말씀 저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제 듣고 왔으니까요. 꼭 자랑하고 싶어요. 사람의 힘으로 취직하고 외국 가서 영달하고 한국에 오면 다 우러러 보지요. 아 저 분은 외국 가서 돈 벌고 병장 갖고 있고 남 보기는 그렇지만 자기 혼자 속마음을 전부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혼자서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참 감사할 처지에 있다. 너무 고맙다고 하는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때이다. 비교를 해봐야겠더라고요. 이렇게 사람들이 절대로 비관할 일이나 모자라는 생활이 아니다. 너무 넉넉하고 다복하고 행복한 살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 점이지요. 그래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역사 하신다는 겁니다. 못난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게 해 주신 점 그 점이 깨달아 집디다요. 그럼 성경말씀 찾아 보셨지요. 아침에 보셨지요. 마태복음 11장 25절부터 보시면 되겠지요. 읽으십시오. 찾으신 분 한번 읽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 하셨다. 오, 아버지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뜻 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낳으시고 아들을 드러내 보이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거기까지 보셨지요? 찾아서 봐 주십시오.
그때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기쁨이 충만하여 말씀하셨다. 오, 하늘과 땅에 주인이신 아버지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 같이 의지하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옳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참으로 아는 이가 없고 그 아들과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려고 아들을
아는 자밖에는 참으로 아는 자가 없습니다. 아니 거기까지 보는데 그 말씀만 오늘 저녁에 기념으로 해서 한번 따라 읽어 주십시오. 누가복음 처음부터 읽은데 오 하늘과 땅에 주인이신 아버지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 같이 의지하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옳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오, 하늘과 땅에 주인이신 아버지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 같이 의지하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옳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 말씀.
찬송 불러 주십시오. (끊김)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 말씀입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은 우리들이 잘 아는바와 같이 성 삼위 하나님 예수님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 거룩하게 보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님께 귀의하고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뿌리로 말하면 어머니 배속에 잉태되기 전에 영혼의 뿌리로 말하면 그 근원은 같은 근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것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은남 자매가 이 세상에서 이제 떠나는 길로 영으로 말하면 영이 초월하시니까 여기에 와서 같이 계신 것으로 믿습니다. 이번에 이 현필 선생님의 3월 18일 그 하늘나라 가신 기념을 하기 위해서 계명산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전기를 쓰신 엄 목사님께서 전화를 받으시고 그 날짜를 깜박 잊으셨는데 이제라도 속히 갈 테니까 그 기념 예배를 기다리라고해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오후가 되었지요. 첫 말씀이 이 사람이 예수 믿은 시간도 많고 목사 된 햇수도 많지만 제 일평생에 예수님의 은총으로 두 분을 알고 존경하며 본을 보기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은 이태리에서 태어나신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이시고 한분은 한국에서 태어나신 이 현필 스승님이다. 목사의 신분으로서 가슴 깊이 생각해 볼 때 이 두 분은 누가 더 예수를 잘 믿었다 할 수 없을 만큼 같은 분이시다. 그렇게 존경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태리에서 태어나신 프란치스코는 후배들이 뒤에 사람들이 지금 7백년이 넘지요. 너무나 많은 기념관을 방방곡곡 지어놓고 일대의 주민들이 국민들이 프란치스코의 성인의 은덕으로 밥 먹고 살더라. 그래요.
그런데 한국에 태어나신 이 선생님은 교파의 신분도 아니고 또 교단의 신분도 아니고 또 사제도 아니고 어떠한 뜻으로는 교회도 아니고 아주 무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또 목사님 그 영성으로는 두 분을 똑같이 보는 바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동광원 후배들도 이태리 프란치스코를 본받아서라도 이 선생님의 흔적마다 기념관도 짓고 많은 국민한테 믿음을 내 보이도록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노라고 그렇게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오늘은 이 사람이 지금까지 살면서 예수님의 은총으로 맺어진 식구 가운데 꼭 저도 그런 말씀 하고 싶어요. 아무리 저도 저는 밤중에 12시데 깨어가지고 죽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 올 때까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님의 그 사랑 때문에 맺어진 사람가운데 두 분은 잊을 수 없다. 또 틀림없이 두 분은 본받아야겠다. 여자분 이지요? 한분은 성녀 한 백 년 전에 돌아가신 불란서 처녀 24살에 돌아가셨지요? 성녀 소화 테레사 또 한분은 한국에 태어나신 복 은남 자매 이렇게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 했어요. 아침에 천기예보를 들어보고 비가 올 것 같다고 빨리 시간을 가지십시다. 그렇게 전갈이 오고 곧 떠났는데 비는 오지 않고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오고 이렇게 산천이 희어진 것을 볼 때 역시 성녀 소화 테레사가 원하던 그 소원이 복 은남 자매도 원했던 심정이다 는 것을 직감 했어요. 자기 영과 몸을 예수님께 바치기로 하고 다시 말하면 땅에다 자기 몸을 묻어 버리고 이제는 영원히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자의를 포기하는 그 의식 기념하는 날이지요. 정식서원 혹은 착복식 하는 날에 철없는 소원을 하셨다. 그래요.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증거로 청천하늘이 파라지만 눈이 와주신다면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이지 흔히 될 수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눈이 새벽에 내렸기 때문에 너무나 감격했어요. 이럴 수가 있을까?
이 비천한 계집종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천기 자연계에서 예수의 사랑을 느꼈다. 그 말씀 입니다. 사람은 눈으로 봄으로 믿는 것이 있지요? 그 일평생 잊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아홉 살에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제도상 허락이 없었고 열다섯 살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스물한 살이 되어야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에 그 법을 어기고 15세에 수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면 21살에 수녀가 되었으면 정신 영혼 준비가 모자라 그런데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15세에 자기 몸을 바쳤던 허락하셨기 때문에 24살에 죽을 때까지 영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복 은남 자매는 어제 어머니에게 물어봤어요. 몇 살에 출가했어요? 아홉 살, 열 살 기억이 안 난다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그냥 들어갔다고 하니까 10세 이전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개 초등학교는 10세 이전에 입학하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9살에 성녀 소화 테레사는 수녀가 되기를 택했건만 제도상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이 공동체는 그 소녀가 9살 때 허락하신 거예요. 부모형제 친척을 떠나 예수님께 몸을 바치도록 9세에 허락하신 게 사실이야. 일찍 몸을 바쳤기 때문에 영혼 준비를 잘했지요. 그래서 어머니보다 오빠보다 형제보다 먼저 하늘나라를 갈수 있어도 준비가 확실히 된 거에요.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요. 그러면 인제 예수님의 말씀에는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곧 내게 사랑하는 것이다.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하는 것은 곧 내게 하는 것이라고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 천국을 네게 주마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이 자매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같은 신교 신자도 아니고 구교 신자고 또 간호를 할 바에는 똥오줌을 가릴 수 있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상식입니다. 또 똥오줌을 못 가리고 눈만 살아있고 손가락 세 개만 살아있는 전신불수 천주교 어머니를 섬기기를 20년 동안 하루같이 섬겼다. 그렇게 함으로서 이번에도 몇 달 전에 아팠을 때 누가 더 염려하냐? 천주교 신부가 또 외국 신부가 천주교 수녀가 그 몸이 아픈 것을 알고 그건 진정한 형제의 사랑이야. 체면닦이가 아니지요? 진정한 사랑으로 대전까지 모시고가서 진찰받게 하고 약을 사주고 먹도록 했지요?
그럼 이것은 상식적으로 암이라는 것은 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이면 감천이야. 지성이 지극했던지 약이 들었어요. 누구든지 의사한테 물어보십시오. 이 간 암이라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고통이 심하기가 어떻게 심한지 소리를 질러야하고 사람이 옆에 오면 막 화를 내요. 그렇게 하루를 지내야 하는데 간암을 앓으면서도 한 번도 큰소리를 안냈어요. 간호하는 사람한테 한 번도 화를 안내요. 방긋이 웃고 그 아픈 몸으로 어떠한 의미에서 비천한 자매들이 밭 매고 논매고 농사하는데 위로하기 위해서 농촌에 가서 봉사를 했지요. 그 하늘나라 가기 전에 한 3일전에 바야흐로 고통이 심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그 지독한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고 그런데 깨끗이 떠난 다는 거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지, 부모가 그렇게 해 주겠습니까? 오빠가 그렇게 해 주겠습니까? 친한 친구가 그렇게 해 주겠습니까? 사람이 몸을 다시 태어나서 다시 그렇게 한다 해도 안 되지요. 그것은 참 예수님이 하신일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으로 봐서 그렇게 믿어지는가 하면 그 영혼이 가신 깨끗한 길에 여기서 무덤까지는 몇 발도 안 되어요. 물론 일분도 안 되지만 영원히 가는 길인데 몸을 땅에다 부리고 하늘나라로 가는 의식인데 흙을 조금도 딛지 않고 가는 거예요. 얼마나 깨끗한 참 신비적인 길이고 또 영성적인 길이고 종교적인 길을 닦았는가? 그건 예수님이 확실히 이 영혼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누구든지 부인 못할 거예요. 오늘이 3월 25일 인데 눈 오는 때가 아니에요. 오면 비가오지요. 남원 지대는 따뜻한 지대에요. 어찌되었든지, 성녀 소화 테레사가 착복식 날 새벽에 그렇게도 원했던 기적이 일어나서 눈이 와주셔서 그 어린 영혼한테 위로를 준 것같이 먼저 엄마는 살아계시니까 딸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 또 오빠도 살아계시니까 동생을 먼저 보내는 오빠 또 언니도 살아 계시니까 동생을 먼저 보내는 언니 또 친척들이지요. 젊은 나이에 가는 친척으로서의 참 선배입니다만 먼저 가시니까 그 영혼을 보내는 오늘을 눈이 안 오고 깨끗한 정리가 되어서 그렇게 하는 일 보다는 눈이 오고 고생스럽지만 영적 뜻으로 신앙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영원히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해. 아마 동광원 역사 이래로 이 사실은 영원히 기억 될 것이고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참 신앙으로 살다 가신 영혼이고 그 영혼이 성화 받았다는 것이 확인 된 것이에요. 그리고 아침에도 어제도 이야기 했습니다. 성녀 소화 테레사는 백 년 전에 죽었지만 50년 전에 이차전쟁 시에 전쟁에 나타나 가지고 사람이 보기에 원수들이지만 양 진영에 동시에 나타나가지고 환자들을 간호한 사건이 그때 교황청에 진정한 기록으로 보면 그 성녀를 눈으로 보았다는 사람들이 장병이 60만 명이었다. 그래요.
그러니 교회 측에서는 절대 그 여자를 성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그런 증거를 드러냈다는 말을 이번에 하늘나라 가신 성철 스님이 증거 했어요. 제가 그 녹음해놓은 테프를 갖고 있거든요. 타종교에 그렇게 증거 하는 것을 우리가 참고해야겠습니다. 그래 아침도 우리가 이야기 했어요. 친척 오시기 전에 이렇게 고귀하고 깨끗한 영혼은 이 생사를 초월하고 영을 초월하고 영은 죽지 않아, 몸을 보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와 있고요. 어디가든지 와있어요 물론 영혼이 돌아간 영혼이 온데 간데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게 있지요.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러나 영혼이 성스러워진 영혼은 천하를 도와주는 거예요. 방방곡곡 다니면서 또 살아서도 동광원 사람도 아닌 천주교 엄마를 섬기고 20년을 똥오줌을 가려내고 또 4시간마다 몸을 이렇게 문질러 줘야 하니까 피가 통하도록, 그렇게 충성 간호했다고 해서 자타가 유명하지요. 그 소문은 외국도 나있고 또 천주교 신부가 이 자매의 기록을 쓴 책도 나와 있어요. 이쪽저쪽 교파를 초월한 이 봉사에 있어서는 누가 보기에도 족하지 아니하냐? 그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파벌도 없고 종파도 없다. 이렇게 시범한 자매의 교훈은 모든 사람이 본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지금 책이 나와 있지요. 어찌되었든지 참 덕이 높고 완성된 영혼이 하늘나라로 가는 경우는 우리가 기념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념하셔. 눈을 밟고 우리가 떠나는 의식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여기 히브리서 2장 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서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죽고 다시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소치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남 자매가 땅에 오셔서 50년을 사시고 떠나는 것은 사람이면 다 가는 길이지만 특별히 이렇게 눈이 내리는 이 오늘 피차간에 이별하게 하신 이 사연은 역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제가 여기 내려오기 전에 옥편을 봤어요. 천우신조라. 그거는 일반 사회에서 하는 소리이지요. 이건 분명 하늘이 돕고 신이 도왔다. 그 우리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고 결코 죽음은 없다. 몸과 영을 초월해서 하나가 된 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이제는 동광원도 처소가 많지요. 여러 처소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또 친족들도 함께 항상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요. 한 그 사연을 덧 부쳐 드리겠습니다. 아마 정 귀주 어머니가 이 현필 선생님을 존경한 것은 30대 부터지요. 그렇게 해서 정 귀주 어머니께서 진도에 가서 20년을 사셨다는데 너무나 존경하던 이 선생님은 일이 바쁘시고 일 년에 한번이나 오시지만 일 년 동안 기다리셨답니다. 오늘 오시려는지 한번 오시려는지 그렇게 동경하던 선생님이 어느 날은 마음에서 탁 자유를 주셔. 그리워한다던지 사모한다던지 보고 싶은 마음이 탁 풀어져 가지고 어쩌면 마음이 평화가 오더랍니다. 20년 동안 항상 그리워하며 보고 싶던 선생님 인데 어째 이렇게 마음이 기쁘고 평안하며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까? 동경했으니까 그럼 이틀 후에 소식 들어보니까 그 시간에 이 선생님이 임종 했겠더라고 그랬습니다. 그 체험을 이야기 하셔요. 몸을 입고 계시니까 이 선생님은 한 분뿐이니까 광주 계시면 진도를 안 오시고 항상 보고 싶던 분이 몸을 떠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항상 마음에 든든하고 항상 영혼이 부자고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육신을 벗어나고는 진도에 오셨다는 거예요. 영적 체험이지요. 예수님도 그러시지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모든 사람의 믿음의 자손의 영혼 안에 와 계십니다. 확실히 그래요. 한 말씀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 말씀에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인데요. 그 느낌이랄지 깨달음이랄지 그 영혼이 일치한다는 말씀, 어느 때가 되면 깨달아질 때 그 죽었으니까 서로 떨어져 있는데 여기 와 있다는 말이 그걸 믿을 수 있느냐?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믿음이 일치될 때는 마음이 하나 될 때는 육신을 초월하니까. 그 예수님이 직접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날이 오면 영적 일치 이지요. 전화 전기와 같아요. 딱 선이 이렇게 닿아요. 일치를 한단 말이야.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아버지는 비 물질이거든요. 하나님은 비 물질이야. 몸은 물질인데 그것이 초인이야.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깨달아 진다. 그게 아주 다는 그렇게 안 되겠지만 깨달아진 사람은 확실해요. 사실이다. 인제 오늘부터 살아보겠지만 은남 자매는 사랑이 많은 분이고 하나님의 예수 사랑을 받은 자매기 때문에 깨달아지는 사람 안에는 항상 같이 하실 겁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아침에 이야기 했어요. 그 분 생애에 있어서 흠이 있으면 성인으로 추천하면 모두 고발합니다. 아니라고 성인 못된다고 그런 운동이 일어난다고 그러는데요. 아니 그분, 그런 분 아니라고 여러분이 헐어버리시면 헐 사람이 없을 거예요. 살아있는 영혼이니까요. 영혼이 입었다. 영혼이 성화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더불어 아까 같이 이야기 했던 소화 테레사 그런 영혼과 더불어 자기가 땅위에 오셔서 많은 사람 도와주시고 그런 사랑의 화신이 될 것을 믿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르실 찬송을 부르시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