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곡 선악과 나무와 에덴 동산 탐식의 죄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속도를 내어 걸었습니다.
두 번 죽은 듯 보이는 망령들이
퀭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들이 보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임을 알고 놀라워했다.
단테는 포레세에게 이 망령들 중 아는 망령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포르세는 탐식의 죄를 짓고 이곳에서 정죄하는 영혼들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당대의 이름난 시인이며 포도주 애호가인 보나준타 다 루카와 뱀장어를 고급 포도주에 넣고 취하게 한 뒤 구워 먹다 죽은 투르 출신의 교황 마리티누스 4세가 있고
그리고 다른 많은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줬는데,
그들은 이름이 불리는 것에 만족하는 기색이었고,
화난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거기에 우골리노 백작에 머리를 씹히는 루지에르 대주교의 아버지인 델라 필라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였고 보니파키우스 라벤나 대주교도 주위를 둘러싼 배고픈 아첨꾼들에 굶주림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 애호가 마르케세도 보였습니다.
그들 중 보나 준타 다 루카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이 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단테는 그에게 그의 말이 갈증 뿐 아니라 정신적 갈증도 풀어줄 것이니 들리게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사람이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자들’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청신체 파 시)를 쓴 사람이 아닌가요?
단테가 청년 시절에 쓴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자들’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을 이야기 합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연정을 시와 산문으로 죽은 베아트리체를 애도하는 글입니다.
단테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이 내게 불어올 때 받아 적고,
사랑이 안에서 불러 주는 대로
드러내려는 사람이오.
사람이 불어 넣은 숨이 생명의 원인이고 그 숨을 내쉴 때 목소리가 되고 그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쓰면 시가 된다는 단테의 시를 쓰는 법을 간결하게 요약한 청신체 시를 정의 하는 구절입니다. (연옥편 19곡에서 청신체파의 주제 나옴)
사람의 숨을 불어 넣어 시를 쓰게 한 존재가 여자인데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였습니다.
루카는 청신체파가 시칠리아파를 극복하고 이탈리아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이 ‘감미롭고 새로운 문체의 시’에서 풀린다며 "이제 당신네들의 날개가 그 불러 주는 이의 뒤를 바짝 좇아(위의 청신체 시를 정의하는 구절) 어떻게 날아가는지 분명히 알겠소."라며 그가 만족하여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망령의 무리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포레세가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단테는 피렌체가 날마다 황폐해져 연옥의 해변에서 씻어야 할 죄가 많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게! 가장 큰 죄를 지은 자(포레세의 형제 코르소)가
짐승의 꼬리에 매달린 채 결코 죄를
용서하지 않는 깊은 바닥으로 끌려가는 것이 보이네.
포르세는 단테에게 피렌체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남기고 황급히 떠났습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의 얘기를 힘겨워 하며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싱싱한 초록의 나무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나무 밑에서 망령들이 잎사귀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었으나 영혼들은 포기하고 가버렸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유혹(혹은 아담과 이브), 루카스 크라나흐, 코톨드 갤러리, 런던
우리가 2019년에 런던에 갔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코톨드 갤러리를 새롭게 단장하느라 2018년 9월부터 2년 이상 휴관이었습니다. 이 코톨드 갤러리를 보지 못한게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벨젤 피터, 바티칸 박물관 피나코데카 회화관, 바티칸
또 다른 화가, 마르크 샤갈의 에덴 동산입니다.
에덴 동산, 샤갈,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이야기 미술관, 프랑스 니스
- 2008년 니스 여행 중에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샤갈,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이야기 미술관, 프랑스 니스
에덴 동산, 마르크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슈테판성당, 독일 마인츠
- 2010년 독일 마인츠 여행 중에
우리는 그 무성한 나무에 다가섰습니다.
“지나가시오! 가까이 오지 마시오!
더 위로 올라가면 이브에게 열매를 준 나무가 있소.
이 나무는 그 나무에서 나온 것이오.
단테 일행에게 산의 정상에 에덴동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잎사귀들 어디선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나무는 성경에 있는 선과 악이 있는 나무의 자손입니다. 우리는 서로 꼭 붙어서 높이 솟은 암벽 사이를 걸었습니다.
그 나무에서 그 목소리가 계속되는데 탐식의 죄를 짓는 예가 들려왔습니다.
켄타우로스는 결혼식에서 술에 취하여 신부를 비롯한 여자들을 납치하려 했다가 많은 수가 테세우스에게 살해되었음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 유대가 미디안을 칠 때 기드온은 병사들이 강에 이르러 어떻게 갈증을 해소할 것인지 하느님으로부터 지침을 받았습니다. 그 지침을 따르지 않고 물을 마구 들이킨 자들을 돌려보낸 기드온은 삼백 명의 병사들만 이끌고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당신들 셋이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올라갈 길을 찾고 있는 것이라면 여기서 돌아가면 평화를 찾는 자들을 위한 길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말하는지 보려했으나 그의 모습이 내 시야를 빼앗았습니다. 단테 일행에게 산의 정상에 에덴동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한 가닥 바람이 내 이마를 가볍게 스치는 것을 느꼈다.
암브로시아 향기를 풍기며
움직이는 날개를 나는 선명하게 느꼈다.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새겨진 ‘P’자 하나를 지우며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다. “은총의 빛을 받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릴 것이니, 식욕이 저들의 가슴에
고도한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언제나 의로운 일에 굶주리게 하기 때문이로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