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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촛불
요한일서 4:9-11 2024/12/22 구주강림 제4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짜여 진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대림절,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4주간의 시간을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대림절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접근했습니다.
하나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로 삼았습니다.
한 아기의 탄생이 핵심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대림절이 시작되면, 한 아기와 관련된 하나님의 예언
이사야 9:6절의 말씀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대림절의 보편적인 의미입니다.
핵심이 한 아기의 탄생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한 아기의 탄생,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전통으로, 가장 중요한 곳에 ‘Nativity Scene’라고 부르는 ‘성탄의 풍경’을 장식했습니다. 글도 성서도 모르는 이들에게 대림절의 주인공이 한 아기 곧 아기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림절의 의미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오늘 우리 교회 놓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전통 바로 ‘아멘 마라나타’입니다.
‘아멘 마라나타’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마라나타’를 순서대로 직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시옵소서.
주 예수님.
그러니까, 오늘 우리 교회가 4주간의 걸쳐 대림절을 지키면서 기다려야 할 것은 ‘마라나타’ 곧 ‘구주 강림’에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지요.
그래서 ‘한국찬송가공회’가 2006년, 교회력에 따른 ‘새교독문’을 편집할 때, ‘강림절(대림절)’을 ‘구주강림절’로 좀 더 명확하게 표기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지탱했던 힘, ‘아멘 마라나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2006년 이후 ‘새교독문’에 담긴 구주강림절 첫 번째 주일 교독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15. 구주 강림(1)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시62:10-12)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다같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눅3:4-6)
구주(메시야/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첫 번째 주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①주의 길을 준비하라.
②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무슨 의미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의 길을 준비하며,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일일까요?
그 해답을, 복음서를 가장 먼저 기록한 마가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이
주의 길을 준비하고,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벽, 죄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막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러면 왜 우리 교회는 주의 길을 준비하는,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가, 입니다.
그래야 죄의 장벽이 사라지고, 요한계시록 21장이 말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이라는 ‘새 희망’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래서 교회는 구주강림절 첫 번째 주에 밝히는 기다림의 촛불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희망의 촛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새 희망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귀로 들을 있도록, 오늘 우리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죽음이 더는 없는
애곡하는 일도 통곡하는 일도 아픔을 겪는 일도 더는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어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주강림절 두 번째 주일 교독문입니다.
116. 구주 강림(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여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위리라
구주강림 두 번째 주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화로움이 있는 샬롬(평화)입니다.
①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 가져올 평화
②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게 될 이들의 평화
③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나타나는 평화
④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 지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팍스 로마나’에 지친 누가는 예수님의 오심, 구주의 강림을 이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래서 둘째 주에 밝히는 기다림의 촛불을 교회가 “평화의 촛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가운데 임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구주강림절 세 번째 주일 교독문입니다.
117. 구주 강림(3)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다같이)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구주강림 세 번째 주일의 핵심은 기쁨입니다.
①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
②보복하시며 갚아주시며 구원하시는 기쁨
③맹인의 눈이 밝혀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며,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하는 기쁨
④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며, 숲 풀이 거룩한 길이 되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길을 찾은, 동방박사의 고백을 통해,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오심, 구주의 강림을 이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래서 셋째 주 밝히는 기다림의 촛불을 교회는 “기쁨의 촛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찾은 기쁨입니다.
구주강림절 네 번째 주일 교독문입니다.
118. 구주 강림 (4)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영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다같이)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구주강림 네 번째 주일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자들이 얻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주 강림절 넷째 주에 밝히는 기다림의 촛불을 “사랑의 촛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구주의 강림을 이렇게 설명했던 것입니다.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러니 여러분
성탄이 오기 전에,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말씀을 진중하게 고민하십시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