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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월간 <현대문학> 신인추천 당선작_ 안식(외 4편)/ 정우신 심사위원 : 박상수, 이기성
안식 (외 4편)
정우신
죽은 자의 가슴 위에 석류를 올려놓았다
지상의 한 칸에서 식어가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로 들어가 몸을 데웠다
손톱이 없는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서로 주고받았다
빛이라는 가장 긴 못에 박혀 어둠의 심장에서 뿌리의 모양으로 말라가는 사내
석양이 호수에 눈물을 뱉어내면 분수는 슬픔을 동그랗게 밀어 올렸다
허공의 눈을 찢으며 날아가는 새떼들
새의 눈이 얼굴 위로 쏟아지면 쥐가 달려와 안개의 떫은 맛을 골라냈다
숲 속에서 아이들은 석류를 들고 망치질을 했다 말이 없는 두 발목을 종이로 감쌌다
죽은 나무 안에 누워본다
뿌리는 어둠을 키우며 나를 뱉어낸다
풀 / 정우신
움직이는 것은 슬픈가.
차가운 것은 움직이지 않는가.
발목은 눈보라와 함께 증발해버린 청춘, 다리를 절룩이며 파이프를 옮겼다. 눈을 쓸고 뒤를 돌아보면 다시 눈 속에 파묻힌 다리, 자라고 있을까.
달팽이가, 어느 날 아침 운동화 앞으로 갑자기 떨어진 달팽이가 레일 위를 기어가고 있다.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반찬을 몰래 집아 먹다 잠든 소년의 꿈속으로. 덧댄 금속이 닳아서 살을 드러내는 현실의 기분으로
월급을 전부 부쳤다. 온종일 걸었다. 산책을 하는 신의 풍경, 움직이는 생물이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없다. 공장으로 돌아와 무릎 크기의 눈덩이를 몇 개 만들다가 잠에 든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슬픈가.
가만히 있는 식물은 왜 움직이는가.
밤이, 어느 작은 마을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밤이 등 위에 정적을 올려놓고 천천히 기어간다. 플랫폼으로. 플랫폼으로. 나를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창밖으로 내리는 눈발의 패턴이 바뀐다.
간혹 달팽이 위로 바퀴가 지나가면 슬프다고 말했다.
잠들어 있는 마음이 부풀고 있다.
나를 민다.
나를 민다.
번식 / 정우신
미나리가 자라면
미나리를 캐러 가자 칼을 쥐고
휘두르는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야
행주를 삶으며
따듯한 냄새를
모두 놓쳐버렸다
물의 폭력이란 그런 것이구나
소파에 누워 창밖을 본다
어김없는 봄은
어떤 기분으로 걸어갈까
구름이 자신의 그림자에
물을 붓듯
발등이 부풀고
차분히
자라는 것
염소는 발굽에 걸린 풀을
골라내며 울고 있다
식구들 / 정우신
우리의 식탁에는
큰아빠와 할머니와 고모와 고모부와 사촌형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주인 없는 컨테이너 아래에는 고양이가 산다.
사람들은 먹다가 남긴 음식을 놓아두고 간다.
여러 동물이 모여든다.
동생은 고양이를 몰래 들고 왔다가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여러 번 그렇게 한다.
식탁 밑이 나와 동생의 자리이듯
어떤 고양이는 밥을 먹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
사람들은 먹이를 던져주며 기쁨을 느낀다.
고양이가 어둠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자세를 한껏 낮추다가 간다.
한없이 귀여워하다가도 발톱이 보이면
돌로 머리를 친다.
주인이 오면 우리는 자는 척을 한다.
현관에서 늙고 아픈 냄새가 퍼져오지만 우리는 잠바를 입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주인은 우리가 얌전히 있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낀다.
이리오렴. 이리오렴.
그렇게 여러 번 침을 뱉는다.
나는 동생을 가방에 넣고 다른 동네를 다녀온다.
동생은 내가 담겼을 때의 기분을 느꼈는지 한참을 울다가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공격하려다가 복종한다.
우리는 밤마다 오줌을 맞는다.
컨테이너에 불이 들어오기를 기도한다.
하얀 레코드 / 정우신
꿈의 뒷페이지들, 종이 꽃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구름으로 들어간 참새는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숲을 돌아다녔다 머리끈을 풀어 줄기를 묶었다 그곳에 검지발가락을 넣었다 뺐다 죽어가는 꽃을 유리컵으로 옮겨 심은 뒤 깨트렸다 선인장에 양말을 뒤집어 씌워놓고 다른 이름이 되기를 기도했다
나는 잠든 소녀의 스케치북에 굴뚝을 그려본다 끓고 있는 눈발들, 반대편 누군가는 따듯할까 이곳을 찢어 벽난로에 넣고 싶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창문 하나가 없어질 것 같다
멀리 가고 싶은 날은 침을 뱉으며 이불을 털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옷가지를 들고 웃었다 색을 갖는다는 것은 따가운 일이었다 나는 소녀의 빈 다리에 누웠다 화분 받침대를 비집고 나온 뿌리들
허공이 한없이 좁다 디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발밑에는 눈보라가 날지 못하는 새들을 몰고 다닌다 우리는 아래가 없으니까 떠다닐 수도 없으니까
나는 소녀의 꿈에 한 발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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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신 / 1984년 인천 출생. 광운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
—《현대문학》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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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신의 「플라즈마」 감상 / 채상우
플라즈마 / 정우신
고물상 의자에 앉아 폐전구를 씹는 소년, 눈길이 닿는 곳마다 어둠이 밀려난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고철 사이에서 눈을 뜨고 있는 희망을 이해할 수 없다
손가락이 모자라면 팔로 팔이 모자라면 어깨로 소년은 짐을 나른다
그림자가 그늘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나뭇잎이 온몸을 떨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젖은 장갑을 낀 채 절단기 속으로 몸이 반쯤 잠긴 소년, 말없이 밥을 먹던 가족을 떠올렸다
하나로 뭉칠 수 없는 것
빈 의자에 앉아 골목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다
손가락이 담긴 장갑이 하수구를 지나는 밤
어느 골목으로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어떤 향기를 피워 올릴지 모르지만
소년은 끝나지 않는 현실처럼
나의 체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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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픈 시다. 이렇게 아픈 시를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이 부끄럽다. 며칠 전 꽃 핀 길을 흐뭇하게 걸은 게 부끄럽고, 꽃이 피었는데 비 내린다고 술을 마신 게 부끄럽다.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과 꽃이 지면 어쩌나 걱정한 게 부끄럽다. 마냥 부끄럽다.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당장의 내가 부끄럽다. 아니 부끄러워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부끄럽다는 말로 그칠까 봐, 안심할까 봐, 어젯밤 어딘가에서는 "손가락이 담긴 장갑이 하수구를 지나"고 있었을 텐데 "끝나지 않는 현실"을 앞에 두고서 또 슬며시 눈을 감을까 봐. 가끔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많다. 우리의 평안하고 안온한 삶이 얼마나 부끄러울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채상우 (시인)
원숭이 연극 / 정우신
원숭이를 가득 실은 기차가 국경이었던 지역을 넘어가고 있다
벽을 두드리며
석탄을 채취하던 원숭이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검은 뼈를 가진 어둠의 정강이에 대하여
허공에 붉은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자의 망각에 대하여
기차 바퀴에 밟혀
운석이 튀어 오르고
창문으로 유황가스가
새어 들어온다
목에 힘을 주고 얼굴을 튕겼다 앉히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지 주름잡는 자들의 걸음걸이를 배우고 버렸지 조상들이 쥐고 간 빛을 훔쳐왔지 악의 개념은 없어졌으니까 번식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불법 동료? 원자? 사슬? 왜 나는 멸종한 너희를 생각하는가
심장은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레일까지
피를 뿜다가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정밀하게 흘려보내고
내 핏줄의 모양으로 너희는 가계도를 만들었군 어느 나무로 튀어나가면 될까 곳곳의 나뭇가지마다 코알라 사슴 하마 기린 자라나네 뒤집으면 다시 해저, 세계는 결국 거대 생물체의 내면이군 내가 신경계 역할을 했다니 나의 풍경은 너희가 잠시 머물렀던 낮과 밤
굳은 하반신에서 꼬리가 분열한다
기분을 건너뛰며
출몰하는 자
사랑의 노래를 불러라
가죽을 바꿔라
온몸을 들이밀고
가볍게 소화되어라
꼬리를 숨긴채
뛰어내리려 하는 원숭이를 본다
곧 갈아입을 형체에 대하여
행성에 띠를 만들며 굵어지는 폭설에 대하여
비금속 소년 / 정우신
여름이 소년의 꿈을 꾸는 중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곤 했다 우리는 장작을 쌓으며 여름과 함께 증발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화산은 시력을 다한 신의 빈 눈동자 깜박이면 죽은 그림자가 흘러나와 눈먼 동물들의 밤이 되었다 스스로 녹이 된 소년, 꿈이 아니었으면 싶어 흐늘거리는 뼈를 만지며 줄기였으면 싶어 물의 텅 빈 눈을 들여다보았다 멀리,
숲이 호수로 걸어가고 있다 버드나무가 물의 눈동자를 찌르고 있다 지워진 얼굴 위로 돋아나는 여름, 신은 태양의 가면을 쓰고 용접을 했다 소년이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팔을 휘두르면
나는 나무에 가만히 기댄 채 넝쿨과 담장과 벌레를 그렸다 소년은 내가 그린 것에 명암을 넣었다 거대한 어둠이 필요해 우리는 불을 쬐면서 서로의 그림자를 바꿔 입었다 달궈진 돌을 쥐고 순례를 결심하곤 했다
소년은 그림자를 돌에 가둬 놓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나의 무릎에 이어진 소년, 이음새를 교환할 때마다 새 소리를 냈다
바람 -구의역 9-4 / 정우신
새의 깃털
철로로
떨어지지 않도록
나는 잠시
그림자에서
내렸다
미리내 빌라 / 정우신
무너져야 완성되는 하루가 있습니다
도시에는 죽은 친구도
살아가는 친구도 있고요
사과나무가
안부를 애먹이고 있네요
나의 청춘은 여기서 끝입니다
정육점으로 모인
개와 고양이
동네 사람들
신이 부싯돌을 켜는지
저만치 은하수 흐릅니다
절망의 지붕을 얼마나 더 높여야 할까요
가정에는 죽은 가족도
죽지 않은 가족도 있고요
은하수 지나던 방향으로
사과꽃 한없이
휘날립니다
햇살은 십자가로 빛나고
흙과 자갈의 얼굴로
기어오는
봄이 있습니다
위 시에도 ‘봄’이 있다. 하지만 분위기가 우리들이 알던 것과 사뭇 다르다. 시인에게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라기보다는, 그 발밑에 죽어 있던 것들을 자각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흔히 사람들은 봄을 가리켜,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깨어나는 계절이라 말해왔지만, 위 시에서는 그런 익숙한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렵다. “무너져야 완성되는 하루”가 남긴 그 처참한 흔적들을 비롯해 “흙과 자갈의 얼굴”을 한 채 켜켜이 쌓였을 봄의 낯선 정경이 드러난다. 이것은 ‘청춘의 끝’이라는 절박함과 함께 어느 누구보다 더 낮은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봐야만 비로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봄은 “절망”의 계절이다. 저 ‘미리내 빌라’에 살던 누군가는 집 바깥의 길바닥보다 더 낮은 곳에서 봄을 맞이했을 것이다. 문득, 그 사람의 얼굴에 흙먼지처럼 가라앉은 봄이 스치는 듯하다.
예전에 유명 건축가가 우리나라의 주거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반지하’ 또는 ‘지하’에서 거주하는 방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위 시에서처럼 “절망의 지붕”을 높인다고 하여, 그 집의 평수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요, 더 살기 좋아졌다는 의미도 아닐 것이다. 그저 쓸 수 없는 허공만 조금 더 넓어질 뿐, 좁은 평수는 변함없다. “도시”와 “가정”이라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가 꿈꾸는 성장 가능성(높은 빌딩일수록, 또는 평수가 넓을수록 부를 상징하는 것) 내지 그것을 바라는 희망은 얼마나 실현 가능한 일인가. 화자는 햇빛에서, 그리고 밤하늘에서 신의 가호를 찾으려 하지만, 그것들은 ‘절망의 지붕’에 의해 가려져 있는 듯하다. 부싯돌의 불빛처럼 잠깐의 희망에만 의지하는 자의 눈에 비친 봄은 그야말로 처절할 뿐이다.
“죽은 친구”와 “죽은 가족”의 흔적을 곁에 두고 삶을 이어나가듯이, 어느새 무심코 맞이한 봄에도 지난겨울 동안의 숱한 죽음들이 깔려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격해 왔는가. 그 수가 바람에 휘날리는 저 꽃잎의 개수만큼은 되지 않을까. 위 시에서 “정육점”은 어느 동네에든 볼 수 있는 익숙한 곳이지만, 거기에 모여든 이들의 무의식적인 발걸음은 평범한 장면이라기에는 어딘지 낯설어 보인다. “정육점이란 묘한 곳이다. 이 이상한 시체 백화점은 공포와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왔다.”(서동욱, 『일상의 모험』, 민음사, 2005, 190쪽) 진열된 살덩이를 식탐에 눈이 먼 눈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죽은 사체를 뜯어먹고 배를 불리는 세계. 상처받은 봄은 이곳까지 가까스로 기어와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이것이 시인이 그리고자 한 ‘봄’의 또 다른 얼굴이다. (*)
—《문예바다》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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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핑크 스팀 / 정우신
세계는 옷차림만 달라졌을 뿐
누가 말하는 걸까
충분하다고
뛰어내리라고 누가 부르는 걸까
눈의 자리를 더듬었다
안개처럼 강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알루미늄을 씹었다 뱉었다
어느 무당의 말처럼 물을 멀리했다면
미래는 가벼워졌을까
슬픔이 덜했을까
손끝으로 어둠을 두드리다 보면
가끔 별똥별이 보이지
당신의 입속에 있는 자두
익어가는 소리 들리지
초점은 지금부터 잠자리의 몫
초록 눈꺼풀에 감겨 보이지 않는 가을의 몫
―시집 『홍콩 정원』 2021.1
(『시산맥』 2019 가을호, '한강대교'를 개작)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정우신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요
감나무와 가로수와 하천을 옮겨가며 체온을 바꾸는 햇살과 바람과
걸음 소리와 기찻길을 모두 줄게요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우월해지는 사람
유전되는 사람
어느 날은
그림자가 신의 귀 같아요
신은 우리집에 사랑과
우울을 흘려놓고
그것을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것을 죽어가는 병아리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세상의 징검다리에 대해 썼어요
신은 구름으로 퍼즐 놀이를 하며
폭설을 일으키거나
무지개를 띄워놓고 긴 잠을 잡니다
우리는 새끼오리들을 옮겨주거나
물 위에 나뭇잎을 띄우고
멀리 간 바람과
우물 바닥 이끼를 향해 손가락을 뻗어보는
아주 오래된 햇살에 발등을 적셔보고
서로에게
가진 것을 모두 주었습니다
말을 잃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식으로부터
반복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등이 간지러워지는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가
수속 手續 / 정우신
버드나무는 냇가 근처에서 자라고
햇살은 나의 그림자를
액자처럼 들고 서 있다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들이 흔들린다
우유는 자주 상하고
이불은 낡아가는데
나는 당신의 실내화를 신고
시간의 뒤꿈치로
발을 뻗어본다
물로 만들어진 창문
고개를 내밀면
아른거리는 소독약
눈발들
떨어뜨린 사물을 다시
주울 수 없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사물의 이름을 하나 둘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노래가 되던 나날들
마법처럼
링거줄을 따라
물 밖으로 나오면
입안이
뽀글뽀글
당신의 머리카락에 묻은 흙이나
쇳가루를 털다 보면
나는 애벌레도 아니고
당근도 아닌데
당나귀 꼬리에서
흔들리고 있는
시간의 끝자락
나는 당신이 들어있는
나무 상자를 들고
냇가를 빙빙 돈다
소금쟁이가
그림자를 엮으며
이리저리
튀고 있다
정우신의 「메카닉」 감상 / 박소란
삼촌은 기계를 잘 다뤘다 아픈 사람도 기계로 고쳤다
비가 오거나 스님이 시주를 오는 날이면 톱날을 교체하곤 했다
삼촌은 언제 뭉툭해졌더라
몇 번째 톱날이었더라
기계가 삼촌을 오랫동안 만지던 날
우리는 기름이 떠다니는
미숫가루를 마시며
철판을 옮겼다
―시집 『미분과 달리기』 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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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공, 기계공 등의 뜻을 지닌 “메카닉(mechanic)”은 속어로 살인 청부업자를 이르기도 한다고. 당연히 시인은 이 모든 의미를 두루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시에는 어떤 섬뜩함이 있다. “삼촌은 기계를 잘 다뤘다”로 시작해 “기계가 삼촌을 오랫동안” 만졌다에 이르는 과정은 섬뜩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기계? 기계! 기계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대체로 잊고 살아간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깊이 기계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기계의 작은 부품으로서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 몇 번째 톱날로서, 몇 번째 톱날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영위하고 있다는 것. 일상은 그렇게 잘도 굴러간다. 어쩐지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보란 듯 톱날을 교체하는 식으로.
우리는 다만 “기름이 떠다니는 미숫가루”를 마시며 하던 일을 계속할 뿐. 그것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 영영 알지 못한 채.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망가지겠지. 병이 들겠지. 쓸모없는 부품이 되어 몸져누우면 새 기계를 가져와 손을 볼 것이다. 어서 일어나자고,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하자고.
박소란 (시인)
가르기 모으기 / 정우신
11+3=5. 방울토마토 한 개. 방울토마토 한 개. 방울토마토 세 개. 너를 만나기 위해 몇 개의 토마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방울토마토 한 개를 먹고 열 바퀴를 돌고. 한 바퀴를 더 돈다. 너는 동생을 위해 세 개를 남겨둔다. 동생은 방울토마토를 먹고 제자리를 뛴다.
11-0=3. 애호박 두 개. 장바구니 하나. 작년 인세 정산 금액은 392원. 대파 가격은 875원. 책과 대파를 팔아도 된장국에 호박을 넣을 수 없다. 나는 호박도 없고 된장도 없고 미소만 있다. 나는 아이를 보기 전에 웃는 연습을 한다.
5+1=2.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린 한 손. 손가락 한 개.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선 주머니에 한 손을 얼른 넣는다. 그 사람이 나의 손가락 개수를 셀 것 같아서.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에 증명이 필요하게 될 것 같아서.
2-5=?. 허니버터칩. 코카콜라. 가나초콜릿. 목캔디. 쵸코하임. 오징어 짬뽕. 2학년 5반 선생님 생일은 7월 8일, 7월 8일은 내 생일, 문방구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이 들려서 친구들이 선물을 사주려다가 만다. 구의역 9-4에서 다시 시작.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자리를 바꿔도 몇 개의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한 사람을 위한 된장국은 끓어갈 것이다. 나의 삼위일체는 부모와 부부와 부채. 시간이 돌고 돌아 서로의 방에 들어가 슬픔의 이불을 가지런히 펼 때까지 참사가 계속되는 것이 신이라면.
라일락과 라벤더가 섞이고 있음에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세계라면. 그것이 하필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라면. 아빠 아빠, 우리는 이제 무엇을 가르고 모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