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상도교화집'입니다. 복희에 대한 내용인데 간추리면
(1) 복희 재위 기간(王으로 앉았던 기간) : BC 3258~3413 (115년)
(2) 진(陳) 나라를 세움
(3) 진(陳) 나라를 세울 때 나이 : 35세 (150-115 = 35)
상도에서 발간한 교화집이 과연 정확한 근거에 바탕했냐는 문제
(1) 재위기간 : 상도에서 복희의 재위기간으로 설정한 BC 3258~BC 3413에 대한 근거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태호복희(BC3528∼BC3413)는 동방 구이(九夷)족 중, 풍이(風夷)족 출신으로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크게 밝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복희씨는 지금의 행정관에 해당하는 우사(雨師)의 직책을 맡았으며, 우주 생성변화원리의 이치를 담은 팔괘를 처음 그었다 여와의 이야기는 고구려의 을파소가 지었다는 『참전계경』에도 나온다. 바로 "여와가 흙을 ?어 사람의 상을 만든 다음 혼을 불어넣어 7일 만에 사람이 되게 한 뒤 그들을 모두 전쟁에 사용하니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나머지 어느 문서에서도 위의 재위기간인 BC 3258~3413에 대한 내용보다는 다른 기간을 언급합니다.
ㄱ. BC 2852년~BC 2737년(총 115년) 혹은 BC 2952년 ~ BC 2836년(총 116년) 동안 세상을 통치했다고 한다. - 나무위키
ㄴ.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BC 2800년 무렵에 살았다고 전한다. - 위키백과
(2) 진(陳) 나라 건국 여부 : 다음 주제는 복희가 진(陳) 나라를 건국했느냐 여부입니다.
ㄱ. (복희)는 진(陳)에 도읍을 정하고 동쪽으로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하고, 111년간 다스리다 붕어하였다. - 『사기(史記)』三皇本紀
ㄴ. (복희)는 陳(진)에 도읍을 정하고 震國(진국)을 개국하였다. 역대신선통감 권1 제 7절에서 “ 太皥帝出乎震(태호제출호진 : 태호황제는 신시에서 나와 震(진)국을 건국하였다. 震(진)은 震旦,震檀(진단)국이 된다.
ㄷ. 이를 공자는 다음처럼 인용한다. : "제왕은 진(震)에서 나온다. 만물이 震에서 나오니, 震은 東方이다. 〔帝出乎震. 萬物出乎震 震東方也〕" - 『주역(周易)』 설괘전(設卦傳) 제5장
ㄹ. (복희는) 현 중국의 하남성 진주(陳洲)에 도읍했고 재위 기간은 115년이었다. - 『대순회보』 51호
중국에서 진(陳)나로서 가장 먼저 정식 국가로 등장하는 진(陳) 나라는 주나라 때의 제후국인 진(陳)입니다.
ㅁ. 진(陳,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478년)은 중국 주나라 때 존속했던 제후국 중의 하나이다. 수도는 지금의 허난성 저우커우 시 화이양 현인 완구(宛丘)이며, 성씨는 규성(嬀姓)이며 작위는 후작이다. 초대 군주는 호공(胡公)으로 그는 순(舜) 임금의 후손이며 알보(閼父)의 아들이라고 한다. 25대 군주인 민공(閔公) 때 초(楚)나라에게 멸망당했다. - 위키백과
위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복희는 대략 BC 2800년 무렵 현 중국 하남성 진주(陳洲)에 주요 거처(도읍)을 마련하고 대략 115년 정도 통치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1800년 후, 진(陳) 나라로 첫 언급된 주나라 때 제후국이던 진(陳)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 발간하는 『대순회보』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하기 위해 불투명한 연대는 표시를 안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기관의 자세입니다. 10가지가 옳아도 1가지가 틀리면 나머지 9가지도 신뢰를 잃게 됩니다. 상도 교화집은 여기저기서 짜집기해 편찬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를 인용할 때 주의할 점 입니다.^^
첫댓글 문제는 말입니다.
표주박님이 진나라를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로 착각하여 올린 것을 그건 아니다 했다는 겁니다.
복희의 진 나라는 진지역에 세웠음으로 진이라 했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중국이 삼황으로 추앙 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죠 지방 촌락 부족장 정도를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보살 핀 삼황중 한분으로 세우는 것 이 잘 못 되었으니 중국 역사가 잘 못 되었다 해야 겠지요.
이는 신화의 한 부분 이기도 합니다.
표주박님을 너무 싸고 돕니다 ㅎ
그리고 첨부 해서 한가지 더 말씀 드린다면 혜공님께서 는 노아가 복희다 와 같이 주장 하시니 노아 의 연대와 복희의 연대를 추정해서 이글을 올렸다면 더 멋진 정리가 되었을 거란 것 입니다.
@백의 / (1) 표주박님이 진(陳) 나라를 진시황의 진(秦) 나라로 말한 것은 착각에 의한걸 겁니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2) 복희의 진(陳) 나라는 후대의 진(陳) 나라 지역에 세워 져서, 후대 사가들이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분명한 것은 복희는 진(陳) 나라를 개국하지 않았단 겁니다
착각 할걸 해야죠 그게 전제 였는데
역사 적으로 지역에 있는 나라는 그나라를 계승 하는 것이 통례 입니다.
진시황 이 통일해도 다시 초나라 지역에 항우가 다시 초나라를 세우고 제나라에 제나라가 일어나는 것 입니다.
진 나라 또한 이와 같은 이유 일 것 입니다
(3) 당시엔 부족장이 현대 개념으로 '국가'를 다스렸다고 봐야 합니다. 도읍이란 표현은 적어도 수백 가구를 이룬 마을을 일컬을 겁니다. 당시엔 마을이라고 해봐야 수십 내지 많아야 수백 가구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4) '복희가 노아다' 라는 것은 한번 정리를 해서 올리겠습니다.
백의님의 탐구 정신에 늘 경의를 표합네다^^
중요 한 것은 상제님 의 천지공사 에 대한 전경의 해석 입니다.
역사적으로 복희는 비씨 삼천년 전부터 이천오백년 까지 각양각색입니다.
이런것은 어떤 자료를 인용 했나 이나 전 상도님의 서술에 무게를 두겠습니다.
(5) 참, 중요한 것을 빼먹었군요. 상도 교화집은 북희가 진(陳) 나라를 개국했다고 기술 했는데 이는 집필자들이 여기저기서 자료를 참조하며 글을 편집할 때 이런 정황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도 교화집을 새길학당 담론에 사용하는 게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글 올릴일은 이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