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만, 도, 오늘”로 본 한국 동시사의 “어린이”
-윤동재
한국 동시사에서 ‘어린이’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1948년 윤석중의 동시 <어린이날 노래>, 2018년 강정규의 동시 <5월 5일 1- 7.5조>와 <5월 5일 2- 7.5조>, 2026년 윤동재의 동시 <어린이날>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1948년의 ‘은’ : 나라의 일꾼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윤석중 <어린이날 노래> <<굴렁쇠>>(수선사, 1948)
광복 직후의 어린이는 나라의 일꾼으로 호명받았다. 시적 화자는 “새들에게는 푸른 하늘을 날아라” 주문하고, “냇물에게는 푸른 벌판을 달려라” 명령한다. 오월은 신록의 계절답게 푸르니 그 속에서 우리가 무럭무럭 자라자 자라면 나라의 일꾼. 오늘은 어린이날이라고 했으니 365일 가운데 오늘 하루만이 어린이날이라는 뜻이다. ‘은’은 보조사로서 대조와 강조를 나타낸다. 다른 날과의 차이를 견주어 이날만은 어린이로서 대접받고, 나머지 날은 나라의 일꾼으로 손잡고 서로 정답게 나아가야 할 뿐이다.
어린이는 주체적인 어린이가 되지 못하고 나라의 일꾼, 나라의 어린이 일뿐이다. 2연의 대구와 각 연은 4행 3음보의 규칙적인 율격을 갖추고 있으며, 연과 행의 대구를 통해 질서정연한 당위를 강조하고 있다. 곧, 새 나라의 어린이는 새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고 있다. 윤석중의 시대는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모두가 다 짊어지고 있을 때였다. 윤석중의 ‘은’은 어린이를 일꾼이라고 호명하여 자랑스러운 구성원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의를 지닌다.
2018년의 ‘만’과 ‘도’ : 결핍과 자각
오늘만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겅정규 <5월 5일 1 –7.5조> <<모기네 집>(문학과지성사, 2018)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 1연과 2연의 마지막 행을 부제로 단 7.5조에 맞게 3/4/5 3음보를 각각 하나의 행으로 구성했다. 각행 1음보의 3행시로 만들어 놓았다. 12글자 가운데 달라진 건 딱 한 글자다. ‘오늘은’에서 ‘오늘만’ 곧 ‘은’에서 ‘만’으로 바꾸어 놓았다. 건성으로 읽으면 이건 윤석중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놓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는 단순 모방이 아니다. 잘 알려진 텍스트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내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는 윤석중의 것이면서 모두의 것이다. 공유자산으로서 고전이 된 지 오래되었다. 강정규는 고전이 된 텍스트를 재해석하여 변주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한 글자라고는 하나 ‘은’을 ‘만’으로 바꾼 것은 뜻깊다. 이 작품에서 ‘만’은 시의 눈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린이날 좋다. 그런데 왜 오늘만이냐고 따진다. ‘만’은 보조사로 한정을 뜻한다. 오늘만으로 한정된 어린이날이 불만인 것이다. 오늘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모자람에 대해 깨닫고 다른 방법은 없나 모색해 보고 있다. 그 결과가 다음 작품이다.
오늘도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강정규 <5월 5일 2 –7.5조> <<모기네 집>(문학과지성사, 2018)
강정규는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만’이라는 한정을 벗어던지고, ‘도’라는 보조사를 통해 ‘연속’을 강조한다. 오늘도 어린이날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날이 이어지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앞에서 말했듯이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 1연, 2연의 마지막 행 3음보를 나누어 3행 1연의 시로 구성했고, ‘은’을 ‘도’로 바꾸고 ‘도’가 시의 눈이다.
강정규의 두 작품은 각기 12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더 덜어낼 것이 없다. 수사도 묘사도 비유도 없다. 고갱이만 남은 셈이다. 극도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보여주고 있다. 강정규의 두 작품을 읽을 때는 반드시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와의 상호텍스트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2026년의 오늘 : 시간의 주권 찾기
오늘만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오늘만?
내일은 아니고?
모레도 아니고?
다른 날은 다 아니네!
다른 날은
어른들의 날?
노인들의 날?
오늘은
오늘만
오늘이 내일이 되면
오늘이고,
모레가 모레가 되면
오늘이지
그래 그래
다 어린이날이다!
오늘은 우리들 세상
맞다! 맞아!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윤동재 <어린이날> <<어린이문학>> 2026년 봄호
윤동재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연속성에 주목하며 윤석중 강정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은, 만, 도’라는 보조사 고유의 개별 의미를 단번에 뛰어넘어 ‘오늘이 내일이 되면 오늘’이라는 ‘오늘’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순환적 시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날을 오늘로 바꿈으로써 시간의 주권을 갖게 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어린이의 모습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철학적 주체로서의 어린이다.
이 짤막한 글에서 우리는 80여 년의 거리를 두고 국가의 일꾼에서 결핍을 확인하고 자각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확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할 줄 아는 주체적인 어린이의 모습을 보았다. 스스로가 나날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주체적인 어린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았다.
어린이날조차도 없던 시기를 지나, 어린이날이 만들어지고 그 어린이날은 어린이로서 충분히 대접받아야 한다는 윤석중은 선구적이고 귀한 외침을 남겼다. 강정규는 이를 발판 삼아 ‘만’과 ‘도’를 통해, 어린이의 결핍과 자각을 확인했다. 윤동재는 윤석중의 선구적 외침과 강정규의 비판적 자각을 디딤돌로 삼아 스스로 시간을 정의할 줄 아는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할 줄 아는 어린이를 그려냈다.
윤석중의 ‘은’부터 강정규의 ‘만’과 ‘도’를 거쳐 윤동재의 ‘오늘’에 이르는 80여 년의 도정은 어린이를 미완의 존재 또는 국가의 일꾼으로만 여기다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완전한 인격체로 우뚝 세우는 기록이다. 이제 어린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규정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정의하고 나날을 어린이날로 만드는 당당한 주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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