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저물어가는데,
저녁을 뭘로 한다지? 하다간 짜증이 났다.
이제 먹거리도 거의 떨어졌는데, 그렇다고 라면을 삶아 먹기도 싫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이 갔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 끝에, 그냥 ‘김치 부침개’를 하기로 했다. 돼지 고기는 남아 있으니까 그걸 조금 꺼내서 넣으면 맛도 좋을 터라.
그러면서는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술은 없고(술을 사러 나가긴 싫으니), 그래서 막걸리 대신 갈리시아 술인 ‘오루호’(냉장고 안에 있다.)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 술은 독주지만, 작은 잔에 두어 잔 마시면 될 테니...
그렇게 부침개 한 장을 했고, 그저 인터넷 뉴스 채널을 틀어놓은 상태로 그걸 시청하면서 별 생각도 없이 두 잔을 마셨다.
아닌 게 아니라 독주라서(내 체력이 약해진 건지) 두 잔 마셨을 뿐인데도 속이 아르르 했다.
그런데 문득,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술 기운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내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 그 누구와도 함께 앉아 술 한 잔 못한 채, 이렇게나마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나쁘지는 않지만,
요즘 'AC' 'BC'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듯,
(그건, 예를 들어 'BC'는 원래 '연도'를 표시할 때, '예수 탄생 이전(Before Christ)'을 의미하는 식이었는데)
최근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는 그 의미가,
AC : 코로나 이후(After Corona)
BC :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를 참고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왔던 BC(코로나 이전) 시대는 이제 없어졌고, 앞으론 AC(코로나 이후) 시대로 바뀌었다는 얘기니,
그 얘긴, 우리가 이전에 살아왔던 시대는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일 수도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술 한 잔하는 삶이, 이제는 '옛일'이 돼 버렸다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밀려온 감정이 '슬픔'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혼자 궁상을 떨며 술 한 잔 하고 있는 모습이란 게, 사실은 누군가를 불러 여기 '내 자리'에서, 아니면 밖에 나가 약속을 한 상태로(지금 군산 친구들도 내가 내려가 술 한 잔 함께 하는 걸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며 한 잔 함께 하는 상황과 바꾸고 싶은데,(원래는 그렇게 해야 하는데)
이 놈의 ‘코로나 사태’로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또 부른다고 쉽게 올 사람도 없을 거고,
고향의 친구들도 생각 뿐이지, 선뜻 모여서 옛날처럼 떠들면서 몇 시간을 앉아 술을 마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정말, 그게 가능할까?),
뭔가 세상 한 구석이 꽉 막혀 있는 것 같은 '갑갑함'에 치를 떨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건 곧, 슬픔이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이전과는 달라진 이 세상 분위기에 맞춰서 살아야 할 거라면? 무슨 재미로 산다지?
한숨이 절로 나오면서, 이미 약간 올라오고 있던 술기운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앉아 있는 내 자신이(아니, 이 세상이) 서글펐던 것이다.
요즘 이런 말이 귀에 자꾸만 들려온다.(신경이 써진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그게 꼭 '의학적'인 경고가 아니라 해도(이제는 생활 속에서 늘 감염병에 긴장하고 살아야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그래서 우리네 일상하고는 큰 관계가 없을 수도 있을 거라는 낙관론도 있지만(백신과 치료제 개발 이후를 내다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암울한 기운을 담은 '경고 메시지'임에는 분명하다.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허긴, 나도 이젠 많이 늙어서, 그것과도 연결되는 말이긴 하지만......)
첫댓글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정말 이상해졌습니다.
자꾸 서로 떨어지려 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그제 서울에 왔는데 서울 살이야말로 재미가 없네요,
그저 답답할 뿐, 탈출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고창으로 얼른 가야 할 모양입니다.
그렇게 사실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