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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4주일 [그리스도를 배우는 교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배우고, 그를 알게되는 과정을 거쳐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알게 되는 과정까지 오게되면, 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배운 자가 된다.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것]
단지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신자의 신앙이 완성되지 않는다.
신자가 되고 나서도, 배우는 과정이 주어져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를 알게 된 상태, 곧 인격이 인격이신 주님을 만나, 교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 때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동시에 그 때, 그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안다, 현재형, 배웠다, 현재완료형이다.
배웠다는 구원받았다, 믿는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보통 구원받았다. 믿는다고 한다.
같은 표현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구원받았다, 믿는다는 단순하게 표현하여, 성도들의 중요한 신앙상태를 다 표현하지는 못한다.
이 신자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케 서 있는지, 가짜로 서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실제로 종교적인 형태는 갖고 있지만, 진짜는 아닌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웠다고 하는 것은 그런 면을 잘 구분해준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으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구원의 순간에 하나님이 그를 정말 구원하고, 영원한 구속을 보장한 것에 대해서는 은혜롭게 찬성하지만, 다 이루었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주님이 그의 죄를 대신 감당해주셨지만, 여전히 죄인이다.
그는 믿기 하루 전까지 완전히 악인이었다. 하루 지났다고, 그의 모든 행위가 의로운 것은 아니다.
죄로 얼룩진 자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로서 완성된 상태로 보기 어렵다.
워낙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주 앞에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그것 하나로, 다 이루었다고, 이제 자유하다고 하면 심각하다.
죄를 이기려고, 노력하고, 죄 때문에 괴로워하던 자가 이제 자유하다고 감사할 수 있겠지만, 전혀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예수 믿는다고 자유하다고 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겨오던 자였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영적으로 합당치 않았다.
그들은 노력은 했지만,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만 있었지, 죄인인 사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자에게 이제 예수께서 법적인 것을 해결해주셨으니, 오늘부터는 의를 위해 살라고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죄로 가득한 인간에게 죄의 억압을 받지 말라고 하니까, 오해한다.
죄의 억압을 받지 말라는 경우는 유대인의 경우에 맞다.
그래서, 앞으로 살 때도 죄의 권능을 조심해야 한다.
예수 믿는 순간, 그 사람이 온전히 본질적으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를 영접한 순간부터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신앙생활은 주님이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새삶의 기회다.
그래서, 그 자체를 새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어로 life는 생명도 되고, 사는 것도 된다.
신앙생활은 불신자에게는 있지도 않다. 구원받았으니, 그 날부터 신앙의 삶이 시작된다.
그 삶은 배움으로 채워가야 한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배우는 것, 알아가는 것, 닮아가는 것, 주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없는 주님의 의로운 모습을 본다.
그는 백프로 하나님이지만, 백프로 사람이시다. 그에 대해서 배우면서, 의의 삶을 시작한다.
결국 그를 닮아가는 것이다.
닮다보니까, 나는 어느덧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된다.
비록 쓰러질지라도,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위대하다 선전하며 사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배우는 삶은 빈공간에다가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배우고, 닮아가는 삶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신앙생활 자체가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다.
성경의 무엇에 대해 배우고, 역사도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 신앙생활 자체는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다.
주님을 깊이 알고, 결국 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은 배운 사람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배운 것과 그리스도를 배운 것은 굉장히 다르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적인 배움의 목적이 그분외에 다른 주변을 훑고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은 정보로서 지식이 아니라, 그분이다.
그분과 나와의 내적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길 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속 정보를 채우면서, 결단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세상 살다보니, 갖게 된 새지식을 더한 것 뿐이다.
내 삶 + 예수 믿는 것
인생에 예수 믿는 것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더해지는 것은 예수를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를 배우는 것은 그를 이해하므로, 이해하는 삶속에서 그가 내 속에서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내 삶속에도 그가 임하시는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왜 자신을 나타나셨는가.
그가 접근하신 것은 그의 사랑이 작용되도록 하심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그가 가지셔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그가 살아계셔야 하고, 내 삶속에 그가 살아계셔야 한다.
우리가 주를 영접했으면, 이제 정말 초보다.
문을 열고, 다리만 문턱을 넘어선 것인데, 다 이루었다면서, 그 상태로 끝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그 날부터는 주님과 교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 삶은 주님이 정하신 바, 그를 배우는 것이다.
배우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주님의 임하심이 이루어짐을 체험한다.
신기한 것은 그를 배운다는 것은 문장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고, 은혜롭다.
그가 내 배움의 목적이다.
그를 배운다는 문장의 느낌은 그가 나를 직접 가르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그에 관하여는 남에게 들을 수 있지만, 그를 배우는 것은 당사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을 이해하는 것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성이 있다.
그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초기단계다.
주변 상황을 함께 배우는 것 일 수 있지만, 그를 배우는 것은 현재완료로 표현한다.
그를 배우는 것은 그를 아는 것, 그의 인격을 아는 것이다.
그분의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그분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느낌이 없지만, 세상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주님과 교통하고 있다.
주님과의 사귐, 주님과의 연합, 주님을 내 마음에 느끼는 수준정도 되면, 주님을 배운 것이고, 주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참 영적 지식은 그분을 인격으로 아는 것이다.
그분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시다.
인격과 인격으로서 서로 아는 것이다.
참 영적 지식은 이천년동안 아무도 몰랐다가, 누가 특별히 알아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천년동안 비밀을 감추셨다가, 나머지는 멸망하게 하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고,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할지 결정할 기회가 온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완전히 가치있게 만들어 놓았다.
신약성경은 홀로 달려오지 않았다.
교회는 성경이 편집되기 전에 시작했다. 이미 주님을 아는 자들에 의해 가르침이 시작되어, 오늘까지 왔다.
역사를 함께 달려온 전승이 있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 오늘까지 달려오고 있다.
성경만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하나만 가지고, 이단, 사이비 많다.
이단은 성경만 가지고, 자기가 편집해서 한다.
그러나, 전승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 때문에, 가슴을 치고 있고, 신약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타나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을 공감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는데,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에 융화되는가.
최초에 구원이 임하는 것도, 성경이 편집되기 전이었다.
성경은 모든 자에게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원래 사도들의 말로 전해졌다.
거기에서 주님을 내가 영접할 때,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의 숨결이 느껴지고, 사랑을 느끼도록, 그 권능이 용솟음칠 준비를 하고 있다.
전승이 함께 갔기 때문이다.
글자만으로 사람을 감동할 수 없다.
일시적인 감동이지, 하나님을 만나는 감동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사도들은 신앙을 전달해 주었다.
우리는 그 신앙을 받았다.
그들은 구원도 전해주었고, 구원받은 삶도 전해주었다.
예수 믿었으니, 끝이라고 하지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가르쳤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람이 자기 본성을 거스르면서, 적어도 노력은 하고, 흉내는 낸다.
이렇게 하여, 합당치 않은 자를 하늘로 올리시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사도들이 자기가 주님을 느끼고, 깨닫고, 구약말씀에서 하나님이 토해내셨던 답답함을 느끼고, 이제는 주님의 명을 따라 전해주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고자 한 자라면, 몇세기 후, 어느 순간에 나타났더라도, 그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초청을 보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무식한 사람이라도, 정하셨다면, 그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어디든지 그 말씀이 전파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도들은 충실하게 전달했다.
배움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불러온다.
더불어, 우리가 행실로 변화되는 것은 주님을 배운 증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 믿게 되어서, 처음 구속받았는데, 다음날 또 죄를 범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주님은 대속도 해주시고, 새삶도 주셨다.
그런데, 아무 거리낌 없이 죄를 범하면서, 몇십년 신앙생활 했다고 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구원할 엄마 품 같은 교회를 공격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회개하는 삶이다.
회개라는 배경 위에 그려진, 주님의 권능이다.
구원의 삶은 그리스도를 배우는 삶이다.
그의 마음을 알고, 그에게 연합되는 것이다.
행위도 중요하다. 행위는 실체에 대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속이 중요하다.
행할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방향성이라고 한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결단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라가리라.
그의 뜻을 사모하고, 그의 마음을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돕고 싶고,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고, 평생 의지하고 싶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 아니다.
그 마음속에 주님을 영접했는가, 아닌가 이다.
그 사람 마음속에 주님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훌륭하다고 하시겠는가.
그를 닮아가려는 노력, 적어도 결단이 필요하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흉내라도 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 + 내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삶은 없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르쳐라. 세상끝날까지.
모든 세대를 가르쳐야 하고, 동시에 가르침 속에 그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첫세대는 백년도 못살고 죽었다. 누구와 함께 계시는가.
바로 그를 배우는 모든 신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딤후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사랑하지 않고서는 말씀을 지키기 어렵다. 잠깐은 해도, 견디기 어렵다.
사랑하니까, 내가 기뻐서 하는 것이다.
오늘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배움의 삶이 시작되었으니, 머지않아 그리스도를 배운 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되기 바란다.
거짓종교인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깨닫고, 그분처럼 느끼는 자들 되기 바란다.
[본문]
지난주까지 엡4:17부터 시작된 바, 이방인의 타락한 삶을 서술했다.
이방인들은 방탕에 자기를 내어주고, 탐욕스럽고, 탐욕을 자기의 업으로 삼는다.
남을 해치면서 무감각하고, 하나님 없이 그냥 산다. 영적으로 파산되니까, 도덕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망가진 자가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배운 자들이니, 이방인과 같을 수 없다]
에베소 교회와 일부 아시아 교회의 위협은 타락한 자들이 와서, 교회를 오염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경고는 교회를 오염시키고, 해를 끼치는 자에게 직접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전체 교회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악행을 하고 있는 신자들이 발생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흔들리는 신자에 의해서, 교회가 오염된다.
악행이 유입되어 받아들여지면, 교회는 영적으로 한단위가 떨어진다.
그래서, 오늘부터 엡4:24까지는 이미 교회 안에서 타락한 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이다.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를 배운 자들이니, 저들과는 다르다.
저들은 너희와 비교할 가치도 없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인격이신 그분을 배웠다.
배움의 내용이 지식조각이 아니다.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배움]
그분을 아는 것, 이것이 배움의 내용이다.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주님과 인격적인 교통이 있는 체험, 전인격적인 앎을 말한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믿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우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 이보다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것은 그분과의 내적연합, 그분을 알아가는 꾸준한 배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시기를 정하지 않고, 배웠다고 하면, 모든 배움의 과정을 한꺼번에 묶는 의미가 있다.
한두번 레슨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삶 전체를 말한다.
그래서, 그를 배웠다고 하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역을 힘입었음을 알 수 있다.
요6: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아버지께 배운 자들, 한두번 레슨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을 한꺼번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초청, 내게 배우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골자적으로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너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배움은 앞에 있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는 것을 추가해서 보면, 기계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인격적인 사귐을 암시하고 있다.
전인격적인 배움이다.
나를 드러내고, 내 마음을 그가 이해하도록 풀어준다.
진심으로 그에게 나를 내어주는 내적교제를 말한다.
배운다는 말은 그 자체에 체계적인 교육을 의미한다.
[전승(사도들로부터 전해온 그리스도)]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
예수를 받게 되면, 체계적인 교육이 따라온다.
그리고, 행실의 변화도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초대교회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전하고 있는 전승을 말한다.
성경 하나만 왔다고 하면 안된다.
성경도 전달되고, 성경과 함께 사도들의 전승도 함께 전달되었다.
베드로 같은 경우, 주님을 향한 충성과 사랑도 전했다.
너희는 그의 사랑을 받는데 실패하지 말라.
전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고, 마음이 변하니까, 행실도 변한다.
행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가르침은 초대교회 때부터 계속 있다.
예수를 주로 믿으면 끝이지, 왜 가르칠까.
아직 그를 만날 수 있는 영감이 없고, 죄인이기 때문에, 한발씩 다가가야 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르침은 계속 하고 있다.
골1:6-7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지식은 수천년간 묵혀져 있다가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배움의 기회가 있도록, 모든 세대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유대인들이 가르칠 때는 법을 순종하는 것을 배웠는데, 이제 주님 오신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배운다.
[살아 계신 주님을 배움]
그 인격을 배울 때, 그가 우리와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분의 가르침에 의해서, 그의 임재를 보장하고 있다.
누가 예수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
배우면서, 하나님과의 교감을 확대하고,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에 의해 새인격으로 태어난다.
대신 육체는 옛사람 그대로여서,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회개 그리고 죄와 결별하는 것]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타락한다.
나는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내 육신은 죄인이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죄와 결별하라.
그런데, 죄와 결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는 진짜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아무렇지 않게 죄를 범하는 자는 애초에 구원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자체가 증거다.
패역한 세대에게서 구원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대로 살고 있다면, 구원받지 않은 증거다.
구원은 죄의 권능에서 구원해내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1:3-4,9-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분처럼 사랑하고,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아파하고, 그분처럼 기뻐하고, 그분처럼 긍휼히 여기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와 사귀면서, 동시에 그를 닮는 것이다.
요일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하나님과의 교감, 교제가 진짜 본질이다.
요일2:5-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그가 임하신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은 어떻게 행하는지, 일등 샘플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발을 씻긴 것 같이, 너희도 섬기라.
요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살려주신다. 그러면 사랑해야 마땅하다.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요일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아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의 의로운 모습, 사랑하는 모습,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모습, 희생으로 참는 모습, 그 모습들을 닮게 하려는 것이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결국은 그분의 모습처럼 되기 원하는 것이다.
결국 하늘에 올라가서, 그 수준까지 올리시려는 것이다.
주를 배우는 삶에 열심히 하기 바란다.
주를 닮는 삶, 주와 사귀는 삶을 열심히 하기 바란다.
그래서, 주를 배운 자가 되기 바란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주를 내 마음에 모시도록 훈련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배우고, 닮고, 주님 마음을 이해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