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ON-ONE
그가 유벤투스의 게임 조작을 예상했을까? 하이버리는 도서관 같은 곳일까?
그리고 그는 정말 그림을 거는 데 사람을 불러서 시켰을까?
당신의 질문들에 티에리 앙리가 답한다.
interview Darren Tulett

티에리 앙리는 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수다를 떨은 이 아스날의 스트라이커는 말을 쏟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포포투 매거진에게는 좋은 일이지만....아닐 수도 있고.
우리는 앙리가 리복과 스폰서 런칭 행사를 벌인 소호 레코드샵의 지하에 와 있다. 이 스포츠웨어 회사의 이번 캠페인 테마는 "I Am What I Am"이며 앙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이 확실히 즐거워 보인다.
한 시간 가량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TV인터뷰, 프랑스 기자들, 외국 언론의 Q&A까지 다 마치고 나자 거의 저녁 9시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인터뷰를 해야 했다: 포포투의 독자들과.
다행히도 이 프랑스인이 녹초가 될 거라는 걱정은 사실무근이었다. 우리를 마주하고 의자에 앉아서, 예의 무관심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진짜 티에리 앙리를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쥘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어떻게 회상하시나요? 항상 축구공을 차고 있었나요?
그럼요, 항상 공을 차고 있었어요. 무엇보다 우리 아버지가 격려해 주시고 비판해 주신게 기억나요. 제가 어릴 때조차 아버지는 제가 게임에서 뭘 잘못했는지 지적해 주시곤 했죠. 우리 아버지는 제 축구 교육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셨어요.
그땐 마치 제가 아버지를 위해 축구를 하는 것 같았죠. 아이일 때는 부모님을 기쁘게 만드는 것 만한 게 없잖아요. 정말 시합을 잘 치루고 나서 아버지 차 쪽으로 걸어갈때의 느낌을 기억해요. 제가 한 거에 대해 웃어 주시겠지 하고 기대했던 걸요. 근데 그런 일이 자주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는 언제나 제가 한 것에 대해 너무 들뜨지 말라고 하셨어요. 항상 향상시킬 여지가 있다고요. 그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파리지앵으로서, 프랑스 남부로 옮기게 됐을 때 컬쳐 쇼크가 있었나요?
쇼크 비슷한 게 있었어요. 맞아요. 제가 자란 파리 외곽에 비하면요. 절 놀래켰던 건 모든게 깨끗하다는 것과 차가 빨리 달린다는 거였어요. 그곳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거대한 영화 세트에 와 있는 것 같았었죠. 아무것도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거기에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나코는 좋은 곳이에요. 살기엔 훌륭한 곳이죠.
소니 앤더슨이 모나코의 스트라이커로 있으면서 당신을 윙의 자리로 몰아내고, 결과적으로 당신이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됐던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나요?
맞아요. 그가 뛰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죠. 넓은 지역에서 뛰면서 배운 것도 많아요. 제 커리어에 있어서는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항상 중앙에서만 뛰다가 넓은 곳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곳에서는 배우지 못했을 경기에 대한 눈을 길러줬어요.
하지만 가장 크게 알게된 건 센터 포워드로 뛰면 거의 언제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된다는 거죠. 윙으로 뛰면서 공을 뺏어 오고,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바쳐도, 영광과 주목을 한몸에 받는 사람은 항상 마지막에 골대 안에 골을 넣는 사람이에요. 소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항상 팀메이트들에게 감사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게는 스트라이커만이 중요했어요. 그가 잘 하지 못했을 때도, 잘 했을 때도 모두 그만을 신경썼죠.
조심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지금 저는 골을 넣지만, 제가 득점했을 때 제 동료들이 주목받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저 골대 안에 공을 밀어 넣기만 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 명을 제치고 크로스을 올려준다고 해도 결국 득점한 사람이 헤드라인에 오르죠.

삼촌이 프랑스 400미터 허들 챔피언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챔피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훌륭한 육상선수였어요. 정말 빨랐죠.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여러 운동을 하셨어요. 에버튼에 물리치료사로도 계셨구요. 오를레앙 앙리에요. 우리가 더블을 기록한 해[2002년], 시즌 마지막 게임에서 우리가 에버튼을 4-3으로 이겼을 때 삼촌이 에버튼 벤치에 계셨었어요.
만약 98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셀 드사이가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경기에 뛰었을 거에요. 그 레드카드가 당신의 월드컵에 대한 꿈을 깼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날 밤 축하할 기분을 망쳐버렸나요?
솔직히 말해서, 힘들었어요. 그건 일단 월드컵 결승이잖아요. 에메 자케 감독은 하프타임때 나가서 워밍업을 하라고 했어요. 그는 "네가 나갈거야."라고 말했었어요. 시간이 좀 지난 뒤 그가 말했죠. "좋아, 5분만 더 있다가." 그리고 그때 그 카드가 나왔어요. 잠깐 동안 "Fuck!"이라고 생각 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그날밤 축하를 못한 건 아니에요- 엄청난 영광이었죠.
월드컵이 끝난 후 당신은 유벤투스로 옮겼죠. 거기서 뭐가 잘못됐던 건가요?
여기서 말해둘 게 있어요. 확실히 해둬야 하는 게 있죠. 사람들은 내가 유베에서 충분히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저는 항상 뛰었어요.
우선, 저는 유베에 1월에 입단했어요. 출전 게임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죠. 저는 시즌 나머지 16게임을 다 뛰었고, 그중 13게임을 선발출장했어요. 처음 세 경기는 벤치에 있었는데, 당시 감독인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감독직을 사임하는 과정에 있기도 했었고 제게 좀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했죠.
마지막 대여섯 개 게임에서는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를 했었어요.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몇 경기가 걸린 건 사실이에요. 왜냐면 그때 우리는 제게는 생소한 3-5-2시스템을 썼거든요. 하지만 금방 적응했고 잘 했었답니다. 저는 전혀 원하지 않았던, 다른 이유 때문에 유베를 떠나게 된 거에요. [포포투: 하지만 그걸 다 밝힐 생각은 없죠?] 없어요.
원문: Four Four Two 06년 10월호
번역: lennonaid♡
++++++++++++++++++++++++++++++++++++++++++++++++++++++++++++++++++++++++++++++++++++
포포투 매거진 커버스토리인데요. 너무 길어서 몇개로 잘라서 올려요...
팬들이 보낸 질문에 답하는 앙리씨입니다. [팬들 이름은 귀찮아서 뺐어요;;; ㅋ]
요새 하는게 좀 있어서... 언제 두번째거 올리게 될지 자신이...OTL
양 너무 적어서 죄송해요 ㅠ
이 다음 질문들은 재밌는거 많으니 기대해 주세요 ㅋ
첫댓글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얼마안된 따끈따끈한 인터뷰내요
다음 내용도 손꼽아 기다릴거에요^^
끼야 앙리는 참 생각이 깊은 사람같아요 진지하고..... 그래서 앙리가 참 좋아요!